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사교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84

태화당 2020. 10. 12. 08:14

如意珠; 여의보주(如意寶珠)또 여의보(如意寶)ㆍ여의주ㆍ마니보주(摩尼寶珠)ㆍ여의마니로 지음. 능히 자기의 의원(意願)과 같이 갖가지 진보를 변현(變現)해 내는 보주를 가리킴. 이 보주는 오히려 제병(除病)과 거고(去苦) 등의 공덕이 있으며 일반으로 써서 법과 불덕(佛德) 및 경전의 공덕을 표징(表徵;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나 상징)함에 비유함. 이 구슬은 마갈어(摩竭魚)의 뇌 속, 혹 용왕의 뇌 속으로부터 나오며 혹은 제석천이 소지한 금강이 되는데 파쇄(破碎)한 후 도락(掉落; 떨어지다)하여 얻으며 혹은 불타의 사리가 변화하여 이루어져 중생을 이익되게 함. 이 여의보주는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ㆍ마두관음(馬頭觀音)ㆍ지장보살(地藏菩薩) 등이 소지하는 물건이며 능히 중생의 의원(意願)을 만족시킴 [雜寶藏經六 大智度論五十九 觀佛三昧海經十 同十六 大毘婆沙論一].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육십화엄10 마음은 공교(工巧)한 화사(畫師)와 같이/ 갖가지 5()을 그리나니/ 일체 세계 중에/ 조작하지 못하는 법이 없다/ 마음과 같이 불타도 또한 그러하며/ 불타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 및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

卽空卽假卽中; 공가중(空假中)은 천태가 세운 바의 33(三諦三觀). 소관(所觀)의 이치로 나아가서는 일컬어 3()라 하고 능관(能觀)의 지혜로 나아가서는 일컬어 3()이라 함. 일념의 마음이 무상(無相)임을 관함은 공()이 되고 이 마음이 일체법을 갖추었음을 관함이 가()가 되고 이 2자가 둘이 아님을 관함이 중()이 됨. ()은 일체법을 깨뜨림이 되고 가()는 일체법을 세움이 되고 중()은 묘한 일체법이 됨. 3자는 1법의 다른 이름이 되는지라 고로 이르되 즉공ㆍ즉가ㆍ즉중이라 함. 조정사원7. 공가중(空假中) 천태지자가 용수의 게에 이르되 인연으로 난 바의 법은/ 내가 즉시 공()이라고 설하나니/ 또한 이름하여 가명(假名)이며/ 또한 이름이 중도(中道)의 뜻이다 했으므로 이에 13(一心三諦; 1. 有諦. 2. 無諦. 3. 中道第一義諦)의 이치에 의해 3(三止; 1. 體眞止. 2. 方便隨緣止. 3. 離二邊分別止)3(三觀; 1. 空觀. 2. 假觀. 3. 中觀)을 개시(開示)했음. 일찍이 이르되 일체혹(一切惑)을 깨뜨림엔 공()보다 성한 게 없고 일체법을 세움엔 가()보다 성한 게 없고 일체법을 구경(究竟; 事理를 끝까지 추구하는 일)함엔 중()보다 성한 게 없다. 고로 하나가 공()하면 일체가 공이므로 가()도 없고 중()도 없고 공이 아님이 없다. 하나가 가()면 일체가 가이므로 공()도 없고 중()도 없고 가가 아님이 없다. 하나가 중()이면 일체가 중이므로 가()도 없고 공()도 없고 중이 아님이 없다. 마치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의 삼목(三目)과 같아서 종()ㆍ횡()ㆍ병()ㆍ별()이 아닌 연고이다. 대혜어록23(大慧語錄二十三). 천태지자대사가 법화삼매를 깨쳐 공가중(空假中) 3()으로써 일대장교를 모두 거두었으니 모자람도 없고 나머지도 없다. 말한 공()이란 것은 가()가 없고 중()이 없고 공()이 아님이 없다. 말한 가()란 것은 공()이 없고 중()이 없고 가()가 아님이 없다. 말한 중()이란 것은 공()이 없고 가()가 없고 중()이 아님이 없다. 이 지취를 얻은 자는 선다라니(旋陀羅尼)를 획득한다. 이로 알지니 종상(從上)의 제불제조가 다 이 문으로부터 증입(證入)하지 않음이 없었다. 고로 대사가 증입했을 때 법화경을 독송함으로 인해 이것이 참 정진이며 이 이름이 여래에게 참다운 법으로 공양함이다 함에 이르러 이에 보매 석가노자(釋迦老子)가 영산(靈山)에 있으면서 이 경을 설하되 엄연(儼然)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常境無相 常智無緣; 사교의과해하(四敎儀科解下) 소조지경(所照之境)이 즉차(卽遮)인지라 고로 이르되 상경(常境)은 무상(無相)이니 곧 13(一心三諦)를 다 불가득이다. 능조지관(能照之觀)이 즉차(卽遮)인지라 고로 이르되 상지(常智)는 무연(無緣)이니 곧 13(一心三觀)을 다 불가득이다. 하물며 다시 무상(無相) 그리고(及以; 以及이니 連詞) 무연(無緣)도 오히려 스스로 얻지 못하거늘 제관(諦觀)을 상조(相照)함을 어찌() 가히 존치()하겠는가.

無緣而緣云云; 사교의과해하 무연(無緣) 아래는 즉차(卽遮)이면서 조()니 비록 모두 얻지 못하지만 마침내 스스로 병연(炳然; 밝은 모양)하나니 능관지지(能觀之智)가 즉차(卽遮)이면서 조()인지라 고로 이르되 무연(無緣)이면서 연()이니 3()이 아님이 없고 소관지경(所觀之境)이 즉차(卽遮)이면서 조()인지라 고로 이르되 무상(無相)이면서 상()이니 3()가 완연(宛然)하다.

五悔; 5종의 회과(悔過)를 가리킴. 곧 죄악으로 지은 바를 멸제(滅除)하는 5종의 참회법임. 천태종에서 법화삼매를 닦을 때 주야 6시에 짓는 바의 5종 참회법이니 또 명칭이 5참회임. 곧 참회ㆍ권청ㆍ수희ㆍ회향ㆍ발원 [摩訶止觀七下].

懺悔; 지관7에 가로되 참()은 이름이 선악(先惡)을 진로(陳露)함이며 회()는 이름이 개왕수래(改往修來; 과거를 고쳐서 미래를 닦음). 그러나 참()은 범어 참마(懺摩; kṣama)의 약칭이며 한어(漢語)가 아니다. 고로 천태종의 자제들은 이를 취하지 않는다. 금광명경문구기3(金光明經文句記三). 참회(懺悔) 2자는 곧 2음을 쌍거(雙擧)했다. 범어 참마(懺摩)는 화언으로 회과(悔過). 기귀전2(寄歸傳二). 구역(舊譯)에 이른 참회(懺悔)는 설죄(說罪)와 상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참마(懺摩)는 곧 이 서음(西音)이며 스스로 인()의 뜻에 상당한다. ()는 동하(東夏)의 글자니 추회(追悔)로 명목한다. ()과 인()은 멀어서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晝夜六時; 1주야를 가지고 6시로 분리하나니 곧 신조(晨朝)ㆍ일중(日中)ㆍ일몰(日沒) (이상은 晝三時가 됨)ㆍ초야ㆍ중야ㆍ후야 (이상은 夜三時가 됨).

三業; 삼장법수7. 3() [出析玄記] 1. 신업(身業) 신업이란 몸이 짓는 바의 업이니 선도 있고 악도 있음. 이에() 살생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은 곧 몸의 악업임. 2. 어업(語業) 어업은 곧 입으로 설하는 바의 업이니 선도 있고 악도 있음. 이에 망언ㆍ기어(綺語;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ㆍ악구(惡口; 다른 사람에게 악한 말을 함. 險口)ㆍ양설(兩舌; 이간질 하는 말)은 곧 입의 악업임. 3. 의업(意業) 의업이란 뜻으로 일으키는 업이니 선도 있고 악도 있음. 이에 탐욕ㆍ진에(瞋恚; 는 성낼 에)ㆍ사견(邪見)은 곧 뜻의 악업임.

妄言; 망어(妄語)와 같음. 10악의 하나. 이르자면 허언을 구조(搆造; 제조)하여 사람들에게 믿음을 취하려 함임. 그러나 망어에 대소의 구별이 있음. 대망어(大妄語)란 것은 이르자면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말하고 증득하지 못하고서 증득했다고 말하여 명리(名利)를 탐하고 도모하면서 괴이를 나타내어 무리를 혹란하는지라 고로 대망어를 이룸. 소망어(小妄語)란 것은 이르자면 보지 못하고서도 보았다고 말하고 보고서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듣고서도 듣지 못했다고 말하고 듣지 못하고서도 들었다고 말함임. 만습(慢習)의 교사(矯詐; 남을 속이거나 기만함)로 앞의 사람을 경모(輕侮; 업신여기거나 모욕함)함이니 곧 소망어를 이룸 [傳戒正範].

綺語; 10악의 하나. 이르자면 진실에 어긋나고 도리를 등지면서 교묘하게 꾸미는 언사 [傳戒正範].

兩舌; 10악업의 하나. 이르자면 피차에게 선전(宣傳)하여 다투며 시비를 이루게 함 [傳戒正範].

惡口; 10악업의 하나. 이르자면 말을 내매 추광(麤獷; 거칠고 사나움)하여 사람에게서 욕을 취함 [傳戒正範].

畢故不造新; 사교의집주9 ()한 고로 조신(造新)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속심(相續心)을 단절함이다. 이미 지은 죄는 소제(消除)를 원걸(願乞)하고 일어나지 않은 악은 다시 감히 짓지 않음이다. 사교의주휘보보굉기9(四敎儀註彚補輔宏記九) [] 말한 필고(畢故)란 것은 그 전건(前愆; 전의 허물)을 참()함이며 조신(造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후과(後過)를 회(; 뉘우침)함이다.

莫見此說便謂漸行; 사교의과해하 상래(上來)에 밝힌 바 이관(理觀)과 사참(事懺), 이것은 이 여러 대승경에 의준(依準)했거늘 범우(凡愚)가 알지 못하고서 혹 이 설을 들으면 곧(便) 이르기를 점차(漸次)의 소승(小乘)의 뜻이며 원돈(圓頓) 중엔 도무지() 이와 같지 않다 함이다.

天然彌勒自然釋迦; 사교의과해하 무인(無因), 이를 일러 천연자연(天然自然)이니 어찌 가히 무인(無因)이면서 감과(感果)하겠는가 함이니 소이로 배척(排斥; )해 이르되 천연의 미륵이며 자연의 석가이겠는가 했다.

理卽; 천태종에서 세운 바 원교(圓敎) 6()의 하나니 전칭이 이즉불(理卽佛). 육즉(六卽) 이르자면 진리와 상즉(相卽)하여 1()로 성립하는 계단에 여섯이 있음. 6()6()6()로 지음. 화엄경에 이르기를 대승보살의 계위(階位)에 십신(十信)ㆍ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迴向)ㆍ십지(十地)ㆍ등각(等覺)ㆍ묘각(妙覺) 52()가 있다 했는데 천태종에서 이것으로써 별교보살(別敎菩薩)의 행위(行位)로 삼고 따로 원교보살(圓敎菩薩)6행위(行位)를 세워 6()으로 호칭했음. 1. 이즉(理卽) 이르자면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인 여래장의 이()에 거주함. 2. 명자즉(名字卽) 일실보리(一實菩提)의 설을 청문(聽聞)하고 명자(名字; 槪念을 말함) 가운데 통달하고 해료(解了)하는 위()를 가리킴. 3. 관행즉(觀行卽) 이르자면 이미 명자를 알고 관행을 일으켜 심관(心觀)이 명료하여 이()와 혜()가 상응하는 위(). 이 위()는 수희(隨喜)ㆍ독송ㆍ설법ㆍ겸행육도(兼行六度)ㆍ정행육도(正行六度) 5품의 심천(深淺)의 차제로 분류하며 호칭해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라 함. 곧 원교외범(圓敎外凡)의 위니 별교의 십신위(十信位)와 서로 같음. 4. 상사즉(相似卽) 이르자면 지관(止觀)이 명정(明靜)을 더욱 추구하여 육근청정(六根淸淨)을 얻어 견사지혹(見思之惑)을 단제(斷除)하고 무명을 제복(制伏)하여 진증(眞證)과 상사한 것. 곧 원교내범(圓敎內凡) 십신(十信)의 위(). 또 명칭이 육근청정위(六根淸淨位)니 별교의 삼현위(三賢位)와 서로 같음. 5 분증즉(分證卽) 또 분진즉(分眞卽)으로 지음. 이르자면 무명을 분단(分斷)하고 중도(中道)를 증득한 위()니 곧 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 등의 위()로부터 점차 1품의 무명을 파제(破除)하고 1()의 중도를 증득하는 것. 이상은 모두 성위(聖位)가 되며 별교 중에 있어선 십지는 이 중의 십주위(十住位)에 상당하고 등각위는 십행 중의 초행에 상당하고 묘각위는 십행 중의 제2행에 상당함. 원교 십행 중 제3행 이상에 이르러선 별교에 있어서는 곧 논급(論及)하지 않음. 6. 구경즉(究竟卽) 이르자면 42품의 무명을 단제(斷除)하고 구경(究竟)의 제법실상의 위()니 이는 곧 묘각위(妙覺位). 원교 구경의 극과(極果)가 됨.

鼠唧鳥空; 사교의과해권하 서즐조공(鼠唧鳥空)이란 것은 그 암증(闇證)을 배척()함이다. 체리(諦理)를 통달하지 못하고서 그릇되이() 설하고 곧 이름한다면 괴서(怪鼠)가 즐즐성(唧唧聲; 찍찍거리는 소리)을 지음과 어찌 다르겠는가(), 곧 소리에 지취(旨趣; )가 없거늘 생사가 곧 이 열반이라고 남의(濫擬; 외람되이 견주다)함이며 또한 괴조(怪鳥)가 공공성(空空聲)을 지음과 같나니 공성(空聲)은 지취가 없거늘 어찌 공공삼매(空空三昧)와 남동(濫同; 외람되이 동등하다)함을 얻겠는가.

含識; 또 함령(含靈), 함생(含生)으로 지음. 곧 심식을 함유한 유정(有情)의 중생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