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조단비이설(可祖斷臂二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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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단비우적단(求法斷臂遇賊斷)
이설진위난증좌(二說眞僞難證左)
진신서즉불여무(盡信書則不如無)
진안재기부재타(眞贋在己不在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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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求法)하여 단비(斷臂)했는가 도적을 만나 잘렸는가
이설(二說)의 진위를 증좌(證左)하기 어렵도다
글을 다 믿는다면 곧 없음만 같지 못하나니
진안(眞贋)이 자기에게 있고 남에게 있음이 아니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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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석 가조(可祖. 二祖慧可祖師) 단비(斷臂)의 두 가지 설.
1~4행 도적을 만나 팔이 잘렸는데 법으로써 마음을 다스려 통고(痛苦)를 느끼지 못했다. 잘린 곳을 불로 태워 피가 멎자 솜으로 싸고 걸식 했는데 옛과 같았으며 일찍이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뒤에 임(林. 法林)이 또 도적에게 그 팔이 잘림을 입었는데 밤새도록 규호(叫號)하므로 혜가(慧可)가 위해 치료하고 그것을 싸주고 걸식해 임(林)에게 공급했다. 임이 혜가의 손이 불편함을 괴이하게 여겨 그에게 성을 내자 혜가가 가로되 병식(餠食)이 앞에 있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싸지 않는가. 임이 가로되 나는 팔이 없음을 가히 알지 못하는가. 혜가가 가로되 나도 또한 팔이 없거늘 다시 어찌 성냄이 옳으랴. 인해 서로 위곡(委曲. 仔細한 사정. 詳細)히 물어 비로소 공(功)이 있음을 알았으며 고로 세인(世人)이 이르되 무비림(無臂林)이라 했다 [續高僧傳卷十六 慧可章 唐道宣撰] (釋氏蒙求卷上 僧可章의 文과 大同小異). 도선율사(道宣律師)가 이조전(二祖傳)을 지어 가로되 혜가가 도적을 만나 팔이 잘렸는데 법으로써 마음을 다스려 애초에 통고(痛苦)가 없었다 하고 촉승신청(蜀僧神淸)은 그 설을 인용해 증거로 삼아 글을 썼는데 내가 그것을 읽으면서 매양 실소(失笑)했으며 또 도선(道宣)이 시비를 분변함에 어두움을 탄식했다. 이미 임법사(林法師)와 이조(二祖)를 배열(配列)해 연전(聯傳)하면서 임전(林傳)엔 곧 가로되 임이 도적을 만나 팔이 잘려 호규(號叫)하여 말지 않으므로 고로 사람들이 무비림(無臂林)이라고 불렀으며 임이 이조와 더불어 우선(友善. 친구로 잘 지냄)했다. 어느 날 같이 밥 먹다가 그도 또한 한 손으로써 드는 것을 괴이히 여겨 그 연고를 묻자 대답해 가로되 나도 팔이 없은 지 오래다 했는데 어찌 유종지인(游從之人. 서로 어울려 지내는 사람)이 도적에게 팔이 잘린 지 오래되었는데 알지 못하고 도리어 서로 묻는 자가 있으리오. 무릇 이조는 구법(求法)을 쓴 연고로 세인(世人)이 아는 자가 없었고 임공(林公)은 도적을 만났기 때문에 고로 사람들이 다 그것을 알았거늘 도선이 그에 뇌동(雷同)해 선성(先聖)을 욕무(辱誣. 욕되게 하고 속임)하니 허물이로다. 저 신청(神淸)은 무엇을 하는 자이기에 증거로 삼아 글을 썼으니 또 가이(可以) 일소(一笑)를 일으킨다. 그러나 맹자(孟子)가 가로되 글을 다 믿으면 곧 글이 없음만 같지 못하다 (盡信書則 不如無書) 했으니 학자(學者)가 또한 가이(可以) 이에서 거울삼아야 하리라 [林間錄卷下]. 좌(左)는 증거 좌. 안(贋)은 바르지 못할(不直) 안. 가짜(僞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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