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記]問 若言始覺同於本覺離生滅者 此說云何通 如攝論云 本旣常住 末依於本 相續恒在 乃至廣說 答 二意異故 理不相違 何者 此論主意 欲顯本由不覺動於靜心 今息不覺還歸本靜 故成常住 彼攝論意 欲明法身本來常住不動 依彼法身起福慧二行 能感萬德報果 旣爲因緣所起 是故不離生滅 故說相續 具義而說 始成萬德 要具二義 依前義故常住 依後義故生滅 生滅常住不相妨礙 以一一念迷徧三世不過一念故 如似一一毛孔皆徧十方 雖徧十方不增毛孔 佛佛如是無障無礙 豈容偏執於其間哉 如華嚴經偈云 牟尼離三世 相好悉具足 住於無所住 法界悉淸淨 因緣故法生 因緣故法滅 如是觀如來 究竟離癡惑 今二論主 各述一義 有何相妨耶
[별기] 묻되 만약 말하되 시각이 본각과 한가지로 생멸을 여의었다면 이 설을 어떻게 통하는가, 예컨대(如) 섭론(攝論)에 이르되 본(本)은 이미 상주(常住)하고 말(末)은 본(本)에 의해 상속하여 항상 있는지라 내지 광설(廣說)했다. 답하되 두 뜻이 다른 고로 이치가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何者) 이 논주(論主)의 뜻은 본래(本) 불각으로 말미암아 정심(靜心)을 동(動)했다가 여금에 불각을 쉬어 본정(本靜)으로 환귀(還歸)함을 나타내고자 한지라 고로 상주(常住)를 이룬다. 그 섭론의 뜻은 법신은 본래 상주하여 부동(不動)이지만 저 법신에 의해 복혜(福慧) 2행(行)을 일으켜 능히 만덕(萬德)의 과보를 감득(感得; 感)하나니 이미 인연으로 일어난 바이기 때문에(爲) 이런 고로 생멸을 여의지 않음임을 밝히고자 함인지라 고로 상속(相續)을 설했다. 뜻을 갖추어 설하자면 비로소 만덕을 이루려면 요컨대 두 뜻을 갖추어야 하나니 앞의 뜻에 의하는 고로 상주하고 뒤의 뜻에 의하는 고로 생멸하거니와 생멸과 상주가 서로 방애(妨礙)하지 않음은 하나하나의 상념(念)이 미(迷)하여 3세(世)에 두루하더라도 1념에 불과(不過)하기 때문의 연고다. 흡사 하나하나의 모공(毛孔)이 모두 십방(十方)에 두루함과 같아서 비록 십방에 두루하더라도 모공이 늘지 않듯이 불(佛)과 불(佛)도 이와 같이 무장무애(無障無礙)하거늘 어찌 그 사이에 편집(偏執)함을 용납(容)하겠는가. 예컨대(如) 화엄경(60화엄7) 게에 이르되 모니(牟尼; 석가모니)는 3세(世)를 여읜지라/ 상호(相好)를 모두 구족했으며/ 머물 바 없음에 머무니/ 법계가 모두 청정하다/ 인연인 고로 법이 생하고/ 인연인 고로 법이 멸하나니/ 이와 같이 여래를 관하면/ 구경에 치혹(癡惑)을 여의리라. 지금 두 논주가 각기 1의(義)를 서술했거늘 무슨 상방(相妨)이 있겠는가.
●徧; 저본에 偏으로 지어졌음. 타본에 의해 고쳤음.
●섭론(攝論)에 이르되; 섭대승론석15(攝大乘論釋十五)에 나오는 말임.
●모니(牟尼); 현응음의18(玄應音義十八). 모니(牟尼) 경중에 혹 문니(文尼)로 짓는다. 구역에 말하되 인(仁)이라 했다. 응당 이르기를 무니(茂泥)니 여기에선 이르되 선(仙)이다. 선(仙)은 내외에 통한다. 이르자면 오래 산림에 있으면서 수심학도(修心學道)하는 자이다.
●상호(相好); 불타의 신체로 나아가 말하면 미묘한 상상(相狀)임. 가히 요별(了別)하는 것은 이를 일러 상(相)이라 하고 세상(細相)의 가히 애요(愛樂)할 만한 것은 일컬어 호(好)라 함. 상(相)이란 것은 대상(大相)이며 호(好)란 것은 다시 대상을 장엄하는 소상(小相)이 됨. 장륙(丈六)의 화신(化身)으로 나아가 말하면 곧 상(相)에 32가 있고 호(好)에 80이 있음. 보신(報身)으로 나아가 말하면 곧 팔만사천 내지 무량의 상과 호가 있음 [觀無量壽經 法界次第下 智度論二十九 大乘義章二十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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