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七則仰山隨分
示衆云 如人畫空下筆卽錯 那堪起模作樣 堪作甚麽 ○萬松已是露栓索 有條攀條 無條攀例
시중하여 이르되 예컨대(如) 사람이 허공에 그림을 그린다면 하필(下筆)하매 곧 어긋나거늘 어찌 기모작양(起模作樣)함을 감내하겠는가, 차마 무엇을 짓겠는가. ○만송이 이미 이 전삭(栓索; 法度)을 드러내었으니 조문이 있으면 조문을 당기고 조문이 없으면 예문을 당겨라.
擧 僧問仰山 和尙還識字否〈是甚麽字〉 山云 *隨分〈當仁不讓〉 僧乃右旋一匝云 是甚麽字〈已見*偏傍〉 山於地上書箇十字〈更書畫點〉 僧左旋一匝云 是甚麽字〈*半滿俱分 形聲*轉注〉 山改十字作*卍字〈機輪轉處智眼猶迷〉 僧畫一圓相 以兩手托如*修羅掌日月勢云 是甚麽字〈細看*切脚〉 山乃畫圓相 圍却卍字〈天下衲僧跳不出〉 僧乃作*樓至勢〈門外金剛笑汝〉 山云 如是如是 汝善護持〈關空鎖夢牢收掌〉
●隨分; 謂隨能力資質之分限而行 分 分量 分限 分劑
●偏傍; 指傍門左道
●半滿; 半字敎和滿字敎 以半字敎引申爲小乘聲聞之九部經 而以滿字敎引申爲大乘方等之經典 ▲妙法蓮華經句解 半滿者 半謂小乘 義未圓故 滿謂大乘 義圓滿故 ▲祖庭事苑五 半滿 涅盤八云 半字義者 皆是煩惱言說之根本 故名半字滿字者 乃是一切善法言說之根本也 譬如世間爲惡之者 名爲半人 修善者 名爲滿人 故西秦曇無讖三藏 依涅槃此經以了義大乘爲滿字敎 不了義小乘爲半字敎 立半滿之敎 曇無讖始也
●轉注; 轉向流注 轉移集中
●卍字; 又作萬字 梵云室利跊蹉洛刹曩 此云吉祥海雲 吉祥喜旋 爲佛三十二相之一 八十種好之一 乃顯現於佛及十地菩薩胸臆等處之德相 長阿含一大本經 大般若經三八一等 均記載佛之胸前手足腰間等處有卍字 於今印度阿摩羅婆提 出土之佛足石 亦刻有數個卍字 卍之形 原是古代印度表示吉祥之標誌 除印度外 波斯 希臘 均有此類符號 在古代印度 佛敎 婆羅門敎 耆那敎 均使用之 而普遍視之爲吉祥 淸淨 圓滿之標相 卍字之漢譯 古來有數說 鳩摩羅什玄奘等諸師 譯爲德字 菩提流支譯爲萬字 表示功德圓滿之意 然卍字之音 初時不入經傳 至武則天長壽二年(693) 始制定此字 讀爲萬 [普曜經二 十地經論十二 毘奈耶雜事十三 慧苑音義二 華嚴經隨疏演義鈔二十七 祖庭事苑四]
●修羅; 阿修羅 略稱修羅 爲六道之一 八部衆之一 十界之一 又作阿蘇羅 阿素羅 阿素洛 阿須倫 阿須輪 此云非天 非同類 不端正 舊譯不酒 不飮酒 阿修羅爲印度最古諸神之一 是屬於戰鬥一類之鬼神 經常被視爲惡神 而與帝釋天(因陀羅神)爭鬥不休 以致出現了修羅場修羅戰等名詞 阿修羅之形像有多種 或謂九頭千眼 口中出火 九百九十手 六足 身形爲須彌山之四倍 或謂千頭二千手 萬頭二萬手 三頭六手 或謂三面靑黑色 忿怒裸形相 六臂 [長阿含經十 同二十一 大智度論十 同十一 同三十 佛地經論六 觀音經義疏記四 法華經文句二 慧苑音義上 翻譯名義集二]
●切脚; 切 反切的簡稱 反切是中華傳統的一種注音方法 卽用兩箇字相拼(貼也)的方法 來注另一箇字的音 反切上字卽切字的聲母相同 反切下字卽切字的韻母和聲調相同 如東 德紅切 切脚卽用反切以注脚也
●樓至; 賢劫千佛中之最後成佛者 又作盧至佛 魯支佛 此云愛樂佛 啼哭佛 慧琳音義十八 盧至如來 梵語佛名 古譯樓至 唐云愛樂 卽此賢劫中第一千佛 劫末後成佛 卽今之執金剛神是也 亦名密迹金剛
거(擧)하다. 중이 앙산(仰山)에게 묻되 화상은 도리어 글자를 아십니까. 〈이는 무슨 글자인가〉 앙산이 이르되 분한을 따른다(*隨分). 〈당인(當仁)하여 사양하지 않는다〉 중이 이에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고 이르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이미 편방(*偏傍)을 보았다〉 앙산이 지상에 저(箇) 십자(十字)를 썼다. 〈다시 획점(畫點)을 쓰거라(書)〉 중이 왼쪽으로 한 바퀴 돌고 이르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반만(*半滿)을 모두 나누었고 형성(形聲)을 전주(*轉注)했다〉 앙산이 십자를 고쳐 만자(*卍字)로 만들었다. 〈기륜(機輪)이 도는 곳은 지안(智眼)도 오히려 미(迷)한다〉 중이 1원상을 그리고 양손으론 밀쳐 마치 수라(*修羅)가 일월을 장악하는 것 같은 형세를 하고 이르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자세히 절각(*切脚)을 보아라〉 앙산이 이에 원상을 그려 만자(卍字)에 둘렀다. 〈천하 납승이 뛰어 벗어나지 못한다〉 중이 이에 루지세(*樓至勢)를 지었다. 〈문밖의 금강(金剛; 金剛力士)이 너를 웃는다〉 앙산이 이르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네가 잘 호지(護持)하라. 〈허공을 닫고 꿈을 잠그고 단단히 거두어 관장(管掌)하라〉
●隨分; 이르자면 능력과 자질에 따르는 분한(分限)으로 행함. 분(分)은 분량ㆍ분한ㆍ분제(分劑).
●偏傍; 방문(傍門)의 좌도(左道)를 가리킴.
●半滿; 반자교(半字敎)와 만자교(滿字敎)니 반자교는 인신(引申; 轉意)하여 소승성문의 9부경으로 삼고 만자교는 인신하여 대승방등의 경전으로 삼음. ▲묘법연화경구해. 반만(半滿)이란 것은 반(半)은 이르자면 소승이니 뜻이 원만하지 못한 연고며 만(滿)은 이르자면 대승이니 뜻이 원만한 연고이다. ▲조정사원5. 반만(半滿) 열반8에 이르되 반자(半字)의 뜻이란 것은 다 이 번뇌언설(煩惱言說)의 근본이므로 고로 이름이 반자다. 만자(滿字)란 것은 곧 이 일체의 선법언설(善法言說)의 근본이다. 비유컨대 세간에서 악을 짓는 자를 이름해 반인(半人)이라 하고 선을 닦는 자를 이름해 만인(滿人)이라 함과 같다. 고로 서진(西秦)의 담무참삼장(曇無讖三藏)이 열반 이 경에 의거해 요의대승(了義大乘)으로써 만자교를 삼고 불요의소승(不了義小乘)으로 반자교를 삼았으니 반만의 교를 세움은 담무참이 처음이었음.
●轉注; 전향(轉向)하며 유주(流注)함. 전이(轉移)하여 집중(集中)함.
●卍字; 또 만자(萬字)로 지음. 범어로 이르되 실리매차락찰낭은 여기에선 이르되 길상해운(吉祥海雲)ㆍ길상희선(吉祥喜旋)이니 불타 32상의 하나며 80종호의 하나가 되며 부처 및 십지보살의 가슴 등의 곳에 환히 나타나는 덕상(德相)임. 장아함1대본경과 대반야경381 등에 불타의 가슴 앞ㆍ수족ㆍ허리 사이 등의 곳에 만자(卍字)가 있다고 균일하게 기재되었음. 여금의 인도 아마라바제(阿摩羅婆提; 梵 Amarāvatī)에서 출토된 불타의 족석(足石)에도 또한 몇 개의 만자(卍字)가 새겨져 있음. 만(卍)의 형상은 원래 이 고대 인도에서 길상(吉祥)의 표지(標誌)를 표시했음. 인도를 제한 밖에도 파사(波斯; Persia)ㆍ희랍(希臘; Greece)에도 균일하게 이런 종류의 부호가 있음. 고대 인도에 있어서 불교ㆍ바라문교ㆍ기나교(耆那敎)에서 균일하게 이것을 사용했으며 보편적으로 길상ㆍ청정ㆍ원만의 표상(標相)으로 보았음. 만자(卍字)의 한역(漢譯)은 고래로 몇 가지 설이 있음. 구마라집과 현장 등 여러 스님은 덕자(德字)로 번역했고 보리류지는 만자(萬字)로 번역했으며 공덕원만의 뜻을 표시했음. 그러나 만자의 음은 초시(初時)엔 경전(經傳)에 넣지 않았는데 무측천 장수 2년(693)에 이르러 비로소 이 글자를 제정했으며 만(萬)으로 읽었음 [보요경2. 십지경론12. 비나야잡사13. 혜원음의2. 화엄경수소연의초27. 조정사원4].
●修羅; 아수라(阿修羅; 梵ㆍ巴 asura)니 약칭이 수라(修羅)며 6도(道)의 하나, 8부중(八部衆)의 하나, 10계(界)의 하나. 또 아소라(阿蘇羅)ㆍ아소라(阿素羅)ㆍ아소락(阿素洛)ㆍ아수륜(阿須倫)ㆍ아수륜(阿須輪)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비천(非天)ㆍ비동류(非同類)ㆍ부단정(不端正)이며 구역(舊譯)은 부주(不酒)ㆍ불음주(不飮酒)임. 아수라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여러 신의 하나가 됨. 이것은 전투하는 일류(一類)의 귀신에 속하며 경상(經常) 악신(惡神)으로 보임을 입음. 제석천(帝釋天; 因陀羅神)과 쟁투(爭鬥)하여 쉬지 않는지라 수라장(修羅場)ㆍ수라전(修羅戰) 등의 명사(名詞)가 출현하기에 이르렀음. 아수라의 형상(形像)은 여러 종류가 있으니 혹은 이르기를 구두천안(九頭千眼)에 입속에서 불을 내고 990수(手)에 6족(足)이며 신형(身形)이 수미산의 4배가 된다 하며 혹은 이르기를 천두이천수(千頭二千手)ㆍ만두이만수(萬頭二萬手)에 3두6수(三頭六手)라 하며 혹은 이르기를 세 얼굴에 청흑색(靑黑色)이며 분노(忿怒)한, 벗은 형상(形相)에 6비(臂)라 함 [장아함경10, 동21. 대지도론10, 동11, 동30. 불지경론6. 관음경의소기4. 법화경문구2. 혜원음의상. 번역명의집2].
●切脚; 절(切)은 반절(反切)의 간칭(簡稱). 반절(反切)은 이 중화(中華)의 전통적인 일종의 주음방법(注音方法)임. 곧 두 개의 글자를 써서 서로 붙이는(拼; 貼임) 방법으로, 가져와서 다른 한 개의 글자의 음을 주석하는 것임. 반절의 위의 글자는 곧 절자(切字)의 성모(聲母)와 서로 같고 반절의 아래 글자는 곧 절자(切字)의 운모(韻母)ㆍ성조(聲調)와 서로 같음. 예컨대(如) 동(東)은 덕홍절(德紅切. 동)임. 절각(切脚)은 곧 반절(反切)을 써서 주각(注脚)함임.
●樓至; 현겁천불 중 최후에 성불하는 자임. 또 로지불(盧至佛)ㆍ로지불(魯支佛)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애요불(愛樂佛)ㆍ제곡불(啼哭佛)임. 혜림음의18. 로지여래(盧至如來) 범어의 불명(佛名)이다. 고역(古譯)은 루지(樓至)니 당나라에선 이르되 애요(愛樂)다. 곧 이 현겁 중 1천 번째의 부처다. 겁말후(劫末後)에 성불하나니 즉금의 집금강신(執金剛神)이 이것이다. 또 이름이 밀적금강(密迹金剛)이다.
師擧 *慈覺勸孝文首篇頌云 父母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不會 迦葉豈能傳 十四祖龍樹 於法座上隱身現○相 提婆曰 此尊者現佛體相 以示吾輩也 以此無相三昧形如滿月 佛性之義廓然虛明 譬此而已 圓相之作東土 始於忠國師 付侍者*耽源 承讖記傳於仰山 今遂目爲潙仰家風 明州*五峯良和尙 甞製四十則 *嵩明敎爲序稱之 良云 圓相總六名 一圓相 二義海 三暗機 四字學 五意語 六默論 潙仰宗派云 躭源謂仰山曰 國師傳六代祖師圓相九十七箇 吾滅後三十年 南方有一沙彌 到來大興此道 吾詳此讖事 在汝躬 仰山旣得以火燔之 源一日又謂曰 向傳圓相宜深祕之 山曰 已燒却了也 源曰 於子卽得 來者如何 仰曰 和尙若要重錄一本 山乃重錄呈似 一無差失 耽源一日上堂 仰出衆作○相 以手托呈 却叉手立 源以兩手 交拳示之 仰進前三步 作*女人拜 源點頭 仰禮拜 九十七種圓相交拳名*羅刹三昧 女拜名女人三昧 此皆*三昧王三昧中流出*普門示現也 又有一*梵僧來參 仰於地上畫半月相 僧近前添作圓相 以脚抹却 仰展兩手 僧拂袖便出曰 我來東土禮文殊 却遇小釋迦 又僧禮拜了 仰不顧 僧問和尙還識字否 仰曰 隨分 僧畫○相托呈 仰以衣袖拂之 僧又作半月相托呈 仰以兩手作背拋勢 僧以目視之 仰低頭 僧遶師一匝 仰便打 僧遂出 此仰山壁立千仞 與德山臨濟峻機不別 仰坐次 又有僧來作禮 仰不顧 僧問 師識字否 仰云 隨分 僧右旋一匝曰 是甚麽字 這般施設 待敎有識情 成何宗旨 若總無道理 西天東土凡聖同參 觀音會下一僧來參巖頭 以手左邊作一圓相 又右邊作一圓相 又中心作一圓相 欲成未成 頭以手一撥 僧無對 頭乃喝出 僧方跨門 頭却喚迴問 汝是洪州觀音來麽 僧云 是 頭問 只如適來左邊圓相作麽生 僧曰 是有句 頭曰 右邊圓相聻 僧曰 是無句 頭曰 中間圓相作麽生 僧曰 是不有不無句 頭曰 只如吾恁麽又如何 僧曰 如刀畫水 頭打趁出 這僧不得圓相宗旨 妄生穿鑿 若不是巖頭 幾被惑亂一上 據這僧見仰山問識字否 乃右旋一匝 伎倆已盡 仰山十字注也注了 說也說破 更要後面許多粥飯氣作麽 那裏待到如此 當初纔問師識字否 只道自來文寡 看他如何 不見 昔有一僧 居常閑過 一僧勸云 上座年雋 可惜虛擲寸陰 僧云 爾待敎我作甚卽得 勸云 何不看經 僧云 不識字 勸云 何不問人 僧云 是甚麽字 其勸者無語 可謂*文不加點樂不加聲也 僧又左旋一匝曰 是甚麽字 此與尋常從東過西却從西過東 拍左邊膝此是敎意 拍右邊膝此是祖意 是同是別 仰山*星移斗轉 改十字作卍字 梵語修羅此云非天 梵語羅睺此云障蔽 以手障日月故 此僧畫圓相 如修羅掌日月勢 九十七種圓相 名爲修羅三昧 梵語樓至此云啼泣 賢劫千佛 爲千王子 末後得籌 最後成佛 遂啼泣云 我何薄祐 窮底得籌 忽復笑云 我當盡取九百九十九佛方便粧嚴 今護法神執杵者是 僧末後作樓至勢 其意可知 仰云 如是如是 此是諸佛護念 汝亦如是 吾亦如是 汝善護持 善哉善哉 好去 其僧禮謝了 騰空而去 時有一*道者 曾見經五日來問 仰云 汝還見否 者云 某正見出門騰空而去 仰云 此是西天羅漢故來探吾 者云 某雖覩種種三昧 不辨其理 仰云 吾以義爲汝解釋 此是八種三昧 是覺海變爲義海 其體則同 然此義有因有果 卽時異時 總別不離隱身三昧也 所以道 涅槃心易得 差別智難明 試看天童如何下手 頌云
●慈覺; 宗賾(910-1092) 宋代雲門宗僧 襄陽人 俗姓孫 諡號慈覺大師 嗣長蘆應夫(雲門下五世) 又淨土宗僧 元祐(1086-1093)年間 住長蘆寺 迎母於方丈之東室 勸母剃髮出家 持念阿彌陀佛 居七年 母逝 自謂報親之心已盡 作勸孝文一二○篇 闡述世間出世間之孝道 元祐四年(1089) 傚廬山白蓮社 建蓮華勝會 崇寧年間(1102-1105) 於眞定府(河北正定)洪濟院弘法 按樂邦文類三 師爲蓮社繼祖五大法師之一 著有禪苑淸規十卷 葦江集 坐禪箴 念佛回向發願文等多數 [佛祖統紀二十七 續傳燈錄十二 淨土聖賢錄三 釋氏稽古略四]
●凝然; 形容擧止安詳 或靜止不動
●耽源; 吉州耽源山 指唐代僧應眞 住吉州耽源山 嗣南陽慧忠
●五峯良; 宋代雲門宗僧普良 住明州五峰 嗣長蘆應夫 雲門下六世
●嵩明敎; 契嵩(1007-1072) 宋代雲門宗僧 藤州鐔津(今廣西藤縣)人 俗姓李 字仲靈 自號潛子 七歲出家 十三歲得度剃髮 十九歲遊方 常頂戴觀音像 日誦其名號十萬聲 後得法於洞山曉聰禪師 師遍通內外典籍 善爲文 著有原敎 孝論等輔敎篇 此外 關於禪宗之法脈 撰有傳法正宗定祖圖 傳法正宗記等書 仁宗賜紫方袍與明敎大師之號 熙寧五年於杭州靈隱寺示寂 享壽六十六 門人收其著作 輯成鐔津文集二十卷 因契嵩居錢塘佛日山 故又稱佛日禪師 以師曾止於永安山之精舍 後人遂以永安稱之 [傳法正宗記一 續傳燈錄五 鐔津明敎大師行業記]
●女人拜; 卽女子所行之禮拜樣式 其式有多種異說 古來女子多爲立拜屈膝 或以兩手置於胸前 略作鞠躬 或兩膝同時跪地 而頭不低下
●羅刹; <梵> Rakṣas 乃印度神話中之惡魔 又作羅刹娑 此譯爲可畏 速疾鬼 護者 女則稱羅刹女 羅叉私 相傳原爲印度土著民族之名稱 雅利安人征服印度後 遂成爲惡人之代名詞 演變爲惡鬼之總名 男羅刹爲黑身 朱髮 綠眼 女羅刹則如絶美婦人 富有魅人之力 專食人之血肉 相傳在楞伽島(卽錫蘭)中 卽有羅刹女國 又羅刹具神通力 可於空際疾飛 或速行地面 爲暴惡可畏之鬼 [佛本行集經四十九 有部毘奈耶四十七 玄應音義二十四 慧琳音義七]
●三昧王三昧; 又曰三昧王 三昧中之最勝者
●普門示現; 謂佛菩薩神通自在 示現種種身 開無量法門 使衆生得證圓通 法華經普門品詳說觀世音菩薩之化導 觀世音以三十三相 十九說法爲其普門示現之用
●梵僧; 一指西域或印度東來之異國僧侶 一指持戒淸淨(卽修梵行)之修行僧 後來亦漸用以泛指一般僧人 蓋以出家修行佛道者 必以出離俗世 捨棄雜染 斷除淫欲爲基本要務之故
●文不加點; 形容寫文章一氣呵成 不用修改
●星移斗轉; 又作斗轉星移 斗 北斗 星 三星 北斗和三星 在一夜之間 方位有明顯變化 依據其方位的變化 可以判斷大體的時間 斗轉星移 是天色欲明的標志
●道者; 禪人之稱呼
스님이 거(擧)했다. 자각(*慈覺)의 권효문(勸孝文) 수편(首篇)에 송운하되 부모가 출생하지 아니한 전에/ 응연(*凝然)히 일상(一相)의 원(圓)이다/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가섭이 어찌 능히 전하리오. 14조 용수(龍樹)가 법좌 위에서 은신(隱身)하고 ○상(○相)을 나타내었다. 제바(提婆; 伽那提婆)가 가로되 이는 존자가 불체(佛體)의 상(相)을 나타내어 우리들(吾輩)에게 보인 것이다 하였다. 이 무상삼매(無相三昧)는 형상이 만월(滿月)과 같으며 불성의 뜻이 확연(廓然)하고 허명(虛明)하여 이에 비유할 따름이다. 원상(圓相)의 시작은 동토(東土)니 충국사(忠國師)에게서 비롯했고 시자 탐원(*耽源)에게 부촉했고 참기(讖記; 讖書)를 승수(承受)하여 앙산에게 전했다. 여금에 드디어 명목해 위앙가풍(潙仰家風)이라 한다. 명주(明州) 오봉량(*五峯良) 화상이 일찍이 40칙을 지었는데 숭교명(*嵩明敎)이 서(序)를 지어 이를 칭찬했다. 량(良)이 이르되 원상은 모두 6명(名)이니 1은 원상(圓相)이며 2는 의해(義海)며 3은 암기(暗機)며 4는 자학(字學)이며 5는 의어(意語)며 6은 묵론(默論)이다. 위앙종파(潙仰宗派)에 이르되 탐원(躭源)이 앙산에게 일러 가로되 국사가 6대(代) 조사의 원상 97개를 전하셨다. 내가 멸후(滅後) 30년에 남방에 1사미가 있어 도래하여 차도(此道)를 대흥(大興)하리라 하셨는데 내가 이 참사(讖事)를 상심(詳審)하건대 너의 몸에 있다. 앙산이 이미 얻자 불로써 그것을 태웠다. 탐원이 어느 날 또 일러 가로되 접때(向) 전한 원상은 의당 깊이 그것을 비장(秘藏)하거라. 앙산이 가로되 이미 소각했습니다. 탐원이 가로되 자네에겐 곧 옳겠지만 내자(來者)는 어떻게 하겠는가. 앙산이 가로되 화상이 만약 요구하신다면 1본(本)을 중록(重錄)하겠습니다. 앙산이 이에 중록하여 정사(呈似)했는데 하나도 차실(差失)이 없었다. 탐원이 어느 날 상당하자 앙산이 대중에서 나와 ○상(○相)을 지어 손으로써 탁정(托呈)하고는 도리어 차수(叉手)하고 서자 탐원이 양손으로써 교권(交拳)하여 이를 보였다. 앙산이 3보(步) 진전(進前)하여 여인배(*女人拜)를 지었다. 탐원이 머리를 끄덕였고 앙산이 예배했다. 97종 원상에 교권(交拳)은 이름이 라찰삼매(*羅刹三昧)며 여배(女拜)는 이름이 여인삼매(女人三昧)니 이것은 다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 가운데에서 유출하여 보문시현(*普門示現)한 것이다. 또 1범승(*梵僧)이 있어 내참(來參)했다. 앙산이 지상에 반월상(半月相)을 그렸다. 범승이 근전(近前)하더니 더하여 원상(圓相)으로 만들고는 발로써 지워버렸다. 앙산이 양손을 펴자 범승이 소매를 떨치고 곧 나가면서 가로되 내가 동토에 와서 문수에게 예배하려 했는데 도리어 소석가(小釋迦)를 만났습니다. 또 중이 예배했는데 앙산이 돌아보지 않았다. 중이 묻되 화상은 글자를 아십니까. 앙산이 가로되 분한을 따른다(隨分). 중이 ○상(○相)을 그려 탁정(托呈)했다. 앙산이 옷소매로써 그것을 떨쳤다(拂). 중이 또 반월상(半月相)을 지어 탁정(托呈)했다. 앙산이 두 손으로써 등에 던지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눈으로써 그것을 보았고 앙산은 머리를 숙였다. 중이 스님을 한 바퀴 돌았다. 앙산이 곧 때렸다. 중이 드디어 나갔다. 이것은 앙산의 벽립천인(壁立千仞)이니 덕산과 임제의 준기(峻機)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앙산이 좌차(坐次)에 또 어떤 중이 와서 작례(作禮)했다. 앙산이 돌아보지 않았다. 중이 묻되 스님은 글자를 아십니까. 앙산이 이르되 분한을 따른다(隨分). 중이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고 가로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이러한(這般) 시설은 식정(識情)을 있게 해야 무슨 종지를 이루는지 기대(期待)할 것이다. 만약 모두 도리가 없다면 서천과 동토의 범성(凡聖)이 동참(同參)이다. 관음회하(觀音會下)의 1승(僧)이 와서 암두(巖頭)를 참(參)했다. 손으로써 좌변에 1원상을 짓고 또 우변에 1원상을 지었다. 또 중심에 1원상을 짓되 이루려고 하면서 이루지 못했는데 암두가 손으로써 제거했다(撥). 중이 대답이 없자 암두가 할(喝)하고 쫓아내었다. 중이 바야흐로 문을 넘는데 암두가 도리어 불러 회귀하게 하고 묻되 너는 이 홍주 관음에서 왔느냐. 중이 이르되 그렇습니다. 암두가 묻되 지여(只如) 적래(適來)의 좌변의 원상은 무엇인가. 중이 가로되 이는 유구(有句)입니다. 암두가 가로되 우변의 원상은(聻). 중이 가로되 이는 무구(無句)입니다. 암두가 가로되 중간의 원상은 무엇인가. 중이 가로되 이는 불유불무구(不有不無句)입니다. 암두가 가로되 지여(只如) 내가 이러함은 또 어떠한가. 중이 가로되 마치 칼로 물을 그음과 같습니다. 암두가 때리고 좇아내었다. 이 중이 원상의 종지를 얻지 못하고서 허망하게 천착(穿鑿)을 내었다. 만약 이 암두가 아니었다면 거의 한 번(一上) 혹란(惑亂)을 입었으리라. 저승(這僧)이 앙산을 뵙고 글자를 아십니까 하고는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돈 것에 의거할진대 기량(伎倆)이 이미 다했고 앙산은 십자(十字)로 주(注)하여 주료(注了)하고 설하여 설파(說破)했거늘 다시 후면의 허다한 죽반기(粥飯氣)를 요하여 무엇하겠는가. 나리(那裏)에선 대도(待到)함이 이와 같았거니와 당초에 겨우 묻되 스님은 글자를 아십니까 하매 다만 말하되 자래(自來; 원래. 종래)로 글이 적다 하고는 그가 어떻게 하는가를 보았어야 하리라. 보지 못하는가, 옛적에 1승(僧)이 있어 거상(居常; 평상. 日常)에 한가히 지냈다. 1승이 권해 이르되 상좌는 연세가 걸출하거늘(年雋) 가석하게도 촌음을 헛되이 던지는구나. 중이 이르되 네가 나로 하여금 무엇을 짓게 함을 기다려야 곧 옳겠는가. 권해 이르되 왜 간경(看經)하지 않는가. 중이 이르되 글자를 알지 못한다. 권해 이르되 왜 타인에게 묻지 않는가. 중이 이르되 이 무슨 글자인가. 그 권하던 자가 말이 없었으니 가위 문불가점(*文不加點)이며 악불가성(樂不加聲; 음악에 소리를 더하지 않음)이다. 중이 또 왼쪽으로 한 바퀴 돌고 가로되 이 무슨 글자입니까. 이것은 심상(尋常)에 종동과서(從東過西; 동쪽으로 좇아 서쪽에 이름)했다가 도리어 종서과동(從西過東)하거나 좌변의 무릎을 두드리고 이것은 이 교의(敎意)다, 우변의 무릎을 두드리고 이것은 이 조의(祖意)다 하는 것과 더불어 이 같은가 이 다른가. 앙산이 성이두전(*星移斗轉)하여 십자(十字)를 고쳐 만자(卍字)로 만들었다. 범어 수라(修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비천(非天)이며 범어 라후(羅睺)는 여기에선 이르되 장폐(障蔽)니 손으로써 일월을 장폐하는 연고다. 이 중이 원상을 그린 것은 마치 수라가 일월을 장악(掌握)하는 형세와 같나니 97종 원상에 이름해 수라삼매(修羅三昧)다. 범어 루지(樓至)는 여기에선 이르되 제읍(啼泣)이니 현겁천불(賢劫千佛)은 1천 왕자가 되며 말후에 득주(得籌)한지라 최후에 성불한다. 드디어 제읍하며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박우(薄祐; 박복)하여 궁저(窮底; 끝의 밑)에 득주했는가. 홀연히 다시 웃으며 이르되 내가 마땅히 999불의 방편과 장엄을 진취(盡取)하리라. 지금 호법신으로서 집저(執杵)한 자가 이것이다. 중이 말후에 루지세(樓至勢)를 지은 것은 그 뜻을 가히 알 것이다. 앙산이 이르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이것은 이 제불이 호념(護念)하시니 너도 또한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다. 네가 잘 호지(護持)하라, 선재선재(善哉善哉)로다. 잘 가거라. 그 중이 예사(禮謝)하고는 허공에 올라 떠났다. 때에 한 도자(*道者)가 있어 일찍이 보고는 5일이 지나서 내문(來問)했다. 앙산이 이르되 네가 도리어 보았느냐, 도자가 이르되 모(某)가 출문하여 허공에 올라 떠나는 것을 바로 보았습니다. 앙산이 이르되 이것은 이 서천의 라한인데 짐짓 와서 나를 탐지(探知)했다. 도자가 이르되 모(某)가 비록 갖가지 삼매를 보았지만 그 이치를 분변하지 못하겠습니다. 앙산이 이르되 내가 뜻으로써 너를 위해 해석하겠다. 이것은 이 8종 삼매며 이는 각해(覺海)가 의해(義海)로 변한 것이니 그 체는 곧 같다. 그러나 이 뜻에 유인유과(有因有果)며 즉시이시(卽時異時)며 총별(總別)이 불리(不離)하는 은신삼매(隱身三昧)다. 소이로 말하되 열반심(涅槃心)은 얻기가 쉬워도 차별지(差別智)는 밝히기 어렵다 했으니 시험 삼아 천동이 어떻게 하수(下手)하는지 보아라. 송운(頌云)하되
●慈覺; 종색(宗賾; 910-1092)이니 송대 운문종승. 양양 사람이며 속성은 손이며 시호는 자각대사(慈覺大師)니 장로응부(長蘆應夫; 운문하 5세)를 이었음. 또 정토종승이니 원우(1086-1093)년 간 장로사(長蘆寺)에 거주하며 모친을 방장의 동실(東室)에 맞이하고 모친에게 권해 머리를 깎고 출가하게 하고 아미타불을 지념(持念)하게 했음. 거주한 지 7년 만에 모친이 서거하자 스스로 이르기를 보친지심(報親之心)을 이미 다했다 하고는 권효문 120편을 지어 세간과 출세간의 효도를 천술(闡述)했음. 원우 4년(1089) 여산 백련사(白蓮社)를 본떠 연화승회(蓮華勝會)를 건립하였음. 숭녕년 간(1102-1105) 진정부(眞定府; 河北 正定) 홍제원에서 홍법했음. 낙방문류3을 안험컨대 스님은 연사(蓮社) 계조(繼祖) 5대(大) 법사의 하나임. 저서에 선원청규(禪苑淸規) 10권ㆍ위강집ㆍ좌선잠(坐禪箴)ㆍ염불회향발원문 등 다수가 있음 [불조통기27. 속전등록12. 정토성현록3. 석씨계고략4].
●凝然; 거지(擧止; 행동거지)가 안상(安詳)하거나 혹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음을 형용.
●耽源; 길주(吉州) 탐원산이니 당대승 응진(應眞)을 가리킴. 길주 탐원산에 거주했고 남양혜충을 이었음.
●五峯良; 송대 운문종승 보량(普良)이니 명주(明州) 오봉(五峰)에 거주했고 장로응부(長蘆應夫)를 이었으니 운문하 6세.
●嵩明敎; 계숭(契嵩; 1007-1072)이니 송대 운문종승. 등주 심진(지금의 광서 등현) 사람. 속성은 이(李)며 자는 중령이며 자호(自號)가 잠자(潛子). 7세에 출가하고 13세에 득도하여 머리 깎고 19세에 유방했음. 늘 관음상을 정수리에 이고서 날마다 그 명호 10만 성(聲)을 외었음. 후에 동산효총선사(洞山曉聰禪師)에게서 득법했음. 스님은 내외의 전적을 두루 통달했으며 글을 잘 지었음. 저서에 원교ㆍ효론 등 보교편(輔敎篇)이 있으며 이 밖에 선종의 법맥에 관해서는 저서에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ㆍ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 등의 서책이 있음. 인종이 자방포와 명교대사(明敎大師)의 호를 주었음. 희녕 5년 항주 영은사에서 시적했고 향수(享壽; 향년)는 66. 문인이 그의 저작을 거두어 심진문집(鐔津文集) 20권을 집성했음. 계숭이 전당 불일산에 거주했음으로 인해 고로 또 명칭이 불일선사(佛日禪師)며 스님이 일찍이 영안산의 정사에 머물렀기 때문에 후인이 드디어 영안으로써 그를 호칭했음 [전법정종기1. 속전등록5. 심진명교대사행업기].
●女人拜; 즉 여자가 행하는 바의 예배 의식임. 그 방식에 여러 가지의 이설이 있음. 고래로 여자는 다분히 서서 절하고 무릎을 굽힘. 혹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놓고 약간 몸을 굽힘. 혹은 두 무릎을 동시에 땅에 꿇고 머리는 아래로 낮추지 않음.
●羅刹; <범> Rakṣas. 곧 인도 신화 중의 악마. 또 라찰사(羅刹娑)로 지음. 여기에선 가외(可畏)ㆍ속질귀(速疾鬼)ㆍ호자(護者)로 번역함. 여자는 곧 라찰녀ㆍ라차사(羅叉私; 梵 rākṣasī)로 일컬음. 서로 전하기를 원래는 인도 토착민족의 명칭이라 함. 아리안(雅利安; Aryan) 사람들이 인도를 정복한 후 드디어 악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연변(演變; 변화하여 발전함)하여 악귀의 총명(總名)이 되었음. 남자 라찰은 흑신(黑身)ㆍ붉은 머리카락ㆍ푸른 눈이 되고 여자 라찰은 곧 절미(絶美; 비할 데 없이 매우 아름다움)의 부인과 같음. 부유하고 사람을 매혹하는 힘이 있으며 오로지 사람의 혈육(血肉)을 먹음. 서로 전하기를 릉가도(楞伽島; 곧 錫蘭; Ceylon) 가운데 있다 하는데 곧 라찰녀국이 있음. 또 라찰은 신통력을 갖췄으며 가히 허공 가를 질비(疾飛)하고 혹 지면을 속히 달리는 포악하고 가외(可畏)의 귀(鬼)가 됨 [불본행집경49. 유부비나야47. 현응음의24. 혜림음의7].
●三昧王三昧; 또 가로되 삼매왕이니 삼매 중의 가장 수승한 것.
●普門示現; 이르자면 불보살은 신통이 자재하여 갖가지 몸을 시현하여 무량한 법문을 열어 중생으로 하여금 원통(圓通)을 득증(得證)하게 함. 법화경 보문품에 관세음보살의 화도(化導)를 상세히 설했는데 관세음이 33상(相) 19(33상을 19로 총괄)로 설법하여 그 보문시현(普門示現)의 용(用)으로 삼았음.
●梵僧; 1은 서역 혹은 인도에서 동토로 온 이국 승려를 가리킴. 1은 지계청정(持戒淸淨; 곧 梵行을 닦음)한 수행승을 가리킴. 후래에 또한 점차 써서 일반의 승인을 널리 가리켰음. 대개 출가하여 불도를 수행하는 자는 반드시 속세를 출리(出離)하고 잡염(雜染)을 사기(捨棄)하고 음욕을 단제(斷除)함이 기본의 요무(要務)가 되는 연고임.
●文不加點; 문장을 쓰면서(寫) 일기(一氣)로 불어서 이루어 수개(修改)를 쓰지 않음을 형용.
●星移斗轉; 또 두전성이(斗轉星移)로 지음. 두(斗)는 북두며 성(星)은 삼성(三星)이니 북두와 삼성은 1야(夜)의 사이에 있으면서 방위가 환하게 변화함이 있음. 그 방위의 변화에 의거하여 가이(可以) 대체적인 시간을 판단함. 두전성이란 이는 하늘 색이 밝아지려는 표지(標志)임.
●道者; 선인(禪人)의 칭호.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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