擧 仰山問僧 甚處人〈閉門*刷會〉 僧云 *幽州人〈*公驗明白〉 山云 汝思彼中麽〈恰待忘了〉 僧云 常思〈熟處難忘〉 山云 能思是心 所思是境〈元來更立能所〉 彼中山河大地 樓臺殿閣 人畜等物 反思思底心 還有許多般麽〈仁者自生分別〉 僧云 某甲到這裏總不見有〈猶有這箇〉 山云 *信位卽是 *人位未是〈庭前殘雪日輪消 室內紅塵遣誰掃〉 僧云 和尙莫別有指示否〈便恁麽來〉 山云 別有別無 卽不中〈射透兩重關〉 據汝見處 *只得一玄〈已有舡中月〉 *得坐披衣向後自看〈更添帆上風〉
●刷會; 指每月一回的決算
●幽州; 今北京市 河北北部 遼寧南部 及朝鮮西北部
●公驗; 官廳發行的證驗書(證明書) 禪錄中多喩各人本有之淸淨心
●信位; 宗範下云 及信位卽得 人位未在語 此僧返照能思心無境 落比量(已知之事 量知未知之事也 如見煙比知於彼有火是也 因而因明法者 以因與喩比知主義之軌式也 總稱爲比量者 是八識中唯意識之用也 因明入正理論曰 言比量者 謂藉衆相而觀義) 祇成信解 若獲親證現量(因明用語 三量之一 現實量知也 向色等諸法 現實量知其自相 毫無分別推求之念者) 契入鏡智 人位顯矣 ▲大慧語錄二十七 妙喜已是老婆心切 須著更下箇注脚 人位卽是汪彦章 信位卽是知根性陋劣 求入頭處底 若於正提撕話頭時 返思能提撕底 還是汪彦章否 到這裏間不容髮 若佇思停機 則被影子惑矣
●人位; 見上人位
●只得一玄; 祖堂集十八仰山 道存問云 如何是行解相應 和尙云 汝須會得禪宗第三玄 初心卽貴 入門第一玄 向後兩玄 是得座被衣 汝須自看
●得坐披衣; 登上法座 穿上法衣 意指住持寺院爲衆說法
거(擧)하다. 앙산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의 사람인가.〈폐문하고 쇄회(*刷會)한다〉 중이 이르되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공험(*公驗)이 명백하다〉 앙산이 이르되 너는 그 가운데를 생각하느냐. 〈마침 망각함을 기다렸다〉 중이 이르되 늘 생각합니다. 〈익힌 곳은 잊기 어렵다〉 앙산이 이르되 능사(能思)는 이 마음이며 소사(所思)는 이 경계이다. 〈원래 다시 능소(能所)를 세웠다〉 그 가운데의 산하대지ㆍ누대전각(樓臺殿閣)ㆍ인축(人畜)등의 사물을, 생각하는 것을 반사(返思)하면 도리어 허다한 종류가 있느냐. 〈인자(仁者)가 스스로 분별을 내십시다〉 중이 이르되 모갑이 이 속에 이르러선 모두 있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직 이것이 있다〉 앙산이 이르되 신위(*信位)는 곧 이것이지만(是) 인위(*人位)는 이것이 아니다. 〈정전(庭前)의 잔설은 일륜(日輪)이 녹이지만 실내의 홍진은 누구를 보내 쓸어야 하나〉 중이 이르되 화상은 달리 지시할 게 있지 않습니까. 〈곧 이렇게 오는구나〉 앙산이 이르되 별유별유(別有別無)는 곧 맞지 않다. 〈양중관(兩重關)을 쏘아 뚫었다〉 너의 견처에 의거하면 단지 1현(玄)을 얻었나니(*只得一玄) 〈이미 선중(舡中)의 달이 있는데〉 득좌피의(*得坐披衣)하거든 향후에 스스로 보아라. 〈다시 범상()의 바람을 더했다〉
●刷會; 매월 1회의 결산을 가리킴.
●幽州; 지금의 북경시ㆍ하북 북부ㆍ요녕 남부 및 조선 서북부임.
●公驗; 관청에서 발행한 증험서(證驗書; 증명서). 선록 중에선 다분히 각인이 본래 가진 청정심에 비유함.
●信位; 종범하(宗範下)에 이르되 및 신위(信位)는 곧 얻으나 인위(人位)는 얻지 못한다는 말은 이 중이 능사(能思)의 마음엔 경계가 없음을 반조하였으니 비량(比量; 이미 안 일로 알지 못한 일을 헤아려 아는 것임. 例如 연기를 보매 그곳에 불이 있음을 비교하여 아는 것이 이것임. 이로 인해 因明의 법이란 것은 因과 비유로 비교해서 아는 主義의 軌式이니 모두 일컬어 比量이라 하는 것임. 이는 八識 중에 오직 意識의 씀임. 因明入正理論에 가로되 말한 비량이란 것은 이르자면 衆相을 빌려 뜻을 관찰함이다)에 떨어져 단지 신해(信解)를 이루었다. 만약 현량(現量; 因明의 용어니 3量의 하나. 현실로 헤아려 아는 것이니 색 등의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自相을 헤아려 알되 터럭만큼의 분별하여 추구하는 생각이 없는 것임)을 친히 증득함을 얻었다면 경지(鏡智)에 계합해 들어 인위가 환했을 것이다. ▲대혜어록27. 묘희(妙喜; 大慧)가 이미 이 노파심이 간절한지라 다시 이 주각(注脚) 내림을 쓰리라. 인위(人位)는 곧 왕언장(汪彦章)이며 신위(信位)는 곧 이 근성(根性)이 누열(陋劣)함을 알아서 입두처(入頭處)를 구하는 것이다. 만약 바로 화두를 제시(提撕)할 때 능히 제시하는 것을 반사(返思)하는 것은 도리어 이 왕언장인가. 이 속에 이르러선 사이에 머리카락만큼도 용납하지 않나니 만약 저사정기(佇思停機)하면 곧 영자(影子)의 혹란을 입는다.
●人位; 위 인위(人位)를 보라.
●只得一玄; 조당집18 앙산화상(仰山和尙). 도존(道存)이 물어 이르되 무엇이 이 행해(行解)가 상응함입니까. 화상이 이르되 너는 모름지기 선종의 제3현(玄)을 회득(會得)해야 한다. 초심이 곧 귀중하나니 입문은 제1현이다. 향후의 양현(兩玄)은 이는 득좌피의(得座被衣)하거든 네가 스스로 봄을 써라.
●得坐披衣; 법좌에 오르고 법의를 입음이니 뜻이 사원에 주지하며 대중을 위해 설법함을 가리킴.
師云 仰山昔甞問僧甚處來 僧云 幽州來 仰云 我恰要幽州信 幽州米作麽價 僧云 *某來時無端穿市中過 踏折他橋梁 仰便休 仰山小釋迦 接人非止一路 此箇公案正是學人入門之勢 下手得力處 山問幽州僧 汝還思彼中麽 當時被他道不思 又作麽生 仰山必然別有長處 僧却云 常思 實語當*懺悔 山云 能思是心 所思是境 境則千差 能思底心有多?麽 雲門曾道 仰山爲慈悲之故 有落草之談 果然僧也靈利 道 某甲到這裏總不見有 今時人萬一不到這境界 若到卽點胸*擔板 不知途路之樂終不到家 仰山曾行山下路來 故別指一條活路 仰山昔年僧堂前三昧次 夜半不見山河大地寺宇人物以至己身 全同空界 明晨擧似大潙 潙曰 我在百丈時得此境 乃是融通妄想銷明之功 汝向後說法有人過者 無有是處 萬松道 非仰山不證 非潙山不識 楞嚴經云 若動念盡 浮想銷除 於覺明心 如去塵垢 一倫生死首尾圓照 名*想陰盡 是人則能超*煩惱濁 觀其所由 融通妄想 以爲其本 此又見潙仰父子妙契佛心也 仰山一日呈解云 若敎某自看 到這裏無*圓位 亦無可斷 潙曰 據汝見處猶是法在 亦未離心境 仰曰 旣無圓位 何處更有心境 潙曰 適來汝作恁麽解是否 仰云是 潙云 若恁麽具足是心境法 爭得道無 仰山見這僧有這箇在 依理判斷道 信位卽是 人位未是 別本云 信位卽得 行位卽未多 擧*金剛三昧經 信位 思位 修位 行位 捨位 今言信位人位 未必全同 *竹庵珪和尙道 向開口合口處 分這邊那邊 有言無言處 分信位人位 此又別一家也 潙山問仰山 *寂子速道 莫入陰界 仰云 慧寂信亦不立 潙云 子信了不立 不信不立 仰云 只是慧寂更信阿誰 潙云 若恁麽則是*定性聲聞也 仰云 慧寂佛亦不見 淸居皓昇禪師 牧牛圖至第六章云 信位漸熟 邪境覺疎 雖辨淨穢 如劍利泥 猶存鼻索 未可憑信 故白黑相半 頌曰 野牧雖云久 牽繩手漸離 行持非暗昧 進習不依隨 淨地*于于樂 長鞭每每持 靑山香草細 一味日充飢 至十二章 人位本空 身心無著 得失淨盡 玄玄道路 邈無分別 向上一句 擬議卽墮 頌曰 妄起勞看牧 牛非人亦非 正中妄想像 向上有玄微 大海纖塵起 洪鑪片雪飛 相逢求解會 不墮汝心機 萬松道 仰山信亦不立 淸居人位本空 若向二師話中 揀得出 信位人位 昭然可見 所謂退步就己萬不失一也 僧云 和尙莫別有指示否 爛泥裏有刺 仰云 別有別無卽不中 有卽雪上加霜 無卽死在句下 所以指一玄 敎伊自看 湧泉空處爲座萬行爲衣 *有以 坐謂*安禪靜慮 衣謂*衲帔蒙頭 有以 坐謂開堂陞座 衣謂*法服嚴身 皆有理在 且道 向後自看 看箇什麽 問取天童 頌云
●某; 一自稱之詞 相當于我 正字通 某 今書傳凡自稱不書名亦曰某 二代指人名地名等 此指一
●懺悔; 止觀七曰 懺名陳露先惡 悔名改往修來 然懺爲梵語懺摩之略 而非漢語 故台宗之子弟不取之 ▲金光明經文句記三 懺悔二字 乃雙擧二音 梵語懺摩 華言悔過 ▲寄歸傳二 舊云懺悔 非關說罪 何者 懺摩乃是西音 自當忍義 悔乃東夏之字 追悔爲目 懺之與忍 迥不相干
●擔板; 擔板者只能看得板的一面 而不能看得另一面 喩指看法片面 固執一端
●想陰; 五陰之一 又作想蘊 眼觸等所生之諸想
●煩惱濁; 五濁之一 衆生多諸愛欲 慳貪鬥諍 諂曲虛誑 攝受邪法而惱亂心神
●圓位; 一圓相之位 見上第二十五則圓相
●金剛三昧經; 二卷 失譯人名 佛於靈山入金剛三昧 說一乘眞實之法 收於大正藏第九冊
●竹庵珪; 竹庵士珪(1083-1146) 宋代楊岐派僧 四川成都人 俗姓史 字竹菴 號老禪 年少出家 勤學經敎 專治楞嚴 受具足戒後 往參佛眼淸遠 得嗣其法 後歷住龍翔 天寧 褒禪 東林諸刹 紹興年間 與宗杲共居雲門 撰頌古百餘則 世人珍之 其後入閩 住於鼓山 更遷雁蕩能仁 溫州龍翔等寺 師兼通外學 工書法 善尺牘 有竹菴珪和尙語要一卷 東林和尙雲門菴主頌古一卷行世 [禪林僧寶傳六 五燈會元二十]
●寂子; 指仰山慧寂 師名慧寂 子 男子的通稱
●定性聲聞; 五性之一 因果不易 名曰定性 聞佛聲敎 而得覺悟 名曰聲聞 謂惟習聲聞之因 而證聲聞之果 更不進求佛道 是名定性聲聞也
●于于; 一自得貌 二相屬貌 三多難貌 屈曲貌 四誇誕貌 [百度詞典] 此指一
●衲帔; 帔 古代披在肩背上的服飾
●安禪; 安住於坐禪之意
●有以; 一猶有因 有道理 有規律 二猶有爲 有所作爲 三猶有何 有什麼 四表示具有某種條件原因等 [百度漢語]
●法服; 法衣 袈裟
스님이 이르되 앙산이 지난날 일찍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중이 이르되 유주(幽州)에서 옵니다. 앙산이 이르되 내가 마침 유주의 소식(信)을 요하나니 유주미(幽州米)가 어떤 값이냐. 중이 이르되 모(*某)가 올 때 무단(無端)히 시중(市中)을 뚫고 지나가다가 저 교량(橋梁)을 밟아 부러뜨렸습니다. 앙산이 곧 쉬었다. 앙산은 소석가(小釋迦; 아래 제77칙을 보라)니 접인(接人)이 일로(一路)에 그치지 않는다. 이(此箇) 공안은 바로 이 학인이 입문하는 세력이며 하수(下手)하여 득력(得力)할 곳이다. 앙산이 유주승(幽州僧)에게 묻되 너는 도리어 그 가운데를 생각하느냐. 당시에 그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함을 입었다면 또 어떠한가. 앙산이 필연코 달리 장처(長處)가 있었을 것이다. 중이 도리어 이르되 늘 생각합니다. 실어(實語)면 마땅히 참회(*懺悔)해야 한다. 앙산이 이르되 능사(能思)는 이 마음이며 소사(所思)는 이 경계다. 경계는 곧 천차(千差)니 능사하는 마음은 많은 종류(?; 무리 반)가 있느냐. 운문이 일찍이 말하되 앙산은 자비한 연고로 낙초지담(落草之談)이 있다 했는데 과연 중이 영리(靈利)하여 말하되 모갑이 이 속에 이르러선 모두 있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금시인(今時人)일진대 만에 하나도 이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 만약 이르렀다면 곧 점흉(點胸; 自負)하며 담판(*擔板)하리니 도로의 낙은 마침내 도가(到家)가 아닌 줄 알지 못한다. 앙산이 일찍이 산하로(山下路)를 다니다가 온지라 고로 달리 일조(一條)의 활료(活路)를 지시했다. 앙산이 석년(昔年)에 승당 앞에서 삼매(三昧)하던 차, 야반에 산하대지ㆍ사우(寺宇; 寺院)ㆍ인물 이지(以至; 내지) 기신(己身)이 보이지 않고 전부 공계(空界)와 같았다. 다음날 새벽 대위(大潙; 大潙山이니 곧 潙山)에게 들어 보이자 위산이 가로되 내가 백장(百丈)에 있을 때 이 경계를 얻었다. 곧 이는 망상을 융통(融通)하여 소명(銷明; 녹여 환함)한 공(功)이니 네가 향후에 설법하매 초과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옳은 곳이 있지 않다. 만송이 말하노니 앙산이 아니면 증득하지 못하고 위산이 아니면 알지 못한다. 릉엄경에 이르되 만약 동념(動念)이 없어지고 부상(浮想)이 소제(銷除)되면 각명심(覺明心)에 진구(塵垢)가 제거됨과 같아서 일륜(一倫; 一理)의 생사가 수미(首尾)가 원조(圓照)하나니 이름해 상음(*想陰)이 없어짐이다. 이 사람은 곧 능히 번뇌탁(*煩惱濁)을 초월하나니 그 소유(所由)를 관(觀)하자면 망상을 융통함으로 그 근본을 삼는다. 이것은 또 위앙부자(潙仰父子)가 불심에 묘계(妙契)함을 나타낸 것이다. 앙산이 어느 날 정해(呈解)하여 이르되 만약 모(某)로 하여금 자간(自看)하라 하신다면 이 속에 이르러선 원위(*圓位)도 없으며 또한 가히 단절할 게 없습니다. 위산이 가로되 너의 견처에 의거하자면 아직 이는 법이 있으며 또한 심경(心境)을 여의지 못했다. 앙산이 가로되 이미 원위(圓位)도 없거늘 어느 곳에 다시 심경(心境)이 있겠습니까. 위산이 가로되 적래(適來)에 네가 이렇게 이해했다 하니 그런가. 앙산이 이르되 그렇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만약 이렇게 이 심경법(心境法)을 구족했다면 어찌 없다고 말함을 얻겠는가. 앙산이 저승(這僧)이 저개(這箇)가 있음을 보고는 이치에 의해 판단해 말하되 신위(信位)는 곧 이것이지만 인위(人位)는 이것이 아니다. 다른 책엔 이르되 신위는 곧 얻었지만 행위(行位)는 곧 많지 않다.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을 들자면 신위(信位)ㆍ사위(思位)ㆍ수위(修位)ㆍ행위(行位)ㆍ사위(捨位)다. 지금 말한 신위와 인위는 꼭 전부 같은 것은 아니다. 죽암규(*竹庵珪) 화상이 말하되 개구합구(開口合口)하는 곳을 향해 저변나변(這邊那邊)을 나누고 유언무언(有言無言)하는 곳에 신위인위(信位人位)를 나눈다 했으니 이것은 또 다른 일가(一家)다. 위산이 앙산에게 묻되 적자(*寂子)야, 빨리 말하고 음계(陰界)에 들지 말아라. 앙산이 이르되 혜적(慧寂)은 신(信)도 또한 세우지 않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자네가 신(信)하고서 세우지 않느냐, 불신(不信)하고서 세우지 않느냐. 앙산이 이르되 다만 이 혜적(慧寂)이거늘 다시 누구를 신(信)하겠습니까. 위산이 이르되 만약 이러하다면 곧 이 정성성문(*定性聲聞)이다. 앙산이 이르되 혜적은 부처도 또한 보지 않습니다. 청거호승(淸居皓昇; 미상) 선사의 목우도(牧牛圖) 제6장(章)에 이르러 이르되 신위(信位)가 점차 익고 사경(邪境)은 생소(生疏)함을 느끼나니 비록 정예(淨穢)를 분변하지만 검이 진흙을 이김(利)과 같아서 아직 비삭(鼻索)이 있으니 가히 빙신(憑信)하지 못하는지라 고로 백흑(白黑)이 상반(相半)이다. 송왈(頌曰) 야목(野牧)한 지 비록 이르되 오래지만/ 견승(牽繩)이 손에서 점차 떠난다/ 행지(行持)는 암매(暗昧)하지 않고/ 진습(進習; 정진해 익힘)은 의수(依隨)하지 않는다/ 정지(淨地)는 우우(*于于)하게 즐겁고/ 장편(長鞭)은 매매(每每) 가졌다/ 청산의 향초(香草)가 미세하나니/ 일미(一味)로 날마다 충기(充飢)한다. 12장에 이르러 인위는 본공(本空)이며 신심(身心)은 무착(無著)하나니 득실이 깨끗이 없어지고 현현(玄玄)한 도로다. 아득히 분별이 없나니 향상의 1구를 의의(擬議)하면 곧 떨어진다. 송왈 망상이 일어나면 애써 간목(看牧)하나니/ 우(牛)가 아니고(非) 사람도 또한 아니다/ 정중(正中)에 허망한 상상(想像)이지만/ 향상에 현미(玄微)가 있다/ 대해에 섬진(纖塵)이 일어나고/ 홍로(洪鑪)에 편설(片雪)이 난다(飛)/ 상봉하여 해회(解會)를 구하나니/ 너의 심기(心機)에 떨어지지 않는다. 만송이 말하노니 앙산은 신(信)도 또한 세우지 않았고 청거(淸居)는 인위가 본공(本空)했다. 만약 2사(師)의 화중(話中)을 향해 가려냄을 얻는다면 신위와 인위가 소연(昭然)하여 가히 볼 것이다. 이른 바 퇴보(退步)하여 자기에게로 나아가면 만(萬)에 하나도 잃지 않는다. 중이 이르되 화상은 달리 지시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하니 썩은 진흙 속에 가시가 있다. 앙산이 이르되 별유별무(別有別無)는 곧 맞지 않다 하니 유(有)는 곧 설상가상(雪上加霜)이며 무(無)는 곧 구하(句下)에 죽어 있다. 소이로 1현(玄)을 가리키며 그로 하여금 스스로 보게 했다. 용천(湧泉)이 공한 곳이 좌(座)가 되고 만행(萬行)은 의(衣)가 된다. 유이(*有以) 좌(坐)는 이르자면 안선(*安禪)하여 정려(靜慮)함이며 의(衣)는 이르자면 납피(*衲帔)로 몽두(蒙頭; 머리에 쓰다)함이다. 유이(有以) 좌(坐)는 이르지면 개당(開堂)하고 승좌(陞座)함이며 의(衣)는 이르자면 법복(*法服)으로 엄신(嚴身; 몸을 장엄하다)함이다. 다 이치가 있다. 그래 말하라, 향후에 자간(自看)하라 하니 저(箇) 무엇을 간(看)하느냐. 천동에게 묻취(問取)하라. 송운(頌云)하되
●某; 1. 자칭의 말이니 아(我)에 상당함. 정자통 모(某) 여금의 서전(書傳)에 무릇 자칭하면서 이름을 쓰지 않고 또한 가로되 모(某)라 한다. 2.인명ㆍ지명 등을 대지(代指)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懺悔; 지관7에 가로되 참(懺)은 이름이 선악(先惡)을 진로(陳露)함이며 회(悔)는 이름이 개왕수래(改往修來; 과거를 고쳐서 미래를 닦음)다. 그러나 참(懺)은 범어 참마(懺摩; 梵 kṣama)의 약칭이며 한어(漢語)가 아니다. 고로 천태종의 자제들은 이를 취하지 않는다. ▲금광명경문구기3. 참회(懺悔) 2자는 곧 2음을 쌍거(雙擧)했다. 범어 참마(懺摩)는 화언으로 회과(悔過)다. ▲기귀전2. 구역(舊譯)에 이른 참회(懺悔)는 설죄(說罪)와 상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참마(懺摩)는 곧 이 서음(西音)이며 스스로 인(忍)의 뜻에 상당한다. 회(悔)는 동하(東夏)의 글자니 추회(追悔)로 명목한다. 참(懺)과 인(忍)은 멀어서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擔板; 판자를 짊어진 자는 다만 능히 판자의 한 면만 간득(看得; 득은 조사)하고 능히 다른 한 면은 간득하지 못함. 법의 편면만 보고 일단에 고집함을 비유로 가리킴.
●想陰; 5음의 하나. 또 상온(想蘊)으로 지음. 안촉(眼觸) 등으로 소생(所生)하는 제상(諸想).
●煩惱濁; 5탁의 하나. 중생이 여러 애욕이 많고 간탐하며 투쟁하고 첨곡(諂曲)하며 허광(虛誑)하고 사법(邪法)을 섭수하여 심신(心神)을 뇌란하는 것.
●圓位; 일원상(一圓相)의 위(位)니 위 제25칙 원상(圓相)을 보라.
●金剛三昧經; 2권. 번역한 사람의 이름을 잃었음. 불타가 영산에서 금강삼매에 들어가 1승(乘)의 진실한 법을 연설했음. 대정장 제9책에 수록되었음.
●竹庵珪; 죽암사규(竹庵士珪; 1083-1146)니 송대 양기파승. 사천 성도 사람이며 속성은 사(史)며 자는 죽암(竹菴)이며 호는 노선(老禪). 나이 어릴 적에 출가하여 경교(經敎)를 부지런히 배웠으되 오로지 릉엄을 익혔음(治). 구족계를 받은 후 불안청원(佛眼淸遠)을 왕참(往參)하여 그의 법 이음을 얻었음. 후에 용상ㆍ천녕ㆍ포선ㆍ동림의 여러 사찰에 역주(歷住)했음. 소흥년간(紹興年間) 종고(宗杲)와 함께 운문에 거주하며 송고(頌古) 백여칙(百餘則)을 지었는데 세인이 그것을 진기하게 여김. 그 후에 민(閩)에 들어가 고산(鼓山)에 거주했다가 다시 안탕 능인ㆍ온주 용상(龍翔) 등의 사원으로 옮겼음. 스님은 외학(外學)을 겸통(兼通)했고 서법(書法)에 공교(工巧)했으며 척독(尺牘; 書簡)을 잘했음. 죽암규화상어요 1권과 동림화상운문암주송고(東林和尙雲門菴主頌古) 1권이 있어 세상에 유행함 [선림승보전6. 오등회원20].
●寂子; 앙산혜적을 가리킴. 스님의 이름이 혜적(慧寂)이며 자(子)는 남자의 통칭.
●定性聲聞; 5성(性)의 하나. 인과가 바뀌지 않음을 이름해 가로되 정성(定性)임.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각오(覺悟)를 얻음을 이름해 가로되 성문이니 이르자면 오직 성문의 인(因)을 익혀 성문의 과(果)를 증득하고 다시 불도로 전진해 구하지 않음이니 이 이름이 정성성문임.
●于于; 1. 자득모(自得貌). 2. 상속모(相屬貌). 3. 다난모(多難貌). 굴곡모(屈曲貌). 4. 과탄모(誇誕貌) [백도사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衲帔; 피(帔)는 고대에 어깨와 등 위에 입혀 두는 복식임.
●安禪; 좌선에 안주함의 뜻.
●有以; 1. 유인(有因)과 같음. 도리가 있음. 규율이 있음. 2. 유위(有爲)와 같음. 작위(作爲)하는 바가 있음. 3. 유하(有何)와 같음. 무엇이 있음(有什麼). 4. 모종의 조건이나 원인 등을 갖추고 있음을 표시함 [백도한어].
●法服; 법의(法衣)니 가사(袈裟).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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