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천자문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 회양행사(懷讓行思) 13

태화당 2019. 8. 11. 08:37

懷讓行思 兩脈茂榮 馬駒踏殺 弌泊永嘉

회양행사 량맥무영 마구답살 일박영가

 

회양과 행사의/ 두 줄기가 무영하며/ 마구는 답살하고/ 일박한 영가로다.

 

 

 

 

懷讓行思; 南嶽懷讓與靑原行思(靑原又作淸源) 懷讓(六七七~七四四) 唐代僧 金州安康(陝西漢陰)人 俗姓杜 十五歲出家 一度習律 後參曹溪 爲六祖慧能之高足 留侍十五年 六祖示寂 始於唐玄宗先天二年(七一三) 住於湖南南嶽般若寺觀音臺 大闡禪宗 開南嶽一系 世稱南嶽懷讓 其法系相對於靑原行思之法系(靑原下) 而稱南嶽下 同爲南宗禪之二大法流 弟子馬祖道一繼其法流 其後成五家七宗之系派 於天寶三年八月十一日 圓寂於衡嶽(南嶽) 壽六十八 敬宗時 追諡大慧禪師 [宋高僧傳九 傳燈錄五 五燈會元三] 行思(?~七四) 唐代僧 吉州安城(江西安福)人 俗姓劉 幼年出家 就六祖慧能學法 與南嶽懷讓竝稱二大弟子 同嗣六祖之法 後住吉州靑原山靜居寺 故號靑原行思 門徒雲集 禪風大振 其流派相對於南嶽下而稱爲靑原下 開元二十八年示寂 僖宗賜諡弘濟禪師 塔名歸眞 [宋高僧傳九 祖堂集三 傳燈錄五 靑原山志略二]

兩脈茂榮; 南嶽懷讓與靑原行思 成六祖慧能下兩大法脈

馬駒踏殺; 馬駒 此指馬祖道一 道一(~七八八) 唐代僧 南嶽懷讓之法嗣 漢州(四川廣漢)人 俗姓馬 世稱馬大師 馬祖 名道一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紋 依資州唐和尙(卽處寂)剃染 就渝州圓律師受具足戒 開元(七一三~七四一)年間 就懷讓習曹溪禪法 言下領旨 密受心法 初止於建陽之佛跡嶺 未久 遷至臨川之南康龔公二山 大曆四年(七六九) 駐錫鍾陵(江西進賢)開元寺 是時學者雲集 化緣大盛 馬祖以平常心是道 卽心是佛大弘禪風 貞元四年二月四日示寂 壽八十 唐憲宗諡大寂禪師 其派稱爲洪州宗 道一之於懷讓 恰如希遷之於行思 於禪法之弘揚二者竝稱 馬祖因於江西闡揚南嶽系禪風 亦稱江西禪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傳燈錄五 南嶽懷讓禪師者姓杜氏 金州人也 年十五往荊州玉泉寺 依弘景律師出家 受具之後習毘尼藏 一日自歎曰 夫出家者 爲無爲法 時同學坦然知師志高邁 勸師謁嵩山安和尙 安啓發之 乃直詣曹谿參六祖 祖問 什麼處來 曰 嵩山來 祖曰 什麼物恁麼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祖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祖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讖 汝足下出一馬駒 蹋殺天下人 並在汝心 不須速說 師豁然契會 執侍左右一十五載

弌泊永嘉; 弌 同一 說文 弌 古文一 永嘉 指永嘉玄覺 玄覺(六六五~七一三) 唐代僧 溫州永嘉(位於浙江)人 俗姓戴 字明道 號永嘉玄覺 八歲出家 博探三藏 尤通天台止觀 後於溫州龍興寺側巖下自構禪庵 獨居硏學 常修禪觀 偶因左溪玄朗之激勵 遂起遊方之志 與東陽玄策共遊方尋道 至韻陽時 謁曹溪慧能 與慧能相問答而得其印可 慧能留之一宿 翌日卽歸龍興寺 時人稱之一宿覺 其後 學者輻湊 號眞覺大師 玄朗贈書招之山棲 師覆書辭退 先天二年(七一三 一說開元二年 或先天元年)十月十七日 趺坐入寂 壽四十九 賜諡無相大師 塔曰淨光 著證道歌一篇 梵僧傳歸天竺 彼皆欽仰目爲東土大乘經 又著禪宗悟修圓旨十篇 及觀心十門 永嘉集十篇 並盛傳于世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五燈會元二 永嘉眞覺禪師 諱玄覺 本郡戴氏子 丱歲出家 徧探三藏 精天台止觀圓妙法門 於四威儀中常冥禪觀 後因左谿朗禪師激勵 與東陽策禪師同詣曹溪 初到振錫繞祖三匝 卓然而立 祖曰 夫沙門者 具三千威儀八萬細行 大德自何方而來 生大我慢 師曰 生死事大 無常迅速 祖曰 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師曰 體卽無生 了本無速 祖曰 如是如是 于時大衆無不愕然 師方具威儀參禮 須臾告辭 祖曰 返大速乎 師曰 本自非動 豈有速邪 祖曰 誰知非動 師曰 仁者自生分別 祖曰 汝甚得無生之意 師曰 無生豈有意邪 祖曰 無意誰當分別 師曰 分別亦非意 祖歎曰 善哉善哉 少留一宿 時謂一宿覺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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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행사(懷讓行思); 남악회양(南嶽懷讓)과 청원행사(靑原行思. 靑原은 또 淸源으로 지음). 회양(懷讓. 677~744) 당대(唐代)의 승려며 금주안강(金州安康. 西 漢陰)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두().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한 차례 율()을 익히고 뒤에 조계(曹溪)를 참알(參謁)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고족(高足)이 됨. 머물러 십오 년을 시봉(侍奉)했고 육조가 시적(示寂)하자 비로소 당현종(唐玄宗) 선천이년(先天二年. 713) 호남의 남악(南嶽)의 반야사(般若寺) 관음대(觀音臺)에 머물면서 선종을 크게 천양(闡揚)해 남악의 한 법계(法系)를 열었으니 세칭(世稱) 남악회양(南嶽懷讓). 그 법계(法系)가 청원행사(靑原行思)의 법계(靑原下)에 상대하므로 남악하(南嶽下)로 일컬으며 한가지로 남종선(南宗禪)의 이대법류(二大法流)가 되며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이 그 법류(法流)를 계승하였음. 그 후 오가칠종(五家七宗)의 계파를 이루었음. 천보삼년(天寶三年) 팔월 십일일에 형악(衡嶽. 南嶽)에서 원적(圓寂)했으니 나이는 예순여덟임. 경종(敬宗) 때 추시(追諡)하여 대혜선사(大慧禪師)라 했음. [宋高僧傳九 傳燈錄五 五燈會元三]. 행사(行思. ?~740) 당대(唐代)의 승려며 길주안성(吉州安城. 江西 安福)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유().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에게 나아가 법을 배웠음. 남악회양(南嶽懷讓)과 나란히 이대제자(二大弟子)로 일컬으며 한가지로 육조의 법을 이었음. 후에 길주(吉州)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머문지라 고로 호가 청원행사(靑原行思). 문도가 운집하고 선풍을 크게 떨쳤으며 그 유파(流派)가 남악하(南嶽下)에 상대하므로 청원하(靑原下)로 일컬음. 개원이십팔년(開元二十八年)에 시적(示寂)했고 희종(僖宗)이 홍제선사(弘濟禪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명(塔名)은 귀진(歸眞). [宋高僧傳九 祖堂集三 傳燈錄五 靑原山志略二].

양맥무영(兩脈茂榮); 남악회양(南嶽懷讓)과 청원행사(靑原行思)는 육조혜능(六祖慧能) 아래의 양대법맥(兩大法脈)을 이룸.

마구답살(馬駒踏殺); 마구(馬駒) 여기에선 마조도일(馬祖道一)을 가리킴. 도일(道一. 709~788) 당대(唐代)의 승려며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사(法嗣). 한주(漢州. 四川 廣漢)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마()며 세칭(世稱) 마대사(馬大師)ㆍ마조(馬祖)며 이름은 도일(道一). 용모(容貌)가 기이(奇異)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에 혀를 빼면 코를 지났으며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채(二輪紋)가 있었음.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의지(依止)체염(剃染)하고 유주(渝州)의 원율사(圓律師)에게 나아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개원(開元. 713~741)년 간 회양(懷讓)에게 나아가 조계의 선법(禪法)을 익혔는데 언하에 지취를 영오(領悟)해 몰래 심법(心法)을 받았음. 처음엔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임천(臨川)의 남강(南康)과 공공(龔公) 두 산에 이르렀음. 대력사년(大曆四年. 769) 종릉(鍾陵. 江西進賢)의 개원사(開元寺)에 주석(駐錫)했는데 이때 학자가 운집하여 화연(化緣)이 대성(大盛)했음. 마조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써 선풍을 크게 홍양(弘揚)했음. 정원사년(貞元四年) 이월 사일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여든이며 당헌종(唐憲宗)이 대적선사(大寂禪師)로 시호(諡號)했음. 그 파()를 일컬어 홍주종(洪州宗)이라 함. 회양(懷讓)에 있어서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에 있어서의 희천(希遷)과 같아서 선법(禪法)의 홍양(弘揚)에 이자(二者)를 병칭(竝稱). 마조가 강서에서 남악계(南嶽系)의 선풍(禪風)을 천양(闡揚)했으므로 인해 또한 강서선(江西禪)이라 일컬음.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전등록오(傳燈錄五) 남악회양선사(南嶽懷讓禪師)란 자는 성이 두씨(杜氏)며 금주(金州) 사람이다. 나이 열다섯에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에 가서 홍경율사(弘景律師)에게 의지(依止)해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에 비니장(毘尼藏. 律藏)을 익혔다. 어느 날 스스로 탄식(歎息)하며 가로되 무릇 출가한 자는 무위법(無爲法)을 해야 한다. 때에 동학(同學)인 탄연(坦然)이 스님의 의지(意志)가 고매(高邁)함을 알고 스님에게 권해 숭산(嵩山)의 안화상(安和尙. 慧安國師五祖弘忍法嗣)을 알현(謁見)했는데 안이 그를 계발(啓發)하여 이에 조계(曹谿)로 나아가 육조(六祖)를 참알(參謁)했다. 육조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숭산(嵩山)에서 옵니다. 육조가 가로되 무슨 물건이 이러히 왔는가. 가로되 한 물건이라고 설해 주어도 곧 맞지 않습니다(說似一物卽不中). 육조가 가로되 도리어 가히 수증(修證)하는가. 가로되 수증(修證)은 곧 없지 않으나 오염(汚染)은 곧 얻지 못합니다. 육조가 가로되 다만 이 불오염(不汚染)을 제불이 호념(護念)하시는 바이다. 네가 이미 이와 같으며 나도 또한 이와 같다. 서천의 반야다라(般若多羅. 二十七祖)가 참(. 예언)하시되 너의 발 아래 한 마구(馬駒)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 했는데 모두 너의 마음에 있으니 속히 설함을 쓰지 말아라. 스님이 휑하게(豁然) 계합(契合)해 알았다. 좌우에 집시(執侍)하기 일십오 년이었다.

일박영가(弌泊永嘉); () ()과 같음. 설문(說文) () ()의 고문(古文)이다. 영가(永嘉) 영가현각(永嘉玄覺)을 가리킴. 현각(玄覺. 665~713) 당대(唐代)의 승려며 온주영가(溫州永嘉. 浙江에 위치) 사람임. 속성(俗姓)은 대(), ()는 명도(明道), 호는 영가현각(永嘉玄覺). 여덟 살에 출가하여 삼장(三藏)을 널리 탐구했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음. 뒤에 온주(溫州)의 용흥사(龍興寺) 곁 바위 아래 스스로 선암(禪庵)을 구축(構築)하고 독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는데 늘 선관(禪觀)을 닦았음. 우연히 좌계현랑(左溪玄朗)의 격려로 인해 드디어 유방(遊方)할 뜻을 일으켜 동양현책(東陽玄策)과 함께 유방(遊方)하며 도를 찾았음. 운양(韻陽)에 이르렀을 때 조계혜능(曹溪慧能)을 알현(謁見)했으며 혜능과 서로 문답하고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혜능이 그를 머물러 일숙(一宿)케 했는데 다음날 곧 용흥사(龍興寺)로 돌아간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그 후 학자가 복주(輻湊)하였으며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 현랑(左溪)이 글을 주어 산서(山棲)로 그를 초대하자 스님이 복서(覆書. 편지의 회답. 返信)하고 사퇴(辭退)했음. 선천이년(先天二年. 713. 一說開元二年 혹은 先天元年) 시월 십칠일에 부좌(趺坐. 책상다리)하고 입적했으니 나이는 마흔아홉임. 무상대사(無相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은 가로되 정광(淨光). 증도가(證道歌) 일편(一篇)을 지었는데 범승(梵僧)이 천축으로 돌아가 전하자 그곳에서 다 흠앙(欽仰)하며 제목하기를 동토(東土)의 대승경(大乘經)이라 했음. 또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 십편(十篇)과 및 관심십문(觀心十門)영가집(永嘉集) 십 권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왕성히 전함.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오등회원이(五燈會元二) 영가진각선사(永嘉眞覺禪師) ()는 현각(玄覺)이며 본군(本郡. 永嘉를 가리킴) 대씨(戴氏)의 아들이다. 관세(丱歲)에 출가하여 두루 삼장(三藏)을 탐구(探求)했고 천태지관(天台止觀)의 원묘법문(圓妙法門)에 정통(精通)했다. 사위의(四威儀) 중에 늘 선관(禪觀)에 잠겼다. 후에 좌계현랑선사(左谿玄朗禪師)의 격려(激勵)로 인해 동양현책선사(東陽玄策禪師)와 함께 조계로 나아갔다. 처음 이르자 석장(錫杖)을 떨치고 조(. 祖師. 六祖)를 세 번 돌고는 우뚝하게 섰다. ()가 가로되 무릇 사문(沙門)이란 자는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我慢)을 내는가. 스님이 가로되 생사(生死)의 일이 크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합니다. 조가 가로되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취(體取. 體得)하고 무속(無速)을 요득(了得)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체취(體取)하니 곧 무생(無生)이며 요득(了得)하니 본래 신속(迅速)이 없더이다. 조가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때에 대중이 놀라지 않는 이 없었다. 스님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참례(參禮)하고 수유(須臾)에 고별을 고했다. 조가 가로되 도리어 너무 신속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니거늘 어찌 신속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누가 움직이지 않음임을 아는가. 스님이 가로되 인자(仁者. 상대방의 경칭)가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조가 가로되 네가 심()히 무생(無生)의 뜻을 얻었다. 스님이 가로되 무생이거늘 어찌 뜻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무생이거늘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스님이 가로되 분별하여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조가 감탄(感歎)하며 가로되 선재(善哉), 선재(善哉)로다. 조금 머물러 일숙(一宿)한지라 당시에 이르기를 일숙각(一宿覺)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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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 품을 회. 사양할 양. 행할 행. 생각 사. 두 량. 맥 맥. 줄기 맥. 우거질 무. 영화 영. 말 마. . 망아지 구. 밟을 답. 죽일 살. 한 일. 머무를 박. 배 댈 박. 길 영. 아름다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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