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

단경 頓漸第八 03

태화당 2022. 12. 29. 08:26

誠聞偈 悔謝 乃呈一偈曰

五蘊幻身 幻何究竟 迴趣眞如 法還不淨

師然之 復語誠曰 汝師戒定慧 勸小根智人 吾戒定慧 勸大根智人 若悟自性 亦不立菩提涅槃 亦不立解脫知見 無一法可得 方能建立萬法 若解此意 亦名佛身 亦名菩提涅槃 亦名解脫知見 見性之人 立亦得 不立亦得 去來自由 無滯無礙 應用隨作 應語隨答 普見化身 不離自性 卽得自在神通游戲三昧 是名見性 志誠再啓師曰 如何是不立義 師曰 自性無非 無癡無亂 念念般若觀照 常離法相 自由自在 縱橫盡得 有何可立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 所以不立一切法 諸法寂滅 有何次第 志誠禮拜 願爲執侍 朝夕不懈誠吉州太和人也

 

지성(志誠)이 게를 듣자 회사(悔謝)했다. 이에 1게를 드렸으니 가로되

 

5()의 환신(幻身)이거늘/ ()이 어찌 구경(究竟)이겠는가/ 진여(眞如)로 회취(迴趣)하더라도/ 법은 도리어 부정(不淨)하다.

 

스님이 그렇게 여겼다. 다시 지성에게 말해 가로되 너의 스님의 계정혜는 소근(小根)의 지인(智人)에게 권하는 것이며 나의 계정혜는 대근(大根)의 지인에게 권하는 것이다. 만약 자성을 깨달으면 또한 보리열반(菩提涅槃)을 세우지 않으며 또한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세우지 않으며 1법도 가히 얻음이 없나니 비로소 능히 만법을 건립한다. 만약 이 뜻을 이해한다면 또한 이름이 불신(佛身)이며 또한 이름이 보리열반이며 또한 이름이 해탈지견이다.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또한 옳고() 세우지 않아도 또한 옳나니 거래(去來)가 자유(自由)며 무체무애(無滯無礙)하며 씀()에 응해 그대로() 짓고 말에 응해 그대로 답하며 널리 화신(化身)을 보되 자성을 여의지 않으며 곧 자재한 신통유희삼매(神通游戲三昧)를 얻나니 이 이름이 견성이다. 지성이 다시 스님에게 사뢰어 가로되 무엇이 이 세우지 않음의 뜻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자성은 그름()이 없으며 무치무란(無癡無亂)하며 염념(念念)에 반야로 관조(觀照)하며 늘 법상(法相)을 여의며 자유자재하며 종횡(縱橫)을 모두 얻거늘 무엇을 가히 세움이 있으리오. 자성으로 자오(自悟)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하여 또한 점차(漸次)가 없는지라 소이로 일체법을 세우지 않나니 제법이 적멸(寂滅)이거늘 무슨 차제(次第)가 있겠는가. 지성이 예배했다. 원컨대 집시(執侍)하며 조석(朝夕)으로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지성은 길주(吉州) 대화(太和) 사람이다.

 


迴趣; 迴心而趣向

회심하여 취향함.

 

頓悟頓修; 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 夫入道多門 以要言之不出頓悟漸修兩門耳 雖曰頓悟頓修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依悟而修漸熏而來至於今生 聞卽發悟一時頓畢 以實而論是亦先悟後修之機也 則而此頓漸兩門是千聖軌轍也 宗鏡錄三十六 今取頓悟漸修 深諧敎理 首楞嚴經云 理雖頓悟 承悟倂消 事在漸修 依次第盡 如大海猛風頓息 波浪漸停 猶孩子諸根頓生 力量漸備 似曦光之頓出 霜露漸消 若印文之頓成 讀有前後 或頓悟頓修 正當宗鏡 如華嚴宗 取悟如日照 卽解悟證悟 皆悉頓也 又如磨鏡 一時遍磨 明淨有漸 今論 明是本明 漸爲圓漸 明是本明者 恐謂拂鏡非頓 明鏡本來淨 何用拂塵埃 此是六祖 直顯本性 破其漸修 今爲順經明其漸證 隨漸漸明 皆本明矣 故云明是本明 卽無念體上自有眞知 非別有知

고려국 보조선사 수심결. 무릇 입도에 문이 많지만 주요(主要)한 것으로써 말하자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가로되 돈오돈수(頓悟頓修)라 하지만 이는 최상의 근기라야 득입한다. 만약 과거를 추리(推理)하면 이미 이는 여러 생에 깨침에 의해서 닦고 점훈(漸熏)하여 와서 금생에 이르렀음이다. 듣고서 곧 깨침을 내어 일시에 문득 마치지만 실다움으로써 논하자면 이것도 또한 먼저 깨치고 후에 닦는 근기이다. 곧 이 돈ㆍ점의 두 문은 이 천성(千聖)의 궤철(軌轍)이다. 종경록36. 이제 돈오점수를 취해 깊이 교리에 화해(和諧)하겠다. 수릉엄경에 이르되 이()로는 비록 돈오하여 오()를 승계해 아울러 없애지만 사()로는 점수에 있는지라 차제에 의해 없앤다. 대해에 맹풍이 문득 쉬었더라도 파랑은 점차 정지함과 같고 아이가 제근(諸根)이 문득 생기(生起)했지만 역량은 점차 갖춤과 같고 햇빛이 문득 나오지만 서리와 이슬은 점차 없어짐과 같고 인문(印文)은 문득 이루지만 읽음엔 전후가 있음과 같다. 혹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바로 종경(宗鏡)에 상당하나니 화엄종에서 오()를 취함은 일조(日照)와 같아서 곧 해오(解悟)와 증오(證悟)가 모두 다 돈()임과 같다. 또 거울을 연마하면 일시에 두루 연마하지만 명정(明淨)은 점차가 있음과 같다. 지금의 논은 명()은 이 본명(本明)이며 점()은 원점(圓漸)이 된다. 명은 본명이란 것은 염려하며 이르건대 거울을 닦아서 돈()이 아니라 명경이 본래 명정(明淨)함이니 어찌 먼지 티끌을 닦음을 쓰겠는가. 이것은 이 6조가 바로 본성을 나타내어 그 점수(漸修)를 깨뜨렸음이다. 이제 경에 수순(隨順)하자면 명()은 그 점차로 증득함이며 점차를 따라 점차로 명()한다 하지만 모두 본명(本明)이다. 고로 이르되 명은 이 본명이니 곧 무념의 체 위에 스스로 진여가 있음이며 특별히 앎이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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