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종용록 제12칙 송

태화당 2022. 4. 28. 07:56

宗說般般盡强爲今日不著便 流傳耳口便支離衆僧莫怪 種田博飯家常事不可別有 不是飽參人不知要知作麽 參飽明知無所求更須請益天童一遍 *子房終不貴*封侯也是*靈龜曳尾忘機歸去同魚鳥隨流得妙 *濯足滄浪煙木秋受用不盡

 

子房; 張良(約前250-186) 字子房 潁川城父人 秦末漢初傑出的謀士 大臣 與韓信蕭何 並稱爲漢初三傑 其先韓人 良嘗學禮淮陽 東見倉海君 得力士 爲鐵椎重百二十斤 秦皇帝東游 良與客狙擊秦皇帝博浪沙(河南省博浪縣)中 誤中副車 秦皇帝大怒 大索天下 良乃更名姓 亡匿下邳(江蘇省下邳縣) 從黃石公傳受太公兵法書 良數以太公兵法 說沛公 沛公善之 常用其策 漢六年 封功臣 良未嘗有戰鬥功 高帝曰 運籌策帷帳中 決勝千里外 子房功也 乃封張良爲留侯 留侯性多病 乃學辟穀 道引輕身 會高帝崩 呂后德留侯 乃彊食之曰 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 何至自苦如此乎 留侯不得已而食 後八年卒 諡爲文成侯 [史記五十五留侯世家 百度百科]

封侯; 封拜侯爵

靈龜曳尾; 祖庭事苑五 靈龜曳尾 凡龜之行 常曳尾以掃其迹 而尾迹猶存 莊子所謂吾將曳尾於塗中

濯足滄浪; 水經註疏云 蓋漢水至於楚地 則其名爲滄浪之水也 希麟音義十 悼屈原 屈 九勿反 姓屈 名原 字典平 楚爲三閭大夫 王甚重之 爲靳尙等姤其能 共讚毁之 乃被流放 後遊於湘潭 行吟澤畔 著離騷云 滄浪之水淸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 可以濯吾足也

 

종설(宗說; 宗通說通)이 갖가지(般般)임은 모두 억지로 함이니(强爲) 금일 편의를 만나지 못했다/ 이구(耳口)에 유전(流傳)되어 곧 지리(支離)중승(衆僧)이여 괴이히 여기지 말아라/ 종전(種田)하여 박반(愽飯)함은 가상(家常; 일상)의 일이지만 별다른 게 있음은 옳지 못하다/ 이 포참(飽參)한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한다 알고자 하여 무엇하려느냐/ 참포(參飽; 싫컷 참구)하면 구할 바가 없음을 환히 아나니 다시 꼭 천동에게 1(; ) 청익하라/ 자방(*子房)은 마침내 봉후(*封侯)를 귀중히 여기지 않았다 또한 이 영귀예미(*靈龜曳尾)/ 망기(忘機)하고 돌아가매 어조(魚鳥)와 같나니 흐름 따라 묘()를 얻는다/ 창랑에 발을 씻는(*濯足滄浪) 연수(煙水)의 가을이다 수용(受用)하여 다하지 않는다.

 

子房; 장량(張良; 250-186)이니 자는 자방(子房)이며 영천 성보 사람. 진말한초(秦末漢初)의 걸출한 모사(謀士)며 대신. 한신(韓信)ㆍ소하(蕭何)와 더불어 병칭하여 한초 3()이라 함. 그의 선조는 한인(韓人)이었음. 장량이 일찍이 회양(淮陽)에서 학례(學禮)했는데 동이(東夷)에서 창해군(倉海君)을 상견했고 역사(力士)를 얻었음. 철추(鐵椎)를 만들었는데 무게가 120근이었음. 진황제(秦皇帝)가 동유(東游)할 적에 장량과 객()이 박랑사(博浪沙; 하남성 박랑현) 가운데서 진황제를 저격(狙擊; 는 엿보다)했으나 착오로 부거(副車)를 맞혔음. 진황제가 대로하여 천하를 크게 수색하자 장량이 이에 명성(名姓)을 바꾸고 도망가서 하비(강소성 하비현)에 숨었고 황석공(黃石公)을 좇아 태공(太公)의 병법서를 전수(傳受)했음. 장량이 자주 태공병법을 패공(沛公)에게 설했고 패공이 그것을 좋게 여겨 늘 그 책략을 사용했음. () 6년 공신(功臣)을 봉()하는데 장량은 일찍이 전투의 공이 있지 않았음. 고제(高帝)가 가로되 유장(帷帳) 중에서 주책(籌策)을 운행하여 천 리 밖의 전승을 결정함은 자방의 공이다. 이에 장량을 봉하여 유후(留侯)로 삼았음. 유후는 천성이 병이 많았고 이에 벽곡(辟穀)을 배우고 도인(道引; 養生方法)으로 몸을 가볍게 했음. 마침 고제가 붕어하자 여후(呂后)가 유후에게 은덕을 주며 이에 억지로 먹게 하며 가로되 인생 일세간(一世間)은 백구(白駒)가 벽 틈을 지남과 같거늘 왜 자약(自苦)함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습니까. 유후가 부득이하여 먹었는데 8년 후에 죽었음. 시호는 문성후 [사기오십오유후세가. 백도백과].

封侯; 후작에 봉배(封拜; 작위를 주고 벼슬을 줌).

靈龜曳尾; 조정사원5. 영귀예미(靈龜曳尾) 무릇 거북의 행동은 늘 꼬리를 끌며 그 자취를 쓸거니와 꼬리의 자취는 오히려 존재함. 장자(莊子)에 이른 바 내가 장차 도중(塗中; 는 진흙)에서 꼬리를 끌겠다 한 것임.

濯足滄浪; 수경주소(水經註疏)에 이르되 대개 한수(漢水)가 초지(楚地)에 이르면 곧 그 이름이 창랑지수(滄浪之水)가 된다. 희린음의10. 도굴원(悼屈原) ()은 구물반(九勿反)이다. 성이 굴()이며 이름이 원()이며 자는 전평이다. ()에서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고 왕이 매우 그를 중시했다. 근상(靳尙) 등이 그의 재능을 질투하여 함께 그를 찬훼(讚毀; 고하여 헐뜯음)했고 이에 유방(流放)을 입었다. 후에 상담(湘潭)에 노닐다가 음택반(吟澤畔)을 지나면서 이소(離騷)를 지어 이르되 창랑지수(滄浪之水)가 맑으면 가이(可以)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지수가 흐리면 가이 나의 발을 씻으리라.

 

師云 *淸涼道 宗通自修行 說通示未悟 本出*楞伽經 佛告大慧 有二種通 宗通者 爲緣自得勝進相 遠離言說文字妄想 趣*無漏界 緣自覺趣 光明輝發 是名宗通相 云何說通相 謂說*九部種種敎法 離異不異有無等相 以巧方便 如應說法 是名說通相 講徒云 說通宗不通 如日被雲籠 宗通說不通 如蛇入竹 宗通說亦通 如日處虛空 宗說俱不通 如犬吠茅叢 旣分宗說 已是兩岐 那堪禪分*五派 敎列*三乘 箇中一亦不立 皆强爲也 何況出口入耳 請益拈頌 葛藤引蔓過新羅 *鞏縣茶甁湯不絕 非但南方商量浩浩地 若是道火不燒口底人 *辯似懸河元無一字 種田博飯雖是家常 其奈不是飽參不知其趣 古人深山裏*钁頭邊 折脚鐺中 煮*脫粟飯 富不過知足 一世不求人 貴不過淸閑 何須*印如斗 所以道 參飽明知無所求 子房終不貴*封侯 *史記漢六年封功臣 或謂張良未甞有戰鬪功 高帝曰 運籌帷幄之中 決勝千里之外 子房功也 使自擇齊三萬戶 良曰 始臣*下邳與上會留 此天以臣授陛下 用臣計而幸時中 臣願封留足矣 不敢當三萬戶 此頌不必開堂演法斆南方也 *離騷經漁父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此乃猿鶴共處 魚鳥同游 且道 是甚麽人 本色檐板漢

 

淸涼; 淸涼澄觀(738-839) 唐代僧 華嚴宗第四祖 俗姓夏侯 字大休 越州山陰(浙江紹興)人 號淸涼國師 華嚴菩薩 華嚴疏主 十一歲 依寶林寺霈禪師出家 十四歲得度 身長九尺四寸 垂手過膝 口四十齒 目光夜發 晝乃不眴 日記萬言 七行俱下 才供二筆 嘗以十事自勵 嘗問徑山欽西來宗旨 默受印記 住五臺山 疏華嚴經 後居京師 德宗迎入內 賜號淸涼國師 生歷九朝 爲七帝門師 開成四年示寂 世壽一(一說元和年中示寂 壽七十餘) 塔於終南 名曰妙覺 著作頗多 有大方廣佛華嚴經疏六十卷 隨疏演義鈔九十卷 華嚴經綱要三卷 五蘊觀 三聖圓融觀門等三十多種 [宋高僧傳五 佛祖統紀二十九 指月錄二 禪苑蒙求中]

楞伽經; 四卷 全稱楞伽阿跋多羅寶經 收於大正藏第十六冊 楞伽 山名 此云不可往 阿云無 跋多羅云上 寶 貴重義 經 貫攝義 是名不可往無上寶經 爲法相宗所依六經之一 本經宣說世界萬有皆由心所造 吾人認識作用之對象不在外界而在內心 是結合如來藏思想與唯識阿賴耶識思想 爲代表印度後期大乘佛敎思想之經典 本經的漢譯本有三種 一劉宋求那跋陀羅譯本 楞伽阿跋多羅寶經 又稱四卷楞伽經 宋譯楞伽經 二北魏菩提流支譯 入楞伽經 又稱十卷楞伽經 魏譯楞伽經 三唐實叉難陀譯 大乘入楞伽經 又稱七卷楞伽經 唐譯楞伽經 四卷楞伽經爲菩提達摩所付囑慧可之書 特別爲禪宗所重

無漏; 無漏淸淨之世界 又謂涅槃 無漏 無煩惱妄想過失

九部; 小乘九部敎 修多羅 伽陀 本事 本生 未曾有 因緣 譬喩 祇夜 優波提舍經也 [法華經玄贊要集一]

五派; 指中國禪宗的五家宗派 卽潙仰宗 臨濟宗 曹洞宗 雲門宗 法眼宗 五家宗派門風各有特色 傳承自成系統 先後創立于唐代下半葉至五代 其中潙仰法眼雲門三宗 在宋元時代逐漸失傳 臨濟與曹洞二宗 則延續至當今

三乘; 三藏法數七 三乘[出法華經] 一聲聞乘 聞佛聲敎而得悟道 故曰聲聞 謂其知苦斷集 慕滅修道 故以此四諦爲乘也 二緣覺乘 因觀十二因緣 覺眞諦理 故名緣覺 謂始觀無明緣乃至老死 此是觀十二因緣生 次觀無明滅乃至老死滅 此是觀十二因緣滅 觀此因緣生滅 卽悟非生非滅 故以此十二因緣爲乘也 三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覺悟一切有情衆生也 菩薩行六度行 廣化衆生 出離生死 故以此六度爲乘也 大乘起信論疏略上 乘者運載之義 謂諸佛乘此而證菩提般涅槃 菩薩乘此而趣果海 衆生乘之而輪轉生死

鞏縣茶甁; 指多口(多言)之貌 鞏縣 河南鞏縣 有鞏縣茶甁兩箇觜 鞏縣茶甁三隻觜 鞏縣造茶甁一隻三箇觜等禪語

辯似懸河; 卽說話像河水下瀉 滔滔不絶 形容能言善辯 正字通 懸 掛也 廣韻 懸 說文云繫也 晉書五十列傳 郭象 字子玄 少有才理 好老莊 能淸言 太尉王衍每云 聽象語 如懸河瀉水 注而不竭

钁頭; 卽钁 頭 後綴

脫粟飯; 謂糲飯食 慧琳音義九十三 䊪食 上蘭恒反 淮南云糲粮之食也 蒼頡篇云 䊪 麁米也 亦脫粟米也

印如斗; 印如斗大 比喩官高位顯

史記; 是西漢著名史學家司馬遷撰寫的一部紀傳體史書 是中國歷史上第一部紀傳體通史 被列爲二十四史之首 記載了上至上古傳說中的黃帝時代 下至漢武帝元狩元年間共三千餘年的歷史 全書包括十二本紀(記歷代帝王政績) 三十世家(記諸侯國和漢代諸侯勳貴興亡) 七十列傳(記重要人物的言行事跡 主要敘人臣其中最後一篇爲自序) 十表(大事年表) 八書(記各種典章制度 記禮 樂 音律 曆法 天文 封禪 水利 財用) 共一百三十篇 五十二萬六千五百餘字 [百度百科]

下邳; 戰國時期 齊威王封鄒忌爲下邳成侯 開始稱該地爲下邳 後來漢朝平定天下 將郯郡改名爲東海郡治所下邳縣 [百度百科]

離騷經; 離騷經一般指離騷 是中國戰國時期詩人屈原創作的詩篇 是中國古代最長的抒情詩 [百度百科]

 

스님이 이르되 청량(*淸涼)이 말하되 종통(宗通)은 스스로 수행함이며 설통(說通)은 미오(未悟; 未悟人)에게 보임이다 했거니와 본래 릉가경(*楞伽經)에 나온다. 불타가 대혜(大慧)에게 고하셨다. 2종 통()이 있나니 종통(宗通)이란 것은 스스로 얻은 승진상(勝進相)을 반연(攀緣)하여 언설ㆍ문자ㆍ망상을 원리(遠離)하고 무루계(*無漏界)로 취향()하며 자각취(自覺趣)를 반연하여 광명이 휘발(輝發)하나니 이 이름이 종통상(宗通相)이다. 무엇이 설통상(說通相)인가, 이르자면 9(*九部)의 갖가지 교법을 설하되 이()와 불이(不異), 유무(有無) 등의 상()을 여의고 선교(善巧)한 방편으로써 여응(如應; 如法하게 응함)하여 설법하나니 이 이름이 설통상(說通相)이다. 강도(講徒; 강설하는 무리)가 이르되 설통(說通)하고 종()을 통하지 못하면 해가 운롱(雲籠)을 입음과 같고 종통(宗通)하고 설()을 통하지 못하면 뱀이 죽통()에 듦과 같고 종통하고 설도 또한 통하면 해가 허공에 처함과 같고 종설을 다 통하지 못하면 개가 모총(茅叢)을 짖음과 같다. 이미 종설(宗說)을 나누었으니 이미 이 양기(兩岐)거늘 어찌 선()5(*五派)로 분류하고 교()3(*三乘)으로 나열함을 감내(堪耐)하겠는가. 개중(箇中; 이 중)에 하나도 또한 세우지 못하거늘 모두 강위(强爲; 억지로 하다). 어찌 하물며 출구입이(出口入耳)하면서 청익하고 염송(拈頌)하며 갈등이 덩굴을 늘이어 신라에 이르며() 공현다병(*鞏縣茶甁)의 탕()이 끊어지지 않음이겠는가. 단지 남방의 상량하여 호호지(浩浩地)만이 아닐 것이다. 만약 이 불을 말해도 입을 태우지 않는 사람이 언변이 현하와 같더라도(*辯似懸河) 원래 1자도 없다. 종전(種田)하여 박반(博飯)함이 비록 이 가상(家常)이지만 이 포참(飽參)이 아니면 그 지취를 알지 못함을 그 어찌하겠는가. 고인이 심산(深山) , 곽두변(*钁頭)에 다리 부러진 솥 속에 탈속반(*脫粟飯)을 끓이면서 부()는 지족(知足)을 초과하지 않아 일세(一世)에 타인에게서 구하지 않았고 귀()는 청한(淸閑)을 초과하지 않았거늘 어찌 인장(印章)이 말과 같음(*印如斗)을 썼겠는가. 소이로 말하되 참포(參飽; 싫컷 참구)하면 구할 바가 없음을 환히 아나니 자방(*子房)은 마침내 봉후(*封侯)를 귀중히 여기지 않았다. 사기(*史記) () 6년 공신(功臣)을 책봉(冊封)했다. 누가() 이르기를 장량(張良)은 일찍이 전투의 공이 있지 않습니다. 고제(高帝; 漢高祖)가 가로되 주(; 籌策이니 利害打算한 끝에 생각해 낸 策略)를 유악(帷幄; 는 휘장 유) 중에서 움직여 천 리 밖에서 결승(決勝)한 것은 자방(子房)의 공이다. () 3만 호()를 스스로 택하게 했는데 장량이 가로되 신()이 하비(下邳)에서 비롯하여() 주상(主上)과 류()에서 만났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신을 폐하에게 주신 것이며 신의 계책을 써서 다행히 시절에 적중했습니다. 신은 원컨대 봉류(封留)면 만족합니다. 3만 호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개당(開堂)하고 연법(演法)하여 남방을 본받음이 필요치 않음을 송했다. 이소경(*離騷經) 어부가(漁父歌)에 가로되 창랑지수(滄浪之水)가 맑으면 가이(可以; 는 조사)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지수가 흐리면 가이 나의 발을 씻으리라. 이것은 곧 원학(猿鶴)이 공처(共處)하고 어조(魚鳥)가 동유(同游)함이니 그래 말하라, 이 어떤 사람인가. 본색의 담판한(檐板漢)이다.

 

淸涼; 청량징관(淸涼澄觀; 738-839)이니 당대승. 화엄종 제4. 속성은 하후(夏侯)며 자는 대휴(大休)니 월주 산음(절강 소흥) 사람이며 호가 청량국사(淸涼國師)ㆍ화엄보살ㆍ화엄소주(華嚴疏主). 11세에 보림사 패선사(霈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14세에 득도했음. 신장이 94촌이었고 손을 내리면 무릎에 이르렀음. 입이 40()였고 목광(目光)이 밤에 발했고 낮에는 곧 눈을 깜작이지 않았음. 하루에 만언(萬言)을 기억했고 7()을 구하(俱下; 한꺼번에 읽어 내림)했음. 재능이 2()로 이바지했고 일찍이 10()로 자려(自勵)했음. 일찍이 경산흠(徑山欽)에게 서래종지(西來宗旨)를 물어 묵묵히 인기(印記)를 받았음. 오대산에 거주하며 화엄경을 소()했고 후에 경사(京師)에 거주했음. 덕종(德宗)이 내전으로 영입하여 청량국사란 호를 주었음. 출생해 9()를 경력하면서 7()의 문사(門師)가 되었음. 개성 4년 시적했고 세수는 102(一說元和年 중에 시적했고 나이는 70). 종남산에 탑을 세웠고 이름해 가로되 묘각. 저작이 파다하였음. 대방광불화엄경소 60권ㆍ수소연의초 90권ㆍ화엄경강요 3권ㆍ오온관ㆍ삼성원융관문 등 30다종(多種)이 있음 [송고승전5. 불조통기29. 지월록2. 선원몽구중].

楞伽經; 4. 전칭이 릉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며 대정장(大正藏) 16책에 수록되었음. 릉가는 산 이름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불가왕(不可往. 가히 가지 못한다). ()는 이르되 무()며 발다라(跋多羅)는 이르되 상()이며 보()는 귀중(貴重)의 뜻이며 경()은 관섭(貫攝)의 뜻이니 이 이름이 불가왕무상보경(不可往無上寶經). 법상종(法相宗)에서 의지(依持)하는 바의 6()의 하나. 본경(本經)은 세계만유(世界萬有)가 다 마음으로부터 지어진 바며 우리 사람의 인식작용(認識作用)의 대상(對象)이 외계(外界)에 있지 않으며 내심(內心)에 있다고 선설(宣說). 이것은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과 유식(唯識)의 아뢰야식사상(阿賴耶識思想)이 결합된 인도 후기의 대승불교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임. 본경(本經)의 한역본(漢譯本)3()이 있음. 1. 유송(劉宋)의 구나발다라역본(求那跋陀羅譯本)의 릉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니 또 명칭이 사권릉가경(四卷楞伽經)ㆍ송역릉가경(宋譯楞伽經). 2. 북위(北魏)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릉가경(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십권릉가경(十卷楞伽經)ㆍ위역릉가경(魏譯楞伽經). 3. ()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릉가경(大乘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칠권릉가경(七卷楞伽經)ㆍ당역릉가경(唐譯楞伽經). 사권릉가경은 보리달마가 혜가(慧可)에게 부촉(付囑)한 바의 책이라서 특별히 선종에서 소중히 여김.

無漏; 무루의 청정한 세계. 또 열반을 말함. 무루는 번뇌와 망상의 과실(過失)이 없음임.

九部; 소승 구부교(九部敎)니 수다라ㆍ가타ㆍ본사ㆍ본생ㆍ미증유ㆍ인연ㆍ비유ㆍ기야ㆍ우바제사의 경임 [법화경현찬요집1].

五派; 중국 선종의 5가 종파를 가리킴. 곧 위앙종ㆍ임제종ㆍ조동종ㆍ운문종ㆍ법안종. 5가 종파의 문풍에 각기 특색이 있으며 전승(傳承)하여 스스로 계통을 이루었음. 당대 하반엽(下半葉)에서 오대에 이르기까지 선후로 창립했는데 그 중 위앙ㆍ법안ㆍ운문 3종은 송ㆍ원 시대에 점차 실전(失傳)했고 임제와 조동 2종은 곧 연속하여 당금(當今)에 이름.

三乘; 삼장법수7. 3() [출법화경] 1. 성문승(聲聞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悟道)를 얻나니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이르자면 그가 고()를 알고 집()을 끊고 멸()을 흠모해 도를 닦나니 고로 이 4()로써 승()을 삼는다. 2 연각승(緣覺乘) 12인연(因緣)을 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치므로 고로 이름이 연각이다. 이르자면 처음에 무명(無明)의 인연 내지 노사(老死)를 관하나니 이는 곧 12인연의 생()을 관함이며 다음에 무명의 멸() 내지 노사(老死)의 멸을 관하나니 이는 곧 십이인연의 멸을 관함이다. 이 인연의 생멸을 관하여 곧 비생비멸(非生非滅)을 깨치나니 고로 이 12인연으로써 승()을 삼는다. 3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菩提薩埵)며 중화(中華; 중국)의 말로는 각유정(覺有情)이니 이르자면 일체의 유정중생(有情衆生)을 각오(覺悟)케 함이다. 보살은 육도(六度; 六波羅蜜)의 행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생사를 출리(出離)케 하나니 고로 이 6()로써 승()을 삼는다. 대승기신론소략상. ()이란 것은 운재(運載)의 뜻이다. 이르자면 제불이 이것을 타고 보리와 반열반(般涅槃; 약칭이 열반)을 증득하고 보살이 이것을 타고 과해(果海)로 나아가며 중생이 이것을 타고 생사에 윤전(輪轉)한다.

鞏縣茶甁; 다구(多口; 다언)의 모양을 가리킴. 공현은 하남 공현임. 공현의 다병은 두 개의 주둥이다ㆍ공현의 다병은 3짝의 주둥이다ㆍ공현에서 만든 다병은 1짝에 3개의 주둥이다 등의 선어가 있음.

辯似懸河; 곧 설화(說話)하는 게 강물이 아래로 쏟아지면서 도도(滔滔)하게 끊어지지 않음을 형상(形像)함이니 능히 말하고 잘 변론(辯論)함을 형용함. 정자통(正字通) () ()이다. 광운(廣韻) () 설문(說文)에 이르되 맴()이다. 진서50 열전(列傳). 곽상(郭象)은 자()가 자현(子玄)이다. 어릴 적에 재리(才理)가 있었고 노장(老莊)을 좋아했으며 청언(淸言)에 능했다. 태위(太尉) 왕연(王衍)이 매번 이르되 곽상의 말을 들으면 마치 현하사수(懸河瀉水)가 흘러() 다하지 않는 듯하다.

钁頭; 즉 괭이니 두는 후철.

脫粟飯; 이르자면 여반식(糲飯食; 매조미쌀로 지은 반식). 혜림음의93. 여식(䊪食; 는 매조미쌀 려) 상은 란항반(蘭恒反)이다. 회남자에 이르되 여량(糲粮)의 밥이다. 창힐편에 이르되 려()는 거칠은 쌀(麁米)이다. 또한 탈속미(脫粟米).

印如斗; ()이 말 크기(斗大)와 같음이니 관직이 높고 직위가 드러남에 비유함.

史記; 이것은 서한의 저명한 사학가 사마천(司馬遷)이 찬사(撰寫; 撰述)1부의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 이것은 중국 역사상 제1()의 기전체 통사(通史). 24()의 첫머리에 나열됨을 입음. 위로는 상고(上古) 전설 중의 황제시대(黃帝時代)에 이르고 아래로는 한무제 원수(元狩) 원년 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3천여 년의 역사를 기재했음. 전서에 12본기(역대 제왕의 政績을 기록)30세가(제후국과 漢代諸侯勳貴의 흥망을 기록)70열전(중요한 인물의 언행과 事跡을 기록했음. 人臣을 주요하게 서술했는데 그 중 최후의 1自序가 됨)10(大事年表)8(각종 典章制度記禮ㆍ음률ㆍ역법ㆍ천문ㆍ封禪水利財用을 기록) 공히 130() 5365백여 자를 포괄함 [백도백과].

下邳; 전국시기(戰國時期) 제위왕(齊威王)이 추기(鄒忌)를 봉()하여 하비성후(下邳成侯)로 삼았으니 이 땅을 일컬어 하비라 함을 개시(開始)했음. 후래(後來) 한조(漢朝)가 천하를 평정(平定)하여 담군(郯郡)을 가지고 개명하여 동해군이라 했으며 치소(治所)가 하비현(下邳縣)[백도백과].

離騷經; 이소경은 일반으로 이소(離騷)를 가리킴. 이는 중국 전국시기(戰國時期)의 시인 굴원(屈原)이 창작한 시편(詩篇)이니 이는 중국 고대의 최장(最長)의 서정시(抒情詩) [백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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