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4칙 본칙

태화당 2021. 8. 24. 13:28

*德山*潙山*擔板漢 *野狐精 *複子*法堂不妨令人疑着 納*敗缺 從東過西 從西過東可殺有禪作什麽 顧視云無無 便出好與三十棒 可殺氣衝天 眞*師子兒 善師子吼 雪竇*著語*勘破了也錯 果然 點 德山至門首却云 也不得*草草放去收來 頭上太高生 末後太低生 知過必改 能有幾人 便具威儀 再入相見依前作這去就 已是第二重敗缺 嶮 潙山坐次冷眼看這老漢 *捋虎鬚 也須是這般人始得 德山提起*坐具云 和尙*改頭換面 無風起浪 潙山擬取*拂子須是那漢始得 *運籌帷幄之中 不妨*坐斷天下人舌頭 德山便喝 拂袖而出*野狐精見解 這一喝 也有權 也有實 也有照 也有用 一等是*拏雲攫霧*就中奇特 雪竇著語勘破了也錯 果然 點 德山背却法堂 著草鞋便行風光可愛 公案未圓 贏得項上笠 失却脚下鞋 已是喪身失命了也 潙山至晚問*首座 *適來*新到在什麽處東邊*落節 西邊*拔本 眼觀東南 意在西北 首座云 當時背却法堂 著草鞋出去也*靈龜曳尾 好與三十棒 這般漢腦後合喫多少 潙山云 *此子已後 向孤峰頂上 *盤結草庵 呵佛罵祖去在*賊過後張弓 天下衲僧跳不出 雪竇著語云 雪上加霜錯 果然 點

 

德山; 德山宣鑑 宣鑑(782-865) 唐代僧 劍南(四川)人 俗姓周 法名宣鑑 年少出家 二十歲受具足戒 於大小乘諸經貫通旨趣 因常講金剛般若經 時稱周金剛 後至澧陽參龍潭崇信 夜深龍潭吹滅紙燭之間 豁然頓悟 常以棒打爲敎 而有德山棒之稱 師住澧陽三十年 遭唐武宗(在位841-846)廢敎 避難於獨浮山之石室 大中(847-859)初 應武陵(湖南)太守薛廷望堅請 始居德山 大振宗風 咸通六年十二月三日 忽告諸門徒曰 捫空追響 勞汝心神 夢覺覺非 竟有何事 言訖安坐而化 壽八十四 僧臘六十五 敕諡見性大師 法嗣有巖頭全豁雪峰義存等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祖堂集五 五燈會元七]

潙山; 潙山靈祐 靈祐(771-853) 唐代僧 爲潙仰宗始祖 福州長溪(今福建省霞浦縣南)人 俗姓趙 法名靈祐 十五歲隨建善寺法常(又稱法恆)律師出家 於杭州龍興寺受具足戒 曾先後遇寒山拾得 二十三歲至江西參謁百丈懷海 爲上首弟子 於此頓悟諸佛本懷 遂承百丈之法 憲宗元和末年 棲止潭州大潙山 山民感德 群集共營梵宇 由李景讓之奏請 敕號同慶寺 其後(一說大中初年)相國裴休亦來諮問玄旨 聲譽更隆 禪侶輻輳 海衆雲集 會昌(841-846)法難之際 師隱於市井之間 至大中元年(847)復敎之命下 衆迎返故寺 巾服說法 不復剃染 裴休聞之 親臨勸請 始歸緇流 師住山凡四十年 大揚宗風 世稱潙山靈祐 大中七年正月示寂 壽八十三 臘六十四 諡號大圓禪師 有語錄警策各一卷傳世 嗣法弟子有仰山慧寂 承其後而集大成 世稱潙仰宗 [福建高僧傳一 宋高僧傳十一 傳燈錄九 聯燈會要七]

擔板漢; 擔板者只能看得板的一面 而不能看得另一面 故禪宗用以比喩見解偏執而不能融通全體之人

野狐精; 原指野狐之精魅 能作變幻 以欺誑他人 禪錄中多用作對不合禪法者的責罵語 或機語問答時 嘲謔對方的呵斥語

複子; 又作複包 複帕 爲包物所用之巾或卽指包袱 象器箋器物類 複 應作袱 二字音同 故複乃袱之訛誤

法堂; 乃七堂伽藍之一 卽禪林演布大法之堂 位於佛殿之後方 方丈之前方 相當於講堂 而講通於講敎 爲別於他宗 且示其敎外別傳之宗旨 故於禪宗特稱爲法堂 禪苑淸規十云 不立佛殿唯搆法堂 可知禪苑古來不存佛殿 只建法堂 後始於佛殿之後方建法堂 或於小寺院中 衍爲佛殿法堂兩者兼用 [百丈淸規上尊祖章 禪苑淸規五 同七 同九 象器箋殿堂類]

敗缺; 與敗闕同義 受挫 挫敗

師子兒; 師子 兒 後綴 佛經中常將釋迦牟尼佛比作師()子 因而禪家將傑出靈利的僧人比作師子兒 謂其不愧爲佛的後代

著語; 對他人的機緣語句 加以簡短評議 稱爲著語

勘破; 卽看破識透之意 看透了互相比較試驗質問之對手 亦卽勘定事之是非

草草; 草 草率 簡略 不精也

捋虎鬚; 莊子外篇 盜跖 料(捋也)虎頭 編虎須 幾不免虎口哉

坐具; 比丘六物之一 坐臥時敷於地上或臥具上之長方形布 禮拜時先敷坐具 就其上作之 是甚爲不法 南山義淨皆痛斥之 釋門歸敬儀下曰 坐具之目 本是坐時之具 所以禮拜之中 無文敷者也 釋氏要覽一 梵云尼師壇 此云隨坐衣 根本毘奈耶云 尼師但那 唐言坐具 淨法師註云 文言坐具 此乃敷具 坐臥皆得 佛制者 本爲儭替臥具 恐有所損 不擬餘用也 五分律云 爲護身護衣護僧床褥故著坐具

改頭換面; 謂改變面目於瞬間

拂子; 用以撣塵拂蟲之具 禪師說法時常持之

運籌帷幄之中; 祖庭事苑七曰 漢高帝封功臣 或謂張良未嘗有戰鬪功 高帝曰 運籌策帷帳中 決勝千里外 子房功也

坐斷天下人舌頭; 截斷天下禪人的言語意路 蕩除用語言去解釋禪旨的錯誤修行方法 是禪門本色機用 坐斷 截除 截斷 多用于禪機施設 謂截除語言知解 區別妄念 斷字 主眼也 坐者 平坐之義

野狐精見解; 禪家指斥欺人歪道之語

拏雲攫霧; 形容禪家之機鋒施設神妙奇特

就中; 就 代詞 相當于此 其 上已出

首座; 寺院參禪僧衆中居于首位者 又僧堂中居于首位的參禪僧 是禪寺職事僧之一 若僧堂分作前後兩堂 則分別設前堂首座與後堂首座

適來; 方今 暫時前

新到; 新到僧也 於叢林中 指新到某寺掛搭之僧 亦泛指一般新參之僧

落節; 失利損害之義 多謂言句作略受挫

拔本; 撈回本錢 補償損失

靈龜曳尾; 祖庭事苑五 靈龜曳尾 凡龜之行 常曳尾以掃其迹 而尾迹猶存 莊子所謂吾將曳尾於塗中

此子; 子 男子的通稱

盤結; 盤曲結成 正字通 盤 盤曲

賊過後張弓; 賊已逃走 方拉開弓 多用以斥責機思遲緩者 張 開弓 拉弓弦

 

()하다. 덕산(*德山)이 위산(*潙山)에 이르러 담판한(*擔板漢)이다. 들여우의 정령(精靈)이다(*野狐精) 복자(*複子; 보따리)를 끼고 법당상(*法堂; 은 방면이나 범위를 표시)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스럽게 함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패결(*敗缺)을 받아들임이다. 동쪽으로 좇아 서쪽에 이르고() 서쪽으로 좇아 동쪽에 이르더니 가히 매우 선()이 있지만 무엇하겠는가. 돌아보며 이르되 무무(無無)라 하고 곧 나가다가 좋게 30()를 주어야 하지만 가히 매우 기()가 충천(衝天)한다. 참다운 사자아(*師子兒)가 잘 사자후한다. 설두가 착어(*著語)하여 이르되 감파(*勘破)했다. 틀렸다. 과연(果然). (; 點定)하는구나. 덕산이 문수(門首)에 이르러 도리어 이르되 또한 초초(*草草)함을 얻어서는 안된다 하고 방거수래(放去收來)로다. 두상(頭上; 최초)은 너무 높더니(太高生; 생은 조사) 말후는 너무 낮구나(太低生). 허물을 알고 반드시 고치니 능히 몇 사람이나 있을는지. 곧 위의를 갖추어 다시 들어가 상견하였다. 의전(去就)히 이 거취를 지으니 이미 이 제2(第二重)의 패결(敗缺)이다. 위험하다. 위산이 좌차(坐次)냉안(冷眼)으로 이 노한(老漢; 위산)을 보건대 범의 수염을 건드림(*捋虎鬚)은 또한 반드시 이러한 사람(덕산)이라야 비로소 옳다. 덕산이 좌구(*坐具)를 잡아 일으키고(提起) 이르되 화상(和尙)이시여 개두환면(*改頭換面)하였다. 무풍기랑(無風起浪)이다. 위산이 불자(*拂子)를 취하려고 하자 모름지기 이는 나한(那漢; 저 자. 위산)이라야 비로소 옳다. 유악 가운데서 셈대를 움직이니(*運籌帷幄之中) 천하인의 혀를 좌단(*坐斷天下人舌頭)함에 방애되지 않는다. 덕산이 곧 할()하고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들여우의 견해(*野狐精見解). 1할에 또한 권()도 있고 또한 실()도 있고 또한 조()도 있고 또한 용()도 있나니 일등(一等; 一樣으로 평드함) 이 구름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는(*拏雲攫霧) 자인지라 그 중(*就中)에 기특하다 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감파했다. 틀렸다. 과연. (; 點定)하는구나. 덕산이 법당을 등지고(背却; 은 조사) 짚신을 신고 곧 떠났다. 풍광(風光)은 가히 사랑스럽지만 공안은 원만치 못하다. 목 위의 삿갓은 덤으로 얻었지만 발 아래의 신발은 잃어버렸다. 이미 이 상신실명(喪身失命)하였다. 위산이 지만(至晚; 저녁 무렵)에 수좌(*首座)에게 묻되 적래(*適來; 아까)의 신도(*新到)가 어느 곳에 있느냐. 동변에서 낙절(*落節)하고 서변에서 발본(*拔本)하는구나. 눈은 동남을 보지만 뜻은 서북에 있다. 수좌가 이르되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나갔습니다. 영귀가 꼬리를 당기니(*靈龜曳尾) 좋게 30방 주어야 하리라. 이런 자는 머릿골 뒤에 합당히 얼마나 먹여야 할까. 위산이 이르되 이 자(*此子)는 이후에 고봉정상(孤峰頂上)을 향해 초암을 얼기설기 엮고서(*盤結) 가불매조(呵佛罵祖;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다)하여 가리라(는 조사) 도적이 지나간 뒤에 활을 당김이다(*賊過後張弓). 천하의 납승이 뛰어 벗어나지 못한다. 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틀렸다. 과연. ()하는구나.

 

德山; 덕산선감임. 선감(宣鑑) (782-865) 당대승. 검남(劍南; 사천) 사람이며 속성은 주()며 법명은 선감임.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대소승(大小乘)의 여러 경에 지취(旨趣)를 관통(貫通)했는데 늘 금강반야경을 강설했으므로 인해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음. 후에 예양(澧陽)에 이르러 용담숭신(龍潭崇信)을 참알(參謁)했는데 야심(夜深)에 용담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사이에 휑하게(豁然) 돈오(頓悟)했음. 늘 방타(棒打; 주장자로 때림)로써 가르침을 삼은지라 덕산방(德山棒)의 칭호가 있음. 스님이 예양(澧陽)에 머문 30년에 당무종(唐武宗; 재위 841-846)의 폐교(廢敎)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로 피난하였다가 대중(大中; 847-859) 초에 무릉(武陵; 湖南) 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의 견고한 청에 응해 비로소 덕산에 거주하며 종풍을 크게 떨쳤음. 함통 6123일 홀연히 여러 문도(門徒)에게 고해 가로되 허공을 어루만지고 곡향(谷響)을 쫓음은 너희의 심신(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꿈과 깸이 그른 줄 깨친다면 필경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말을 마치자 편안히 앉아 화거(化去)했으니 나이는 84며 승랍(僧臘)65. 칙시(敕諡)가 견성대사(見性大師)며 법사(法嗣)로는 암두전활(巖頭全豁)ㆍ설봉의존(雪峰義存) 등이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5. 조당집5. 오등회원7].

潙山; 위산영우임. 영우(靈祐) (771-853) 당대승. 위앙종(潙仰宗)의 시조(始祖). 복주 장계(長溪. 지금의 복건성 霞浦縣의 남쪽)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조()며 법명은 영우(靈祐). 15세에 건선사 법상(法常; 또 칭호가 法恆)율사를 따라 출가했으며 항주 용흥사(龍興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일찍이 선후(先後)로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만났으며 23세에 강서에 이르러 백장회해(百丈懷海)를 참알(參謁)해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었음. 여기에서 제불의 본회(本懷)를 돈오(頓悟)했으며 드디어 백장의 법을 승계했음. 헌종 원화(元和) 말년에 담주(潭州)의 대위산(大潙山)에 서지(棲止)했는데 산민(山民)이 감덕(感德)하여 무리가 모여 범우(梵宇; . 사원)를 함께 지었음. 이경양(李景讓)의 주청(奏請)으로 말미암아 동경사(同慶寺)라 칙호(敕號)했음. 그 후(一說大中初年) 상국(相國) 배휴(裴休)가 또한 와서 현지(玄旨)를 자문(諮問)하자 성예(聲譽)가 더욱 융성했으며 선려(禪侶)가 복주(輻輳)하여 해중(海衆)이 운집했음. 회창(會昌; 841-846)의 법난(法難)의 즈음에 스님이 시정(市井)의 사이에 은거하다가 대중 원년(847)에 복교(復敎)의 명이 떨어짐에 이르러 대중이 영접하여 옛 절로 돌아갔으나 건복(巾服; 옷갓)으로 설법하고 다시 체염(剃染)하지 않았음. 배휴가 이를 듣고 친림(親臨)하여 권청(勸請)하자 비로소 치류(緇流; 僧徒)로 돌아왔음. 스님이 산에 머문 무릇 40년에 종풍을 크게 날려 세칭이 위산영우(潙山靈祐). 대중 7년 정월에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83이며 납(; 僧臘)64. 시호는 대원선사(大圓禪師)며 어록과 경책(警策) 1권이 있어 세상에 전해짐. 법을 이은 제자에 앙산혜적(仰山慧寂)이 있어 그 뒤를 이어 집대성(集大成)했으니 세칭이 위앙종(潙仰宗)[복건고승전1. 송고승전11. 전등록9. 연등회요7].

擔板漢; 판자를 짊어진 자는 다만 능히 판자의 한 면만 간득(看得; 득은 조사)하고 능히 다른 한 면은 간득하지 못함. 고로 선종에서 견해가 편집(偏執)하여 능히 전체를 융통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유로 사용함.

野狐精; 원래 야호의 정매(精魅)가 능히 변환(變幻)을 지어 타인을 기광(欺誑; 속임)함을 가리킴. 선록 중에 다분히 써서 선법에 맞지 않는 자에 대한 책매어(責罵語)로 지음. 혹 기어(機語)를 문답할 때 상대방을 조학(嘲謔; 조롱하고 놀림)하는 가척어(呵斥語).

複子; 또 복포(複包)ㆍ복파(複帕)로 지음. 물건을 싸는데 소용되는 피륙임. 혹은 곧 포복(包袱; 보자기. 보따리)을 가리킴.

法堂; 곧 칠당가람(七堂伽藍)의 하나. 곧 선림에서 대법을 연포(演布)하는 당(). 불전(佛殿)의 후방과 방장의 전방에 위치함. 강당에 상당하며 강()은 강교(講敎)와 통함. 타종(他宗)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또 그 교외별전의 종지를 보이는지라 고로 선종에서 특별히 법당으로 호칭함. 선원청규10에 이르되 불전을 세우지 않고 오직 법당만 지었다 했으니 가히 선원(禪苑)은 고래로 불전을 두지 않고 다만 법당만 건립한 줄을 알 것임. 후에 비로소 불전의 후방에 법당을 건립했음. 혹 작은 사원 중엔 널리 불전과 법당 양자를 겸용했음 [백장청규상존조장. 선원청규5, 7, 9. 상기전전당류].

敗缺; 패궐(敗闕)과 같은 뜻. 수좌(受挫; 좌절을 받음). 좌패(挫敗; 꺾여 패함).

師子兒; 사자니 아는 후철(後綴). 불경 중에 늘 석가모니불을 가지고 사(; )자에 비유함. 이로 인해 선가에서 걸출하고 영리(靈利)한 승인을 가지고 사자아로 비유해 지음. 이르자면 그가 불타의 후대가 됨에 부끄럽지 않음임.

著語; 타인의 기연어구(機緣語句)에 대해서 간단한 평의(評議)를 더함을 착어라고 호칭함.

勘破; 곧 간파하고 식투(識透)함의 뜻. 호상 비교하고 시험하면서 질문하는 대수(對手; 적수)를 간투(看透)하거나 또한 곧 일의 시비를 감정(勘定).

草草; ()는 초솔(草率; 거칠고 엉성함)ㆍ간략ㆍ부정(不精).

捋虎鬚; 장자 외편 도척(盜跖). 범의 머리를 만지고(; ) 범의 수염을 꼬았으니 자칫하면 범아가리를 면하지 못할 뻔했다.

坐具; 비구 6물의 하나. 좌와(坐臥) 시 지상이나 혹 와구(臥具) 위에 펴는 장방형의 포(). 예배할 때 먼저 좌구를 펴고 그 위에 나아가 이를 지음은 이는 심히 불법(不法)이 됨. 남산(南山)과 의정(義淨)이 모두 통렬히 그것을 배척했음. 석문귀경의하(釋門歸敬儀下)에 가로되 좌구의 명목은 본시 앉을 때의 도구다. 소이로 예배하는 중에 편다()는 글이 없다. 석씨요람1. 범어로 이르되 니사단(尼師壇)은 여기에선 이르되 수좌의(隨坐衣). 근본비나야(根本毘奈耶)에 이르되 니사단나(尼師但那)는 당나라 말로 좌구(坐具). 의정법사의 주()에 이르되 문()에 좌구라고 말한 것은 이는 곧 부구(敷具; 는 펼 부)니 앉거나 눕는데 다 합당하다. 불타가 제정한 것은 본래 깔개(; 과 같음. )가 되었는데 와구(臥具)로 대체했음은 손상하는 바가 있을까 염려했음이니 여타의 용도로 향하지() 못하게 했음이다. 오분율에 이르되 몸을 보호하고 옷을 보호하고 승상(僧床)의 요를 보호하기 위한 연고로 좌구를 두었다.

改頭換面; 이르자면 순간에 면목을 개변함.

拂子; 먼지를 털거나 벌레를 떨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 선사가 설법할 때 늘 이것을 가짐.

運籌帷幄之中; 조정사원7에 가로되 한고제(漢高帝)가 공신(功臣)을 책봉하자 누가() 이르기를 장량(張良)은 일찍이 전투의 공이 있지 않습니다. 고제가 가로되 주책(籌策; 利害打算한 끝에 생각해 낸 策略)을 유장(帷帳; 작전 계획을 짜는 막. 는 휘장 유) 중에서 움직여 천 리 밖에서 결승(決勝)한 것은 자방(子房; 장량의 )의 공이다.

坐斷天下人舌頭; 천하 선인의 언어와 의로(意路)를 절단함이니 어언을 사용하여 선지를 해석하는 착오의 수행방법을 탕제(蕩除). 이는 선문의 본색기용(本色機用). 좌단(坐斷)은 절제(截除). 절단. 다분히 선기의 시설에 사용함. 이르자면 어언과 지해, 구별과 망심(妄念)을 절제함. 단자(斷字)는 주안(主眼; 주된 목표)이며 좌()란 것은 평좌(平坐)의 뜻.

野狐精見解; 선가에서 사람을 속이는 왜도(歪道; 歪曲한 도)의 말을 지척(指斥; 가리킴).

拏雲攫霧; 선가의 기봉(機鋒)의 시설이 신묘하고 기특함을 형용.

就中; ()는 대사(代詞)니 차(), ()에 상당함. 위에 이미 나왔음.

首座; 사원의 참선하는 승중(僧衆) 가운데 수위(首位)에 거처하는 자임. 또 승당(僧堂) 중에 수위에 거처하는 참선승임. 이는 선사(禪寺)의 직사승(職事僧)의 하나임. 만약 승당을 전후의 양당(兩堂)으로 나누어 지으면 곧 전당수좌(前堂首座)와 후당수좌(後堂首座)를 분별해 시설함.

適來; 방금, 잠시 전.

新到; 신도승(新到僧). 총림 중에서 어떤 사원에 새로 도착하여 괘탑하는 승인을 가리킴. 또한 널리 일반의 신참(新參)의 승인을 가리킴.

落節; 실리ㆍ손해의 뜻. 다분히 이르기를 언구의 작략이 좌절(挫折)을 받음.

拔本; 본전을 건져 회수하여 손실을 보상(補償).

靈龜曳尾; 조정사원5. 영귀예미(靈龜曳尾) 무릇 거북의 행동은 늘 꼬리를 끌며 그 자취를 쓸거니와 꼬리의 자취는 오히려 존재함. 장자(莊子)에 이른 바 내가 장차 도중(塗中; 는 진흙)에서 꼬리를 끌겠다 한 것임.

此子; ()는 남자의 통칭.

盤結; 반곡(盤曲; 얽히어 꼬불꼬불함)하게 결성함. 정자통 반() 반곡(盤曲)이다.

賊過後張弓; 도적은 이미 도주했는데 비로소 당겨 활을 엶이니 기사(機思)가 지완(遲緩)한 자를 척책(斥責)함에 많이 사용함. ()은 개궁(開弓)이니 활줄을 당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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