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1칙 본칙

태화당 2021. 8. 24. 11:03

* *梁武帝*達磨*大師說這*不唧?漢 如何是*聖諦*第一義是甚*繫驢橛 磨云 廓然無聖將謂多少奇特 *箭過新羅 *可殺明白 帝曰 對*者誰滿面慚惶 强惺惺 果然摸索不着 磨云 不識咄 再來不直*半文錢 帝不契*可惜許 *較些子 達磨遂渡江至魏*野狐精 不免一場懡㦬 *從西過東 從東過西 帝後擧問*志公*貧兒思舊債 傍人有眼 志公云 *陛下還識此人否和志公趕出國*始得 好與三十* 達磨來也 帝云 不識却是武帝*承當得達磨公案 志公云 此是*觀音大士 傳佛*心印*胡亂*指注 臂膊不向外曲 帝悔 遂遣使去請果然*把不住 向道不唧? 志公云 莫道陛下發使去取東家人死西家人助哀 也好一時趕出國 *闔國人去 他亦不回志公也好與三十棒 不知脚跟下放大光明

 

; 擧起公案也 但此爲擧起公案而記載時所用之詞 在座上正唱其公案時 但言記得 此爲圜悟擧起達磨公案也

梁武帝; (464-549) 南朝蘭陵(江蘇武進)人 姓蕭名衍 字叔達 原爲南齊雍州刺史 以齊主殘忍無道殺其兄懿 蕭衍乃兵陷建康 別立和帝 遂於中興二年(502)簒位 國號梁

達磨; 菩提達磨 此云道法 又稱菩提達摩 菩提達磨多羅 達磨多羅 菩提多羅 通稱達磨 東土禪宗初祖 西天第二十八祖 南天竺香至國國王之第三子 從般若多羅學道 與佛大先竝稱爲門下二甘露門 梁武帝普通元年(520 西來年度 異說紛紜) 師泛海至廣州番禺 武帝遣使迎至建業 然與武帝語不相契 遂渡江至魏 止嵩山少林寺 面壁坐禪 時人不解其意 稱壁觀婆羅門 經九載 欲歸西方 囑慧可一宗之祕奧 授袈裟及楞伽經四卷 未久卽入寂 葬於熊耳山定林寺 師之示寂年代 有梁大通二年(五二八) 梁大同元年(535)或二年等異說 又梁武帝尊稱師爲聖胄大師 唐代宗賜圓覺大師之諡號 塔名空觀 [續高僧傳十六 傳燈錄三 傳法正宗記五 祖庭事苑二 同五 同八 舊唐書列傳一四一神秀傳]

大師; 初果以上 乃至諸佛菩薩 堪爲衆生之師範 故稱大師 瑜伽師地論八十二 能善敎誡聲聞弟子一切應作不應作事 故名大師 又能化導無量衆生 令苦寂滅 故名大師 又爲摧滅邪穢外道出現世間 故名大師 祖庭事苑六 師名 尋僧史(大宋僧史略下) 師號遠起梁武帝 號婁約法師 次隋煬帝號智顗禪師竝爲智者 無大師二字 唐中宗號萬回爲法雲公 加公一字 玄宗開元(713-740)中 有慧日法師 中宗朝 得度師義淨遊西域回 進眞容梵夾 賜號慈敏 亦未行大師之字 穆宗朝 天平軍節度使劉總奏乞出家 賜紫衣 號大覺師 止師一字 至懿宗朝 咸通十一年(870)十一月十四日延慶節 因內談論左街雲顥 賜三慧大師 右街僧徹 賜淨光大師 師號 懿宗朝始也

不唧?; 指不伶俐 暗昧不慧之鈍漢

聖諦; 爲聖者所見之諦理 故名聖諦 又聖者正也 爲正眞之諦理 故名聖諦 涅槃經十二曰 苦集滅道 是名四聖諦

第一義; 佛敎最高眞理 至極玄妙的禪義 又作第一義諦

繫驢橛; 路傍繫驢馬之木橛 喩束縛眞性 障礙悟道的情識知解 區別妄心等

箭過新羅; 與箭過西天同義 又作一箭過新羅 比喩禪機疾如飛箭 超越言句 若稍有遲緩 咸入情解 便已遠逝 或云 新羅遠在支那東方 若放矢遠過新羅去 則誰知其落處 以喩物之落著難知

可殺; 甚是 殺 所八切 所拜切 表示程度深

; 一代詞 表示第一人稱 爾雅 朕 我也 郭璞注 古者貴賤皆自稱朕 又朕 身也 郭璞注 今人亦自呼爲身 邢昺疏 身 卽我也 二皇帝的自稱 自秦始皇始 祖庭事苑二 朕 直稔切 我也 秦始二十六年(前二二一) 始爲天子之稱

摸索不着; 摸索不得 相當于得

半文錢; 文 量詞 用于計算銅錢的基本單位 南北朝以來 銅錢圓形 中有方孔 一面鑄有文字 故稱錢一枚爲一文

可惜許; 可惜 許 語助辭 又語氣詞 表示感嘆

較些子; 較 差也 些子 卽些少 謂有些少的差異也 兼帶否定與肯定兩意

野狐精; 原指野狐之精魅 能作變幻 以欺誑他人 禪錄中多用作對不合禪法者的責罵語 或機語問答時 嘲謔對方的呵斥語

從西過東; 過 至也

志公; 又作誌公 指寶誌(418-514) 南朝僧 又作寶志 保誌 世稱寶公 志公 誌公和尙 金城(陝西南鄭 或江蘇句容)人 俗姓朱 年少出家 師事道林寺僧儉 修習禪業 劉宋泰始年間(466-471) 往來於都邑 居無定所 時或賦詩 其言每似讖記 四民遂爭就問福禍 齊武帝以其惑衆 投之於獄 然日日見師遊行於市里 乃往獄中檢視 卻見師猶在獄中 帝聞之 乃迎入華林園供養 禁其出入 而師不爲所拘 仍常遊訪龍光 罽賓 興皇 淨名等諸寺 至梁武帝建國 始解其禁 師每與帝長談 所言皆經論義 師於天監十三年十二月示寂 壽九十六 敕葬鍾山獨龍阜 於墓側立開善寺 諡號廣濟大師 後代續有追贈 如妙覺大師 道林眞覺菩薩 道林眞覺大師 慈應惠感大師 普濟聖師菩薩 一際眞密禪師等號 師嘗爲學者述文字釋訓三十卷 十四科頌十四首 十二時頌十二首 大乘讚十首等 [梁高僧傳十 佛祖統紀三十六 同三十七 佛祖歷代通載十 寶華山志七誌公法師墓誌銘 神僧傳四]

貧兒; 貧者 兒 後綴

陛下; 祖庭事苑二 陛下 應劭曰 陛者 升堂之階 王者必有執兵陳於階陛之側 群臣與至尊言 不敢指斥(指也) 故呼在陛下者而告之 因卑以達尊之意也 若今稱殿下閤下 侍者執事 皆此類

始得; 得 適合 適當 正好 可

; 禪錄多指拄杖 棒 步項切 棍也 棓也 又用棍棒打 廣韻 棒 打也

承當; 承受機緣 領悟禪法

觀音大士; 觀世音菩薩的別稱 大士 菩薩之通稱也 或以名聲聞及佛 士者凡夫之通稱 簡別於凡夫而稱爲大 又士者事也 爲自利利他之大事者 謂之大士

心印; 禪之本意 不立文字 不依言語 直以心爲印 故曰心印 心者佛心 印者印可印定之義 此印能印可或印定佛法之實義也

胡亂; 胡 任意亂來 胡亂卽亂雜之義 如不依位次而坐則稱胡亂坐 妄加唱說言道 謂胡說 胡道 或胡說亂道

指注; 此指解釋 注釋

把不住; 控制不住(自己或他人)

闔國; 全國 闔 全也

 

(*)하노라. 양무제(*梁武帝)가 달마대사(*達磨大師)에게 묻되 이 부즉류(*不唧?)를 설하는 자로구나 무엇이 이 성제(*聖諦)의 제일의(*第一義)입니까. 이 무슨 나귀 매는 말뚝인가(*繫驢橛). 달마가 이르되 확연(廓然; 텅 빈 모양)하여 무성(無聖)입니다. 장자 다소 기특하다고 이르렸더니. 화살이 신라를 지났다(*箭過新羅). 가히 매우(*可殺) 명백하다. 무제가 가로되 짐(*)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만면에 참황(慚惶;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름)이면서 애써() 성성(惺惺)한 척하는구나. 과연 모색을 얻지 못하는구나(摸索不着). 달마가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 꾸짖는 소리), 재래(再來; 먼저 廓然하여 無聖이라 하고 지금 다시 알지 못합니다 한 것)하니 반문전(*半文錢)의 가치(; 와 같음)도 안된다. 무제가 계합하지 못했다. 가석허(*可惜許)나 도리어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달마가 드디어 도강(渡江)하여 위()에 이르렀다. 이 야호정(*野狐精)아 한바탕 부끄러움(懡㦬)을 면하지 못했다. 서로 좇아 동에 이르고(*從西過東) 동으로 좇아 서에 이르는구나. 무제가 후에 들어 지공(*志公)에게 묻자 빈아(*貧兒)가 묵은 빚을 생각하는구나. 곁의 사람(志公)이 안목이 있구나. 지공이 이르되 폐하(*陛下)는 도리어 이 사람을 아십니까. 지공마저 나라에서 쫓아내어야 비로소 옳다(*始得). 좋게 삼십 방(*) 주어야 하리라. 달마가 왔다. 무제가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도리어 이 무제가 달마공안(達磨公案)을 승당(*承當)해 얻었다. 지공이 이르되 이 분()은 이 관음대사(*觀音大士)니 불타의 심인(*心印)을 전수(傳受)하셨습니다. 호란(*胡亂)하게 지주(*指注)하는구나. 비박(臂膊; 팔 또는 팔과 팔뚝)이 밖을 향해 굽지 않는다. 무제가 후회하여 드디어 사자(使者)를 보내어 가서 초청하고자 하니 과연 잡아도 머물지 않는다(*把不住). 향해 말하되 부즉류(不唧?)라 하노라. 지공이 이르되 폐하께서 사자를 보내어 가서 취한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동가(東家)의 사람이 죽으매 서가(西家)의 사람이 조애(助哀)하는구나. 또한 좋게 일시에 나라에서 쫓아내어야 하리라. 합국( *闔國)의 사람이 가더라도 그는 또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공도 또한 좋게 삼십 방() 주어야 하리니 발꿈치 아래 대광명을 놓는 줄 알지 못하는구나.

 

; 공안을 들어 일으킴. 단지 이것은 공안을 들어 일으켜 기재할 때 쓰이는 바의 말이 됨. 좌상(座上)에 있으면서 바로 그 공안을 제창할 때는 다만 기득(記得)컨대 라고 말함. 이것은 원오가 달마공안을 들어 일으킴이 됨.

梁武帝; (464-549) 남조 난릉(蘭陵; 江蘇 武進) 사람. 성은 소() 이름은 연()이며 자는 숙달(叔達). 원래 남제(南齊)의 옹주자사(雍州刺史)가 되었음. 제주(齊主)가 잔인무도하여 그 형인 의()를 죽이자 소연(蕭衍)이 곧 군사로 건강(建康)울 함락시키고 따로 화제(和帝)를 세웠다가 드디어 중흥(中興) 2(502) 찬위(簒位)하고 국호를 양()이라 했음.

達磨; 보리달마(菩提達磨; Bodhidharma)니 여기에선 이르되 도법(道法). 또 호칭이 보리달마(菩提達摩)ㆍ보리달마다라(菩提達磨多羅)ㆍ달마다라(達磨多羅)ㆍ보리다라(菩提多羅)며 통칭이 달마임. 동토(東土)의 선종 초조며 서천(西天)의 제28조임. 남천축(南天竺) 향지국(香至國) 국왕의 셋째 아들이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좇아 도를 배웠으며 불대선(佛大先)과 아울러 문하(門下)의 두 감로문(甘露門)이라고 호칭하였음. () 무제(武帝) 보통원년(普通元年; 520. 西來年度異說紛紜) 스님이 바다에 떠서 광주(廣州)의 번옹(番禺)에 이르자 무제가 사자를 보내 영접해 건업(建業)에 이르렀음. 그러나 무제와 말이 서로 계합(契合)치 못해 드디어 도강(渡江)하여 위()에 이르러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면서 면벽(面壁)하며 좌선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해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일컬었음. 아홉 해가 지나 서방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혜가(慧可)에게 1()의 비오(祕奧)를 부촉하고 가사(袈裟)와 릉가경(楞伽經) 4권을 주었음. 오래지 않아 입적했고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장사 지냈음. 스님의 시적(示寂) 연대는 양() 대통이년(大通二年; 528)ㆍ양 대동원년(大同元年; 535) 2년 등의 이설(異說)이 있음. 또 양무제가 스님을 존칭해 성주대사(聖胄大師)라 했으며 당() 대종(代宗)은 원각대사(圓覺大師)란 시호를 주었음. 탑 이름은 공관(空觀) [속고승전16. 전등록3. 전법정종기5. 조정사원2, 5, 8. 구당서열전141신수전].

大師; 초과(初果) 이상 내지 제불보살은 가히 중생의 사범이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임. 유가사지론82. 능히 성문제자에게 일체 응작(應作)ㆍ불응작(不應作)의 일을 교계(敎誡)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大師). 또 능히 무량한 중생을 화도(化導)하여 고()를 적멸하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다. 또 삿되고 더러운 외도가 세간에 출현함을 최멸(摧滅)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대사다. 조정사원6. 사명(師名) 승사(僧史; 대송승사략하)를 심구(尋究)하니 사호(師號)는 멀리 양무제에서 일어났으니 누약법사(婁約法師)라고 호했다. 다음엔 수양제가 지의선사(智顗禪師)라고 호했으며 아울러 지자(智者)라 했지만 대사(大師)2자가 없었다. 당중종이 만회(萬回)를 호해 법운공(法雲公)이라 했는데 공()이란 1자를 더했다. 현종 개원(開元; 713-740) 중에 혜일법사(慧日法師)가 있었다. 중종조에 득도사(得度師) 의정(義淨)이 서역에 노닐다 돌아와서 진용(眞容; 佛眞容을 가리킴)과 범협(梵夾)을 진상하자 자민(慈敏)이란 호를 주었으나 또한 대사란 글자를 행하지 않았다. 목종조에 천평군절도사(天平軍節度使) 유총(劉總)이 주걸(奏乞; 주청해 걸구함)하여 출가하자 자의(紫衣)를 주고 대각사(大覺師)라 호했으니 단지 사() 1자였다. 의종조(懿宗朝)에 이르러 함통(咸通) 11(870) 1114일 연경절(延慶節)에 내전에서 담론함으로 인하여 좌가(左街)의 운호(雲顥)에게 삼혜대사(三慧大師)를 주고 우가의 승철(僧徹)에게 정광대사(淨光大師)를 주었다. 사호(師號)는 의종조에 비롯했다.

不唧?; 영리(伶俐)하지 못함을 가리킴. 암매(暗昧)하여 지혜롭지 못한 둔한(鈍漢).

聖諦; 성자가 보는 바의 체리(諦理)가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성제(聖諦). 또 성()이란 것은 정()이니 정진(正眞)의 체리가 되는지라 고로 이름이 성제임. 열반경12에 가로되 고ㆍ집ㆍ멸ㆍ도 이 이름이 4성제(聖諦).

第一義; 불교의 최고 진리며 지극히 현묘한 선의(禪義). 또 제일의제(第一義諦)로 지음.

繫驢橛; 길 옆에 나귀나 말을 묶는 나무 말뚝이니 진성(眞性)을 속박하고 오도를 장애하는 정식(情識)의 지해와 구별의 망심 등에 비유함.

箭過新羅; 전과서천(箭過西天)과 같은 뜻이니 또 일전과신라(一箭過新羅)로 지음. 선기(禪機)의 빠르기가 나는 화살과 같아서 언구를 초월함에 비유함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더딤이 있으면 다 정해(情解)에 들어가 곧 이미 멀리 떠났다 함임. 혹 이르되 신라는 멀리 지나(支那)의 동방에 있으며 만약 화살을 방출하여 멀리 신라를 지나가면 곧 누가 그 낙처를 알겠는가 함이니 사물의 낙착(落著)을 알기 어려움에 비유함.

可殺; 심시(甚是; 極爲). ()는 소팔절(所八切; ), 소배절(所拜切; )이니 정도의 깊음을 표시.

; 1. 대사(代詞)니 제1인칭을 표시함. 이아(爾雅) () (). 곽박(郭璞)의 주() 옛적에 귀천(貴賤)이 다 자칭 짐()이라 했다. 또 짐()은 신(). 곽박의 주() 금인(今人)이 또한 스스로 호칭해 신()이라 한다. 형병(邢昺)의 소() ()은 곧 아(). 2. 황제(皇帝)의 자칭이니 진시황(秦始皇)으로부터 비롯했음. 조정사원2. () 직임절(直稔切; )이니 아(). 진시(秦始) 26(221)에 비로소 천자의 호칭이 되었음.

摸索不着; 모색을 얻지 못함. ()은 득()에 상당함.

半文錢; () 양사(量詞). 동전을 계산하는 데 쓰는 기본단위임. 남북조 이래로 동전은 원형이었고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으며 한 면에 문자를 주조해 있으므로 고로 동전 1()를 일컬어 1()이라 함.

可惜許; 가석(可惜)이니 허()는 어조사며 또 어기사(語氣詞)니 감탄을 표시함.

較些子; ()는 차()며 사자(些子)는 곧 사소(些少). 이르자면 사소한 차이가 있음. 부정과 긍정의 두 뜻을 겸대(兼帶).

野狐精; 원래 야호의 정매(精魅)가 능히 변환(變幻)을 지어 타인을 기광(欺誑; 속임)함을 가리킴. 선록 중에 다분히 써서 선법에 맞지 않는 자에 대한 책매어(責罵語)로 지음. 혹 기어(機語)를 문답할 때 상대방을 조학(嘲謔; 조롱하고 놀림)하는 가척어(呵斥語).

從西過東; ()는 지().

志公; 또 지공(誌公)으로 지으며 보지(寶誌; 418-514)를 가리킴. 남조승(南朝僧). 또 보지(寶志)ㆍ보지(保誌)로 지음. 세칭이 보공(寶公)ㆍ지공(志公)ㆍ지공화상(誌公和尙). 금성(金城; 陝西 南鄭 江蘇句容) 사람이며 속성은 주(). 연소할 적에 출가하여 도림사 승검(僧儉)을 사사(師事)했고 선업(禪業)을 수습(修習)했음. 유송(劉宋) 태시(泰始)년 간(466-471) 도읍에 왕래하며 거처에 정한 곳이 없었음. 때로 혹 시를 읊었는데 그 말이 매번 참기(讖記)와 같았으며 사민(四民; )이 드디어 다투며 문으로 나아가 복화(福禍)를 물었음. 제무제(齊武帝)가 그것을 혹중(惑衆; 무리를 惑亂)이라 하여 뇌옥(牢獄)에 투옥(投獄)시켰음. 그러나 날마다 시리(市里)에 유행하는 스님을 본지라 이에 뇌옥 속에 가서 검시(檢視)하였는데 도리어 스님이 아직 옥 속에 있음을 보았음. ()가 이를 듣고 드디어 화림원(華林園)으로 영입해 공양하고 그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나 스님은 구애되는 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늘 용광ㆍ계빈ㆍ흥황ㆍ정명 등 여러 사원을 유방(遊訪)했음. 양무제가 건국함에 이르러 비로소 그 금지가 풀렸음. 스님이 매번 무제와 길게 얘기했는데 말하는 바가 모두 경론의 뜻이었음. 스님이 천감(天監) 1312월에 시적했는데 나이는 96이며 칙령으로 종산(鍾山) 독룡부(獨龍阜)에 장사 지내고 묘 곁에 개선사(開善寺)를 세웠음. 시호는 광제대사(廣濟大師). 후대에 이어서 추증(追贈)이 있었으니 묘각대사ㆍ도림진각보살ㆍ도림진각대사ㆍ자응혜감대사ㆍ보제성사보살ㆍ일제진밀선사 등과 같은 호임. 스님이 일찍이 학자를 위해 문자석훈(文字釋訓) 30권ㆍ14과송(科頌) 14수ㆍ십이시송 12수ㆍ대승찬(大乘讚) 10수 등을 서술했음 [양고승전10. 불조통기36, 37. 불조역대통재10. 보화산지7지공법사묘지명. 신승전4].

貧兒; 빈자(貧者)니 아()는 후철(後綴; 접미사).

陛下; 조정사원2. 폐하(陛下) 응소(應劭)가 가로되 폐()란 것은 당()에 오르는 섬돌이니 왕자(王者)는 반드시 집병(執兵)이 계폐(階陛)의 곁에 별여 있으며 군신(群臣)이 지존(至尊)과 말하면서 감히 지척(指斥; )하지 못하므로 고로 호칭하기를 폐하(陛下)에 있는 자가 이를 아뢴다 함이니 비()를 인해 존()에 상달(上達)함의 뜻임. 약금(若今; 如今)에 전하(殿下)ㆍ합하(閤下)ㆍ시자(侍者)ㆍ집사(執事)라 호칭함도 다 이런 종류임.

始得; ()은 적합, 적당. 정호(正好), ().

; 선록에서 다분히 주장자를 가리킴. ()은 보항절(步項切; )이니 곤(; 몽둥이. 곤장). (; 몽둥이). 또 곤봉을 사용해 때림임. 광운(廣韻) () 때림이다.

承當; 기연(機緣)을 승수(承受)하여 선법을 영오(領悟).

觀音大士; 관세음보살의 별칭. 대사(大士)는 보살의 통칭임. 혹 성문이나 및 불타를 이름함. ()란 것은 범부의 통칭이니 범부와 간별(簡別)하여 대()로 호칭함. 또 사()란 것은 사()니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사(大事)를 하는 자를 일러 대사(大士)라 함.

心印; ()의 본의(本意)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 언어에 의하지 않고 바로 심()으로 인()을 삼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인임. 심이란 것은 불심이며 인이란 것은 인가인정(印可印定)의 뜻이니 이 인()이 불법의 실의(實義)를 능히 인가(印可)하거나 혹 인정(印定).

胡亂; ()는 임의(任意)로 어지럽게 옴(亂來)이니 호란(胡亂)은 곧 난잡(亂雜)의 뜻. 예컨대() 위차(位次)에 의하지 않고 앉음을 곧 호란좌(胡亂坐)라 일컫고 망령되이 창설(唱說)을 가하여 말함을 일러 호설(胡說), 호도(胡道)라 하고 혹은 호설난도(胡說亂道)라 함.

指注; 여기에선 해석ㆍ주석을 가리킴.

把不住; (자기 혹 타인)을 공제(控制; 制御)하여도 머물지 않음.

闔國; 전국이니 합()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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