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志操)
) -->
석일경심금일소(昔日傾心今日疎)
세한봉교철석조(世罕鳳膠鐵石操)
부생하필수일궐(浮生何必守一橛)
숙공후윤매조소(孰恐後胤罵嘲笑)
시습가도유문재(時習賈島有文才)
능승능속수칭조(能僧能俗誰稱操)
심산탄복무위승(深山坦腹無爲僧)
유승시사창불조(猶勝市肆唱佛祖)
) -->
석일(昔日)에 경심(傾心)하다가 금일에 소원(疏遠)하나니
세상엔 봉교(鳳膠)와 철석 같은 절조(節操)는 드물더라
부생(浮生)에 어찌 한 말뚝만을 지킴이 필요하랴만
누가 후윤(後胤)의 욕하고 조소(嘲笑)함을 두려워하느냐.
시습(時習)과 가도(賈島)가 문재(文才)가 있었지만
능승능속(能僧能俗)하매 누가 지조를 칭송하리오
깊은 산에 탄복(坦腹)하는 무위(無爲)의 중이
오히려 저잣거리에서 불조(佛祖)를 노래함보다 낫다 하노라.
) -->
1행 경심(傾心)은 전심(專心)과 같은 뜻. 소(疎)는 성길 소.
2행 봉교(鳳膠)는 봉린주(鳳麟洲)에서 나오는데 주(洲)가 서해중(西海中)에 있으며 지면(地面)이 방정(方正)하며 일천오백 리며 사면엔 다 약수(弱水. 터럭도 가라앉는 물)가 둘러 있으며 위에 봉(鳳)과 기린(麒麟)이 많은데 수만 마리가 무리를 이룸. 봉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삶아 합해 달여서 아교(阿膠)를 만들며 속현교(續絃膠. 줄을 붙이는 아교)라 이름하며 일명(一名) 연금니(連金泥. 쇠를 잇는 풀)라고도 함. 궁노(弓弩. 弩는 쇠뇌 노)의 이미 끊어진 줄이나 도검(刀劒)의 이미 잘라진 쇠를 봉교(鳳膠)로 연결해 이으면 마침내 풀어지지 않음. 한무제(漢武帝)가 천한삼년(天漢三年. 98)에 북해(北海)를 순수(巡狩)하다가 항산(恒山)에 제사를 지냈는데 서왕모(西王母. 중국 崑崙山에 살았다는 옛 仙人. 姓은 楊 또는 侯. 이름은 回)가 사자를 파견해 영교(靈膠) 사량(四兩)을 헌납했다. 무제가 외고(外庫)에 송부(送付)했는데 봉교의 영묘(靈妙)함을 알지 못했음은 서국(西國)이 비록 멀긴 했으나 공자(貢者)가 기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제가 화림원(華林苑)에 행차(幸次)해 범을 쏘다 쇠뇌의 끈이 끊어졌는데 사자(使者)가 때에 어가(御駕)를 따르다가 인해 말씀을 올려 봉교 일분(一分)을 쓰기를 청했다. 입으로 적셔 쇠뇌의 끈을 잇자 무제가 놀라 가로되 이물(異物)이로다. 곧 무사 몇 사람을 시켜 무제를 대면해 그것을 당겼는데 종일 풀어지지 않았고 잇지 않은 때보다 나앗다. 봉교는 청색인데 벽옥(碧玉) 같다. 선전습유(仙傳拾遺)에 보임 [祖庭事苑卷四]. 한(罕)은 드물 한. 교(膠)는 아교 교.
3~4행 부생(浮生)은 덧없는 인생. 궐(橛)은 말뚝 궐. 숙(孰)은 누구 숙. 윤(胤)은 이을 윤. 후윤(後胤)은 후손. 매(罵)는 욕할 매. 조(嘲)는 희롱할 조.
5행 김시습(金時習)은 조선 초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호(號)는 매월당(梅月堂).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삼 일 간 통곡한 후 세상을 비관하여 승인이 되어 호(號)를 설잠(雪岑)이라 했다. 성종(成宗) 때 머리를 길러 47세에 결혼하였으나 상처(喪妻)하자 재혼하지 않고 홍산(鴻山)의 무량사(無量寺. 현재 扶餘의 無量寺)에서 죽었다. 그의 유언대로 절 옆에 묻었다가 3년 후에 파 보니 얼굴이 산 사람과 같았다 함 [불교사전]. 가도(賈島)는 당나라 때의 시인. 진사(進士)에 낙제(落第)한 후 승인이 되어 무본(無本)이라 호했는데 나중에 환속(還俗)함.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鳥宿池邊樹 僧敲月下門) 이라는 시를 읊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의 고(敲. 두드릴 고) 자(字)가 좋을지 퇴(推. 밀 퇴) 자(字)가 좋을지 정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경조윤(京兆尹)인 한유(韓愈)의 행차(幸次)에 부딪혀 꾸중을 받고 한유에게 사실대로 말하니 고(敲) 자가 좋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일화(逸話)가 유명함. 그리하여 시문(詩文)을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 하게 되었음 [불교사전].
6행 능승능속(能僧能俗)이란 능히 승(僧)이 됨과 능히 속(俗)이 됨을 자유자재하다는 말.
7행 탄복(坦腹)이란 배를 깔고 뒹굴음. 무위(無爲)란 화엄소주(華嚴疎主)가 이르되 위(爲)는 작(作)이니 작(作)하면 곧 생멸(生滅)이니라. 적막충허(寂寞沖虛)하고 담연상주(湛然常住)하여 저 조작(造作)이 없는지라 고로 이름이 무위(無爲)니라. 또 유가론(瑜伽論)에 이르되 생멸이 없고 인연(因緣)에 계속(繫屬)되지 않으므로 이 이름이 무위(無爲)니라. 또 지론(智論)에 이르되 얻음이 없는 고로 이름하여 가로되 무위(無爲)니라. 또 정명(淨名. 維摩經)에 이르되 수(數)에 떨어지지 않는 연고라 하다 [祖庭事苑卷六].
8행 사(肆)는 저자 사. 저잣거리에서 불조(佛祖)를 노래한다는 말은 포교승(布敎僧)을 가리킴.
'태화당수세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2년 동별(同別) (0) | 2019.08.04 |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2년 지음(知音) (0) | 2019.08.04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2년 호단(毫端) (0) | 2019.08.04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2년 미생(未生) (0) | 2019.08.04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2년 근체(根蔕) (0) | 2019.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