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團打雪團打爭奈落在*第二機 不勞拈出 頭上漫漫脚下漫漫 龐老機關沒可把往往有人不知 只恐不恁麽 天上人間不自知是什麽消息 雪竇還知麽 眼裏耳裏絕瀟灑箭鋒相拄 眼見如盲 口說如啞 瀟灑絕作麽生 向什麽處見龐老與雪竇 碧眼胡僧難辨別達磨出來 向爾道什麽 打云 闍黎道什麽 一坑埋却
●第二機; 意謂不是眞正顯露禪法 直指人心的機鋒 而是第一機以下的情識詮解
눈덩이로 때리고 눈덩이로 때리지만 제2기(*第二機)에 떨어져 있음을 어찌하랴. 노고롭게 염출(拈出)하지 않아도 두상(頭上)에 만만(漫漫)하고 각하(脚下)에 만만하다. 방로(龐老)의 기관(機關)은 가히 잡을 수 없다 왕왕(往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다만 이러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천상과 인간이 스스로 알지 못하므로 이 무슨 소식인가. 설두는 도리어 아느냐. 안리이리(眼裏耳裏)에 소쇄(瀟灑)가 끊어졌다 화살촉이 서로 맞부딪쳤다. 눈으로 보아도 맹인 같고 입으로 설해도 벙어리 같다. 소쇄가 끊겼음은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어느 곳을 향해 방로와 설두를 볼 것인가. 벽안호승(碧眼胡僧)일지라도 변별(辨別)하기 어렵다 달마가 나와서 너희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때리고 이르되 사리(闍黎)야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겠다.
●第二機; 뜻으로 이르자면 이 진정한 현로(顯露)의 선법이나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기봉이 아니니 이는 제1기 이하의 정식(情識)의 전해(詮解)임.
雪團打雪團打 龐老機關沒可把 雪竇要在居士頭上行 古人以雪明*一色邊事 雪竇意道 當時若握雪團打時 居士縱有如何機關 亦難搆得 雪竇自誇他打處 殊不知有落節處 天上人間不自知 眼裏耳裏絕瀟灑 眼裏也是雪 耳裏也是雪 正住在一色邊 亦謂之普賢境界一色邊事 亦謂之打成一片 雲門道 直得盡乾坤大地無纖毫過患 猶爲轉句 不見一色 始是半提 若要全提 須知有向上一路始得 到這裏須是大用現前 針劄不入 不聽他人處分 所以道 他參活句 不參死句 *古人道 一句*合頭語 萬劫繫驢橛 有什麽用處 雪竇到此頌殺了 復轉機道 只此瀟灑絕 直饒是碧眼胡僧也難辨別 碧眼胡僧尙難辨別 更敎山僧說箇什麽
●一色邊; 一色乃純一絶對之意 形容無差別平等世界 與純一淸淨境界
●古人道; 傳燈錄十四船子德誠 師問曰 坐主住甚寺 會曰 寺卽不住 住卽不似 師曰 不似似箇什麽 會曰 目前無相似 師曰 何處學得來 曰 非耳目之所到 師笑曰 一句合頭語 萬劫繫驢橛
●合頭語; 相符合契合(禪法)語 頭 後綴 又作合頭句
눈덩이로 때리고 눈덩이로 때리지만 방로(龐老)의 기관(機關)은 가히 잡을 수 없다 하니 설두가 거사의 두상(頭上)에 있으면서 다니고자 함이다. 고인이 눈(雪)으로써 일색변(*一色邊)의 일을 밝혔다. 설두가 뜻에 말하되 당시에 만약 눈덩이를 움켜쥐고 때릴 때엔 거사가 비록 어떠한 기관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구득(搆得; 領悟)하기 어려웠으리라 함이다. 설두가 스스로 그(설두)의 때린 곳을 자랑하지만 낙절처(落節處; 失利處)가 있는 줄 너무 알지 못한다. 천상과 인간이 스스로 알지 못하므로 안리이리(眼裏耳裏)에 소쇄(瀟灑)가 끊어졌다 하니 안리(眼裏)도 또한 이 눈이며 이리(耳裏)도 또한 이 눈이라서 바로 일색변(一色邊)에 머물러 있으므로 또한 이를 일러 보현경계의 일색변사(一色邊事)라 하며 또한 이를 일러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도 한다. 운문이 말하되 바로 온 건곤대지가 가는 터럭만큼의 과환(過患)이 없음을 얻더라도 오히려 전구(轉句)가 되며 일색도 보지 않아야 비로소 이 반제(半提)니 만약 전제(全提)를 요할진대 모름지기 향상의 일로(一路)가 있음을 알아야 비로소 옳다 하였다. 이 속(운문의 說示處)에 이르러선 모름지기 이 대용(大用)이 현전하여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으므로 타인의 처분을 받지 않는지라 소이로 말하되 그는 활구(活句)를 참구하고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않는다 하였다.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1구의 합두어(*合頭語)가 만겁(萬劫)에 계려궐(繫驢橛; 나귀 매는 말뚝)이라 하였거늘 무슨 용처(用處)가 있으리오. 설두가 여기에 이르러 송해 살료(殺了)하고 다시 전기(轉機)하여 말하되 다만 이 소쇄(瀟灑)도 끊겼음은 직요(直饒; 縱然) 이 벽안호승일지라도 또한 변별하기 어렵다 하니 벽안호승도 오히려 변별하기 어렵거늘 다시 산승으로 하여금 저(箇) 무엇을 설하라 하는가.
●一色邊; 1색은 곧 순일절대(純一絶對)의 뜻이니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와 순일한 청정의 경계를 형용함.
●古人道; 전등록14 선자덕성(船子德誠). 스님이 물어 가로되 좌주(坐主; 座主와 같음)는 어느 사원에 거주하는가. 회(善會)가 가로되 사(寺)엔 곧 주(住)하지 않나니 주(住)한 즉 곧 사(似; 恰似)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흡사(恰似)하지 않다 하니 이 무엇과 흡사한가. 선회가 가로되 목전은 상사(相似)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어느 곳에서 배워 얻어 왔는가. 가로되 이목(耳目)의 이를(到) 바가 아닙니다.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1구의 합두어(合頭語)가 만겁에 나귀를 매는 말뚝이다.
●合頭語; (선법)에 서로 부합하고 계합하는 말. 두(頭)는 후철(後綴). 또 합두구(合頭句)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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