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3칙 송평창

태화당 2021. 8. 24. 11:45

*神宗在位時 自謂此頌諷國 所以不肯入藏 雪竇先*拈云 日面佛月面佛 一拈了 却云 五帝三皇是何物 且道 他意作麽生 適來已說了也 *直下注他 所以道 垂鉤*四海 只釣*獰龍 只此一句已了 後面雪竇自頌他平生所以用心*參尋 二十年來曾苦辛 爲君幾下蒼龍窟 似箇什麽 一似人入蒼龍窟裏取珠相似 後來打破漆桶 將謂多少奇特 元來只消得箇五帝三皇是何物 且道 雪竇語落在什麽處 須是*自家退步看 方始見得他落處 豈不見 *興陽剖*侍者*遠錄公*娑竭出海乾坤震 *覿面相呈事若何 剖云 *金翅鳥王當*宇宙 箇中誰是出頭人 遠云 忽遇出頭 又作麽生 剖云 似鶻捉鳩 君不信 髑髏前驗始知眞 遠云 恁麽則屈節當胸退身三步 剖云 *須彌座*烏龜子 莫待重遭*點額回 所以三皇五帝亦是何物 人多不見雪竇意 只管道諷國 若恁麽會 只是情見 此乃*禪月*公子行云 錦衣鮮華手擎鶻 閑行氣貌多輕忽 *稼穡艱難總不知 五帝三皇是何物 雪竇道 屈堪述 明眼衲僧莫輕忽 多少人向蒼龍窟裏 作活計 直饒是*頂門具眼 *肘後有符 明眼衲僧 照破*四天下 到這裏 也莫輕忽 須是子細始得

 

神宗; 宋神宗(1048-1085 在位1067-1085) 卽趙頊 年二十卽位 在位十八年 熙寧二年(1069)詔衡州 迎常寧資福寺玉塔入京 元豐三年(1080) 敕大內設千僧齋 爲慈聖太后追福 五年 詔相國寺闢六十四院爲八禪二律 以東西序爲惠林智海二巨刹 詔淨慈宗本住惠林 東林常總住智海 總固辭 許之 [佛祖統紀四十六 釋氏稽古略四 佛法金湯編十一]

拈云; 略稱拈 擧說公案幷加以評議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直下; 指卽時卽刻之意 與合下當下同義

四海; 四方之海 指世上 又佛敎謂圍繞須彌山四方之外海爲四海

獰龍; 喩指迅猛峻烈的機鋒 亦指機用傑出或上等根器的禪僧 獰 凶惡

參尋; 欲參禪法 尋訪禪師

自家; 家 助詞 後綴 一用于名詞後 表示屬于某一類人 如孩子家 學生家 姑娘家 二用于代詞後 如儂家 自家 他家 誰家

興陽剖; 興陽淸剖 淸剖 宋代曹洞宗僧 依郢州大陽山警延得法 居郢州興陽 [聯燈會要二 五燈會元十四]

侍者; 伺候寺院主持僧 爲其服務的職事僧 有燒香請客書狀侍者之職

遠錄公; 禪林寶訓音義 遠錄公 舒州浮山法遠圓鑑禪師 鄭州王氏子 嗣葉縣省禪師 遠甞與達觀穎 薛大頭 七八輩遊蜀 幾次遭迍 師以智脫之 衆以曉吏事 故稱遠公(疑遠錄公)法遠(991-1067) 宋代臨濟宗僧 自稱柴石野人 鄭州(今屬河南)王氏 從三交智嵩出家 嗣法於河南廣敎院歸省 歐陽修嘗參其門下 後住舒州浮山 闡揚宗風 治平四年示寂 壽七十七 諡號圓鑒禪師 [續燈錄四 聯燈會要十三 禪林僧寶傳十七 五燈會元十二 釋氏稽古略四]

娑竭; 娑竭羅龍 翻譯名義集三 娑竭羅 或娑伽羅 此云醎海

覿面; 本義爲見面 當面 禪錄中謂面臨禪機 本分相見 卽超越一切言語知解 示機者直指禪法根本 應機者頓見本來面目

金翅鳥; 金翅鳥是印度神話之鳥 同迦樓羅鳥 又作妙翅鳥 於佛敎中 爲八部衆之一 翅翮金色 兩翼廣三十六萬里 住於須彌山下層 此鳥有卵生胎生濕生化生四種 觀海之龍命將盡者 以翅劈海取卵胎濕化之諸龍爲食 [法華文句二下 長阿含經十九 華嚴經探玄記二 俱舍論光記八 慧苑音義上]

宇宙; 祖庭事苑五 宇宙 天地四方曰宇 古往今來曰宙

須彌座; 安置佛菩薩像之臺座 又稱須彌壇 卽以木金石等材料 作成須彌山之模形 上置佛像 又此壇置於佛堂中央 以其位置恰似須彌山之立於世界中央 故有須彌壇之稱 又禪林中 住持於法堂爲衆僧說法之法座 恰位於法堂中央 猶如佛敎宇宙觀中 須彌山位於宇宙中央 故法座亦稱須彌座 [金剛頂瑜伽千手千眼觀自在菩薩修行儀軌經上 大智度論八 大日經疏五]

烏龜子; 本指置於須彌壇(法座)下之烏龜雕刻 轉指法席下愚昧無知之參禪學人 子 後綴

點額; 傳說每年三月間 黃河龍門有成群鯉魚跳渡 跳過者成爲龍 未跳過者 額頭被點上記號而退回 一般詩文中 常以點額 喩指科場考試落第 禪錄中則以點額 喩指未能契悟禪機

禪月; 貫休號禪月大師 貫休(832-912) 唐末五代僧 以詩畫著稱於世 婺州蘭谿(浙江金華)人 俗姓姜 字德隱 一字德遠 七歲出家於金華縣和安寺圓貞座下 受具足戒後 卽入浙東五洩山 修禪十年 曾參無相禪師 後往洪州開元寺聽講法華經及大乘起信論 皆能通達奧義 師善繪佛像 尤工水墨羅漢 又擅篆隸草書 其詩亦頗爲士林所稱譽 唐乾寧初 嘗謁吳越王錢鏐 竝獻詩章 頗見禮重 昭宗天復(901-904)年間入蜀 前蜀蜀主王建 其子王衍 同優遇之 因賜紫衣 署號禪月大師 乾化二年示寂 壽八十一 著有西嶽集 弟子曇域更其名爲禪月集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五燈會元六]

公子行; 王子等遊行 [碧巖錄種電鈔]

稼穡; 農事的總稱 春耕爲稼 秋收爲穡 卽播種與收獲 泛指農業勞動

頂門具眼; 摩醯首羅天具有三眼 其中 頂門豎立一眼 超於常人兩眼 具有以智慧徹照一切事理之特殊眼力 故稱頂門眼 比喩卓越之見解 禪林用語中 頂門有眼 頂門具眼 頂門具一隻眼 皆作此意

肘後有符; 肘後符乃喩指佛祖之心印 或轉指人人本具之佛性 衲僧本具之佛心印 原指護身之符 又作肘後印 肘後懸符 肘後卽肘之後 百度百科 肘後符 晉葛洪曾撰醫書肘後備急方 簡稱肘後方 意謂卷帙不多 可以懸於肘後 後因借以泛指隨身攜帶的丹方 從容錄第五十二則 叢林又有肘後符 春秋後語 趙簡子告諸子曰 吾藏肘後寶符於常山上 先得者賞 諸子馳山上 求無所得 唯襄子母卹還曰 卹已得之符矣 他人皆不可分 簡子請奏之 母卹曰 從常山上下臨代可取也 簡子曰 母卹賢矣 立爲太子

四天下; 四洲 古代印度人之世界觀 謂於須彌山四方 七金山與大鐵圍山間之鹹海中 有四個大洲 又稱四大部洲 四大洲 四天下 須彌四洲

 

신종(*神宗)이 재위할 때 스스로 이르되 이 송이 풍국(諷國; 나라를 諷刺)이라 하여 소이로 입장(入藏)을 허가()하지 않았다. 설두가 먼저 염운(拈云)하되 일면불 월면불이라 하여 한 번 염료(拈了)하고 도리어 이르되 오제와 삼황인들 이 무슨 물건인고 하니 그래 말하라, 그의 뜻이 무엇인가(作麽生). 적래(適來; 아까. 조금 전)에 이미 설해 마치고 직하(*直下)에 그것(일면불월면불)을 주해하였다. 소이로 말하노니 낚시를 사해(*四海)에 드리움은 다만 영룡(*獰龍)을 낚기 위함이라 하노라. 다만 이 1(오제와 삼황인들 이 무슨 물건인고 라고 한 1)로 이미 마치고 후면에 설두가 스스로 그(설두)의 평생에 용심(用心)하고 참심(*參尋)한 소이(所以)를 송하되 이십 년 래로 일찍이 고신(苦辛)하면서 그대를 위해 몇 번이나 창룡굴에 내려갔던가 하니 무엇과 흡사하냐 하면 일사(一似; 똑같음) 사람이 창룡굴 속에 들어가 구슬()을 취함과 상사(相似)하다. 후래에 칠통을 타파함이라 하여 장차 다소(多少) 기특하다고 이르려 하였더니 원래 다만 저 오제삼황이 이 무슨 물건인고를 소득(消得; )했다 하노라. 그래 말하라. 설두의 말씀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모름지기 이는 자가(*自家)가 퇴보(退步)하여 간()해야 비로소(方始) (설두)의 낙처를 보아 얻으리라. 어찌 보지 못하는가, 흥양부(*興陽剖) 시자(*侍者)가 답하고 원록공(*遠錄公)이 묻되 사갈(*娑竭)이 바다에서 나오매 건곤이 진동하나니 적면(*覿面)에 상정(相呈)하는 일이 어떠한가. ()가 이르되 금시조왕(*金翅鳥)이 우주(*宇宙)에 당()했거늘 개중(箇中)에 누가 이 출두(出頭)하는 사람인가. ()이 이르되 홀연히 출두함을 만나면 또 어찌할 것인가. 부가 이르되 매가 비둘기를 잡음과 같나니 그대가 믿지 못한다면 촉루 앞에서 감험(勘驗)해야 비로소 진()을 알리라. ()이 이르되 이러하다면 곧 굴절(屈節; 절개를 굽힘)하고 가슴에 대고(當胸; 會元 清剖章叉手로 지어졌음) 세 걸음 퇴신(退身)하리라. 부가 이르되 수미좌(*須彌座) 아래의 오귀자(*烏龜子), 거듭 점액(*點額)을 만나고서야 돌아가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하였따. 소이로 삼황과 오제인들 이 무슨 물건인고 함이거늘 사람들이 많이들 설두의 뜻을 보지 못하고 다만 관대(管帶)하여 말하되 풍국(諷國)이라 하나니 만약 이렇게 이회(理會)한다면 다만 이 정견(情見)이다. 이것(삼황오제인들 이 무슨 물건인고)은 곧 선월(*禪月)이 공자행(*公子行)을 제()하여 이르되 금의(錦衣)는 선화(鮮華)한데 손에 매를 떠받들고/ 한행(閑行)하는 기모(氣貌)가 다분히 경홀(輕忽)하다/ 가색(*稼穡)과 간난(艱難)은 다 알지 못하나니/ 오제와 삼황은 이 무슨 물건인고 하였다. 설두가 말하되 굴()하여 가히() ()하노니 눈 밝은 납승일지라도 경홀(輕忽)하지 말아라 한 것은 다소(多少)의 사람이 창룡굴 속을 향해 활계(活計)를 짓나니 직요(直饒; 縱然) 이 정문에 눈을 갖추고(*頂門具眼)하고 주후에 영부(靈符)가 있는(*肘後有符) 눈 밝은 납승이 사천하(四天下)를 조파(照破)했을지라도 이 속에 이르러선 또한 경홀(輕忽)하지 말고 모름지기 이 자세(子細)해야 비로소 옳다 함이다.

 

神宗; 송신종(宋神宗) (1048-1085. 在位 1067-1085) 곧 조욱(趙頊)이니 나이 20에 즉위했고 재위는 18. 희녕(熙寧) 2(1069) 형주(衡州)에 조칙하여 상녕(常寧) 자복사 옥탑을 맞이해 입경(入京)하게 했음. 원풍(元豐) 3(1080) 칙령하여 대내(大內)에서 천승재(千僧齋)를 베풀고 자성태후(慈聖太后)를 위해 추복(追福)했음. 5년 조칙으로 상국사(相國寺)64()을 열어 82(八禪二律)로 삼고 동서서(東西序)를 혜림(惠林)ㆍ지해(智海) 2거찰(巨刹)로 삼았음. 조칙으로 정자종본(淨慈宗本)은 혜림(惠林)에 거주하고 동림상총(東林常總)은 지해(智海)에 거주하게 했으나 상총은 고사(固辭)하는지라 이를 허락했음 [불조통기46. 석씨계고략4. 불법금탕편11].

拈云; 약칭이 염(; ). 공안을 들어 설하고 아울러 평의를 가함. 이는 선가에서 설법하는 1종의 형식임.

直下; 즉시ㆍ즉각의 뜻을 가리킴. 합하(合下)ㆍ당하(當下)와 같은 뜻.

四海; 사방의 바다. 세상을 가리킴. 또 불교에서 이르기를 수미산을 위요(圍繞)하는 사방의 외해(外海)를 사해라 함.

獰龍; 신맹(迅猛)하고 준열(峻烈)한 기봉을 비유로 가리킴. 또한 기용이 걸출하거나 혹 상등근기의 선승을 가리킴. ()은 흉악(凶惡).

參尋; 선법을 참구하려고 선사를 심방(尋訪).

自家; ()는 조사니 후철(後綴). 1. 명사 뒤에 쓰며 모일류인(某一類人)에 속함을 표시함. 예컨대() 해자가(孩子家)ㆍ학생가(學生家)ㆍ고랑가(姑娘家). 2. 대사(代詞) 뒤에 씀. 예컨대() 농가(儂家)ㆍ자가ㆍ타가ㆍ수가(誰家).

興陽剖; 흥양청부(興陽淸剖). 청부(淸剖) 송대 조동종승. 영주(郢州) 대양산(大陽山) 경연(警延)에게 의지하여 득법했고 영주 흥양에 거주했음 [연등회요2. 오등회원14].

侍者; 사원의 주지승을 사후(伺候; 살피다)하며 그를 위해 복무하는 직사승(職事僧)이니 소향(燒香)ㆍ청객(請客)ㆍ서장시자(書狀侍者)의 직이 있음.

遠錄公; 선림보훈음의. 원록공(遠錄公) 서주(舒州) 부산(浮山) 법원(法遠) 원감선사(圓鑑禪師)는 정주 왕씨의 아들이니 섭현성선사(葉縣省禪師)를 이었다. 법원이 일찍이 달관영(達觀穎) 설대두(薛大頭) 칠팔배(七八輩)와 더불어 촉()을 유람하다가 몇 차례 조둔(遭迍; 괴롭힘을 만나다)했는데 스님이 기지(機智)로 그것을 벗어났다. 대중이, 이사(吏事)를 환희 알므로써 고로 일컬어 원공(遠公; 遠錄公으로 의심됨)이라 했다. 법원(法遠) (991-1067) 송대 임제종승. 자칭이 시석야인(柴石野人)이며 정주(鄭州; 지금 하남에 속함) 왕씨. 삼교지숭(三交智嵩)을 좇아 출가하고 하남(河南) 광교원(廣敎院) 귀성(歸省)에게서 법을 이었음. 구양수(歐陽修)가 일찍이 그의 문하에서 참구했음. 후에 서주(舒州) 부산(浮山)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천양(闡揚)했고 치평(治平) 4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77이며 시호는 원감선사(圓鑒禪師) [속등록4. 연등회요13. 선림승보전17. 오등회원12. 석씨계고략4].

娑竭; 사갈라룡(娑竭羅龍). 번역명의집3. 사갈라(娑竭羅) 혹 사가라(娑伽羅; sāgara)니 여기에선 이르되 함해(醎海; 짠 바다).

覿面; 본래의 뜻은 견면(見面)ㆍ당면(當面)이 됨. 선록 중에선 선기(禪機)에 면림(面臨)하고 본분으로 상견함을 말함이니 곧 일체의 언어와 지해를 초월함임. 시기자(示機者)는 선법의 근본을 직지하고 응기자(應機者)는 본래면목을 돈견(頓見).

金翅鳥; 금시조는 이 인도 신화의 새임. 가루라조(迦樓羅鳥)와 같음. 또 묘시조(妙翅鳥)로 지음. 불교 중에선 8부중(八部衆)의 하나임. 날개죽지가 금색이며 양 날개의 넓이는 36만 리며 수미산 하층에 거주함. 이 새는 난생ㆍ태생ㆍ습생ㆍ화생의 4종이 있음. 바다의 용의 목숨이 거의 마치려는 자를 보고는 날개로 바다를 갈라 난태습화(卵胎濕化)의 여러 용을 취해 먹이로 삼음 [법화문구2. 장아함경19. 화엄경탐현기2. 구사론광기8. 혜원음의상].

宇宙; 조정사원5. 우주(宇宙) 천지사방을 가로되 우()며 고왕금래를 가로되 주().

須彌座; 불보살상을 안치하는 대좌(臺座)니 또 명칭이 수미단(稱須彌壇). 곧 목금석(木金石) 등의 재료로 수미산의 모형을 작성하고 위에 불상을 안치함. 또 이 단()은 불당의 중앙에 설치하며 그 위치가 수미산의, 세계의 중앙에 섬과 흡사한지라 고로 수미단의 명칭이 있음. 또 선림 중에 주지가 법당에서 중승을 위해 설법하는 법좌가 마침 법당의 중앙에 위치함이 마치 불교의 우주관 중 수미산이 우주의 중앙에 위치함과 같은지라 고로 법좌도 또한 일컬어 수미좌라 함 [금강정유가천수천안관자재보살수행의궤경상. 대지도론8. 대일경소5].

烏龜子; 본래 수미단(須彌壇; 法座) 아래 설치한 오귀의 조각(雕刻)을 가리킴. ()하여 법석 아래의 우매무지한 참학 학인을 가리킴. ()는 후철(後綴).

點額; 전설에 매년 3월 사이 황하의 용문(龍門)에 무리를 이룬 이어(鯉魚; 잉어)가 있어 도약해 건너는데 도약해 지난 자는 용이 되고 도약해 건너지 못한 자는 액두(額頭; 이마)에 기호가 점 찍힘을 입고 퇴회(退回). 일반의 시문(詩文) 중 늘 점액으로써 과장고시(科場考試)에 낙제함을 비유로 가리키며 선록 중에는 곧 점액으로써 능히 선기(禪機)에 계오(契悟)하지 못함을 비유로 가리킴.

禪月; 관휴(貫休)의 호가 선월대사(禪月大師). 관휴(貫休) (832-912) 당말 오대승(五代僧). 시와 그림으로 세상에 명칭이 드러났음. 무주(婺州) 난계(蘭谿; 절강 금화) 사람이며 속성은 강(), 자는 덕은(德隱)이며 다른 자는 덕원(德遠). 7세에 금화현(金華縣) 화안사(和安寺) 원정(圓貞)의 좌하(座下)에서 출가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절동 오설산으로 들어가 수선(修禪)하기 10년이었음. 일찍이 무상선사(無相禪師)를 참했으며 후에 홍주 개원사로 가서 법화경 및 대승기신론을 청강했으며 다 능히 오묘한 뜻을 통달했음. 스님은 불상을 잘 그렸고 특히 수묵라한(水墨羅漢)에 공교(工巧)했음. 또 전ㆍ예ㆍ초서를 독천(獨擅)했으며 그의 시도 또한 자못 사림(士林)에서 칭예(稱譽)하는 바가 됨. 당 건녕(乾寧) 초에 일찍이 오월왕 전류(錢鏐)를 알현하고 아울러 시장(詩章)을 바치자 자못 예의로 존중함을 보였음. 소종(昭宗) 천복(天復; 901-904)년 사이에 촉에 들어갔는데 전촉(前蜀)의 촉주 왕건(王建)과 그 아들 왕연(王衍)이 한가지로 넉넉히 그를 대우했으며 인하여 자의(紫衣)를 주고 서호(署號)하여 선월대사(禪月大師)라 했음. 건화(乾化) 2년 시적했음. 나이 81. 저서에 서악집(西嶽集)이 있는데 제자 담역이 그 이름을 고쳐 선월집(禪月集)이라 했음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오등회원6].

公子行; 왕자 등의 유행(遊行) [碧巖錄種電鈔].

稼穡; 농사의 총칭임. 봄의 경작이 가()가 되고 가을의 수확이 색()이 됨. 널리 농업의 노동을 가리킴.

頂門具眼;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3()을 갖추어 있는데 그 중에 정문(頂門; 정수리)1()이 수립(豎立; 세로로 섬)하여 상인(常人)의 두 눈을 초월함. 지혜로써 일체의 사리(事理)를 철조(徹照)하는 특수한 안력(眼力)을 갖추고 있으므로 고로 명칭이 정문안(頂門眼). 탁월한 견해에 비유함. 선림의 용어 중, 정문유안(頂門有眼)ㆍ정문구안(頂門具眼)ㆍ정문구일척안(頂門具一隻眼)은 다 이 뜻을 지음.

肘後有符; 주후부(肘後符)는 곧 불조의 심인(心印)을 비유로 가리킴. 혹 전()하여 사람마다 본래 갖춘 불성, 납승이 본래 갖춘 불심인(佛心印)을 가리킴. 원래 호신의 부()를 가리켰음. 또 주후인(肘後印)ㆍ주후현부(肘後懸符)로 지음. 주후는 곧 팔꿈치의 뒤임. 백도백과. 주후부(肘後符) () 갈홍(葛洪)이 일찍이 의서(醫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을 지었는데 간칭이 주후방(肘後方). 뜻으로 이르자면 권질(卷帙)이 많지 않아 가이(可以) 주후에 매달았음. 후에 인하여 가차(假借)해 널리 수신(隨身)하며 휴대하는 단방(丹方)을 가리켰음. 종용록 제52. 총림에 또 주후부(肘後符)가 있다. 춘추후어(春秋後語) 조간자(趙簡子)가 모든 아들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주후보부(肘後寶符)를 상산(常山) 위에 저장했다. 먼저 얻는 자는 상을 주겠다. 모든 아들이 산 위로 달려 구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오직 양자(襄子) 모휼(母卹)이 돌아와 가로되 모휼이 이미 부()를 얻었습니다. 타인은 모두 가히 분변하지 못합니다. 간자(簡子)가 그것을 아뢰기를 청했다. 모휼이 가로되 상산 위로부터 아래로 대()에 임했으니 가히 취할 것입니다. 간자가 가로되 모휼이 현명하다. 세워 태자로 삼았다.

四天下; 4().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 이르기를 수미산의 사방에 7금산과 대철위산의 함해(鹹海) 중에 4개의 대주(大洲)가 있다. 또 명칭이 4대부주ㆍ4대주ㆍ4천하ㆍ수미4.

'벽암록주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암록 제4칙 본칙  (0) 2021.08.24
벽암록 제4칙 수시  (0) 2021.08.24
벽암록 제3칙 송  (0) 2021.08.24
벽암록 제3칙 본칙평창  (0) 2021.08.24
벽암록 제3칙 본칙  (0)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