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無邊身菩薩 爲什麽不見如來頂相 師云 實無可見 何以故 無邊身菩薩便是如來 不應更見 秖敎爾不作佛見不落佛邊 不作衆生見不落衆生邊 不作有見不落有邊 不作無見不落無邊 不作凡見不落凡邊 不作聖見不落聖邊 但無諸見卽是無邊身 若有見處卽名外道 外道者樂於諸見 菩薩於諸見而不動 如來者卽諸法如義 所以云 彌勒亦如也 衆聖賢亦如也 如卽無生 如卽無滅 如卽無見 如卽無聞 如來頂卽是圓見 亦無圓見故不落圓邊 所以佛身無爲不墮諸數 權以虛空爲喻 圓同太虛無欠無餘 等閑無事莫强辯他境 辯著便成識 所以云 圓成沈識海 流轉若飄蓬 秖道我知也學得也契悟也解脫也有道理也 强處卽如意 弱處卽不如意 似者箇見解有什麽用處 我向汝道 等閑無事莫謾用心 不用求眞 唯須息見 所以內見外見俱錯 佛道魔道俱惡 所以文殊暫起二見 貶向二鐵圍山 文殊卽實智 普賢卽權智 權實相對治 究竟亦無權實 唯是一心 心且不佛不衆生無有異見 纔有佛見便作衆生見 有見無見常見斷見 便成二鐵圍山 被見障故 祖師直指一切衆生本心 本體本來是佛 不假修成 不屬漸次 不是明暗 不是明故無明 不是暗故無暗 所以無無明亦無無明盡 入我此宗門 切須在意 如此見得名之爲法 見法故名之爲佛 佛法俱無 名之爲僧 喚作無爲僧 亦名一體三寶 夫求法者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應無所求 不著佛求故無佛 不著法求故無法 不著衆求故無僧
묻되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이 무엇(什麽) 때문에 여래(如來)의 정상(頂相)을 보지 못했습니까. 사운(師云) 실로 가히 보지 못하나니 무슨 연고냐, 무변신보살이 바로 이 여래라서 응당 다시 보지 못했다. 다만(秖) 너로 하여금 불견(佛見)을 짓지 않아서 불변(佛邊)에 떨어지지 않고 중생견(衆生見)을 짓지 않아서 중생변(衆生邊)에 떨어지지 않고 유견(有見; 常見)을 짓지 않아서 유변(有邊)에 떨어지지 않고 무견(無見; 斷見)을 짓지 않아서 무변(無邊)에 떨어지지 않고 범견(凡見)을 짓지 않아서 범변(凡邊)에 떨어지지 않고 성견(聖見)을 짓지 않아서 성변(聖邊)에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단지 제견(諸見)이 없으면 즉시(卽是) 무변신(無邊身)이며 만약 견처(見處)가 있으면 곧 이름이 외도(外道)다. 외도는 제견(諸見)을 좋아하고 보살은 제견에 동(動)하지 않고 여래(如來)는 제법이 여의(如義)다. 소이로 이르되 미륵(彌勒; 저본에 彌彌로 지었음)도 또한 여(如)며 뭇 성현도 또한 여다. 여(如)는 곧 무생(無生)이며 여는 곧 무멸(無滅)이며 여는 곧 무견(無見)이며 여는 곧 무문(無聞)이다. 여래정(如來頂)은 즉시(卽是) 원견(圓見)이며 또한 원견(圓見)이 없는지라 고로 원변(圓邊)에 떨어지지 않는다. 소이로 불신(佛身)은 무위(無爲)라서 제수(諸數)에 떨어지지 않으며 권(權; 방편)으로 허공으로써 비유를 삼았으니 원만하기가 태허(太虛; 허공)와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등한(等閑)하고 무사(無事)하거늘 억지로 그 경계를 분변(分辨; 辯)하지 말지니 분변하면(辯著) 바로 식(識)을 이루는지라 소이로 이르되 원성이 식해에 빠지면 유전함이 표봉과 같다(圓成沈識海 流轉若飄蓬; 傅大士語). 다만 말하되 내가 알았다(知也), 학득(學得)했다, 계오(契悟)했다, 해탈했다, 도리가 있다 하며 강처(强處)에선 곧 여의(如意)하다가 약처(弱處)에선 곧 여의치 못하면 자개(者箇)와 같은 견해는 무슨(什麽) 용처(用處)가 있겠는가. 내가 너를 향해 말하나니 등한(等閑)하고 무사(無事)하므로 부질없이(謾; 漫과 통함) 용심(用心)하지 말지니 구진을 쓰지 말고 오직 식견을 써라(不用求眞 唯須息見; 증도가의 2구). 소이로 내견(內見)과 외견(外見)이 모두 착(錯)이며 불도(佛道)와 마도(魔道)가 모두 악(惡)이다. 소이로 문수가 잠시 2견을 일으켰다가(文殊暫起二見) 2철위산(二鐵圍山)을 향해 떨어졌다(貶). 문수(文殊)는 곧 실지(實智)며 보현(普賢)은 곧 권지(權智)니 권실(權實)이 서로 대치(對治)하매 구경(究竟; 필경)엔 또한 권실도 없고 오직 이 1심(心)이다. 심(心)은 또 부처가 아니며 중생이 아니며 이견(異見)이 있지 않나니 겨우 불견(佛見)이 있으면 바로 중생견(衆生見)을 이루며 유견(有見)ㆍ무견(無見)과 상견(常見)ㆍ단견(斷見)이 바로 2철위산을 이룬다. 견장(見障)을 입는 연고로 조사가 일체중생의 본심(本心)을 직지(直指)했으니 본체(本體)가 본래 이 부처인지라 수성(修成; 수행하여 성취함)을 빌리지 않으며 점차(漸次)에 속하지 않는다. 이 명암(明暗)이 아니니 이 명(明)이 아닌 고로 명이 없으며 이 암(暗)이 아닌 고로 암이 없는지라 소이로 무명(無明)이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다. 우리의 이 종문(宗門)에 들면 간절히 뜻에 둠(在)을 써야(須) 하나니 이와 같이 봄을 얻어야 이를 이름하여 법(法)이다. 법을 보는 고로 이를 이름하여 불(佛)이며 불과 법이 모두 없어야 이를 이름하여 승(僧)이니 무위승(無爲僧)으로 불러 지으며 또한 이름이 일체삼보(一體三寶)다. 무릇 구법자(求法者)는 불(佛)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법(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중(衆)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나니 응당 구하는 바가 없다. 불(佛)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 고로 불이 없고 법(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 고로 법이 없고 중(衆)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 고로 승(僧)이 없다.
無邊身菩薩; 祖庭事苑五 無邊身 釋迦譜云 無邊身菩薩 以丈六之杖量佛 佛常出杖餘至梵天亦爾(非釋迦譜文 出西域記九)
조정사원5. 무변신(無邊身) 석가보(釋迦譜)에 이르되 무변신보살이 장륙(丈六)의 지팡이로 부처를 재었는데(量) 부처가 늘 장여(杖餘)를 벗어났으며 범천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했다 (석가보의 글이 아님. 서역기9에 나옴).
菩薩; (一)具名菩提薩埵 舊譯爲大道心衆生 道衆生等 新譯曰大覺有情 覺有情等 謂是求道之大心人 故曰道心衆生 求道求大覺之人 故曰道衆生 大覺有情 又薩埵者勇猛之義 勇猛求菩提故名菩提薩埵 又譯作開士 始士 高士 大士等 義譯也 總名求佛果之大乘衆 [注維摩經一 大乘義章十四 法華玄贊二 佛地論二 淨名疏一] (二)對僧人的敬稱 此指(一)
(1). 갖춘 이름은 보리살타(菩提薩埵; 梵 bodhi-sattva). 구역(舊譯)으론 대도심중생(大道心衆生)ㆍ도중생(道衆生) 등이 되며 신역(新譯)은 가로되 대각유정(大覺有情)ㆍ각유정(覺有情) 등임. 이르자면 이는 구도하는 대심(大心)의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심중생(道心衆生)이며 도를 구하고 대각을 구하는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중생(道衆生)ㆍ대각유정(大覺有情)임. 또 살타란 것은 용맹의 뜻이니 용맹하게 보리를 구하는 고로 이름이 보리살타임. 또 개사(開士)ㆍ시사(始士)ㆍ고사(高士)ㆍ대사(大士) 등으로 번역함은 의역(義譯)이니 총명(總名)이 불과(佛果)를 구하는 대승중(大乘衆)임 [주유마경1. 대승의장14. 법화현찬2. 불지론2. 정명소1]. (2). 승인에 대한 경칭.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什麽; 疑問之辭 如言何也
의문의 사(辭)니 하(何)라고 말함과 같음.
如來; 梵語曰多陀阿伽陀 多他阿伽度 譯言如來 佛十號之一 如者眞如也 乘眞如之道 從因來果而成正覺 故名爲如來 是眞身如來也 又乘眞如之道來三界垂化 故謂之如來 是應身如來也 又如諸佛而來 故名如來 此釋通於二身 [長阿含十二淸淨經 成實論一 金剛般若經疏論纂要]
범어로 가로되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梵 tathāgata)ㆍ다타아가도(多他阿伽度)는 번역해 말하면 여래(如來)니 불십호(佛十號)의 하나임. 여(如)란 것은 진여(眞如)며 진여의 도를 타고서 인(因)을 좇아 과(果)로 와서 정각을 이루는지라 고로 이름해 여래니 이것은 진신여래(眞身如來)임. 또 진여의 도를 타고 3계(界)에 와서 교화를 드리우는지라 고로 여래라고 말하나니 이것은 응신여래(應身如來)임. 또 제불과 같이(如) 오는지라 고로 이름이 여래니 이 해석은 2신(身; 眞身과 應身)에 통함 [장아함12청정경. 성실론1. 금강반야경소론찬요].
佛見; 一指佛之眞正知見 卽照見諸法實相之眞實知見 又作佛知見 梵網經上 復轉一切見入佛見 佛見入一切見 二指執著於對佛之見解 禪宗之立場 乃否定一切之執著 卽使對佛對法 抱持一定之看法 亦屬偏執 皆應排斥之 又對佛之執見與對法之執見 亦竝稱爲佛見法見 此指二
1. 불타의 진정한 지견을 가리킴. 제법실상을 조견(照見)하는 진실한 지견. 또 불지견으로 지음. 범망경상 다시 일체견을 굴려 불견(佛見)에 들어가고 불견이 일체견에 들어간다. 2. 불타에 대한 집착의 견해를 가리킴. 선종의 입장에선 곧 일체의 집착을 부정함. 곧 대불대법(對佛對法)하여 일정한 간법(看法)을 포지(抱持)하게 함. 또한 편집(偏執)에 속하는 것은 모두 응당 그것을 배척함. 또 불타에 대한 집견(執見)과 법에 대한 집견을 또 병칭하여 불견법견(佛見法見)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衆生見; 謂固執實有衆生之妄見也 △金剛經註解四 王日休曰 我見者 謂其見識以爲實有我也 人見衆生見壽者見者 謂其見識以爲實有人有衆生有壽者也
이르자면 실로 중생이 있다고 고집하는 망견(妄見)임. △금강경주해4. 왕일휴가 가로되 아견이란 것은 이르자면 그 견식(見識)이 실로 아(我)가 있음으로 삼음이다. 인견ㆍ중생경ㆍ수자견이란 것은 이르자면 그 견식이 실로 인이 있고 중생이 있고 수자가 있음으로 삼음이다.
彌勒; <梵> Maitreya <巴> Mette yya 科註妙法蓮華經一 彌勒者 此云慈氏 思益云 若衆生見者 卽得慈心三昧 故名以慈氏 是菩薩現居知足內院 當來出興于堪忍 補釋迦之處 號彌勒世尊 於華林園內龍華樹下 而成正覺 智論三十四云 龍華初會度九十九億聲聞 第二會度九十六億聲聞 第三會度九十三億聲聞
<범> Maitreya. <파> Me tteyya. 과주묘법연화경1. 미륵이란 것은 여기에선 이르되 자씨(慈氏)이다. 사익경에 이르되 이에 중생이 보는 자는 곧 자심삼매(慈心三昧)를 얻는다. 고로 자씨로 이름했다. 이 보살은 현재 지족천(知足天; 도솔천) 내원(內院)에 거처한다. 당래에 감인(堪忍; 娑婆)에 출흥하여 석가의 처소를 보좌하며 호가 미륵세존이다.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다. 지론34에 이르되 용화의 초회(初會)에 99억 성문(聲聞)을 제도하고 제2회에 96억 성문을 제도하고 제3회에 93억 성문을 제도한다.
如; 又作如如 眞如 如實 卽一切萬物眞實不變之本性 蓋一切法雖有其各各不同之屬性 如地有堅性 水有濕性等 然此各別之屬性非爲實有 而一一皆以空爲實體 故稱實性爲如 又如爲諸法之本性 故稱法性 而法性爲眞實究竟之至極邊際 故又稱實際 由此可知 如法性實際三者 皆爲諸法實相之異名
또 여여ㆍ진여ㆍ여실로 지음. 곧 일체 만물의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본성임. 대개 일체법은 비록 그 각각 부동(不同)의 속성(屬性)이 있어 예컨대(如) 땅은 견성(堅性)이 있고 물은 습성(濕性)이 있는 등이나 그러나 이것은 각별(各別)의 속성이며 실유(實有)가 되지 않고 하나하나가 모두 공(空)으로 실체를 삼는지라 고로 실성(實性)을 일컬어 여(如)라 함. 또 여(如)는 제법의 본성이 되므로 고로 명칭이 법성(法性)이며 법성이 진실로 구경(究竟)의 지극한 변제(邊際)가 되므로 고로 또 명칭이 실제(實際)임. 이로 말미암아 가히 아나니 여(如)ㆍ법성ㆍ실제(實際) 3자는 모두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다른 이름이 됨.
圓成; 圓成實性 法相宗所立三性之一 圓滿成就之眞實性也 亦曰法性 亦曰眞如 是一切有爲法體性也 恰如繩之實性爲麻 [唯識論八 百法問答抄四]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니 법상종에서 세운 바 3성의 하나. 원만성취의 진실한 성(性)임. 또한 가로되 법성이며 또한 가로되 진여니 이는 일체 유위법의 체성(體性)임. 흡사 승삭(繩索)의 실성이 마(麻; 삼)가 됨과 같음 [유식론8. 백법문답초4].
佛道; 卽指佛果之無上菩提 又指佛陀敎化衆生之道 卽佛敎
곧 불과의 위없는 보리를 가리킴. 또 불타가 중생을 교화하는 도를 가리킴이니 곧 불교.
魔道; 邪魔道法 與佛法相對 禪家强調所謂佛道魔道的對立也是虛妄之見
사마(邪魔)의 도법. 불법과 상대됨. 선가에서 강조하기를 이른 바 불도와 마도의 대립 또한 이 허망한 견해임.
文殊暫起二見; 碧巖錄第二十六則 南泉云 文殊普賢 昨夜三更 起佛見法見 各與二十棒 貶向二鐵圍山去也 時趙州出衆云 和尙棒敎誰喫 泉云 王老師有什麽過 州禮拜
벽암록 제26칙. 남천이 이르되 문수와 보현이 어젯밤 3경에 불견(佛見)과 법견(法見)을 일으켰다. 각기 20방(棒)을 주고 물리쳐 두 철위산을 향하게 했다. 때에 조주가 대중에서 나와 이르되 화상의 방은 누구를 시켜 받게 해야 합니까. 남천이 이르되 왕노사가 무슨 허물이 있는가. 조주가 예배했다.
二鐵圍山; 楞嚴經集註八曰 七熱地獄謂八大獄中第七也 長阿含云 此四天下 有八千天下圍繞其外 復有大海周匝圍繞八千天下 復有大金剛山繞大海水 金剛山外復有第二大金剛山 樓炭經云 二金剛山亦名二鐵圍山 二山中間窈窈冥冥 日月天神所不能照 彼有八大地獄
릉엄경집주8에 가로되 7열지옥(七熱地獄)은 이르자면 8대옥(大獄) 중 제7이다. 장아함에 이르되 이 4천하(天下)는 8천 천하가 있어 그 바깥을 위요(圍繞)한다. 다시 대해가 있어 8천 천하를 주잡위요(周匝圍繞)한다. 다시 대금강산이 있어 대해수를 위요하고 금강산 밖에 다시 제2 대금강산이 있다. 루탄경에 이르되 2금강산은 또한 이름이 2철위산(鐵圍山)이다. 2산 중간은 요요명명(窈窈冥冥)하며 일월과 천신이 능히 비추지 못하는 곳인데 거기에 8대지옥이 있다.
文殊; 三藏法數七 文殊三名[出翻譯名義] 一文殊師利 梵語文殊師利 華言妙德 謂具不可思議種種微妙功德 故名妙德 二滿殊尸利 梵語滿殊尸利 華言妙首 謂具不可思議微妙功德 在諸菩薩之上 故名妙首 三曼殊室利 梵語曼殊室利 華言妙吉祥 謂具不可思議微妙功德 最勝吉祥 故名妙吉祥
삼장법수7. 문수삼명(文殊三名) [출번역명의] 1. 문수사리(文殊師利; 梵 Manjusri) 범어 문수사리는 화언(華言)으론 묘덕(妙德)이다.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갖가지 미묘한 공덕을 갖춘지라 고로 이름이 묘덕이다. 2. 만수시리(滿殊尸利) 범어 만수시리는 화언으론 묘수(妙首)다.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미묘한 공덕을 갖추어 모든 보살의 상(上)에 있는지라 고로 이름이 묘수다. 3. 만수실리(曼殊室利) 범어 만수실리는 화언으론 묘길상(妙吉祥)이다.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미묘한 공덕을 갖추어 가장 수승(殊勝)한 길상인지라 고로 이름이 묘길상이다.
普賢; 梵名邲輸跋陀 又作三曼多跋陀羅 或譯曰普賢 或作遍吉 主一切諸佛之理德定德行德 與文殊之智德證德相對 卽理智一雙 行證一雙 三昧般若一雙也 故以爲釋迦如來之二脅士 文殊駕師子侍佛之左方 普賢乘白象 侍佛之右方(今反智右理左之說者 示理智融通之義 又胎藏界之次第右蓮左金也) 此理智相卽 行證相應 三昧與般若全者 卽毘盧舍那法身佛也 華嚴一經之所明 歸於此一佛二菩薩之法門 故稱爲華嚴三聖 [法華義疏十二 探玄記二 大日經疏一]
범명은 필수발타(邲輸跋陀; 梵 Viśvabhadra) 또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 梵 samantabhadra)로 지음. 혹 번역해 가로되 보현이며 혹 편길(遍吉)로 지음. 일체제불의 이덕(理德)ㆍ정덕(定德)ㆍ행덕(行德)을 주재함. 문수의 지덕(智德)ㆍ증덕(證德)과 상대됨. 곧 이지(理智)가 한 쌍이며 행증(行證)이 한 쌍이며 삼매와 반야가 한 쌍임. 고로 석가여래의 두 협사(脅士)로 삼음. 문수는 사자를 타고 불타의 좌방(左方)에 시립하고 보현은 백상을 타고 불타의 우방에 시립함은(여금에 반대로 智右理左를 설하는 것은 理智가 융통함의 뜻을 보임임. 또 胎藏界의 차제는 右蓮左金임) 이것은 이지(理智)가 상즉(相卽)하며 행증(行證)이 상응함임. 삼매와 반야가 전체인 것은 곧 비로사나 법신불임. 화엄 1경(經)에서 밝히는 바가 이 1불 2보살의 법문으로 귀납(歸納)하는지라 고로 호칭하여 화엄삼성(華嚴三聖)이라 함 [법화의소12. 탐현기2. 대일경소1].
對治; 原意爲否定 遮遣 於佛敎中 則指以道斷除煩惱等
원래의 뜻은 부정(否定)ㆍ차견(遮遣)임. 불교 중에선 곧 도로써 번뇌 등을 단제(斷除)함.
常見; 斷見之對稱 固執人之身心 過現未皆常住 無間斷之妄見 卽有見也
단견의 대칭. 사람의 몸과 마음이 과거ㆍ현재ㆍ미래에 모두 늘 상주하여 간단(間斷)함이 없다고 고집하는 망견(妄見)이니 곧 유견(有見)임.
斷見; 有情之身心 見爲限一期而斷絶 謂之斷見 反之而見身心皆常住不滅 謂之常見
유정의 몸과 마음은 일기(一期)에 한정하며 단절된다고 보면 이를 일러 단견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몸과 마음이 모두 상주하여 불멸한다고 보면 이를 일러 상견(常見)이라 함.
見障; 四障之一 起諸邪見而障害菩提心者 [三藏法數十八]
4장의 하나. 여러 사견을 일으켜 보리심을 장해하는 것 [삼장법수18].
宗門; 或稱宗乘 或略稱宗 宗 爲所崇尙之敎旨 門 爲通入之義 宗門一詞 宋以後成爲禪宗之自讚 餘宗則稱敎門 然此稱非限於禪宗 於天台 有經部宗 薩婆多宗 另有眞宗圓宗等名目 ▲按考信錄四 宗門一詞 出自禪林 以楞伽經所說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 立佛心宗而自稱宗門
혹은 명칭이 종승(宗乘)이며 혹은 약칭이 종(宗)임. 종(宗)은 숭상하는 바의 교지(敎旨)가 되며 문(門)은 통입(通入)의 뜻이 됨. 종문(宗門)의 일사(一詞)는 송(宋) 이후로는 선종의 자찬(自讚)이 되어 나머지 종(宗)은 곧 교문(敎門)이라 일컬음. 그러나 이 명칭은 선종에 한정하지 않음. 천태(天台)에 경부종(經部宗)살바다종(薩婆多宗)이 있고 따로 진종(眞宗)ㆍ원종(圓宗) 등의 명목이 있음. ▲고신록4(考信錄四)를 안험하니 종문이란 1사(詞)는 선림으로부터 나왔음. 릉가경에서 설한 바 불어심위종(佛語心爲宗) 무문위법문(無門爲法門)으로써 불심종(佛心宗)을 세워 자칭 종문이라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