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心聞曰 敎外別傳之道 至簡至要 初無它說 前輩行之不疑 守之不易 *天禧間 雪竇以辯博之才 美意變弄 求新琢巧 繼汾陽爲頌古 *籠絡當世學者 宗風由此一變矣 逮*宣政間 圓悟又出己意 離之爲*碧巖集 彼時邁古淳全之士 如*寧道者 死心靈源佛鑒諸老 皆莫能迴其說 於是新進後生 珍重其語 朝誦暮習 謂之至學 莫有悟其非者 痛哉 學者之心術壞矣 *紹興初 *佛日入閩 見學者牽之不返 日馳月*騖 浸*漬成弊 卽碎其板 闢其說 以至*祛迷援溺 剔繁撥*劇 摧邪顯正 特然而振之 衲子稍知其非 而不復慕 然非佛日高明遠見 乘悲願力 救末法之弊 則叢林大有可畏者矣〈與張子韶書 下出廣錄〉
●天禧; 宋眞宗年號
●籠絡; 如鳥之在籠 馬著覊絡 不能脫去 學者溺之 亦猶是也
●宣政; 宋徽宗年號
●碧巖集; 山名 圓悟禪師在此作評唱 釋雪竇頌古 爲碧巖集也
●寧道者; 潭州開福道寧禪師 歙溪汪氏子 嗣五祖演禪師 南嶽下十四世也
●紹興; 宋高宗年號
●佛日; 卽妙喜也
●騖; 音務 奔也
●漬; 音自 浸潤也
●祛; 除却也
●劇; 增也 尤甚也
【243】 심문(心聞; 曇賁)이 가로되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도는 지극히 간단(簡單)하고 지극히 주요(主要)하여 애초에 다른 설(說)이 없었다. 전배(前輩)가 이를 행하면서 의심하지 않았고 이를 지키면서 개역(改易)하지 않았다. 천희(*天禧; 1017- 1021) 간(間)에 설두(雪竇; 重顯)가 변박(辯博; 宏辯博學)의 재능(才能)으로써 의사(意思)를 미화(美化)하고 변화(變化)하여 매롱(賣弄; 자랑하다)하면서 신선(新鮮)함을 구하고 기교(奇巧)를 탁마(琢磨)했다. 분양(汾陽; 善昭)에 이어서 송고(頌古)하여 당세(當世)의 학자를 농락(*籠絡)했으니 종풍(宗風)이 이로 말미암아 일변(一變)했다. 선정(*宣政; 宣和; 1119-1125의 오류) 간에 이르러(逮) 원오(圓悟)가 또 자기의 뜻을 내어 이것(之; 설두의 頌古)을 분리(分離)해 벽암집(*碧巖集)이라 했다. 그때의 매고(邁古)의 순전(淳全)한 사내들, 예컨대 녕도자(*寧道者)ㆍ사심(死心; 悟新)ㆍ영원(靈源; 惟淸)ㆍ불감(佛鑒; 慧懃) 제로(諸老)가 모두 능히 그(圓悟)의 설(說; 評唱)을 만회(挽迴)하지 못했다. 이에 신진(新進)의 후생(後生)이 그의 말을 진중(珍重)히 여겼고 조송모습(朝誦暮習)하면서 이를 일러 지학(至學)이라 했으니 그 그름을 깨닫는 자가 있지 않았다. 통재(痛哉)라, 학자의 심술(心術)이 무너졌다. 소흥(*紹興; 1131-1162) 초 불일(*佛日)이 민(閩; 福建)에 들어가 학자들이 이(벽암집)를 견인(牽引)하며 돌이키지 않고 일치월무(日馳月*騖)하며 침지(浸*漬)하여 폐단(弊端)을 이룸을 보고 곧 그 판(板)을 쇄훼(碎燬)하고 그 설(說)을 물리쳤으며(闢) 이지(以至; 내지) 미집(迷執)을 제거(祛)하고 침닉(沈溺)을 구원(救援)하고 번(繁)을 척삭(剔削)하고 극(*劇)을 발각(撥却)하고 최사현정(摧邪顯正)하여 특연(特然; 특별)히 그것(之; 別傳之道)을 진작(振作)하매 납자들이 조금씩 그 그름을 알고서 다시 선모(羨慕)하지 않았다. 그러하여 불일(佛日)의, 고명(高明)한 원견(遠見)으로 비원력(悲願力)을 타고(乘) 말법의 폐단을 구제함이 아니었다면 곧 총림예 다시(大) 가히 두려운(畏) 자가 있었으리라. 〈장자소(張子韶)에게 준 글. 아래는 광록(廣錄)에 나온다〉.
●天禧; 송진종(宋眞宗; 968-1022 재위 997-1022)의 연호(年號)다.
●籠絡; 마치 새가 농(籠)에 있고 말에 기락(覊絡; 굴레와 고삐)을 부착함과 같아서 능히 벗어나지 못하나니 학자가 이에 빠짐도 또한 이와 같다.
●宣政(宣和의 오류); 송휘종(宋徽宗; 1082-1135 재위 1100–1125)의 연호(年號)다.
●碧巖集; 산명(山名)이니 원오선사(圓悟禪師)가 여기에 있으면서 평창(評唱)을 지어 설두의 송고(頌古)를 해석하고 벽암집이라 했다.
●寧道者; 담주(潭州) 개복(開福; 開福禪寺) 도녕선사(道寧禪師; ?-1113)니 흡계(歙溪; 安徽 歙縣) 왕씨(汪氏)의 아들이며 오조연(五祖演)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14세다.
●紹興; 송고종(宋高宗; 1107-1187 재위 1127- 1162)의 연호(年號)다.
●佛日(宗杲의 賜號가 佛日大師); 곧 묘희(妙喜; 宗杲)다.
●騖; 음이 무(務)니 분(奔)이다.
●漬; 음이 자(自)니 침윤(浸潤; 점점 배어 들어감)이다.
●祛; 제각(除却)이다.
●劇; 증(增)이다. 더욱 심함(尤甚)이다.
敎外別傳; 不依文字語言 直悟佛陀所悟之境界 卽稱爲敎外別傳 又稱單傳 此敎外別傳之禪法 亦卽菩提達磨所傳之祖師禪 ▲祖庭事苑五 單傳 傳法諸祖 初以三藏敎乘兼行 後達摩祖師單傳心印 破執顯宗 所謂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문자와 어언(語言)에 의하지 않고 바로 불타가 깨친 바의 경계를 깨침을 곧 일컬어 교외별전이라 함. 또 명칭이 단전(單傳)임. 이 교외별전의 선법은 또한 곧 보리달마가 전한 바의 조사선임. ▲조정사원5. 단전(單傳) 전법한 제조가 처음엔 삼장교승을 겸행했음. 뒤에 달마조사가 심인을 단전하며 집착을 깨뜨리고 종(宗; 心을 가리킴)을 나타냈으니 이른 바 교 밖에 따로 전하여(敎外別傳) 문자를 세우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고 성불하게 했음.
頌古; 擧出前人公案機語 用偈句韻語加以闡釋評議 是禪師說法的一種形式
전인(前人)의 공안의 기어(機語)를 거출(擧出)하여 게구(偈句)의 운어(韻語)를 써서 천석(闡釋)하고 평의(評議)를 가함이니 이는 선사의 설법의 일종 형식임.
邁古; 邁 超過 超越
매(邁)는 초과. 초월.
山名; 碧巖一詞之由來 圜悟作評唱於澧州夾山靈泉院時 其方丈室匾額上之題字 此二字源於夾山之開祖善會禪師之詩句 猿抱兒歸靑嶂後 鳥啣花落碧巖前
벽암(碧巖) 일사(一詞)의 유래는 원오가 예주(澧州)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에서 평창을 지을 때 그 방장실의 편액상(匾額上)의 제자(題字)임. 이 2자는 협산의 개조(開祖)인 선회선사(善會禪師)의 시구(詩句)인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청장으로 돌아간 후 새는 꽃을 물고 벽암의 앞에 떨어뜨린다(猿抱兒歸靑嶂後 鳥啣花落碧巖前) 한 것에서 기원(起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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