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六 風穴衆吼集 31 사대(思大)

태화당 2019. 9. 7. 09:09

思大515-577. 佛祖統紀卷第六 台宗第三祖 慧思尊者는 성이 李氏元魏南豫州 武津 사람이다. 陳帝가 일컫기를 大禪師라 했으므로 思大의 이름이 대개 이에서 얻어졌다. 大建九年577 六月 二十二日示寂했고 六十三이며 四十九. 전등록(卷第二十七)에 이르되 誌公이 사람을 시켜 思師에게 일러 가로되 어찌하여 下山해서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가. 스님이 알려 가로되 삼세 제불이 나의 한 입에 삼켜짐을 입었거늘 무슨 가히 교화할 중생이 있으리오. 이제 南岳願文考察하매 스스로 탄생한 해를 서술()하되 梁武 天監十四年515하며 陳 光大二年568에 이르러 비로소 남악에 이르렀고 때에 나이가 五十四였다. 誌公은 이미 입멸했으며(誌公天監十三年514示寂했음) 梁武世代에서 오래인지라 이 遣問이 있다 함은 不當하다 云云.

寶誌 傳語與思大 云何不下山敎化衆生 目視雲漢作甚麽 思云 三世諸佛被我一口呑盡 有何衆生可度

 

寶誌가 말을 전해 思大에게 주었다. 어찌하여 下山해서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눈으로 雲漢(은하수. 하늘)만 보아서 무엇하리오. 가 이르되 삼세 제불이 나의 한 입에 삼켜 없어짐을 입었거늘 무슨 가히 제도할 중생이 있으리오.

 

劈析將去

劈析當作䌟 音壁錫 博雅云 極也 一曰欲死貌 遠浮山九帶作踣跳入虎澗 折脚上漁船書에 가 없음.

 

劈析은 마땅히 (은 띠 벽. )으로 지어야 함. 음이 벽석임. 博雅에 이르되 이다. 혹은() 가로되 죽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遠浮山(浮山法遠)九帶踣跳(는 쓰러질 부, . 곧 자빠지고 뛰는 것)하며 虎澗에 들어가고 折脚하고 漁船에 오른다로 지어졌음.

 

禮天王

叢林多指南陽國師禮天王 非也 嘗於經傳見之 如本行經 太子生已 西國之法 合禮天神 其名摩醯首羅 其神極惡而復有靈 抱太子至其神所 神自離座下階 先禮太子 神曰 此是大聖太子 不應禮 餘受禮 頭破七分 又不拜王論 有五戒信士 見神不禮 王曰 何爲不禮 曰 恐損神故 王曰 但禮 信士乃禮 其神形儀粉碎 又迦昵色迦王 受佛五戒 曾神祠中禮 其神像自倒 後守神者 作佛形像 在神冠中 王禮不倒 怪而問之 曰 冠中有佛像 王大喜 知佛最勝而恕之 又感通錄云 唐蜀川釋寶瓊 出家正素 讀誦大品 本連比什邡 竝是米族 初不奉佛 沙門不入其鄉 故老人女婦不識者衆 瓊思拔濟 待其會衆 便往赴之 不禮而坐 道黨咸曰 不禮天尊 非沙門也 瓊曰 邪正道殊 所奉各異 天尙禮我 我何得禮老君乎 衆議紛紜 瓊曰 吾若下禮 必貽辱也 卽禮一拜 道像座動搖不安 又禮一拜 反倒狼藉在地 遂合衆禮瓊 一時回信 予徧覽諸緣 乃知志信奉佛者 不應禮神 禮之 非神所利 詳讀南陽廣錄而無此緣 置問者指爲國師 蓋看閱之不審也感通錄으로 지어졌음.

 

총림에서 많이 南陽國師를 지목하여 天王에게 예배한 것이라 하지만 아님. 일찍이 經傳에서 그것을 보았으니 예컨대() 본행경에 태자가 탄생한 다음 서국의 으론 합당히 天神에게 예배해야 했다. 그 이름은 摩醯首羅였으며 그 은 극악하고 다시 靈驗이 있었다. 태자를 안고 그 신의 처소에 이르자 신이 스스로 자리를 떠나 섬돌에 내려와 먼저 태자에게 예배했다. 신이 가로되 이는 이 大聖太子라서 응당 예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餘他가 예배를 받으면 머리가 깨어져 일곱으로 나뉠 것입니다(釋門正統卷一에 이르되 세 살에 淨飯王太子를 데리고 天神廟禮謁했는데 神象敬禮를 드렸다. 왕이 놀라며 가로되 나의 아들은 天神 가운데 다시 존귀하다. 인하여 그를 해 가로되 天中天이라 했다) 不拜王論五戒信士(五戒를 받은 淸信士)가 있었는데 을 보고도 예배하지 않았다. 왕이 가로되 무엇 때문에 예배하지 않는가. 가로되 신을 손상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왕이 가로되 단지 예배하라. 信士가 이에 예배하자 그 신의 形儀粉碎됐다(위의 글은 翻譯名義集四에 나옴. 不拜王論을 인용했음). 迦昵色迦王(迦膩色迦王이니 西域記卷第二에 이르되 여래가 열반한 뒤 第四百年君臨하여 膺運贍部洲를 통치했다)이 불타의 五戒를 받았는데 일찍이 神祠 중에서 예배하자 그 神像이 저절로 거꾸러졌다. 뒤에 守神者가 부처의 形像을 만들어 冠中에 두자 왕이 예배해도 거꾸러지지 않았다. 괴이하게 여겨 그것을 물으니 가로되 冠中佛像이 있습니다. 왕이 크게 기뻐했다. 불타가 가장 수승한 줄 알았으며 그것을 용서했다(위의 글은 翻譯名義集四에 나옴). 感通錄(卷下)에 이르되 나라 蜀川釋寶瓊은 출가하여 바르고 素朴했으며 大品經(摩訶般若波羅蜜經)을 독송했다. 本邑什邡(어떤 책에 十方으로 지어졌음)連比(는 이웃할 비. 잇닿을 비)했으며 아울러 이 米族(胡姓이니 곧 胡族인 듯함)이며 애초에 奉佛하지 않았으며 沙門이 그 고을에 들어가지 않았다. 고로 노인과 女婦(婦女者)가 알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拔濟(拔除하여 濟度)를 생각하고 그 무리가 모임을 기다렸다가 바로 거기에 가서 다다랐다. 예배하지 않고 앉자 道黨(道敎의 무리)이 다 가로되 天尊(道敎에서 神仙의 존칭. 흔히 老子를 일컬음. 불교에선 부처를 가리키는 말)에게 예배하지 않으면 沙門이 아니다. 경이 가로되 邪正의 길이 다르며 받드는 바도 각기 다르다. 천존이 오히려 나에게 예배해야 하거늘 내가 왜 老君(老子)에게 예배함을 얻으리오. 대중의 의논이 紛紜(은 어지러울 분. 은 어지러울 운)하자 경이 가로되 내가 만약 예배를 내린다면 반드시 을 끼칠(는 끼칠 이) 것이다. 곧 예배를 一拜하자 道像이 자리까지 動搖하며 不安했다. 또 예배를 一拜하자 뒤집혀() 거꾸러져서 狼藉(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움)하여 땅에 있었다. 드디어 會合한 무리가 경에게 예배하였고 一時信仰을 돌렸다. 내가 諸緣徧覽하고 이에 알았으니 志信으로 봉불하는 자는 응당 에게 예배하지 않아야 한다. 그에게 예배하면 신에게 이익되는 바가 아니다. 南陽廣錄을 상세히 읽었는데 이 인연이 없다. 물음을 둔 자가 지목하여 국사라 하였거니와 대개 看閱이 자세하지() 않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