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進六根清淨位 卽是十信 初信斷見惑顯眞理 與藏敎初果通敎八人見地別敎初住齊 證位不退也 次從二信至七信 斷思惑盡 與藏通二佛別敎七住齊 三界苦集斷盡無餘 故*仁王云 十善菩薩發大心 長別三界苦輪海 解曰 十善者 各具十善也 若別十信卽伏而不斷 故定屬圓信 然圓人本期不斷見思塵沙 意在入住斷無明見佛性 然譬如冶鐵麁垢先去非本所期 意在成器 器未成時自然先落 雖見先去 其人無一念欣心 所以者何 未遂所期故 圓敎行人亦復如是 雖非本所望自然先落 *永嘉大師云 同除四住此處爲齊 若伏無明三藏則劣 卽此位也 解曰 四住者 只是見思 謂見爲一 名見一切處住地 思惑分三 一欲愛住地 欲界九品思 二色愛住地 色界四地各九品思 三無色愛住地 無色界四地各九品思 此之四住 三藏佛與六根清淨人同斷 故言同除四住也 言若伏無明三藏則劣者 無明卽界外障中道之別惑 三藏敎止論界內通惑 無明名字尙不能知 況復伏斷 故言三藏則劣也 次從八信至十信 斷界內外塵沙惑盡 假觀現前見俗諦理 開法眼 成道種智行四百由旬 與別敎八九十住及行向位齊 行不退也
●仁王云; 四敎儀註彚補輔宏記九 [註] 仁王云者 波斯匿王所說偈也
●永嘉大師; 唐代僧 玄覺(665-713) 號永嘉玄覺 溫州永嘉(位於浙江)人 俗姓戴 字明道 八歲出家 博探三藏 尤通天台止觀 後於溫州龍興寺側巖下自構禪庵 獨居硏學 常修禪觀 偶因左溪玄朗之激勵 遂起遊方之志 與東陽玄策共遊方尋道 至韻陽時 謁曹溪慧能 與慧能相問答而得其印可 慧能留之一宿 翌日卽歸龍興寺 時人稱之一宿覺 其後 學者輻湊 號眞覺大師 玄朗贈書招之山棲 師覆書辭退 先天二年(七一三 一說開元二年 或先天元年)十月十七日 趺坐入寂 壽四十九 賜諡無相大師 塔曰淨光 著證道歌一篇 梵僧傳歸天竺 彼皆欽仰目爲東土大乘經 又著禪宗悟修圓旨十篇 及觀心十門 永嘉集十卷 並盛傳于世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다음은 육근청정위(六根清淨位)로 나아가니 곧 이 10신(信)이다. 초신(初信)은 견혹(見惑)을 단제(斷除; 斷)하고 진리를 나타내나니(顯) 장교의 초과(初果)ㆍ통교의 팔인(八人), 견지(見地)ㆍ별교의 초주(初住)와 더불어 제등하고 증위(證位)는 불퇴(不退)다. 다음은 2신으로 좇아 7신에 이르기까지는 사혹(思惑)을 단제해 없애나니 장(藏), 통(通) 2불(佛)ㆍ별교의 7주(住)와 더불어 제등하며 3계의 고집(苦集)을 끊어 없애 나머지가 없다. 고로 인왕에 이르되(*仁王云) 십선보살(十善菩薩)은 대심(大心)을 발하여 3계의 고륜(苦輪)의 바다를 길이 이별했다. 해석해 가로되 10선(善)이란 것은 각기 10선을 갖췄다. 만약 별(別; 별교)의 10신(信)이라면 곧 제복(制伏; 伏)하기만 하고 단제(斷除; 斷)치 못하는지라 고로 반드시(定) 원(圓)의 신(信)에 속해야 하지만 그러나 원인(圓人)은 본기(本期; 본디의 期望)가 견(見)ㆍ사(思)ㆍ진사(塵沙)를 단제하지 않음은 뜻이 입주(入住)하여 무명을 끊고 불성을 봄에 있어서이다. 그러하여 비여(譬如; 비유를 듦) 야철(冶鐵)하면서 추구(麁垢)를 먼저 제거(去)함은 본디 바라던(期) 바가 아님은 뜻이 성기(成器)에 있어서이지만 그릇을 이루지 아니한 때 자연히 먼저 떨어진다. 비록 먼저 제거(去)됨을 보더라도 그 사람은 1념(念)의 흔심(欣心)이 없음은 소이란 게 무엇인가,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한 연고다. 원교(圓敎)의 행인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비록 본디의 소망(所望)은 아니지만 자연히 먼저 (麁垢가) 떨어진다. 영가대사(*永嘉大師)가 이르되 한가지로 4주(住)를 제(除)함엔 차처(此處)가 제등(齊等; 齊)하지만 이에(若) 무명(無明)을 제복(制伏; 伏)함엔 3장(藏)이 곧 열등(劣等; 劣)하다 했으니 곧 차위(此位)다. 해석해 가로되 4주(住)란 것은 다만 이 견(見)ㆍ사(思)다. 이르자면 견(見; 견혹)은 하나가 되니 이름이 견일체처주지(見一切處住地)다. 사혹(思惑)은 셋으로 나누나니 1은 욕애주지(欲愛住地)니 욕계(欲界)의 9품 사(思)며 2는 색애주지(色愛住地)니 색계(色界)의 4지(地)에 각 9품 사(思)며 3은 무색애주지(無色愛住地)니 무색계(無色界) 4지에 각 9품 사(思)다. 이 4주(住)는 3장(藏)의 불(佛)과 더불어 6근(根)이 청정한 사람이 한가지로 단제(斷除; 斷)하는지라 고로 말하되 한가지로 4주를 제한다(同除四住) 했다. 말한 이에 무명을 제복함엔 3장이 곧 열등하다(若伏無明三藏則劣) 란 것은 무명은 곧 계외(界外)에서 중도(中道)를 장애(障)하는 별혹(別惑)이다. 3장교(藏敎)는 다만(止) 계내(界內)의 통혹(通惑; 見思惑)을 논하므로 무명(無明)의 명자도 오히려 능히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다시 복단(伏斷)하겠는가, 고로 말하되 3장(藏)이 곧 열등하다 했다. 다음 8신(信)으로 좇아 10신에 이르기까지는 계내외(界內外)의 진사혹(塵沙惑)을 끊어 없애나니 가관(假觀)이 현전하고 속제리(俗諦理)를 보고 법안(法眼)을 열어 도종지(道種智)를 이루어 4백 유순을 행한다. 별교의 8, 9, 10주(住) 및 행향(行ㆍ向) 위(位)와 더불어 제등하며 불퇴(不退)를 행한다.
●仁王云; 사교의주휘보보굉기9 [註] 인왕운(仁王云)이란 것은 파사닉왕(波斯匿王)이 설한 바의 게(偈)다.
●永嘉大師; 당대승(唐代僧) 현각(玄覺; 665-713)의 호가 영가현각(號永嘉玄覺)이니 온주(溫州) 영가(永嘉; 浙江에 위치)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대(戴), 자(字)는 명도(明道), 8세에 출가하여 3장(藏)을 널리 탐구했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음. 뒤에 온주(溫州)의 용흥사(龍興寺) 곁 바위 아래 스스로 선암(禪庵)을 구축(構築)하고 독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는데 늘 선관(禪觀)을 닦았음. 우연히 좌계현랑(左溪玄朗)의 격려로 인해 드디어 유방(遊方)할 뜻을 일으켜 동양현책(東陽玄策)과 함께 유방하며 도를 찾았음. 운양(韻陽)에 이르렀을 때 조계혜능(曹溪慧能)을 알현(謁見)했으며 혜능과 서로 문답하고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혜능이 그를 머물러 일숙(一宿)케 했는데 다음날 곧 용흥사(龍興寺)로 돌아간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그 후 학자가 복주(輻湊)하였으며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임. 현랑(左溪)이 글을 주어 산서(山棲)로 그를 초대하자 스님이 복서(覆書; 편지의 회답. 返信)하고 사퇴(辭退)했음. 선천(先天) 2년(713. 一說엔 開元二年 혹은 先天元年) 10월 17일에 부좌(趺坐; 책상다리)하고 입적했으니 나이는 49. 무상대사(無相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은 가로되 정광(淨光). 증도가(證道歌) 1편(篇)을 지었는데 범승(梵僧)이 천축으로 돌아가 전하자 그곳에서 다 흠앙(欽仰)하며 제목하기를 동토(東土)의 대승경(大乘經)이라 했음. 또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 10편(篇) 및 관심십문(觀心十門)ㆍ영가집(永嘉集) 10권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왕성히 전함 [宋高僧傳八 佛祖歷代通載十三 佛祖統紀十 傳燈錄五 五燈會元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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