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송구집

선림송구집(禪林頌句集) 四言四句以上 7획

태화당 2019. 9. 1. 10:40

       七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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劫火洞然 大千俱壞 須彌巨海 磨滅無餘 虛堂集六 八八則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下

겁화가 환히 타면/ 대천이 다 붕괴되나니/ 수미와 거해도/ 마멸하여 나머지가 없다.


은 환할 통. 은 탈 연.

중이 드디어 묻되 劫火가 통연하면 大千(三千大千世界)이 다 파괴된다 하니(劫火洞然 大千俱壞) 미심하외다 이 낱의 法性은 파괴됩니까 파괴되지 않습니까. 스님(大隨法眞이니 大安法嗣. 南嶽下三世)이 이르되 파괴되느니라. 여쭈어 이르되 이러한 즉 그것()을 따라갑니까. 스님이 이르되 그를 따르고 그를 따라가느니라. 중이 말이 없었다. 때에 會中三百餘僧이 모두 다 긍정치 않고 다 이르되 從上以來로 단지 不壞之性임을 설하거늘 화상께선 무슨 연고로 파괴된다고 말씀하시는가. 대중이 각기 惶然(은 두려울 황)하였다. 때에 한 중이 있어 堂頭(方丈)에 올라 스님에게 알리되 아까 중이 화상에게 물은 화두에 화상이 그에게 답을 하셨으나 그 중이 화상이 답한 말씀을 긍정치 않는 것 같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단지 이 한 중만 긍정치 않음이 있느냐, 다시 긍정치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더냐. 중이 이르되 단지 이 한 중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바로 三千大千世界人이 모두 老僧을 긍정치 않음을 얻어야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나니 단지 이 한 중만이 아니니라 [古尊宿語錄卷第三十五]. 그 중이 이미 대수의 說話를 알지 못했지만 이 그도 또한 이 일(一大事)로 생각을 삼음에 방애롭지 않는지라 도리어 이 물음을 가지고 바로 舒州投子山에 가니 投子(大同이니 靑原下四世)가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나왔느냐. 중이 이르되 西蜀 大隨입니다. 투자가 이르되 대수가 어떤 언구가 있었는가. 중이 드디어 앞의 얘기를 들자 투자가 향을 사르며 예배하고 이르되 서촉에 古佛이 있어 출세하셨으니 너는 또한 빨리 돌아가거라. 그 중이 다시 돌아가 대수에 이르렀는데 대수는 이미 遷化한지라 이 중이 한바탕의 창피로다 [碧巖錄卷第三 二十九則]. 중이 후에 앞과 같이 修山主(龍濟紹修羅漢桂琛法嗣. 玄沙下二世)에게 묻자 수산주가 가로되 파괴되지 않느니라. 가로되 무엇 때문에 파괴되지 않습니까. 수산주가 가로되 大千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니라 하고는 또 가로되 파괴됨도 또한 사람을 너무 碍塞하고 파괴되지 않음도 또한 사람을 너무 애색하느니라 [宗鑑法林卷二十 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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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見之時 見非是見 見猶離見 見不能及 續傳燈錄二十七 楞嚴經二

견을 견할 때/ 견이 이 견이 아니니/ 견이 오히려 견을 떠나야/ 견이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見與師齊 減師半德 見過於師 方堪傳授 百丈懷海錄 懷海語

지견이 스승과 가지런하면/ 스승의 반덕을 감하고/ 지견이 스승을 초과해야/ 비로소 전수를 감당한다.

 

어느 날 스님(百丈懷海니 마조의 法嗣)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불법이 이 작은 일이 아니니라. 노승이 지난날 마조를 再參하였다가 대사(馬祖)一喝을 입고서 바로 삼 일 동안 귀먹고 눈 어둠을 얻었느니라. 때에 黃檗(百丈法嗣)(再參한 일을 )함을 듣다가 不覺에 혀를 토했다. 스님이 가로되 자네가 已後에 마조를 承嗣하여 가지 않겠는가. 황벽이 이르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스님의 하심으로 인해 마조의 大機大用을 얻어 보았습니다. 그러하여 또 마조를 알지 못하면서 만약 마조를 승사한다면 이후에 나의 아손을 할 것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見解가 스승과 더불어 齊等하면 스승의 半德을 감하나니 견해가 스승을 초과해야 비로소 전수를 감당하느니라(見與師齊 減師半德 見過於師 方堪傳授). 자네가 심히 스승을 초과하는 作略이 있도다 [五燈會元卷第三 百丈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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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祖出世 無風起浪 乾坤失色 日月無光 禪家龜鑑

불조의 출세는/ 바람 없이 파랑을 일으킴이니/ 건곤이 색을 잃고/ 일월이 빛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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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之一字 素不樂聞 念佛一聲 嗽口三日 列祖提綱錄四 玉林琇語

이란 한 글자를/ 본디 듣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염불하는 한 소리에/ 입을 양치하기 三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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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眞法身 猶若虛空 應物現形 如水中月 空谷集一 九則 曹山錄 金光明經二

부처의 참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사람에 응해 형상을 나타냄이/ 마치 수중의 달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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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爲法王 於法自在 殺活自由 乾坤獨步 無門慧開錄下

내가 법왕이 되어/ 법에 자재하나니/ 살활에 자유이고/ 건곤을 독보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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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有一機 瞬目視伊 若人不會 別喚沙彌 潙山錄 香嚴智閑偈

나에게 일기가 있는데/ 눈을 깜작여 그에게 보이노라/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특별히 사미를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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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 碧巖錄二 一二則 洞山守初語

은 일을 전개함이 없어야 하고/ 投合하지 않아야 하나니/ 承受하는 자는 하고/ 에 체재하는 자는 하느니라.


展事投機 洞山宗敎大師 守初雲門을 이었음. 上堂해 이르되 敎家道法當體不昧하나니 도리어 실다운가(語氣詞). 만약 실답다면 드디어 露柱(簷下柱)를 가리키며 가로되 그래 어떻게 理解하느냐. 만약 이해함이 있는 이라면 나와서 대중을 상대해 말해 보아라. 만약 서로 委曲(자세하고 昭詳)히 안다면 곧 달마를 孤負(는 저버릴 고. 배반할 고. 곧 배반함)함을 얻지 않으리라. 때에 어떤 중이 묻되 列祖陞堂하매 人天堅請하니 宗乘不昧함을 스님의 擧唱하심을 빕니다. 스님이 이르되 머리는 鬅鬙(은 머리 더부룩할 붕. 승은 머리 더부룩할 승)하고 귀는 ?愬(?愬은 개가 귀를 쫑긋하는 모양. ?은 개가 해서 귀를 쫑긋하는 모양 적. 은 두려워할 색)하느니라. 중이 이르되 이러한 즉 一句流通하매 人天()이 귀를 세울 것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墨黲(은 검푸르죽죽할 참)襴衫(통옷. 저고리와 바지가 이어진 옷)을 햇볕 속에 말리느니라. 묻되 스님은 누구 집의 가락을 부르며 宗風을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중요한 말은 더듬거림이 不當하니라.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삼 마. 깨 마)三斤이니라. 무엇이 이 고불의 마음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巢居해야 바람을 알고 穴居해야 비를 아느니라. 스님이 이에 가로되 은 일을 展開함이 없어야 하고 投合하지 않아야 하나니 承受하는 자는 하고 滯在하는 자는 하느니라(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 四句語에서 보아 분명함을 얻어야 이 脫灑한 납승을 作得하여 根椽片瓦粥飯因緣堪當하여 人天의 선지식이 되려니와 이에서 밝히지 못하면 마침내 莽鹵(粗率할 망. 는 거칠 로)를 이루리라. 廣錄을 보라 [祖庭事苑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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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心看靜 擧心外照 攝心內澄 凝心入定 如是之流 皆是造作 臨濟錄

주심하여 간정커나/ 거심하여 외조커나/ 섭심하여 내징커나/ 응심하여 입정하면/ 이와 같은 무리는/ 다 이 조작이니라


住心은 마음에 머묾. 看靜은 고요함을 봄. 擧心은 마음을 듦. 外照는 밖을 비춤. 攝心은 마음을 거둠. 內澄은 안을 맑힘. 凝心은 마음을 응고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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呑舟之魚 不隱卑流 合抱之木 不生丹丘 緇門警訓七 范蜀公送圓悟禪師行脚

배를 삼키는 물고기는/ 비천한 흐름에 숨지 않고/ 아름드리 나무는/ 丹丘에서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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含元殿裏 更覓長安 慈氏宮中 望生內院 五燈全書六十七

함원전 속에서/ 다시 장안을 찾고/ 자씨궁 속에서/ 내원에 나기를 바라다.


含元殿나라 때 長安에 있던 궁전 이름. 慈氏는 미륵이니 慈氏宮은 미륵이 거처하는 도솔천 內院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