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果圜悟禪師碧巖錄卷第一
師住*澧州*夾山靈泉禪院
*評唱*雪竇顯*和尙*頌古語要
*垂示云 *隔山見煙 早知是火 隔牆見角 便知是牛 *擧一明三 *目機銖兩 是衲僧家*尋常茶飯 至於*截斷衆流 *東湧西沒 逆順縱橫 與奪自在 正當*恁麽時 *且道 是*什麽人*行履處 看取雪竇*葛藤
●佛果圜悟; 佛果圜悟克勤 克勤(1063-1135) 又作克懃 宋代楊岐派僧 四川崇寧人 俗姓駱 字無著 幼於妙寂院依自省出家 受具足戒後 於成都依圓明學習經論 後至五祖山參法演 蒙其印證 與佛鑑慧懃 佛眼淸遠齊名 世有演門二勤一遠之稱 被譽爲叢林三傑 崇寧(1102-1106)中 於成都昭覺寺開法 政和初年(1111)至荊州 當世名士張無盡禮謁之 與之談論華嚴要旨及禪門宗趣 復受澧州刺史之請 住夾山靈泉禪院 復徙道林 時因樞密鄧子常之奏請 敕賜紫服及佛果禪師之號 政和中 奉詔移住金陵蔣山 次住天寧萬壽 大振宗風 後居於金山 高宗幸揚州時 詔其入對 賜號圜悟 世稱圜悟克勤 後歸成都昭覺寺 紹興五年示寂 壽七十三 諡號眞覺禪師 弟子有大慧宗杲 虎丘紹隆等禪門龍象 曾於夾山之碧巖 集雪竇重顯之頌古百則 編成碧巖錄十卷 世稱禪門第一書 此外有圜悟佛果禪師語錄二十卷 [大慧普覺禪師年譜 僧寶正續傳四 嘉泰普燈錄十一 佛祖歷代通載三十 釋氏稽古略四]
●澧州; 今湖南省澧縣
●夾山; 位於湖南省岳州府澧州石門縣東南約十七公里 唐懿宗咸通十一年(870) 船子德誠之法嗣善會 在此山建立禪宇 振擧禪風 名噪一時
● 評唱; 評論提唱 評議古人的機語作略
●雪竇顯; 雪竇重顯 重顯(980-1052) 宋代雲門宗僧 遂寧(四川蓬溪縣之西)人 俗姓李 字隱之 以妙齡離俗入道 投益州普安院仁詵出家 得法於復州北塔智門光祚 依止五年 盡得其道 後隱於錢塘靈隱寺三年 乃出住蘇州翠峰寺 次年轉徙明州雪竇山資聖寺 海衆雲集 大揚宗風 乃中興雲門宗 又以師久住雪竇山 後世多以雪竇禪師稱之 於皇祐四年入寂 壽七十三 諡號明覺大師 遺有明覺禪師語錄六卷 碧巖集百則頌 及詩集瀑泉集行世 [淨慈寺志 五燈會元十五 續傳燈錄二]
●和尙; 指德高望重之出家人 又作和上 和闍 和社等 梵云鄔波馱耶 優婆陀訶 郁波第耶夜 此云親敎師 力生 近誦
●頌古; 擧出前人公案機語 用偈句韻語加以闡釋評議 是禪師說法的一種形式 按禪林寶訓下 萬庵曰 頌始自汾陽 曁雪竇宏其音 顯其旨 汪汪乎不可涯
●垂示; 垂說示衆 又作垂語 垂說 示衆 於禪林 師家對弟子大衆開示宗要 稱爲垂示 又於說示法要時 先以簡明語句標示所說之要諦 亦稱垂示 如碧巖錄從容錄等 均先垂示 次揭本則 後再評唱 [禪林寶訓三 象器箋垂說類]
●隔山見煙下; 成唯識論集解一 言比量者 比擬量度而知其然 如隔墻見角見煙 便知牛火 以有比度 故名比量
●擧一明三; 謂知解敏銳 示一卽能知三 禪宗以此語顯示伶俐之機用 ▲論語述而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目機銖兩; 意謂眼目之明銳 能細察銖兩之微 銖 古代重量單位 一兩的二十四分之一爲銖 銖兩謂極輕微的重量
●尋常茶飯; 只如平時茶飯無奇特事 尋常 平時 尋 常也 又俄也 相當于不久
●截斷衆流; 謂禪家機鋒施設 截斷一切言語情識之糾纏
●東涌西沒; 形容禪悟者的自在運用 通暢無礙
●恁麽; 這 這樣 如此 其類似用語有與麽 什麽 漝麽 甚麽 怎麽 作麽等
●且道; 謂試說看 且 發辭
●什麽; 疑問之辭 如言何也
●行履; 行者進退 履者實踐 指日常一切行爲 衲僧行履 佛祖不能窺 外魔不能亂 頭頭物物 擧足下足 都是道之現成
●葛藤; 指文字言語 一如葛藤之蔓延交錯 又指公案中難以理解之語句 更轉義作問答工夫 玩弄無用之語句 稱爲閒葛藤 執著於文字言語 而不得眞義之禪 稱爲文字禪 或葛藤禪
수시(*垂示)해 이르되 산 너머 연기를 보면(*隔山見煙) 벌써 이 불임을 알고 담장 너머 뿔을 보면 바로 이 소임을 안다. 하나를 들매 셋을 밝히고(*擧一明三) 목기로 수량(*目機銖兩)함은 이 납승가의 심상의 다반(*尋常茶飯)이거니와 중류를 절단(*截斷衆流)하며 동용하고 서몰하며(*東湧西沒) 역순으로 종횡하며 여탈(與奪; 주고 뺏음)에 자재함에 이르나니 바로 이러한(*恁麽) 때에 당하여선 그래 말하라(*且道) 이 어떤(*什麽) 사람의 행리처(*行履處)인가. 설두의 갈등(*葛藤)을 간취(看取)하라.
●佛果圜悟; 불과원오극근(佛果圜悟克勤)임. 극근(克勤; 1063-1135)은 또 극근(克懃)으로 지음. 송대 양기파승. 사천 숭녕(崇寧) 사람이며 속성은 낙(駱)이며 자는 무착(無著). 어릴 적에 묘적원(妙寂院)에서 자성(自省)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성도(成都)에서 원명(圓明)에게 의지해 경론을 학습했음. 후에 오조산에 이르러 법연(法演)을 참알해 그의 인증(印證)을 받았음. 불감혜근(佛鑑慧懃)ㆍ불안청원(佛眼淸遠)과 더불어 이름이 가지런해 세상에 연문(演門; 法演門下)의 이근일원(二勤一遠)의 칭호가 있으며 총림의 삼걸(三傑)이란 명예를 입었음. 숭녕(1102-1106) 중 성도(成都) 소각사(昭覺寺)에서 개법했음. 정화(政和) 초년(1111) 형주(荊州)에 이르러 당세(當世)의 명사(名士)인 장무진을 예알해 그와 더불어 화엄의 요지(要旨) 및 선문의 종취(宗趣)를 담론했음. 다시 예주자사(澧州刺史)의 청을 받아 협산(夾山)의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지하다가 다시 도림(道林)으로 이사했음. 때에 추밀(樞密) 등자상(鄧子常)의 주청(奏請)으로 인해 자복(紫服)과 및 불과선사(佛果禪師)란 호를 칙령으로 주었음. 정화(政和; 1111-1117) 중에 조칙(詔勅)을 받들어 금릉(金陵)의 장산(蔣山)으로 이주했고 다음에 천녕(天寧)의 만수(萬壽)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음. 후에 금산(金山)에 거주했는데 고종이 양주(揚州)에 거둥했을 때 그를 불러 입대(入對; 궁에 들어가 마주함)했으며 원오(圜悟)란 호를 주었으니 세칭이 원오극근(圜悟克勤)임. 후에 성도 소각사(昭覺寺)로 돌아갔으며 소흥(紹興) 5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3이며 시호는 진각선사(眞覺禪師). 제자에 대혜종고(大慧宗杲)ㆍ호구소륭(虎丘紹隆) 등의 선문의 용상(龍象)이 있음. 일찍이 협산의 벽암(碧巖)에서 설두중현의 송고(頌古) 100칙을 모아 벽암록 10권을 편성했는데 세칭이 선문제일서(禪門第一書)임. 이 밖에 원오불과선사어록 20권이 있음 [대혜보각선사연보. 승보정속전4. 가태보등록11. 불조역대통재30. 석씨계고략4].
●澧州; 지금의 호남성 예현(澧縣).
●夾山; 호남성 악주부(岳州府) 예주(澧州) 석문현(石門縣) 동남 약 17㎞에 위치하며 당 의종(懿宗) 함통(咸通) 11년(870) 선자덕성(船子德誠)의 법사인 선회(善會)가 이 산에 있으면서 선우(禪宇)를 건립해 선풍을 떨쳐 일으켜 이름이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음.
● 評唱; 평론하고 제창(提唱)함이니 고인의 기어(機語)와 작략(作略)을 평의(評議)함.
●雪竇顯; 설두중현(雪竇重顯)임. 중현(重顯; 980-1052) 송대 운문종승. 수녕(遂寧; 사천 蓬溪縣의 西)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이(李)며 자(字)는 은지(隱之). 묘령(妙齡; 20 안팎의 젊은 나이)에 세속을 떠나 입도(入道)하여 익주(益州) 보안원(普安院)의 인선(仁詵)에게 투신하여 출가했음. 복주(復州) 북탑(北塔)의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서 법을 얻었으니 5년 동안 의지(依止)하며 그 도를 다 얻었음. 후에 전당(錢塘) 영은사(靈隱寺)에 은거하기 3년 만에 곧 출세해 소주(蘇州) 취봉사(翠峰寺)에 주(住)했음. 다음해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로 옮겼으며 해중(海衆)이 운집하여 종풍을 크게 날렸으니 곧 운문종을 중흥했음. 또 스님이 설두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후세에 많이 설두선사(雪竇禪師)로 그를 일컬음. 황우(皇祐) 4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73. 시호가 명각대사(明覺大師)며 유작(遺作)에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6권과 벽암집백칙송(碧巖集百則頌) 및 시집인 폭천집(瀑泉集)이 있어 세상에 행함 [정자사지. 오등회원15. 속전등록2].
●和尙; 덕이 높고 신망(信望)이 두터운 출가인을 가리킴. 또 화상(和上)ㆍ화사(和闍)ㆍ화사(和社) 등으로 지음. 범어로는 이르되 오파타야(鄔波馱耶; 梵 upādhyāya)ㆍ우파타하(優婆陀訶)ㆍ욱파제야야(郁波第耶夜)니 여기에선 이르되 친교사(親敎師)ㆍ역생(力生)ㆍ근송(近誦)임.
●頌古; 전인(前人)의 공안의 기어(機語)를 거출(擧出)하여 게구(偈句)의 운어(韻語)를 써서 천석(闡釋)하고 평의(評議)를 가함이니 이는 선사의 설법의 일종 형식임. 선림보훈하(禪林寶訓下)를 안험하니 만암(萬庵)이 가로되 송(頌)은 분양(汾陽)으로부터 비롯했고 설두(雪竇)에 이르러 그 음을 크게(宏) 하고 그 지취를 나타내었으니 왕왕(汪汪)하여 가히 헤아리지(涯) 못한다.
●垂示; 수설시중(垂說示衆)이니 또 수어(垂語)ㆍ수설(垂說)ㆍ시중(示衆)으로 지음. 선림에서 사가가 제자나 대중을 상대로 종요(宗要)를 개시(開示)함을 일컬어 수시라 함. 또 법요를 설시(說示)할 때 먼저 간명한 어구로 설할 바의 요체(要諦)를 표시함도 또한 일컬어 수시임. 예컨대(如) 벽암록ㆍ종용록 등에서 균일하게 먼저 수시(垂示)하고 다음에 본칙을 게시(揭示)하고 후에 다시 평창(評唱)했음 [선림보훈3. 상기전수설류].
●隔山見煙下; 성유식론집해1(成唯識論集解一). 말한 비량(比量)이란 것은 비의(比擬; 견주어 비교함)하고 양탁(量度; 헤아림)하여 그의 그러함을 아는 것이다. 마치 담 너머에서 뿔을 보거나 연기를 보면 바로 소와 불임을 앎과 같다. 비교하고 헤아림이 있으므로 고로 이름이 비량이다.
●擧一明三; 이르자면 지해가 민첩하고 예리함이니 하나를 보이면 곧 능히 셋을 앎. 선종에서 이 말로써 영리(伶俐)한 기용을 현시(顯示)함. ▲논어 술이(述而). 한 모퉁이를 들매 세 모퉁이로 돌아오지 않으면 곧 반복하지 않는다.
●目機銖兩; 뜻으로 이르자면 안목의 밝고 예리함으로 능히 수량(銖兩)의 미세한 것을 세밀히 살핌임. 수(銖)는 고대의 중량단위니 1량(兩)의 24분의 1이 수가 됨. 수량(銖兩)은 이르자면 극히 경미한 중량임.
●尋常茶飯; 다만 평시의 다반과 같아서 기특한 일이 없음. 심상(尋常)은 평시. 심(尋)은 상(常)이며 또 아(俄)니 불구(不久)에 상당함.
●截斷衆流; 이르자면 선가의 기봉의 시설이니 일체의 언어와 정식(情識)의 규전(糾纏; 서로 뒤얽힘)을 절단함.
●東涌西沒; 선오자(禪悟者)의 자재한 운용이 통창(通暢)하여 무애함을 형용.
●恁麽; 저(這)ㆍ저양(這樣; 이 모양)ㆍ여차(如此)니 그와 유사한 용어에 여마(與麽)ㆍ십마(什麽)ㆍ습마(漝麽)ㆍ심마(甚麽)ㆍ즘마(怎麽)ㆍ작마(作麽) 등이 있음.
●且道; 이르자면 시험삼아 설해 보라. 차(且)는 발사(發辭).
●什麽; 의문의 사(辭)니 하(何)라고 말함과 같음.
●行履; 행(行)이란 것은 진퇴며 리(履)란 것은 실천이니 일상의 일체 행위를 가리킴. 납승의 행리(行履)는 불조라도 능히 엿보지 못하고 마외(外魔)도 능히 어지럽히지 못하나니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거족하족(擧足下足)이 모두 이 도의 현성(現成)임.
●葛藤; 문자와 언어를 가리킴이니 갈등의, 만연(蔓延)하여 교착(交錯)함과 똑같음. 또 공안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구를 가리킴. 다시 전의(轉義)하여 문답의 공부가 됨. 무용한 어구를 완롱(玩弄)함을 일컬어 한갈등(閒葛藤)이라 하며 문자와 언어에 집착하여 참 뜻의 선을 얻지 못함을 일컬어 문자선, 혹은 갈등선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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