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喝與三喝雷聲浩大 雨點全無 自古至今 罕有人恁麽 作者知*機變若不是作家爭驗得 只恐不恁麽 若謂騎虎頭*㘞 瞎漢 虎頭如何騎 多少人恁麽會 也有人作這見解 二俱成瞎漢親言出親口 何止兩箇 自領出去 誰瞎漢敎誰辨 賴有*末後句 洎乎賺殺人 拈來天下與人看看卽不無 覰著卽瞎 *闍梨若著眼看 則兩手掊空 恁麽擧 且道是第幾機
●機變; 禪機變化 機鋒變化
●㘞; 用同咄 表示用力之聲 正字通 㘞 一說梵言 㘞之一聲 㘞同咄 ▲玉篇 㘞 牽船聲 正字通 㘞 進船聲 ▲廬山蓮宗寶鑑十 此箇㘞字 一切世人 口中未嘗不說 喩如失物人忽然尋見 不覺發此一聲是㘞字也 宗門多言此字者 蓋尋師訪道之人 參究三二十年 忽然心花發現 會得此事 不覺㘞地一聲 如失物得見 慶快平生 是其字義也
●末後句; 卽末後一句 謂到達徹底大悟之極處所言之至極語 更無其他語句能超越者 此指此頌末後的拈來句
●闍梨; 梵語阿闍梨的簡稱 又作闍黎 意爲僧人之師 常用作對僧人的稱呼
양할(兩喝)과 삼할(三喝)하여도 우레 소리는 매우(浩) 크지만 빗방울(雨點)은 전혀 없다. 옛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람이 드물게 있다(목주의 수단을 칭찬함). 작자가 기변(*機變)을 안다 만약 이 작가가 아니었다면 어찌 감험해 얻었겠는가. 다만 이러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만약 범의 머리를 탔다고 말한다면(謂) 화(*㘞), 눈먼 자야(瞎漢) 범의 머리를 어떻게 타느냐. 다소의 사람이 이러히 이회(理會)하며(범의 머리를 탔다고 말함) 또한 어떤 사람도 이러한 견해를 짓는다. 둘 다 눈 먼 자(瞎漢)가 되리라(成) 친언(親言)이 친구(親口)에서 나오는구나. 어찌 두 개에 그치리오. 스스로 영해(領解)하고 나가거라. 누가 눈 먼 자인지 누구로 하여금 분변하게 하겠는가. 다행히(賴) 말후구(*末後句)가 있다. 급기야(洎乎) 사람들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 천하에 집어와서(拈來)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라. 볼 적엔 곧 없지 않거니와 처착(覰著; 보는 것)하면 곧 눈 멀 것이다. 사리(*闍梨)가 만약 착안하여 본다면 곧 두 손이 허공을 그러모으리라(掊). 이러히 들었으니(擧) 그래 말하라 이는 제(第) 몇 째 기(幾機)인가.
●機變; 선기(禪機)의 변화. 기봉(機鋒)의 변화.
●㘞; 용(用)이 돌(咄)과 같음. 힘쓰는 소리를 표시함. 정자통 화(㘞) 일설에 범언(梵言)이다. 화지일성(㘞之一聲) 화(㘞)는 돌(咄)과 같다. ▲옥편. 화(㘞) 배를 끄는 소리다. 정자통 화(㘞) 진선(進船)하는 소리다. ▲여산연종보감10(廬山蓮宗寶鑑十). 이것 화자(㘞字)는 일체의 세인(世人)이 구중(口中)에서 일찍이 설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喩如; 비유로 예를 듦) 물건을 잃은 사람이 홀연히 심견(尋見)하고는 불각에 이 일성(一聲)을 발함이 이 화자(㘞字)다. 종문에서 이 글자를 많이 말하는 것은 대개 심사방도(尋師訪道)하는 사람이 3, 20년 참구하고는 홀연히 심화(心花)가 발명하여 이 일을 회득(會得)하매 불각에 화지일성(㘞地一聲)함이 잃었던 물건을 득견함과 같아서 경쾌(慶快)한 평생이니 이것이 그 자의(字義)다.
●末後句; 곧 말후일구. 이르자면 철저히 대오한 극처(極處)에 이르러 말하는 바의 지극한 말이니 다시 기타의 어구가 능히 초월함이 없는 것. 여기에선 이 송의 말후의 염래구(拈來句)를 가리킴.
●闍梨; 범어 아사리(阿闍梨; 梵 ācārya)의 간칭. 또 사리(闍黎)로 지음. 뜻이 승인의 스승이 됨. 상용하여 승인에 대한 칭호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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