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林寶訓序
寶訓者 昔*妙喜*竹菴 *誅茅江西雲門時共集 予*淳熈間 遊雲居得之老僧*祖安 惜其年深蠧損 首尾不完 後來或見于語錄傳記中 積之十年 僅五十篇餘 仍取*黃龍下至*佛照*簡堂諸老遺語 節葺類三百篇 其所得有先後 而不以古今爲詮次 大槩使學者削勢利人我 趨道德仁義而已 其文理優游平易 無高誕荒邈詭異之跡 實可以助入道之遠猷也 且將刊木以廣流傳 必有同志之士 一見而心許者 予雖老死丘壑 而志願足矣 *東吳沙門淨善書
●妙喜; 妙喜者 臨安府徑山宗杲大慧普覺禪師 江東宣州寧國奚氏子 嗣佛果克勤禪師 南嶽下十五世 十三入校 不樂世典 詣東山慧雲院惠濟禪師 十七落髮披緇 後入雲居之西 古雲門寺之舊基 誅茅結菴經二十年 辟地湖湘轉仰山 邂逅竹菴珪禪師 相與著頌古百餘篇 此寶訓是其時集也
●竹菴; 溫州龍翔竹菴士珪禪師 成都府史氏子 嗣佛眼淸遠禪師 南嶽下十五世也
●誅茅; 誅茅者 斬草也 謂誅斬茅草結菴隱居也
●淳熈; 淳熈宋孝宗年號
●祖菴; 未詳氏族法嗣
●黃龍; 隆興府 黃龍惠南禪師 信州張氏子 嗣石霜楚圓 南嶽下十一世也
●佛照; 慶元府 卽明州育王寺 德光佛照拙菴禪師 臨江郡彭氏子 嗣大慧宗杲禪師 南嶽下十六世 依本郡東山華光寺吉禪師祝髮 後來孝宗淳熈三年十一月 詔入選德殿談禪 淳熈五年賜佛照號 達於天下 宗風大振也
●簡堂; 台州國淸寺簡堂行機禪師 本郡楊氏子 嗣護國景元禪師 南嶽下十六世也
●東吳沙門淨善; 東吳蘇州郡名 沙門略梵謂也 全謂沙迦門曩 此云勤息 謂勤行善法 自滅諸惡 淨善乃序主諱 後學不可雙稱 當曰上淨下善也
보훈(寶訓)이란 것은 옛적에 묘희(*妙喜)와 죽암(*竹菴)이 강서(江西) 운문(雲門)에서 주모(*誅茅)했을 때 공집(共集)했다. 내가 순희(*淳熈; 1174-1189) 간(間)에 운문에 유행(遊行)하다가 노승(老僧) 조안(*祖安)에게서 이를 얻었으나 아깝게도 그 연(年)이 깊어 좀(蠧; 좀 두)에 손상되어 수미(首尾)가 완전하지 못했다. 후래(後來; 以後)에 혹 어록(語錄)이나 전기(傳記) 가운데를 보면서 10년 동안 모은(積) 게 거의(僅) 50편(篇) 남짓이다(餘). 인하여(仍) 황룡하(*黃龍下)와 불조(*佛照)ㆍ간당(*簡堂) 제로(諸老)의 유어(遺語)에 이르기까지 취하여 절즙(節葺; 整理. 累積)한 종류가 300편(篇)이다. 그 소득(所得)은 선후(先後)가 있지만 고금(古今)으로써 전차(詮次; 次第)를 삼지 않았다. 대개(大槩) 학자로 하여금 세리(勢利)와 인아(人我)를 삭제(削除)하고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로 추향(趨向)하게 했을 따름이다. 그 문리(文理)는 우유(優游)하고 평이(平易)하며 고탄(高誕)하고 황막(荒邈)하고 궤이(詭異)한 자취가 없나니 실로 가이(可以; 以는 조사) 입도(入道)의 원유(遠猷)다. 다만(且) 이에(將) 간목(刊木)하여 유전(流傳)을 넓히나니 반드시 동지지사(同志之士)가 일견(一見)하면 마음에 허락하는 자가 있으리니 내가 비록 구학(丘壑)에서 늙고 죽더라도 지원(志願)이 족(足)하다. 동오사문정선(*東吳沙門淨善)이 쓰다.
●妙喜; 묘희(妙喜)란 자는 임안부(臨安府) 경산(徑山) 종고(宗杲; 1089-1163) 대혜(大慧; 宗杲의 賜號) 보각선사(普覺禪師; 宗杲의 諡號)니 강동(江東) 선주(宣州) 영국(寧國) 해씨(奚氏)의 아들. 불과(佛果; 克勤의 호) 극근선사(克勤禪師; 1063-1135)를 이었으니 남악하(南嶽下) 15세. 13에 입교(入校)했고 세전(世典)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산(東山) 혜운원(慧雲院) 혜제선사(惠濟禪師)를 참예(參詣)하여 17에 낙발(落髮)하고 피치(披緇)했다. 후에 운거(雲居)의 서쪽 옛 운문사(雲門寺)의 구기(舊基)에 들어가 주모(誅茅)하여 결암(結菴)하고 20년을 경과했고 호상(湖湘)으로 피지(辟地)했다가 앙산(仰山)으로 이전(移轉)했다. 죽암규(竹菴珪; 士珪) 선사와 해후(邂逅)했고 서로 더불어 송고(頌古) 백여편(百餘篇)을 저술했는데 이 보훈(寶訓)은 곧(是) 그때 집(集)한 것이다.
●竹菴; 온주(溫州) 용상(龍翔; 寺名) 죽암(竹菴; 士珪의 字) 사규선사(士珪禪師; 1083-1146)니 성도부(成都府) 사씨(史氏)의 아들. 불안청원(佛眼淸遠)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15세.
●誅茅; 주모(誅茅)란 것은 참초(斬草)니 이르자면 모초(茅草)를 주참(誅斬)하여 결암(結菴)하고 은거함이다.
●淳熈; 순희(淳熈)는 송 효종(年號)의 연호.
●祖菴(본문에 祖安으로 지었음); 씨족(氏族)과 법사(法嗣)가 미상(未詳).
●黃龍; 융흥부(隆興府) 황룡(黃龍; 황룡산) 혜남선사(惠南禪師; 1002-1069)니 신주(信州) 장씨(張氏)의 아들. 석상초원(石霜楚圓)을 이었으니 남악하 11세다.
●佛照; 경원부(慶元府) 곧 명주(明州) 육왕사(育王寺) 덕광(德光; 1121-1203) 불조(佛照; 德光의 賜號) 졸암(拙菴; 德光의 호) 선사니 임강군(臨江郡) 팽씨의 아들임.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16세. 본군(本郡) 동산(東山) 화광사 길선사(吉禪師)에게 의지해 축발(祝髮)했다. 후래(後來; 以後)에 효종(孝宗) 순희(淳熈) 3년(1176) 11월 조칙(詔勅)으로 선덕전(選德殿)에 들어가 담선(談禪)했고 순희 5년(1178) 불조(佛照)란 호를 주어 천하에 드러났고(達) 종풍(宗風)을 대진(大振)했다.
●簡堂; 태주(台州) 국청사(國淸寺) 간당(簡堂; 行機의 자) 행기선사(行機禪師; 1108-1179)니 본군(本郡) 양씨의 아들. 호국(護國) 경원선사(景元禪師)를 이었으니 남악하 16세다.
●東吳沙門淨善; 동오(東吳)는 소주(蘇州)의 군명(郡名). 사문(沙門; 梵 śramaṇa)은 범어를 줄여 말했으니 전부 이르면 사가문낭(沙迦門曩)임. 여기에선 이르되 근식(勤息)이니 이르자면 선법(善法)을 근행(勤行)하여 스스로 제악(諸惡)을 없앰임. 정선(淨善)은 곧 서주(序主)의 휘(諱)니 후학(後學)은 쌍칭(雙稱)함이 옳지 못하므로 마땅히 가로되 상정하선(上淨下善)이라 해야 하리라.
人我; 一卽我執 謂世俗者對于我的執著 二(由我執而引起的)逞强好勝 此指二
1. 곧 아집이니 이르자면 세속자(世俗者)가 아(我)에 대한 집착. 2. (아집으로 말미암아 引起한) 강함을 자랑하면서 이기기를 좋아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優游; 生活得十分閑適
생활에 십분 한적(閑適)함을 얻음.
高誕; 孤危妄誕
고위(孤危)하고 망탄(妄誕; 허망)함.
荒邈; 荒蕪渺邈 ▲禪林寶訓筆說上 荒者 荒蕪無稽之談 邈者 渺邈無措之句
황무(荒蕪; 거칢)하고 묘막(渺邈; 廣遠)함. ▲선림보훈필설상 황(荒)이란 것은 황무(荒蕪)하여 계고(稽考)할 게 없는 담(談)이며 막(邈)이란 것은 묘막(渺邈)하여 조치할 게 없는 구(句)다.
詭異; 怪異 ▲禪林寶訓筆說上 詭者 譎詐之諭 異者 怪異之辭
괴이(怪異). ▲선림보훈필설상. 궤(詭)란 것은 휼사(譎詐; 속임. 기만)의 타이름이며 이(異)란 것은 괴이한 말이다.
遠猷; 禪林寶訓筆說上 遠猷者 深遠法則也
선림보훈필설상. 원유(遠猷)란 것은 심원(深遠)한 법칙이다.
臨安府; 宋室南遷 紹興八年(1138) 定都杭州 改稱臨安府 稱爲行在 而仍將北宋歷代先帝陵寢所在的東京汴梁城稱爲京師 [百度百科]
송실(宋室)이 남쪽으로 옮겨가 소흥 8년(1138) 항주에 도읍을 정하고 임안부로 개칭했으며 일컬어 행재(行在)라 했고 그대로 북송의 역대 선제(先帝)의 능침(陵寢)이 소재하는 동경 변량성(汴梁城)을 일컬어 경사라(京師) 했음 [백도백과].
宣州; 今屬安徽省宣城縣
지금 안휘성 선성현에 속함.
南嶽下; 又作南岳下 南嶽 指唐代南嶽懷讓禪師 下 派下之意 卽六祖慧能弟子南嶽懷讓之法系 對稱於六祖弟子靑原行思所出之法系靑原下 懷讓得六祖之印可後 居於湖南衡山般若寺 接化學人三十餘年 大振南嶽之禪風
또 남악하(南岳下)로 지음. 남악(南嶽)은 당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를 가리키며 하(下)는 파하(派下)의 뜻임. 곧 6조 혜능의 제자 남악회양의 법계임. 6조 제자 청원행사(靑原行思)에서 나온 바의 법계인 청원하(靑原下)의 대칭(對稱)임. 회양이 6조의 인가를 얻은 후 호남 형산 반야사에 거주하면서 학인을 접화하기 30여 년이었으며 남악의 선풍을 크게 떨쳤음.
披緇; 穿上黑色僧衣 指出家爲僧
흑색의 승의를 위에 입음이니 출가하여 승인이 됨을 가리킴.
湖湘; 湖南省洞庭湖與湘江地帶 常用來代指湖南 位於長江中流 大部分地域在洞庭湖之南 故名湖南 [百度百科]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와 상강(湘江) 지대(地帶)니 늘 써서 호남을 대지(代指)함. 장강 중류에 위치하며 대부분 지역이 동정호의 남쪽에 있으므로 고로 명칭이 호남임 [백도백과].
辟地; 謂遷地以避禍患
이르자면 지역을 옮겨 화환(禍患)을 피함.
仰山; 位於江西宜春縣之南 山勢絶高 須仰視方得見 故稱仰山 又稱大仰山
강서 의춘현(宜春縣)의 남쪽에 위치함. 산세가 몹시 높아 반드시 우러러 보아야 비로소 얻어 보는지라 고로 명칭이 앙산(仰山)임. 또 명칭이 대앙산(大仰山)임.
溫州; 浙江省東南部永嘉縣的古稱 因氣候溫和 故稱溫州
절강성 동남부 영가현의 고칭. 기후가 온화함으로 인해 고로 명칭이 온주임.
成都府; 今四川成都 唐肅宗至德二年(757)始設 兩宋延續之 元朝改爲成都路 明初洪武四年(1371) 復爲成都府 [百度百科]
지금의 사천 성도니 당 숙종 지덕 2년(757)에 처음 설치했음. 양송(兩宋)에서 이를 연속했고 원조(元朝)에서 고쳐 성도로라 했고 명초 홍무 4년(1371) 다시 성도부라 했음 [백도백과].
隆興府; 南宋孝宗隆興元年(1163) 升洪州爲隆興府 治南昌縣(南昌市) 元至元十四年(1277) 改置隆興路 [百度百科]
남송 효종 융흥 원년(1163) 홍주를 승격해 융흥부로 삼았음. 치소(治所)는 남창현(남창시). 원 지원 14년(1277) 고쳐 융흥로를 설치했음 [백도백과].
信州; 今江西上饒市 廣輿記十二江西廣信府曰 唐宋曰信州
지금의 강서 상요시. 광여기12 강서 광신부에 가로되 당ㆍ송에서 가로되 신주(信州)라 했다.
慶元府; 宋紹熙五年(1194) 寧宗卽位 明年改元慶元 以明州爲寧宗潛邸 遂以年號爲名 升明州爲慶元府 府治設在鄞縣(今浙江省寧波市區) 城東七十里有大梅山 唐代法常禪師入此山創建護聖寺 [百度百科 大明一統志]
송 소희 5년(1194) 영종이 즉위하자 명년에 경원으로 개원하고 명주(明州)가 영종의 잠저(潛邸)였기 때문에 드디어 연호로써 이름을 삼아 명주를 승격해 경원부라 했음. 부치(府治)는 은현(지금 절강성 영파시구)에 설치해 두었음. 성의 동쪽 70리에 대매산이 있으며 당대(唐代)의 법상선사(法常禪師)가 이 산에 들어가 호성사를 창건했음 [백도백과. 대명일통지].
明州; 浙江省寧波之古名
절강성 영파의 옛 이름.
祝髮; 祝 切斷之意 故祝髮與剃髮薙髮同 卽出家落髮之謂
축(祝)은 절단의 뜻. 고로 축발은 체발(剃髮)ㆍ치발(薙髮)과 같음. 곧 출가하여 낙발(落髮)함을 말함.
選德殿; 是南宋孝宗時修建的一座殿宇 遺址位於杭州城南鳳凰山東麓宋城路一帶 [百度百科]
이는 남송 효종 시 수건(修建)한 1좌(座; 量詞)의 전우(殿宇)니 유지(遺址)는 항주성 남쪽 봉황산 동쪽 기슭 송성로 일대에 위치함 [백도백과].
台州; 今浙江省臨海縣
지금의 절강성 임해현.
蘇州; 江蘇省南東部都市吳縣的古稱 漢代以來 江南經濟文化中心地 城內有長慶慧稜所住北寺(報恩寺) 南禪寺 瑞光寺 報恩光孝寺 寒山寺 府城西北有十刹之第九位虎印山雲巖寺 西南有靈巖山崇報寺 報恩山(觀音山) 西有天平山白雲寺等 [吳縣志]
강소성 남동부 도시 오현의 고칭(古稱). 한대(漢代) 이래 강남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임. 성내에 장경혜릉(長慶慧稜)이 거주했던 곳인 북사(北寺; 報恩寺)ㆍ남선사ㆍ서광사ㆍ보은광효사ㆍ한산사가 있으며 부성(府城) 서북에 10찰(刹)의 제9위 호인산 운암사가 있으며 서남에 영암산 숭보사ㆍ보은산(관음산)이 있으며 서쪽에 천평산 백운사 등이 있음 [오현지].
諱; 指已故的帝王或尊長的名 鄭玄注 諱 先王名 淸代顧炎武日知錄二十三 生曰名 死曰諱 今人多生而稱人之名曰諱
이미 고인(故人)이 된 제왕(帝王)이나 혹은 존장(尊長)의 이름을 가리킴. 정현(鄭玄)의 주(注) 휘(諱) 선왕(先王)의 이름이다. 청대(淸代)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23. 살아서는 가로되 명(名)이며 죽어서는 가로되 휘(諱)이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들 살아서도 사람의 이름을 일컬어 가로되 휘(諱)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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