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三 雪竇祖英上 64 현사(玄沙)

태화당 2019. 9. 5. 09:58

玄沙

玄沙 名師備 福州閩縣謝氏子 幼以漁釣爲業 唐咸通初 俄有出塵之志 從芙蓉山靈訓受業 三十落髮 得戒於道玄律師 布衲甚屢 接氣 而終日宴坐 晚謁雪峯 峯喜其善抖擻諸業 居以頭陀稱之 旣得法於雪峰 竟不它適 晚居玄沙 四方學者而輻焉 嗣其道者頗盛 如羅漢琛 安國球 皆師席之白眉也 然門弟子得其法而抱道嘉遁者 不可得而詳 僧傳禪錄豈能悉數 予嘗過抗之外沙 瞻禮還鄉和上眞身 其石刻云 師諱道勤 閩越李氏子 從師落髮 二十受具 得正法眼藏於玄沙備 建隆初 入吳越 抵錢塘之普安 雖不開堂演唱 而參玄入室者 常盈五百 興國丙子夏六月 師忽謂侍僧曰 吾還鄉矣 僧莫之曉 因索筆書偈云 還鄉寂寂杳無蹤 不挂孤帆水陸通 踊得故關田地穩 更無南北與西東 後三日 正坐而盡 壽六十 臘四十五 全身儼然 今留院之北隅 雖庭宇頹 而瞻禮者踵武不絶 以師有還鄉偈盛傳於時 故不以名顯 遂號還鄉和上云玄沙錄卷之上傳燈錄卷第十八甚屢芒屨로 지어졌고 로 지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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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사(835-908)는 이름이 師備며 복주 민현의 謝氏 아들이며 어릴 적 고기잡이로써 업을 삼았다. 唐 咸通初860 갑자기 出塵(紅塵世上을 벗어남)의 뜻이 있어 芙蓉山 靈訓을 좇아 受業했다. 三十落髮했고 道玄律師에게서 를 얻었다. 布衲芒屨(은 까끄라기 망. 구는 신 구. 곧 짚신)에다가 식사는 겨우 接氣(氣味)하고는 종일 했다. 늦게서야 설봉을 예알했는데 봉이 그가 잘 諸業抖擻(떨쳐버림)함을 기뻐해 居常(평상시)頭陀로써 그를 일컬었다. 이미 설봉에게서 법을 얻고는 마침내 딴 곳에 가지 않았고 만년에 현사에 거처했다. 사방의 학자들이 輻湊했다. 그 도를 이은 자가 자못 성하니 예컨대() 羅漢桂琛 安國慧球는 다 師席白眉. 그러하여 門下의 제자에 그 법을 얻고는 도를 안고 아름답게 숨은 자를 詳考함을 가히 얻지 못한다. 僧傳禪錄이 어찌 능히 다 셈하랴. 내가 일찍이 外沙를 지나다가 還鄉和上眞身瞻禮했는데 그 石刻에 이르되 스님의 道勤이며 閩越 李氏의 아들이다. 스승을 좇아 落髮하고 二十受具(具足戒를 받음)했으며 玄沙師備에게서 정법안장을 얻었다. 建隆初960吳越에 들어가 錢塘普安에 다다랐다. 비록 開堂(宗門에서 새로 임명된 住持가 처음 설법함을 개당이라고 함)演唱하지 않았으나 參玄(玄妙한 도리를 參問)入室한 자가 늘 五百을 채웠다. 興國丙子976 夏六月에 스님이 홀연히 侍僧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還鄉하리라. 시승이 깨닫지 못하자 인해 필을 찾아 게를 써서 이르되 환향은 寂寂하고 아득해 종적이 없나니/ 외로운 돛을 걸지 않아도 水陸하도다/ 옛 관문을 뛰어오르매 田地(境地)安穩(은 평온할 온)하나니/ 다시 남북과 동서가 없도다. 三日 후에 正坐하여 마쳤다. 六十이며 (僧臘)四十五이다. 全身儼然한지라 지금 의 북쪽 모퉁이에 留置한다. 비록 庭宇(는 집 우)頹圮(는 무너질 퇴. 는 무너질 비)했으나 瞻禮者踵武(은 이을 종. 발꿈치 종. 는 이을 무. 자취 무. 곧 뒤를 이음)하여 끊기지 않음. 스님이 환향게가 있어 당시에 왕성하게 전해졌으므로 고로 이름으로써 나타내지 않고 드디어 환향화상이라 호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