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一童子 名神會 襄陽高氏子 年十三 自玉泉來參禮 師曰 知識遠來艱辛 還將得本來否 若有本則合識主 試說看 會曰 以無住爲本 見卽是主 師曰 這沙彌爭合取次語 會乃問曰 和尙坐禪 還見不見 師以柱杖打三下云 吾打汝痛不痛 對曰 亦痛亦不痛 師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問 如何是亦見亦不見 師云 吾之所見 常見自心過愆 不見他人是非好惡 是以亦見亦不見 汝言亦痛亦不痛如何 汝若不痛 同其木石 若痛則同凡夫 卽起恚恨 汝向前見不見是二邊 痛不痛是生滅 汝自性且不見 敢爾弄人 神會禮拜悔謝 師又曰 汝若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汝若心悟 卽自見性依法修行 汝自迷不見自心 却來問吾見與不見 吾見自知 豈代汝迷 汝若自見 亦不代吾迷 何不自知自見 乃問吾見與不見 神會再禮百餘拜 求謝過愆 服勤給侍 不離左右
한 동자가 있었으니 이름이 신회(神會)며 양양(襄陽) 고씨(高氏)의 아들이다. 나이 13에 옥천(玉泉)으로부터 와서 참례했다. 사왈(師曰) 지식(知識)이 멀리서 오느라 간신(艱辛)했겠구나. 도리어 이에(將) 본(本)을 얻어 왔느냐. 만약 본(本)이 있다면 곧 합당히 주(主)를 알 것이니 시험 삼아 설해보아라. 신회가 가로되 무주(無住)로써 본(本)을 삼으며 견(見)이 즉시 주(主)입니다. 사왈 이 사미(沙彌)가 어찌하여 취차어(取次語)에 합하느냐. 신회가 이에 문왈(問曰) 화상은 좌선하면서 도리어 봅니까(見), 보지 않습니까. 스님이 주장(柱杖)으로써 세 번(三下) 때리고 이르되 내가 너를 때리니 아프냐(痛), 아프지 않느냐. 대왈(對曰) 또한 아프기도 하고 또한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사왈 나도 또한 보기도 하고 또한 보지 않기도 한다. 신회가 묻되 무엇이 이 또한 보기도 하고 또한 보지 않기도 함입니까. 사운(師云) 내가 보는 바는 늘 자심(自心)의 과건(過愆)을 보고 타인의 시비호오(是非好惡)를 보지 않는지라 이런 까닭으로 또한 보기도 하고 또한 보지 않기도 한다. 네가 말한 또한 아프기도 하고 또한 아프지 않기도 한 것은 어떠한가. 네가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그 목석(木石)과 같을 것이며 네가 만약 아프다고 하면 곧 범부(凡夫)와 같아서 곧 에한(恚恨)을 일으킨다. 너의 향전(向前; 以前)의 봄과 보지 않음은 이 2변(邊)이며 아픔과 아프지 않음은 이 생멸(生滅)이다. 너는 자성을 다만(且) 보지 못하고서 감히 네가 타인을 희롱하느냐(弄). 신회가 예배하고 회사(悔謝; 회개하며 사죄)했다. 스님이 또 가로되 네가 만약 마음이 혼미하여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에게 물어 길을 찾아야 하고 네가 만약 마음을 깨쳤다면 곧 스스로 견성하고 의법(依法)하여 수행해야 하거늘 너는 스스로 혼미하고 자심(自心)을 보지 못했거늘 도리어 와서 나에게 견(見)과 불견(不見)을 묻느냐. 나의 견(見)은 스스로 알거늘 어찌 너의 미(迷)를 대체(代替)하며 네가 만약 스스로 보았다면 또한 나의 미(迷)를 대체하지 못한다. 왜 자지자견(自知自見)하지 않고 이에 나에게 견(見)과 불견(不見)을 묻느냐. 신회가 다시 예배를 백 여 배(拜)하고 과건(過愆)을 사죄(謝罪)하기를 구했고 복근(服勤)하며 급시(給侍)하면서 좌우를 여의지 않았다.
神會; (668-760) 唐代僧 荷澤宗之祖 襄陽(湖北襄陽)人 俗姓高 年十三 參六祖慧能 慧能示寂後 參訪四方 跋涉千里 開元八年(720)奉敕配住南陽龍興寺 大揚禪法 人稱南陽和尙 六祖入滅後二十年間 曹溪之頓旨沈廢 兩京之間皆宗神秀 由普寂等續樹法幢 師初至洛陽 欲振六祖之風 乃於開元二十年(732) 設無遮大會於河南滑臺大雲寺 與山東崇遠論戰 指斥神秀一門師承是傍法門是漸 竝於天寶四年(745) 著顯宗記 定南北頓漸兩門 卽以南能爲頓宗 北秀爲漸敎 南頓北漸之名由是而起 於是南宗日盛而北宗大衰 天寶十二年 師因御史盧奕誣奏 奉敕黜離洛陽荷澤寺 遷住弋陽(江西) 武當(湖北)等地 翌年轉住襄陽 再轉住荊州開元寺般若院 安史之亂起 兩京板蕩 時大府各置戒壇度僧 聚香水錢 以充軍需 請師主壇度之事 亂平後 肅宗建造禪宇於荷澤寺中 詔請住之 故世稱荷澤大師 師在荷澤寺仍闡揚六祖之宗風 上元元年入寂 壽九十三 一說乾元元年(758)示寂 壽七十五 敕諡眞宗大師 貞元十二年(796) 皇太子集諸禪師 楷定禪門之宗旨 遂以師爲禪宗第七祖 敕碑置神龍寺 其法流稱荷澤宗 [壇經 圓覺經大疏鈔三 宋高僧傳八 傳燈錄五 荷澤大師神會傳(胡適之)]
(668-760) 당대승. 하택종(荷澤宗)의 개조(開祖). 양양(호북 양양)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고(高). 나이 13에 6조 혜능(慧能)을 참알(參謁)했으며 혜능이 시적(示寂)한 후 사방을 참방하며 천 리를 발섭(跋涉)하다가 개원 8년(720) 칙명을 받들어 남양(南陽)의 용흥사(龍興寺)에 배치(配置)되어 머물면서 선법을 크게 드날렸음. 사람들이 남양화상(南陽和尙)이라 일컬었음. 6조가 입멸한 후 20년 간 조계의 돈지(頓旨)가 침폐(沈廢)되자 양경(兩京; 東西 兩京)의 사이에 다 신수(神秀)를 종앙(宗仰)했음. 보적(普寂) 등이 법당(法幢)을 상속해 세움으로 말미암아 스님이 처음 낙양(洛陽)에 이르자 6조의 종풍을 진작(振作)하려 했음. 이에 개원 12년(732) 하남(河南) 활대(滑臺) 대운사(大雲寺)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베풀고 산동(山東)의 숭원(崇遠)과 논전(論戰)하면서 신수일문(神秀一門)을 가리켜 사승(師承)은 이 방출(傍出)이며 법문은 이 점(漸)이라 했음. 아울러 천보 4년(745) 현종기(顯宗記)를 지어 남북돈점(南北頓漸)의 두 문을 정했으니 곧 남능(南能)으로 돈종(頓宗)을 삼고 북수(北秀)로 점교(漸敎)를 삼았음. 남돈북점(南頓北漸)의 이름이 이로 말미암아 일어났으며 이에 남종은 날로 번성하고 북종은 크게 쇠퇴했음. 천보 12년 스님이 어사(御史) 노혁(盧奕)의 무주(誣奏; 誣告로 奏請함)로 인해 칙명을 받들어 낙양(洛陽)의 하택사(荷澤寺)에서 내쫓겨 떠나 익양(弋陽; 강서)과 무당(武當; 호북) 등의 땅으로 옮겨 머물렀음. 다음해 양양(襄陽)으로 전주(轉住)하였다가 다시 형주(荊州) 개원사(開元寺) 반야원(般若院)으로 전주(轉住)하였음. 안사(安史)의 난(亂)이 일어나 양경(兩京)이 판탕(板蕩)되었음. 때에 대부(大府)에서 각기 계단(戒壇)을 설치하고 도승(度僧)하면서 향수전(香水錢)을 모아 군수(軍需)에 충당했으며 스님에게 청해 단도(壇度; 戒壇度僧)의 일을 주관하게 했음. 난이 평정(平定)된 후 숙종(肅宗)이 하택사 가운데 선우(禪宇)를 건조하여 조서(詔書)로 청하여 머물게 한지라 고로 세칭 하택대사(荷澤大師)임. 스님이 하택사에 있으면서 그대로 6조의 종풍을 천양(闡揚)하다가 상원 원년에 입적했으니 나이는 93. 일설엔 건원 원년(758)에 시적했으며 나이는 75라 함. 칙시(敕諡)가 진종대사(眞宗大師). 정원 12년(796) 황태자가 여러 선사를 소집하여 선문의 종지를 해정(楷定)하여 드디어 스님을 선종의 제7조로 삼았음. 칙명으로 신룡사(神龍寺)에 비(碑)를 설치했음. 그 법류(法流)를 일컬어 하택종(荷澤宗)이라 함 [단경. 원각경대소초3. 송고승전8. 전등록5. 하택대사신회전(호적지)].
沙彌; <梵> śrāmaṇera 全稱室羅摩拏洛迦 室羅末尼羅 此譯云求寂 息惡 息慈 勤策 卽止惡行慈 覓求圓寂之意 僧伽中 已受十戒 未受具足戒 年齡在七歲以上 未滿二十歲之出家男子 ▲行事鈔資持記上一 沙彌是梵語 此云息慈 息其世染 慈濟群生
<범> śrāmaṇera. 전칭이 실라마나락가ㆍ실라말니라.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구적(求寂)ㆍ식악(息惡)ㆍ식자(息慈)ㆍ근책(勤策)이니 곧 악을 그치고 자비를 행하며 원적을 찾고 구함의 뜻. 승가(僧伽) 중에서 이미 10계를 받았으나 구족계를 받지 않은, 나이 7세 이상 20세 미만에 있는 출가한 남자임. ▲행사초자지기상1. 사미는 이 범어니 여기에선 이르되 식자(息慈)다. 그 세속의 오염을 쉬고 자비로 군생을 제도함이다.
取次語; 草率之語也 又漫浪貌 容易語
초솔(草率; 절실하거나 정밀하지 못한 모양)한 말임. 또 낭만의 모양. 용이한 말.
柱杖; 又作拄杖 主杖 ▲祖庭事苑八 拄杖 佛在鷲峰山 有老苾芻登山上下 脚跌倒地 佛言 應畜拄杖 聞佛許已 六衆卽便以金銀雜綵等物 雕飾其杖 俗旅嫌賤 苾芻白佛 佛言 苾芻有二種緣應畜拄杖 一爲老瘦無力 二爲病苦嬰身 又制大小不得過麤指 正如今禪家游山拄杖 或乘危涉險 爲扶力故 以杖尾細怯 遂存小枝許 串鐵永者是也 行脚高士多携麤重堅木 持以自衒 且曰 此足以禦宼防身 往往愚俗必謂禪家流固當若是 豈不薄吾佛之遺訓乎
또 주장(拄杖)ㆍ주장(主杖)으로 지음. ▲조정사원8 주장(拄杖) 불타가 취봉산(鷲峯山; 鷲는 독수리 취)에 계셨다. 어떤 늙은 필추(苾芻)가 등산하여 올라가서 내려오다가 발이 미끄러져 땅에 자빠졌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응당 주장자(拄杖子; 子는 조사)를 수용(受容; 畜은 受容할 축)하라. 불타의 허락을 들은 다음 6중(衆)이 곧 바로 금은(金銀)과 잡채(雜綵; 綵는 비단 채) 등의 물건으로써 그 지팡이에 새기고 장식(裝飾)했다. 세속의 무리가 천박(淺薄)함을 혐오(嫌惡)하자 필추가 불타에게 사뢰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필추가 두 가지 인연이 있어 응당 주장자를 수용(畜)한다. 1은 늙고 여위어 힘이 없음이며 2는 병고(病苦)가 몸에 걸림이다(以上의 인연은 毘奈耶雜事六에 나옴). 또 제계(制戒)하여 대소(大小; 크고 작음. 크기)가 굵은 손가락을 지남을 얻지 못하게 했다. 바로 여금(如今)에 선가(禪家)가 유산(游山)하는 주장자이다. 혹은 위험을 타거나 험난을 건너면서 힘을 도우기 위한 연고이다. 지팡이 끝이 가늘고 약하여 드디어 작은 가지만큼 두고 쇠를 꿰어 길게 한 것이 이것이다. 행각하는 고사(高士; 高潔한 사람)가 많이들 굵고 무겁고 단단한 나무를 휴대(携帶)하여 가지고서 스스로 자랑하면서 단지 가로되 이것은 족히 도적을 막고 몸을 방어함에 쓰는 것이다 하매 왕왕(往往) 어리석은 속인(俗人)이 반드시 이르기를 선가류(禪家流)가 진실로 이와 같음이 마땅하다 하나니 어찌 우리 불타의 유훈(遺訓)을 경박(輕薄)히 여김이 아니겠는가.
服勤; 謂服持職事勤勞 服 事也
이르자면 직사(職事)를 복지(服持)하여 근로함. 복(服)은 사(事)임.
'태화당총서 다운로드 21종 파일첨부' 카테고리의 글 목록 (tistory.com)
'태화당총서 다운로드 21종 파일첨부' 카테고리의 글 목록
pyungsimsa.tistory.com
'육조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경 頓漸第八 07 (0) | 2022.12.30 |
---|---|
단경 頓漸第八 06 (0) | 2022.12.30 |
단경 頓漸第八 04 (0) | 2022.12.29 |
단경 頓漸第八 03 (0) | 2022.12.29 |
단경 頓漸第八 02 (0) | 2022.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