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孟常之門 孟常 當作孟嘗 卽齊之孟嘗君 名文 姓田氏 嬰之子 父使生家 後代嬰立於薛 故稱孟嘗君 君在薛招致諸侯 賓客及亡人有罪者 皆歸孟嘗君 傾天下之賢 食客數千人 無貴賤 一與文等 有客馮驩 甚貧 猶有一劍 又蒯緱 彈其劍而歌曰 長鋏 歸來乎 食無魚 君遷之 食有魚 旣又彈劍而歌曰 長鋏歸來乎 出無輿 君又遷之 出入乘輿車 後爲君燒券 以彰君之善聲 〖祖庭事苑一〗
맹상지문(孟常之門) 맹상(孟常)은 마땅히 맹상(孟嘗)으로 지어야 하나니 곧 제(齊)의 맹상군(孟嘗君)임. 이름은 문(文)이며 성은 전씨(田氏)며 영(嬰)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집을 꾸려 나가게 했으며 뒤에 영(嬰)을 대신해 설(薛)에 옹립된지라 고로 맹상군(孟嘗君)으로 일컫는다. 군(君)이 설(薛)에 있으면서 제후(諸侯)를 초치(招致)하자 빈객 및 망명한 사람 죄 있는 자가 다 맹상군에게 귀속(歸屬)하니 천하의 현인(賢人)을 기울게 해 식객이 수천 인이었으며 귀천이 없이 한가지로 문(文)과 평등했다. 풍환(馮驩)이란 객이 있었는데 매우 가난했으나 오히려 1검(劍)이 있었으며 또 괴구(蒯緱; 蒯는 茅類 괴며 緱는 칼자루 감을 구니 곧 새끼로 칼자루를 감아 묶음. 변변치 못한 칼에 비유)였다. 그 검을 퉁기며 노래해 가로되 장협(長鋏; 鋏은 칼 협. 칼자루 협)아 돌아가자 식사에 생선(生鮮; 魚)이 없구나. 군이 그를 천이(遷移)하여 식사에 생선이 있었다. 이미 그러하자(旣는 已然임) 또 검을 퉁기며 노래해 가로되 장협(長鋏)아 돌아가자 출입에 여거(輿車; 輿는 수레 여. 가마 여. 곧 수레)가 없구나. 군이 또 그를 천이(遷移)하여 출입에 여거가 있었다. 뒤에 군을 위해 채권(債券)을 불태워 군의 선성(善聲)을 현창(顯彰)했다(사기75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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