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七 蓮華峯語錄 5 무적(無適)

태화당 2019. 9. 7. 11:43

無適은 맞을 적. 마침 적. 갈 적.

都歷切 無適無莫 謂無親疏也

都歷切이니 無適無莫은 이르자면 親疏가 없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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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聲佛事

華嚴疏主引楞伽四云 大慧 非一切佛土言語說法 故有國土 直視不瞬 口無言說 名爲說法 乃至云 有佛國土 動身名說 又香積世界 食香飯而三昧顯 極樂佛國 聽風柯而正念成 絲竹可以傳心 目擊以之存道 旣語默視瞬皆說 則見聞覺知盡聽 苟能得法契神 何必要因言說 況華嚴性海 雲臺寶網同演妙音 毛孔光明皆能說法 花香雲樹卽法界之法門 刹土衆生本十身之正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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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疏主(澄觀)楞伽四(入楞伽經 十卷 元魏 天竺三藏 菩提留支譯. 卷第四)를 인용해 이르되 大慧여 일체 佛土가 언어로 설법함이 아니니 고로 어떤 국토는 直視하여 不瞬(눈을 깜작이지 않음)하고 입으로 言說함이 없음을 이름해 설법이며 내지 이르되 어떤 불국토는 몸을 움직임이 이름이 이다(以上楞伽經文을 요약한 것임). 香積世界香飯을 먹으면 삼매가 나타나고 極樂佛國風柯(가지에 부는 바람)를 들으면 正念을 이루나니 絲竹(管絃이니 絃樂器 竹管樂器)可以 마음을 전하고 目擊하매 이를 써 를 둔다. 이미 語默視瞬이 다 설함이라 곧 見聞覺知가 다 들음이다. 진실로 능히 법을 얻어 精神에 계합한다면 何必이면 언설을 인함을 하리오. 하물며 華嚴性海雲臺寶網이 한가지로 妙音을 연설하고 毛孔光明이 다 능히 설법하나니 花香雲樹가 곧 법계의 법문이며 刹土와 중생이 본래 十身正體이다(위의 글은 華嚴經疏卷第三에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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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幡

國師上堂云 古聖方便猶如河沙 祖師道 非風幡動 仁者心動 斯乃無上心印法門 我輩是祖師門下客 合作麽生會祖師意 莫道風幡不動 汝心妄動 莫道不撥風幡 就風幡通取 莫道風幡動處是甚麽 有云 道附物明心 不須認物 有云 色卽是空 有云 非風幡動 應須妙會 如是解會 與祖師意旨 有何交涉 旣不許如是會 諸上座便合知悉 若於者裏徹底悟去 何法門而不明 百千諸佛方便一時洞了 更有甚麽疑情 所以古人道 一了千明 一迷萬惑 上座 豈是今日會得一則 明日一則又不會也 莫是有一分向上事難會 下劣凡夫不會麽 如此見解 設經塵劫 只自勞神乏思 無有是處 見傳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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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德韶國師)上堂해 이르되 옛 성인의 방편이 오히려 항하의 모래와 같나니 조사가 말하되 風幡(바람과 깃발)의 움직임이 아니라 仁者(상대의 존칭)의 마음이 움직임이라 함은 이는 곧 위없는 心印의 법문이다. 우리 무리는 이 조사의 門下客이거늘 합당히 어떻게 조사의 뜻을 알아야 하는가. 風幡이 움직임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 망령되이 움직임이라고 말하지 말아라. 풍번을 없애지 않고 풍번으로 나아가 통틀어 취함이라고 말하지 말아라. 풍번이 움직이는 곳이 이 무엇인고 라고 말하지 말아라. 어떤 이는 이르되 는 사물에 依附하여 마음임을 밝히므로 사물을 認知함을 쓰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르되 이 곧 이 이다. 어떤 이는 이르되 風幡이 움직임이 아님에서 응당 한 앎을 써야 한다. 이와 같은 解會()가 조사의 意旨와 무슨 交涉이 있으리오. 이미 이와 같이 앎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諸上座는 바로 합당히 知悉()해야 하리니 만약 이 속에서 철저히 깨달아 간다면 무슨 법문인들 밝히지 못하리오. 百千諸佛의 방편을 일시에 환히() 깨닫거늘 다시 무슨 疑情이 있으리오. 소이로 古人이 말하되 한 번 깨치면 을 밝히고 한 번 하면 한다 했다. 上座가 이미 이 今日一則會得했으나 明日一則을 또 不會한다 하면 이 一分向上事는 알기 어려움이 있어 下劣한 범부는 알지 못한다 함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견해로는 설사 塵劫(塵點劫이니 티끌 같이 많은 劫數)을 경과하더라도 단지 스스로 정신을 노고롭게 하고 思惟를 궁핍하게 하므로 옳은 곳이 있지 않느니라. 전등록(卷第二十五)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