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淸素首座 閩人 依慈明十三載 年八十寓*湖湘鹿苑 未始與人交 人莫知之 偶*從悅首座*處州人 與之隣居 悅因食蜜漬*荔枝 素過門 悅呼曰 此老人鄕果 可同食也 素曰 自先師亡後 不得此食久矣 悅問曰 先師爲誰 素曰 慈明也 悅乃疑駭 遂饋以餘果 稍稍親之 素後問曰 子所見何人 悅曰 *洞山文和尙 又曰 文見何人 悅云南和尙 素曰 南*匾頭見先師不久 後法道大振如此 悅益異之 一日持香詣素作禮 素避曰 吾以福薄 先師受記不許爲人 於是經月餘 憐悅之誠乃曰 子平生知解 試語我看 悅具通所見 素曰 可能入佛 不能入魔 又曰 *末後一句始到牢關 如是半載 素方*印可 仍戒之曰 文示子者 皆正知見 吾雖爲子*點破使子受用自在 恐子離師太早 不能盡其道 他日切勿嗣吾 後出世嗣眞淨 乃兜率悅是也
●淸素; 宋代臨濟宗僧 世稱淸素侍者 閩古田(今屬福建)人 依慈明楚圓了悟心宗 遂依楚圓住石霜 晩遁湘西鹿苑 兜率從悅詢知爲慈明侍者 明日具威儀參叩 往復開發 遂得大悟 素乃戒悅曰 吾以福薄 先師授記 不許爲人 他日切勿嗣吾也 [羅湖野錄下 五燈會元十七兜率從悅章]
●湖湘; 湖南省洞庭湖與湘江地帶 常用來代指湖南 位於長江中流 大部分地域在洞庭湖之南 故名湖南 [百度百科]
●從悅; (1044-1091) 宋代黃龍派僧 虔州(江西贛縣)人 俗姓熊 十五歲出家 十六歲受具足戒 寶峰克文法嗣 因住於隆興(江西南昌)兜率院 故世稱兜率從悅 元祐六年示寂 享年四十八 宋徽宗宣和三年(1121) 丞相張商英(無盡居士)奏請諡號眞寂禪師 有兜率悅禪師語要一卷行世 [佛祖歷代通載十九 五燈會元十七 建中靖國續燈錄二十三]
●處州; 今浙江省麗水
●荔枝; 又作荔支 原産於中國南部 是亞熱帶果樹 常綠喬木 高約十米 果皮有鱗斑狀突起 鮮紅 紫紅 果肉産鮮時半透明凝脂狀 味香美 但不耐儲藏 [百度百科]
●洞山文; 克文 初於洞山開堂 詳見【1】眞淨
●匾頭; 器之薄者曰匾
●末後一句始到牢關; 傳燈錄十六樂普元安 末後一句 始到牢關 鎖斷要津 不通凡聖
●印可; 指印證認可 卽弟子修道成就時 爲師者加以印證而承認許可其所悟境界之意 此詞屢見於維摩經上之經文 禪宗密敎亦常用之
●點破; 點檢 破 助詞 相當于得 了 著
【53】 청소(*淸素) 수좌(首座)는 민인(閩人)이다. 자명(慈明; 楚圓)에게 의지한 지 13재(載)였다. 나이 80에 호상(*湖湘) 녹원(鹿苑)에 우거(寓居)하면서 시초(始初)에 사람들과 교제(交際)하지 않았고 사람이 그를 아는 이 없었다. 마침(偶) 종열(*從悅) 수좌는 처주(*處州) 사람인데 그와 더불어 인거(隣居)했다. 종열이 꿀에 절인 여지(荔枝; 果名)를 먹는데 청소가 문을 지남으로 인해 불러 가로되 이것은 노인(老人; 淸素를 가리킴)의 향과(鄕果)니 함께 먹는 게 옳습니다. 청소가 가로되 선사(先師)가 죽은 후로부터 이를 얻어 먹지 못한 지 오래로다. 종열이 물어 가로되 선사(先師)가 뉘가 됩니까. 청소가 가로되 자명(慈明)이다. 종열이 이에 의해(疑駭; 의심하고 놀람)했다. 드디어 나머지 과일을 먹게 하면서 초초(稍稍; 점점) 그와 친해졌다. 청소가 후에 물어 가로되 자네가 참견(參見)한 것이 어떤 사람인가. 종열이 가로되 동산문(洞山文; 克文) 화상입니다. 또 가로되 극문은 어떤 사람을 참견했는가. 종열이 이르되 남화상(南和尙; 慧南)입니다. 청소가 가로되 남편두(南*匾頭)가 선사(先師)를 뵌 지 오래지 않거늘 후에 법도(法道)를 크게 떨침이 이와 같은가. 종열이 더욱 이를 괴이하게 여겼다. 어느 날 지향(持香)하고 청소에게 나아가 작례(作禮)하자 청소가 피하면서 가로되 나는 복박(福薄)하기 때문에 선사(先師)가 수기(授記)하여 사람을 위함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에 월여(月餘)를 경과했다. 종열의 정성을 불쌍히 여겨 이에 가로되 자네의 평생의 지해(知解)를 시험삼아 나에게 말해보아라. 종열이 갖추어 소견(所見)을 통지(通知)하였다. 청소가 가로되 가히 능히 입불(入佛)하였으나 능히 입마(入魔)하지 못했구나. 또 가로되 말후의 일구라야 비로소 뇌관(牢關)에 이른다(*末後一句始到牢關). 이와 같이 하기를 반재(半載)에 청소가 비로소 인가(*印可)하였다. 인하여(仍) 그에게 경계(警戒)하여 가로되 극문(克文)이 자네에게 보인 것은 다 정지견(正知見)이라네. 내가 비록 자네를 위해 점파(*點破)해 자네로 하여금 수용(受用)이 자재(自在)하게 했지만 자네가 스승을 떠남이 너무 일찍인지라 능히 그 도를 다하지 못했는가 염려스럽다. 다른 날에 간절히 나를 잇지(嗣) 말게나. 후에 출세해 진정(眞淨)을 이었으니 곧 도솔열(兜率悅)이 이것이다.
●淸素; 송대 임제종승. 세칭이 청소시자(淸素侍者)니 민(閩) 고전(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자명초원(慈明楚圓)에게 의지해 심종을 요오(了悟)했고 드디어 초원에게 의지하며 석상(石霜)에 거주했음. 만년에 상서(湘西) 녹원(鹿苑)에 은둔(隱遁)했음. 도솔종열(兜率從悅)이 물어서 자명의 시자가 되었음을 알고 다음날 위의를 갖추어 참고(參叩)했고 왕복하며 개발하매 드디어 대오를 얻었음. 청소가 이에 종열에게 경계(警戒)하여 가로되 나는 복박(福薄)하여 선사(先師)가 수기(授記)하기를 사람을 위함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다른 날에 절실히 나를 잇지 말게나 [나호야록하. 오등회원17도솔종열장].
●湖湘;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와 상강(湘江) 지대(地帶)니 늘 써서 호남을 대지(代指)함. 장강 중류에 위치하며 대부분 지역이 동정호의 남쪽에 있으므로 고로 명칭이 호남임 [백도백과].
●從悅; (1044-1091) 송대 황룡파승. 건주(강서 공현) 사람이며 속성은 웅(熊). 15세에 출가했고 16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보봉극문(寶峰克文)의 법사(法嗣). 융흥(隆興; 강서 南昌) 도솔원(兜率院)에 주(住)했기 때문에 고로 세칭이 도솔종열(兜率從悅)임. 원우(元祐) 6년에 시적(示寂)했으니 향년(享年)은 48. 송 휘종 선화(宣和) 3년(1121) 승상(丞相) 장상영(張商英; 無盡居士)의 주청(奏請)으로 시호가 진적선사. 도솔열선사어요(兜率悅禪師語要)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불조역대통재19. 오등회원17. 건중정국속등록23].
●處州; 지금의 절강성 여수(麗水).
●荔枝; 또 여지(荔支)로 지음. 중국 남부가 원산지며 이는 아열대 과일나무며 상록교목(常綠喬木). 높이는 약 10m. 과실의 껍질에 인반상(鱗斑狀)의 돌기가 있으며 선명하고 자홍(紫紅)이며 과육(果肉; 과실의 살)은 생산하여 신선할 때는 반투명의 응지상(凝脂狀)이며 맛이 향미(香美)지만 단지 저장을 감내하지 못함 [백도백과].
●洞山文; 극문(克文)이니 처음에 동산(開堂)에서 개당했음. 상세한 것은 【1】 진정(眞淨)을 보라.
●匾頭; 그릇의 얇은 것을 가로되 편(匾)이라 함.
●末後一句始到牢關; 전등록16 낙보원안(樂普元安). 말후의 일구라야 비로소 뇌관(牢關)에 이르나니 요진(要津)을 쇄단(鎖斷)하여 범성이 통하지 않는다.
●印可; 인증(印證)하여 인가(認可)함을 가리킴. 곧 제자가 수도를 성취했을 때 스승 된 자가 인증을 가하여 그의 깨친 바 경계를 승인하여 허가함의 뜻. 이 사(詞)는 유마경상(維摩經上)의 경문에 여러 차례 보임. 선종과 밀교에서도 또한 이를 상용함.
●點破; 점검. 파는 조사니 득(得)ㆍ료(了)ㆍ착(著)에 상당함.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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