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水菴少*倜儻 有大志 尙氣節 不事浮靡 不循細檢 胸次*岸谷 *狥身以義 雖禍害交前 不見有*殞穫之色 住持八院 經歷四郡 所至兢兢業業 以行道建立爲心 淳熈五年 退西湖淨慈 有偈曰 六年灑掃皇都寺 瓦礫翻成釋梵宮 今日宮成歸去也 杖頭八面起淸風 士庶遮留不止 小舟至*秀之天寧 未幾示疾 別衆告終〈行實〉
●倜儻; 上音剔 窮而不變也 下音倘 卓異貌 謂雅致慷慨 瀟灑無覊也
●岸谷; 岸 露額也 谷 兩山間流道 葢胸次冲虗 如高岸空谷 有容川之量
●徇; 以身逐物曰徇
●殞穫; 儒行篇云 不殞穫於貧賤 註云 如蘀殞而飄零 似禾穫而枯稿也 又殞者 如有所墜 穫者 如有所割刈也 乃困迫失志之貌
●秀之天寧; 嘉興府秀水縣 天寧寺也
【235】 수암(水菴; 師一)은 척당(*倜儻)이 적었으나 대지(大志)가 있었고 기절(氣節; 志氣와 節操)을 숭상했고 부미(浮靡)를 일삼지 않았고 세검(細檢; 細行. 小節)을 따르지(循) 않았고 흉차(胸次; 胸中)가 안곡(*岸谷)이었고 의(義)로써 몸을 따랐다(*狥). 비록 화해(禍害)가 앞에 교차하더라도 운확(*殞穫)의 기색이 있음을 보이지 않았다. 8원(院)에 주지하면서 4군(郡)을 경력(經歷)했는데 이르는 곳마다 긍긍업업(兢兢業業)하면서 행도(行道)와 건립으로써 마음을 삼았다. 순희(淳熈) 5년(1178) 서호(西湖)의 정자(淨慈)에 퇴거(退居)했는데 게가 있어 가로되 6년 동안 황도(皇都)의 사원을 쇄소(灑掃)했더니/ 와력(瓦礫)이 도리어(翻) 석범(釋梵)의 궁을 이루었다/ 금일 궁을 이루고 돌아가노니/ 장두(杖頭; 頭는 조사)의 팔면에 청풍이 일어난다. 사서(士庶)가 차류(遮留; 遮止하며 挽留)했지만 멈추지 않고 소주(小舟)로 수의 천녕(*秀之天寧)에 이르렀다가 얼마되지 않아 시질(示疾)하더니 대중에게 고별하고 마침을 고(告)했다. 〈行實〉
●倜儻; 상은 음이 척(剔)이니 곤궁해도 불변함이며 하는 음이 당(倘)이니 탁이(卓異)한 모양이다. 이르자면 아치(雅致; 高雅한 意趣)면서 강개(慷慨)하고 소쇄(瀟灑)하여 굴레(覊)가 없음이다.
●岸谷; 안(岸)은 드러난 이마며 곡(谷)은 양산(兩山) 사이의 유도(流道)다. 대개 흉차(胸次)가 충허(冲虗)하여 고안(高岸)과 공곡(空谷) 같아서 백천(百川)을 수용(受用)하는 도량(度量)이 있음이다.
●徇; 몸으로써 사물을 쫓아감을 가로되 순(徇)이다.
●殞穫; 유행편(儒行篇; 禮記 중 제41편)에 이르되 빈천(貧賤)에 운확(殞穫)하지 아니하다. 주운(註云) 탁운(蘀殞; 떨어지다)하여 표령(飄零)함과 같다. 화확(禾穫; 벼를 거두다)하면서 고고(枯槁)함과 흡사함이다. 또 운(殞)이란 것은 떨어지는 바가 있음과 같음이며 확(穫)이란 것은 할예(割刈; 베다)하는 바가 있음과 같음이니 곧 곤박(困迫)하여 실지(失志)하는 모양이다.
●秀之天寧; 가흥부(嘉興府) 수수현(秀水縣) 천녕사(天寧寺)다.
浮靡; 浮華綺靡
부화기미(浮華綺靡; 겉치레만 화려함).
瓦礫; 破碎的磚頭瓦片 比喩無價値的物件
파쇄된 전두(磚頭; 벽돌)와 와편(瓦片; 기와 조각)이니 가치가 없는 물건에 비유.
釋梵; 又作梵釋 指帝釋與梵王 此二天王歸依釋迦牟尼佛 爲經論中常見之守護神
또 범석(梵釋)으로 지음. 제석과 범왕을 가리킴. 이 두 천왕은 석가모니불에게 귀의했으며 경론 중에 늘 보이는 수호신이 됨.
士庶; 士人和普通百姓 亦泛指人民百姓
사인(士人)과 보통 백성. 또한 널리 인민, 백성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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