頏▶오르락 내리락 날 항.
下浪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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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浪切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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磷磷▶磷은 돌 틈으로 물이 흐를 린.
力珍切 石在湍단水間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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力珍切이니 돌이 여울물(湍은 여울 단) 사이에 있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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湯慧休
湯浴姓也 古沙門多以俗姓或師姓稱之 如竺道生 帛道猷 竺法汰等是也 自道安法師始稱釋氏 譯十誦律 乃見其文 四河入海 無復河名 四姓出家 同一釋種 慧休 字茂遠 住長干寺 嗜酒好色 輕釋侶 慕俗意 秉筆造牘 文辭斐비然 才鋒挺정出 名譽頓上 至宋世祖孝武 敕令還俗 授楊州文學從事 意氣旣高 甚有慚慨 會出補句容令 不得意而卒 見沈約 朱書 顔延之 每薄湯慧休制作 委巷中歌謠耳 方當誤後生事▶浴과 慚은 마땅히 俗과 慷으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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湯은 俗姓임. 옛 사문은 많이들 속성이나 혹은 스승의 성으로 그것을 일컬었으니 예컨대(如) 竺道生(?-434) 帛道猷 竺法汰 등이 이것이다. 道安法師(312-385. 本姓은 衛며 常山 扶柳 사람)가 처음으로 釋氏라고 일컬음으로부터 십송률을 번역하면서 이에 그 글을 보았으니 四河(一殑伽河 二信度河 三縛芻河 四徙多河)가 入海하면 다시 河名이 없고 四姓(一婆羅門 二刹帝利 三毗舍 四首陀다)이 출가하면 동일한 釋種이다 했음(增壹阿含經卷第二十一에 이와 같은 글이 나옴. 出三藏記集傳下卷第十五 道安法師傳에 增一阿鋡經에 나오는 글이라 했음). 혜휴의 字는 茂遠이며 長干寺에 거주했다. 술을 즐기고 女色을 좋아했으며 釋侶를 경멸하고 俗意를 흠모했다. 필을 잡고 글(牘은 書信 독)을 지으면 文辭가 斐然(斐는 아름다울 비)했으며 才鋒이 빼어나서 명예가 단박에 상승했다. 宋世祖인 孝武帝(재위 453-464)에 이르자 칙령으로 환속케 해 楊州文學從事를 除授했다. 意氣가 이미 높아지매 매우 慷慨가 있었고 마침 나가서 句容令에 補任되었으나 뜻을 얻지 못하고 죽었다. 沈約(441-513) 朱書 顔延之(384-456. 六朝時代 宋의 文人)를 보니 매양 탕혜휴의 제작을 천박하게 여겨 委巷(꼬불꼬불한 골목길) 가운데의 歌謠일 뿐이며 또 마땅히 後生의 일을 그릇되게 하리라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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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葉
志閑頌云 僧家無事最幽閑 近對靑松遠對山 詩句不曾題落葉 恐隨流水到人間 又鄭虔爲廣文博士 學書病無紙 知慈恩寺有柿葉數屋 遂借僧房居止 取紅葉學書 歲久殆徧▶志는 마땅히 智로 지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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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閑(香嚴이니 潙山靈祐의 法嗣)의 송에 이르되 승가의 일 없음이 가장 幽閑하나니/ 가까이 청송을 대했고 멀리 산을 대했도다/ 詩句를 일찍이 낙엽에 題하지 않음은/ 유수따라 인간에 이를까 염려함이로다. 또 鄭虔(唐나라 사람. 杜甫의 벗)은 廣文博士가 되었는데 서예를 배우면서 종이가 없음이 病痛이었다. 자은사에 감잎 몇 가옥이 있음을 알고 드디어 僧房을 빌려 居止하면서 紅葉을 취해 서예를 배웠고 세월이 오래되자 거의 두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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