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3년 서분(鼠糞)

태화당 2019. 8. 5. 16:07

서분(鼠糞)

 

친절막과어부지(親切莫過於不知)

선설불여불개구(善說不如不開口)

약론정인일자무(若論正因一字無)

쟁나호갱오서시(爭奈好羹汚鼠矢)

 

친절은 알지 못함을 지날 게 없고

선설(善說)이 입을 열지 않음만 같지 못하도다

만약 정인(正因)을 논하자면 한 글자도 없다 하여도

맛있는 국이 쥐똥에 더럽혀짐을 어찌하리오.

 

   제목 해석 쥐똥.

   1행 계침(桂琛. 羅漢桂琛이니 玄沙師備法嗣)이 물어 가로되 상좌(上座. 禪僧에 대한 존칭)가 어디로 갈 것인가. 스님(法眼文益이니 桂琛法嗣)이 가로되 어정거리며 행각(行脚)하여 갈 것입니다. 가로되 행각사(行脚事)가 어떤 것인가. 스님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가로되 알지 못함이 가장 친절하니라. 스님이 활연(豁然)하여 개오(開悟)했다 [傳燈錄卷二十四 文益章].

   2행 수보리(須菩提)가 바위 가운데 연좌(燕坐. 은 편안할 연)했는데 제석(帝釋)이 꽃을 뿌리며 찬탄했다. 수보리가 물어 가로되 꽃을 뿌리며 찬탄하는 자가 이 어떤 사람인가. 대답해 가로되 나는 이 천제(天帝)니 존자(尊者)가 반야(般若)를 잘 설하심을 보았으므로 고로 와서 찬탄합니다. 수보리가 가로되 나는 반야에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노라. 제석이 이르되 존자가 설함이 없고 나는 이에 들음이 없으니 설함이 없고 들음이 없음이 이 참으로 반야를 설함입니다 [禪門拈頌卷二 六十九則].

   3~4행 옛적에 한 노숙(老宿. 나이가 많고 도덕이 높은 스님)이 있어 일하(一夏) 동안 사승(師僧. 일반적 스님을 가리킴)에게 설화(說話)하지 않자 어떤 중이 탄식해 가로되 내가 단지 이러히 일하(一夏)를 헛되이 보내야 하는가. 감히 화상(和尙)에게 불법(佛法) 설함을 바라지 않나니 정인(正因)이란 두 글자만 얻어 듣는다면 또한 옳으리라. 노숙이 듣고 곧 가로되 사리(闍黎. 阿闍黎의 준말. 敎授師로 번역함. 禪家에선 상대의 존칭으로 쓰임), 서속(?速. ?는 슬픈 소리 서. 은 슬플 속)하지 말아라. 만약 정인(正因)을 논할진댄 일자(一字)도 또한 없느니라. 말해 마치고선 이빨을 두드리고 가로되 적래(適來. 아까)에 무단(無端)이니 이러히 말함은 합당치 않도다. 인벽(隣壁. 옆방)에 한 노숙이 있어 듣고 가로되 맛있는 한 솥의 국이 한 알의 쥐똥에 더럽혀져버림을 입었도다 (好一釜羹 被一顆鼠糞汚却) [五燈全書卷百十九]. ()는 똥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