弓落醆▶醆은 술잔 잔. 곧 활이 술잔에 떨어지다.
晉樂악廣 字彦輔 善談論 群賢美之曰 此人如水鏡 見之瑩형然 若坡雲霧覩靑天也 嘗有親客 久聞不來 廣問其故 答曰 前在坐 蒙賜酒 方欲飮 見杯中有蛇 意甚惡之 旣飮而疾 于時河南聽壁上有角弓 漆畫作蛇 廣杯中卽角影也 復置酒於前處 謂客曰 酒中復有所見不 曰 所見如初 廣乃告其所以 客意豁然意解 沈痾頓愈 故借用此緣 答疑不疑問▶坡와 聽은 마땅히 披와 廳으로 지어야 함.
晉나라의 樂廣은 자가 彦輔였으며 담론을 잘했다. 群賢이 그를 찬미해 가로되 이 사람은 물과 거울 같아서 그를 보면 瑩然(瑩은 밝을 형)하여 마치 雲霧를 헤치고 靑天을 봄과 같다. 일찍이 親客이 있었는데 오래 傳聞(消息을 전함)했으나 오지 않았다. 廣이 그 연고를 묻자 답해 가로되 전에 자리에 있으면서 술을 下賜함을 입었으나 막 마시려던 참에 잔 속에 뱀이 있음을 보았다. 뜻에 매우 이를 더럽게 여겼는데 이미 마시고선 질환이 되었다. 때에 河南 官聽의 壁上에 角弓이 있었는데 漆畫로 뱀을 지었다. 廣의 杯中은 곧 角弓의 그림자였다. 다시 前處에 술을 안치하고 객에게 일러 가로되 酒中에 다시 보이는 것이 있는가. 가로되 보이는 바가 처음과 같다. 廣이 이에 그 所以를 告하자 客의 뜻이 豁然하여 뜻에 이해했으며 沈痾(沈은 깊을 침. 오랠 침. 痾는 묵은 병 아. 곧 오래된 병)가 단박에 나았다(이 얘기는 晉書卷四十三에 나옴). 고로 이 인연을 차용하여 疑와 不疑의 물음에 답함.
秦無人
春秋 文傳 十三年 秦大夫繞朝謂土會曰 子無謂秦無人 吾謀適不用爾
춘추(春秋左氏傳) 文(文公) 傳 十三年 秦의 大夫 繞朝가 土會에게 일러 가로되 자네는 秦에 사람이 없다고 이르지 말게나. 나의 모략을 마침 쓰지 않았을 뿐이라네.
華表柱
古今注曰 堯設誹謗之木 卽華表也 以橫木交柱頭 如華形 如桔槹고 大路交衢悉設焉 或謂表木以表王者納諫 亦表識지衢路 秦乃除之 至後漢重修
고금주에 가로되 堯가 誹謗의 나무를 시설했는데 곧 華表다. 橫木으로써 기둥 꼭대기에 교차했으며 華形과 같고 桔槹(桔은 두레박 틀 길. 槹는 두레박 고. 곧 두레박 틀)와 같다. 대로의 교차하는 네거리에 모두 설치했다. 혹은 이르기를 表木이니 王者의 納諫을 표시하며 또한 네거리에 表識(識는 기록할 지)했다. 秦나라가 곧 이것을 제거했고 後漢에 이르러 重修했다.
木鶴飛
搜神記云 遼犬城門外有華表柱 忽有一白鶴集頭 時有一少年擧弓欲射之 鶴乃飛去空中而言曰 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載今來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塚纍纍 遂沖天而上 今人以木肖초之 以置於杵上
수신기에 이르되 遼犬城門 밖에 華表柱가 있었는데 홀연히 한 마리의 白鶴이 있어 꼭대기에 이르렀다(集은 이를 집). 때에 한 소년이 있어 활을 들어 그것을 쏘려고 하자 학이 곧 공중으로 날아가서 말해 가로되 새가 있다 새가 있다 丁令威(搜神後記卷一에 이르되 丁令威는 본디 遼東 사람이다)니/ 집 떠난 지 千載에 지금 來歸하였네/ 성곽은 예전과 같으나 인민은 아니니/ 왜 仙術을 배우지 않아 무덤이 纍纍(纍는 얼크러질 류. 곧 서로 잇닿은 모양. 겹쳐 쌓인 모양)한가. 드디어 하늘에 날아 올랐다. 今人은 나무로 그것을 肖像(肖는 닮을 초)하여 공이(杵) 위에 안치한다.
金雞鳴
見懷禪師前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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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선사전록(위 卷第五)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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