六識無功伸一問有眼如盲 有耳如聾 明鏡當臺 明珠在掌 一句道盡 作家曾共辨來端何必 也要辨箇緇素 唯證乃知 茫茫急水打毬子始終一貫 過也 道什麽 落處不停誰解看看卽瞎 過也 灘下接取
6식(識)의 공용(功用) 없음으로 1문(問)을 펴니 눈이 있어도 맹인과 같고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 같다. 명경이 당대(當臺)하고 명주(明珠)가 손바닥에 있음이다. 1구로 말해 마쳤다. 작가가 일찍이 한가지로 내단(來端)을 분변했다 하필이리오만 또한 저(箇) 치소(緇素)를 분변코자 할진대 오직 증득해야 이에 아느니라 망망(茫茫)한 급수(急水)에 공(毬子)을 침이여 시종일관(始終一貫)이다. 지나갔다.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낙처(落處)가 정지(停止)치 않음을 누가 볼 줄 아는가 본 즉 눈 멀어지리라. 지나갔다. 여울 아래에서 접취(接取)하라.
六識無功伸一問 古人學道 養到這裏 謂之無功之功 與嬰兒一般 雖有眼耳鼻舌身意 而不能分別六塵 蓋無功用也 旣到這般田地 便乃降龍伏虎 *坐脫立亡 如今人但將目前萬境 一時歇却 何必*八地以上 方乃如是 雖然無功用處 依舊山是山水是水 雪竇前面頌云 活中有眼還同死 藥忌何須鑒作家 蓋爲趙州投子是作家 故云 作家曾共辨來端 茫茫急水打毬子 投子道 念念不停流 諸人還知落處麽 雪竇末後敎人自著眼看 是故云 落處不停誰解看 此是雪竇活句 且道落在什麽處
●坐脫立亡; 坐脫 又作坐化 坐亡 坐脫立亡 謂端坐時遷化 直立時入寂
●八地; 菩薩修行五十二階位中十地位之第八位 成就願波羅蜜 斷修惑 作無相觀 任運無功用相續 故云不動地
6식(識)의 공용(功用) 없음으로 1문(問)을 펴니 라고 하니 고인이 도를 배워 장양(長養; 養)하여 이 속(6식의 공용 없는 곳)에 이름을 무공(無功)의 공(功)이라고 이르나니 영아(嬰兒)와 더불어 일반(一般)이라서 비록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가 있지만 능히 6진(塵)을 분별하지 못하므로 대개 공용이 없다. 이미 이런 종류(這般)의 전지(田地)에 도달(到)한지라 곧 이에 항룡복호(降龍伏虎)하고 좌탈입망(*坐脫立亡)한다. 여금의 사람은 단지 목전의 만경(萬境)을 가져 일시에 쉬어버리거늘 하필 8지(*八地) 이상이라야 비로소 이에 이와 같으리오. 비록 그러하여 공용처(功用處)가 없지만 의구히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이다. 설두가 전면(前面; 제41칙)의 송에 이르되 활중(活中)에 눈이 있으면 도리어 사(死)와 같거늘 약기(藥忌)로 어찌 모름지기 작가를 감별하리오 하였으니 대개 조주와 투자는 이 작가이기 때문에 고로 이르되 작가가 일찍이 한가지로 내단(來端)을 분변했다 하였다. 망망(茫茫)한 급수(急水)에 공(毬子)을 침이다 한 것을 투자가 말하되 염념(念念)마다 정류(停流)치 않음이다 하니 제인은 도리어 낙처를 아느냐. 설두가 말후에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착안하여 보게 한지라 이런 고로 이르되 낙처(落處)가 정지(停止)치 않음을 누가 볼 줄 아는가 하였다 이것이 이 설두의 활구니 그래 말하라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坐脫立亡; 좌탈은 또 좌화(坐化)ㆍ좌망(坐亡)으로 지음. 좌탈입망은 이르자면 단좌(端坐)했을 때 천화(遷化)하고 직립(直立)했을 때 입적함.
●八地; 보살이 수행하는 52계위 중 10지위의 제8위. 원바라밀(願波羅蜜)을 성취하고 수혹(修惑)을 끊고 무상관(無相觀)을 지어 임운(任運)하면서 무공용(無功用)이 상속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부동지임. 用相續 故云不動地
佛果圜悟禪師碧巖錄卷第八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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