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10칙 송

태화당 2021. 8. 25. 07:35

兩喝與三喝雷聲浩大 雨點全無 自古至今 罕有人恁麽 作者知*機變若不是作家爭驗得 只恐不恁麽 若謂騎虎頭* 瞎漢 虎頭如何騎 多少人恁麽會 也有人作這見解 二俱成瞎漢親言出親口 何止兩箇 自領出去 誰瞎漢敎誰辨 賴有*末後句 洎乎賺殺人 拈來天下與人看看卽不無 覰著卽瞎 *闍梨若著眼看 則兩手掊空 恁麽擧 且道是第幾機

 

機變; 禪機變化 機鋒變化

; 用同咄 表示用力之聲 正字通 㘞 一說梵言 㘞之一聲 㘞同咄 玉篇 㘞 牽船聲 正字通 㘞 進船聲 廬山蓮宗寶鑑十 此箇㘞字 一切世人 口中未嘗不說 喩如失物人忽然尋見 不覺發此一聲是㘞字也 宗門多言此字者 蓋尋師訪道之人 參究三二十年 忽然心花發現 會得此事 不覺㘞地一聲 如失物得見 慶快平生 是其字義也

末後句; 卽末後一句 謂到達徹底大悟之極處所言之至極語 更無其他語句能超越者 此指此頌末後的拈來句

闍梨; 梵語阿闍梨的簡稱 又作闍黎 意爲僧人之師 常用作對僧人的稱呼

 

양할(兩喝)과 삼할(三喝)하여도 우레 소리는 매우() 크지만 빗방울(雨點)은 전혀 없다. 옛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람이 드물게 있다(목주의 수단을 칭찬함). 작자가 기변(*機變)을 안다 만약 이 작가가 아니었다면 어찌 감험해 얻었겠는가. 다만 이러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만약 범의 머리를 탔다고 말한다면() (*), 눈먼 자야(瞎漢) 범의 머리를 어떻게 타느냐. 다소의 사람이 이러히 이회(理會)하며(범의 머리를 탔다고 말함) 또한 어떤 사람도 이러한 견해를 짓는다. 둘 다 눈 먼 자(瞎漢)가 되리라() 친언(親言)이 친구(親口)에서 나오는구나. 어찌 두 개에 그치리오. 스스로 영해(領解)하고 나가거라. 누가 눈 먼 자인지 누구로 하여금 분변하게 하겠는가. 다행히() 말후구(*末後句)가 있다. 급기야(洎乎) 사람들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 천하에 집어와서(拈來)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라. 볼 적엔 곧 없지 않거니와 처착(覰著; 보는 것)하면 곧 눈 멀 것이다. 사리(*闍梨)가 만약 착안하여 본다면 곧 두 손이 허공을 그러모으리라(). 이러히 들었으니() 그래 말하라 이는 제() 몇 째 기(幾機)인가.

 

機變; 선기(禪機)의 변화. 기봉(機鋒)의 변화.

; ()이 돌()과 같음. 힘쓰는 소리를 표시함. 정자통 화() 일설에 범언(梵言)이다. 화지일성(㘞之一聲) ()는 돌()과 같다. 옥편. () 배를 끄는 소리다. 정자통 화() 진선(進船)하는 소리다. 여산연종보감10(廬山蓮宗寶鑑十). 이것 화자(㘞字)는 일체의 세인(世人)이 구중(口中)에서 일찍이 설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喩如; 비유로 예를 듦) 물건을 잃은 사람이 홀연히 심견(尋見)하고는 불각에 이 일성(一聲)을 발함이 이 화자(㘞字). 종문에서 이 글자를 많이 말하는 것은 대개 심사방도(尋師訪道)하는 사람이 3, 20년 참구하고는 홀연히 심화(心花)가 발명하여 이 일을 회득(會得)하매 불각에 화지일성(㘞地一聲)함이 잃었던 물건을 득견함과 같아서 경쾌(慶快)한 평생이니 이것이 그 자의(字義).

末後句; 곧 말후일구. 이르자면 철저히 대오한 극처(極處)에 이르러 말하는 바의 지극한 말이니 다시 기타의 어구가 능히 초월함이 없는 것. 여기에선 이 송의 말후의 염래구(拈來句)를 가리킴.

闍梨; 범어 아사리(阿闍梨; ācārya)의 간칭. 또 사리(闍黎)로 지음. 뜻이 승인의 스승이 됨. 상용하여 승인에 대한 칭호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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