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刹
應法師云 浮圖名刹 訛也 應云剌瑟致 剌 刀割切 此云竿 人以柱代之 名爲刹柱 以安佛骨 以西國竿頭安舍利 故卽幡刹竿也 長阿含經云 若沙門於此法中 勤苦得一法者 便當竪幡告四遠 今有少欲知足之人居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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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應法師(唐나라 때의 승인. 一切經音義二十五卷을 지었음)가 이르되 浮圖를 刹이라고 이름함은 그릇되나니 응당 剌랄瑟致라고 일러야 한다. 剌은 刀割切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竿이다. 사람들이 柱로 그것을 대체하므로 이름해 刹柱며 佛骨을 안치한다. 서국의 竿頭엔 사리를 안치하므로 고로 곧 幡刹竿이다. 장아함경(二十二卷 後秦 佛陀耶舍 共竺佛念譯. 卷第十二)에 이르되 만약 사문이 이 법 가운데에 勤苦하여 一法을 얻은 자는 곧 마땅히 幡을 세우고 四遠(四方)에 告하나니 지금 少欲知足의 사람이 있어 여기에 거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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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石麟
徐陵 字孝穆 母臧氏 嘗夢五色雲化爲鳳 集左肩上 已而誕 陵年數歲 家人携以候沙門寶誌 誌摩其頂曰 天上石麒麟也 光宅寺慧雲法師 每嗟其早就 爲之顔回 陵官至光祿大夫 太子少傅 年七十七卒 陵少而崇信釋敎 經論多所釋解 陳後主在東宮 令陵講大品經 義學名僧自遠雲集 每講筵商較 四坐莫能與抗 目有靑精 時人以爲聦慧之相 見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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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陵은 字가 孝穆목이며 母는 臧氏다. 일찍이 꿈에 五色雲이 변화해 鳳이 되어 왼쪽 어깨 위에 모였으며 이미 그러고선 탄생했다. 陵의 나이 數歲에 家人이 데리고 沙門 寶誌(?-514. 宗統編年卷之八)에게 問候하자 誌가 그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가로되 천상의 石麒麟이로다. 광택사의 혜운법사가 매양 그 早就를 嗟歎해 顔回로 삼았다. 陵은 벼슬이 光祿大夫와 太子少傅에 이르렀으며 나이 七十七에 죽었다. 陵이 少時에 釋敎를 崇信했으며 경론을 많이 釋解한 바 陳(557-589)의 後主(재위 582-589)가 동궁에 있으면서 陵으로 하여금 大品經(摩訶般若波羅蜜經 二十七卷 後秦 鳩摩羅什譯)을 강설케 하자 義學名僧이 먼 곳에서부터 운집했으며 매번 講筵(筵은 대자리 연. 좌석 연)에서 商較하매 四坐(사방의 坐衆)가 능히 더불어 항거하지 못했다. 눈에 靑精이 있어 時人이 聦慧의 모양으로 삼았다. 南史(八十卷. 唐의 李延壽가 지은 南朝의 晉 宋 齊 梁 四國의 百七十年 동안의 事實을 적은 역사책. 卷六十二)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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