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론소기

기신론소기회본(起信論疏記會本) 102

태화당 2020. 9. 20. 10:20

或現天像 菩薩像 亦作如來像 相好具足 或說陀羅尼 或說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 或說平等空無相無願 無怨無親 無因無果 畢竟空寂 是眞涅槃 或令人知宿命過去之事 亦知未來之事 得他心智 辯才無礙 能令衆生貪著世間名利之事 又令使人數瞋數喜 性無常準 或多慈愛 多睡多病 其心懈怠 或卒起精進 後便休廢 生於不信 多疑多慮 或捨本勝行 更修雜業 若著世事種種牽纏 亦能使人得諸三昧少分相似 皆是外道所得 非眞三昧 或復令人若一日若二日若三日乃至七日住於定中 得自然香美飲食 身心適悅 不飢不渴 使人愛著 或亦令人食無分齊 乍多乍少 顔色變異 以是義故 行者常應智慧觀察 勿令此心墮於邪網 當勤正念 不取不著 則能遠離是諸業障 應知外道所有三昧 皆不離見愛我慢之心 貪著世間名利恭敬故 眞如三昧者 不住見相 不住得相 乃至出定 亦無懈慢 所有煩惱 漸漸微薄 若諸凡夫不習此三昧法 得入如來種性 無有是處 以修世間諸禪三昧 多起味著 依於我見 繫屬三界 與外道共 若離善知識所護 則起外道見故

 

혹은 천상(天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나타내거나 또한 여래상(如來像)의 상호구족(相好具足)함을 지어서 혹은 다라니(陀羅尼)를 설하며 혹은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를 설하며 혹은 평등한 공()이라서 무상(無相)하고 무원(無願)하며 무원무친(無怨無親)하고 무인무과(無因無果)라서 필경 공적(空寂)이 이 진열반(眞涅槃)이라고 설하며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숙명(宿命)의 과거지사(過去之事)를 알며 또한 미래지사(未來之事)도 알아서 타심지(他心智)를 얻어 변재(辯才)가 무애(無礙)하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의 명리지사(名利之事)에 탐착(貪著)하게 하며 또 사람으로 하여금 삭진삭희(數瞋數喜; 자주 성내고 자주 기뻐함)하여 성품이 상준(常準; 항상한 표준)이 없으며 혹은 자애(慈愛)가 많으며 다수다병(多睡多病)하여 그 마음이 해태(懈怠)하며 혹은 갑자기() 정진(精進)을 일으켰다가 후에 문득(便) 휴폐(休廢)하며 불신(不信)을 내어 다의다려(多疑多慮)하며 혹은 본래의 승행(勝行)을 버리고 다시 잡업(雜業)을 닦으며 혹은() 세사(世事)에 탐착(貪著; )하여 갖가지로 견전(牽纏)케 하며 또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삼매를 얻어서 소분(少分) 상사(相似)하게 하나니 모두 이 외도(外道)의 소득(所得)이라서 참 삼매가 아니다. 혹은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혹() 1, 2, 3일 내지 7일 동안 정중(定中)에 머물면서 자연(自然)의 향미(香美)의 음식을 얻어서 신심(身心)이 적열(適悅)하여 불기불갈(不飢不渴)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愛著)하게 하며 혹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음식에 분제(分齊)가 없어서 사다사소(乍多乍少; 별안가 많다가 별안간 적음)케 하여 안색(顔色)을 변이(變異)케 하나니 이 뜻을 쓰는() 연고로 행자는 늘 응당 지혜로 관찰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사망(邪網)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응당() 부지런히 상념을 바르게 하여(正念) 불취불착(不取不著)해야 곧 능히 이런 모든 업장을 원리(遠離)한다. 응당 알라 외도가 소유한 삼매는 모두 견애(見愛)와 아만(我慢)의 마음을 여의지 못하나니 세간의 명리(名利)와 공경(恭敬)에 탐착하는 연고다. 진여삼매(眞如三昧)란 것은 견상(見相)에 부주(不住)하며 득상(得相)에도 부주(不住)하며 내지 출정(出定)하더라도 또한 해만(懈慢)이 없어서 소유한 번뇌가 점점 미박(微薄)하다. 만약 모든 범부가 이 삼매법을 익히지() 않고서도 여래종성(如來種性)에 득입(得入)한다 하면 옳은 곳이 있지 않나니 세간의 제선삼매(諸禪三昧)를 닦음으로써 미착(味著)을 많이 일으킴은 아견(我見)에 의함이라서 3()에 계속(繫屬)하여 외도와 더불어 함께()하나니 만약 선지식의 소호(所護)를 여의면 곧 외도견(外道見)을 일으키는 연고다.

 

第二廣釋 於中有三 一者廣顯魔事差別 以是義故以下 第二明其對治 應知外道以下 第三簡別眞僞 初中卽明五雙十事 一者現形說法爲雙 二者得通起辯爲雙 謂從或令人以下 乃至名利之事也 三者起惑作業爲雙 謂又令使人以下 乃至種種牽纏也 四者入定得禪爲雙 謂從亦能使以下 乃至使人愛著也 五者食差顔變爲雙 文處可見也 問 如見菩薩像等境界 或因宿世善根所發 云何簡別 判其邪正 解云 實有是事 不可不愼 所以然者 若見諸魔所爲之相 謂是善相 悅心取著 則因此邪僻 得病發狂 若得善根所發之境 謂是魔事 心疑捨離 卽退失善利 終無進趣 而其邪正實難取別 故以三法驗之可知 何事爲三 一以定硏磨 二依本修治 三智慧觀察 如經言 欲知眞金 三法試之 謂燒 打 磨 行人亦爾 難可別識 若欲別之 亦須三試 一則當與共事 共事不知 當與久共處 共處不知 智慧觀察 今藉此意以驗邪正 謂如定中境相發時邪正難了者 應當深入定心 於彼境中不取不捨 但平等定住 若是善根之所發者 定力逾深 善根彌發 若魔所爲 不久自壞 第二依本修治者 且如本修不淨觀禪 今則依本修不淨觀 若如是修境界增明者 則非僞也 若以本修治漸漸壞滅者 當知是邪也 第三智慧觀察者 觀所發相 推驗根原 不見生處 深知空寂 心不住著 邪當自滅 正當自現 如燒眞金 其光自若 是僞不爾 此中定譬於磨 本猶於打 智慧觀察類以火燒 此以三驗 邪正可知也 問 若魔能令我心得定 定之邪正 如何簡別 解云 此處微細 甚難可知 且依先賢之說 略示邪正之歧 依如前說九種心住門次第修習 至第九時 覺其支體運運而動 當動之時 卽覺其身如雲如影 若有若無 或從上發 或從下發 或從腰發 微微徧身 動觸發時 功德無量 略而說之 有十種相 一靜定 二空虛 三光淨 四喜悅 五猗樂 六善心生起 七知見明了 八無諸累縛 九其心調柔 十境界現前 如是十法 與動俱生 若具分別 則難可盡 此事旣過 復有餘觸次第而發 言餘觸者 略有八種 一動 二痒 三涼 四暖 五輕 六重 七澀 八滑 然此八觸 未必具起 或有但發二三觸者 發時亦無定次 然多初發動觸 此是依麤顯正定相 次辨邪相 邪相略出十雙 一增減 二定亂 三空有 四明闇 五憂喜 六苦樂 七善惡 八愚智 九脫縛 十强柔 一增減者 如動觸發時 或身動手起 脚亦隨動 外人見其兀兀如睡 或如著鬼 身手足紛動 此爲增相 若其動觸發時 若上若下 未及徧身 卽便壞滅 因此都失境界之相 坐時蕭索 無法持身 此爲減相 二定亂者 動觸發時 識心及身 爲定所縛 不得自在 或復因此便入邪定 乃至七日 此是定過 若動觸發時 心意亂擧 緣餘異境 此爲亂過也 三空有者 觸發之時 都不見身 謂證空定 是爲空過 若觸發時 覺身堅實 猶如木石 是爲有過也 四明闇者 觸發之時 見外種種光色 乃至日月星辰 是爲明過 若觸發時 身心闇昧 如入闇室 是爲闇過也 五憂喜者 觸發之時 其心熱惱憔悴不悅 是爲憂失 若觸發時 心大踊悅 不能自安 是爲喜失也 六苦樂者 觸發之時 覺身支體處處痛惱 是爲苦失 若觸發時 知大快樂 貪著纏縛 是爲樂失也 七善惡者 觸發之時 念外散善 破壞三昧 是爲善失 若觸發時 無慚愧等諸惡心生 是惡失也 八愚智者 觸發之時 心識迷惑 無所覺了 是爲愚失 若觸發時 知見明利 心生邪覺 是爲智失也 九縛脫者 或有五蓋 及諸煩惱 覆障心識 是爲縛失 或謂證空得果 生增上慢 是爲脫失也 十强柔者 觸發之時 其身剛强 猶如瓦石 難可迴轉 是爲强失 若觸發時 心志輭弱 易可敗壞 猶如輭渥 不堪爲器 是爲柔失也 此二十種邪定之法 隨其所發 若不識別 心生愛著 因或失心狂亂 或哭或笑 或驚漫走 或時自欲投巖赴火 或時得病 或因致死 又復隨有如是發一邪法 若與九十五種外道鬼神法中一鬼神法相應 而不覺者 卽念彼道 行於彼法 因此便入鬼神法門 鬼加其勢 或發諸邪定 及諸辯才 知世吉凶 神通奇異 現希有事 感動衆人 世人無知 但見異人 謂是賢聖 深心信伏 然其內心專行鬼法 當知是人遠離聖道 身壞命終 墮三惡趣 如九十六外道經廣說 行者若覺是等邪相 應以前法驗而治之 然於其中亦有是非 何者 若其邪定一向魔作者 用法治之 魔去之後 則都無復毫釐禪法 若我得入正定之時魔入其中現諸邪相者 用法却之 魔邪旣滅 則我定心明淨 猶如雲除日顯 若此等相雖似魔作 而用法治猶不去者 當知因自罪障所發 則應勤修大乘懺悔 罪滅之後定當自顯 此等障相甚微難別 欲求道者不可不知 且止傍論 還釋本文 上來廣辨魔事差別 以是已下 第二明治 言智慧觀察者 依自隨分所有覺慧 觀諸魔事察而治之 若不觀察 卽墮邪道 故言勿令墮於邪網 此是如前三種驗中 正爲第三智慧觀察 言當勤正念不取不著者 總顯三中前之二法 今於此中大乘止門 唯修理定 更無別趣 故初定硏 幷依本修 更無別法 所以今說當依本修大乘止門正念而住 不取不著者 邪不干正 自然退沒 當知若心取著 則棄正而成邪 若不取著 則因邪而顯正 是知邪正之分 要在著與不著 不著之者 無障不離 故言遠離是諸業障也 應知外道以下 第三簡其眞僞 於中有二 初擧內外以別邪正 先邪 後正 文相可知 若諸以下 次對理事以簡眞僞 於中初顯理定是眞 行者要修眞如三昧 方入種性不退位中 除此更無能入之道 故言不習無有是處 然種性之位有其二門 一十三住門 初種性住 種性者 無始來有 非修所得 義出瑜伽及地持論 二六種性門 初習種性 次性種性者 位在三賢 因習所成 出本業經及仁王經 於中委悉 如一道義中廣說也 今此中言如來種性者 說第二門習種性位也 以修世間以下 次顯事定之僞 謂不淨觀安那槃念等 皆名世間諸三昧也 若人不依眞如三昧 直修此等事三昧者 隨所入境 不離取著 取著法者 必著於我 故屬三界 與外道共也 如智度論云 諸法實相 其餘一切皆是魔事 此之謂也 上來第三明魔事竟

 

2 광석(廣釋)이니 이 중에 셋이 있다. 1자는 마사(魔事)의 차별을 광현(廣顯)했고 이 뜻을 쓰는() 연고로 이하는 제2 그 대치(對治)를 밝혔고 응당 알라 외도가 이하는 제3 진위(眞僞)를 간별(簡別)했다. 초중(初中)에 곧 5쌍의 10()를 밝혔다. 1자는 현형(現形)과 설법이 쌍이 된다. 2자는 득통(得通)과 기변(起辯)이 쌍이 되나니 이르자면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하로 좇아 내지 명리지사(名利之事). 3자는 기혹(起惑)과 작업(作業)이 쌍이 되나니 이르자면 또 사람으로 하여금 이하 내지 갖가지로 견전(牽纏)함이다. 4자는 입정(入定)과 득선(得禪)이 쌍이 되나니 이르자면 역능사(亦能使) 이하로 좇아 내지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愛著)하게 함이다. 5자는 식차(食差)와 안변(顔變)이 쌍이 되나니 문처(文處)를 가히 볼 것이다. 묻되 예컨대() 보살상 등의 경계를 봄이 혹 숙세의 선근으로 인해 일어난 바(所發)라면 어떻게 간별(簡別)해야 그 사정(邪正)을 판단하는가. 해석해 이르되 실로 이런 일이 있더라도 가히 삼가지 아니치 못하리니 그러한 소이는(所以然者) 만약 제마(諸魔)의 소위지상(所爲之相)을 보고서 이르기를 이 선상(善相)이라 하여 기쁜 마음(悅心)으로 취착(取著)한다면 곧 이 사벽(邪僻)으로 인해 병을 얻어 발광(發狂)할 것이며 만약 선근으로 일어난() 바의 경계를 얻고도 이르되 이 마사(魔事)라 하여 마음에 의심해 사리(捨離)하면 곧 선리(善利)를 퇴실(退失)하여 마침내 진취(進趣)가 없으리니 그 사정(邪正)은 실로 취별(取別)하기가 어려운지라 고로 3법으로써 그것()을 시험하면 가히 안다. 어떤 일이 셋이 되는가, 1은 정()으로써 연마(硏磨)하며 2는 의본(依本)하여 수치(修治)함이며 3은 지혜로 관찰함이다. 예컨대() 경에 말하되 진금(眞金)을 알고자 하거든 3법으로 그것()을 시험할지니 이르자면 소()ㆍ타()ㆍ마(). 행인도 또한 그러하여() 가히 분별해() 알기() 어렵나니 만약 그것()을 분별하고자 할진댄 또한 3()를 쓴다(). 1은 곧 마땅히 더불어 공사(共事; 함께 일함)함이며 공사(共事)해도 알지 못하면 마땅히 더불어 오래 공처(共處; 함께 거처함)하며 공처(共處)해도 알지 못하면 지혜로 관찰하라. 여금에 이 뜻을 빌려() 사정(邪正)을 시험한다. 이르자면 예컨대() 정중(定中)에 경상(境相)이 발()할 때 사정(邪正)을 요지(了知)하기 어려운 것은 응당 정심(定心)에 심입(深入)하여 그 경중(境中)에서 불취불사(不取不捨)하고 단지 평등히 정주(定住; 정에 머묾)할지니 만약 이 선근(善根)의 소발(所發)이라면 정력(定力)이 더욱() 깊어져서 선근이 더욱() 발하겠지만 만약 마()의 소위(所爲)라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무너지리라. 2 의본(依本)하여 수치(修治)한다는 것은 차여(且如; 예를 듦) 본래() 부정관선(不淨觀禪)을 닦았다면 여금에도 곧 의본(依本)하여 부정관(不淨觀)을 닦나니 만약 이와 같이 닦아 경계가 증명(增明)한다면 곧 거짓()이 아니거니와 만약 본()으로써 수치(修治)하매 점점 괴멸(壞滅)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는 사(). 3 지혜로 관찰한다는 것은 소발(所發)의 상()을 관하여 근원(根原; 根源)을 추험(推驗)하되 생처(生處)가 보이지 않고 공적(空寂)함을 심지(深知)하여 마음이 주착(住著)하지 않으면 사()가 마땅히 자멸(自滅)하고 정()은 마땅히 자현(自現)하리라. 예컨대() 진금을 태우면 그 빛이 자약(自若)하지만 이 거짓()은 그렇지 않다. 이 중에 정()은 마()에 비유하고 본()은 타()와 같고() 지혜로 관찰함은 불로써 태움과 유사하나니(類以火燒) 3()으로써 사정(邪正)을 가히 안다. 묻되 마()가 능히 아심(我心)으로 하여금 득정(得定)하게 한다면 정()의 사정(邪正)을 어떻게 간별(簡別)하는가. 해석해 이르되 차처(此處)는 미세하여 가히 알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선현지설(先賢之說)에 의해 사정지기(邪正之歧)를 약시(略示)하겠다. 예컨대() (6)에 설한 9종의 심주문(心住門)에 의해 차제(次第)로 수습(修習)해서 제9에 이른() 때 그 지체(支體)가 운운(運運; 자꾸 움직임)하며 동()함을 깨달으리니 동()할 때에 당해 곧 그 몸이 구름 같고 그림자 같고(如雲如影) 있는 듯 없는 듯하여(若有若無) 혹은 위로 좇아 일어나고() 혹은 아래로 좇아 일어나고 혹은 허리로 좇아 일어나고 미미(微微)하게 몸에 두루함을 깨달아() 동촉(動觸)을 발할 때 공덕이 무량하거니와 간략히 설하자면 10종의 상()이 있다. 1은 정정(靜定)이며 2는 허공이며 3은 광정(光淨)이며 4는 희열(喜悅)이며 5는 아락(猗樂; 는 부드러울 아)이며 6은 선심(善心)이 생기(生起)함이며 7은 지견이 명료함이며 8은 모든 누박(累縛)이 없으며 9는 그 마음이 조유(調柔)함이며 10은 경계가 현전함이다. 이와 같은 10법이 동()과 더불어 구생(俱生)하나니 만약 갖추어 분별하자면 곧 가히 다하기 어렵다. 차사(此事)를 이미 지나면() 다시 여촉(餘觸)이 있어 차제(次第)로 발하나니 말한 여촉(餘觸)이란 것은 간략히 8종이 있다. 1은 동()이며 이는 양()이며 3는 량()이며 4는 난()이며 5는 경()이며 6은 중()이며 7은 삽()이며 8은 활()이다. 그러나 이 8()이 반드시 구기(具起; 함께 일어남)함은 아니라서 혹은 단지 이삼촉(二三觸)을 발함이 있으니 발시(發時)에 또한 정()한 차제()가 없으나 그러나 많이 초()에 동촉(動觸)을 발한다. 이것은 이 의추(依麤)하여 정정상(正定相)을 나타냄이다(). () 사상(邪相)을 분변하리라. 사상(邪相)은 간략히 10쌍을 내나니() 1은 증감(增減)이며 2는 정란(定亂)이며 3은 공유(空有)4는 명암(明闇)이며 5는 우희(憂喜)6은 고락(苦樂)이며 7은 선악(善惡)이며 8은 우지(愚智)9는 탈박(脫縛)이며 10은 강유(强柔). 1. 증감(增減)이란 것은 예컨대() 동촉(動觸)이 발할 때 혹 신동(身動), 수기(手起)하고 다리도 또한 따라 동()하여서 외인(外人)이 그를 보매 올올(兀兀)하여 자는 것 같으며 혹은 착귀(著鬼)한 것 같이 몸과 수족(手足)이 분동(紛動)하나니 이것은 증상(增相)이 되며 만약 그() 동촉(動觸)이 발할 때 오르는 듯 내리는 듯하다가(若上若下) 편신(徧身)에 미치지 아니하여서 곧 바로(便) 괴멸(壞滅)하나니 이로 인해 경계지상(境界之相)을 모두() 잃고 좌시(坐時)에 소삭(蕭索)하여 지신(持身)할 법이 없음은 이것은 감상(減相)이 된다. 2. 정란(定亂)이란 것은 동촉(動觸)이 발할 때 식심(識心) 및 신()이 정()에 묶인 바 되어 자재(自在)를 얻지 못하고 혹 다시 이로 인해 사정(邪定)에 편입(便入)하여 이에 7일에 이르나니 이것은 이 정과(定過; 의 허물)며 만약 동촉(動觸)이 발할 때 심의(心意)를 난거(亂擧)하고 여타(餘他; )의 이경(異境)을 연(; 攀緣)하면 이것은 난과(亂過; 의 허물)가 된다. 3. 공유(空有)란 것은 촉()이 발할 때 도무지() 몸을 보지 못하매 공정(空定)을 증()했다고 이르나니() 이는 공과(空過; 의 허물)가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몸이 견실(堅實)하기가 마치 목석과 같음을 깨달음은 이는 유과(有過; 의 허물)가 된다. 4. 명암(明闇)이란 것은 촉()이 발할 때 밖으로 갖가지 광색(光色)과 내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봄은 이는 명과(; 의 허물)가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신심(身心)이 암매(闇昧)하여 암실(闇室)에 든 것 같음은 이는 암과(闇過; 의 허물)가 됨이다. 5. 우희(憂喜)란 것은 촉이 발할 때 그 마음이 열뇌(熱惱)ㆍ초췌(憔悴)ㆍ불열(不悅)함은 이는 우실(憂失; 過失)이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마음이 크게 용열(踊悅)하여 능히 스스로 안정()치 못함은 이는 희실(喜失; 의 과실)이 된다. 6. 고락(苦樂)이란 것은 촉()이 발할 때 몸의 지체(支體)가 처처에서 통뇌(痛惱)함을 깨달으면 이는 고실(苦失; 의 과실)이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크게 쾌락(快樂)함을 알아서 탐착(貪著)해 전박(纏縛)됨은 이는 낙실(樂失; 의 과실)이 된다. 7. 선악(善惡)이란 것은 촉()이 발할 때 밖의 산선(散善)을 상념하여 삼매를 파괴함은 이는 선실(善失; 의 과실)이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무참괴(無慚愧) 등의 제악(諸惡)의 마음이 생하면 이는 악실(惡失; 의 과실)이다. 8. 우지(愚智)란 것은 촉이 발할 때 심식(心識)이 미혹하여 각료(覺了)하는 바가 없으면 이는 우실(愚失; 의 과실)이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지견(知見)이 명리(明利)하고 마음에 사각(邪覺)을 생하면 이는 지실(智失; 의 과실)이 된다. 9. 박탈(縛脫)이란 것은 혹 5() 및 여러 번뇌가 있어 심식(心識)을 부장(覆障)하면 이는 박실(縛失; 의 과실)이 되며 혹 이르되 공()을 증()해 득과(得果)했다 하여 증상만(增上慢)을 내면() 이는 탈실(脫失; 의 과실)이 된다. 10. 강유(强柔)란 것은 촉()이 발할 때 그 몸이 강강(剛强)하여 마치 와석(瓦石) 같아서 가히 회전하기 어려움은 이는 강실(强失; 의 과실)이 되며 만약 촉이 발할 때 심지(心志)가 연약(輭弱)하여 쉽게 가히 패괴(敗壞)됨이 마치 연악(輭渥; 부드럽고 축축한 것)이 그릇이 됨을 감당하지 못함과 같음은 이는 유실(柔失; 의 과실)이 된다. 20종 사정지법(邪定之法)은 그 발하는 바를 따라 만약 식별(識別)하지 못하여 마음에 애착을 내면 인하여 혹은 실심(失心)하여 광란(狂亂)하며 혹은 곡()하고 혹은 웃으며 혹은 놀라서 만주(漫走; 徒然히 달림)하며 어떤 때엔(或時) 스스로 투암부화(投巖赴火)하려고 하며 어떤 때엔(或時) 득병(得病)하며 혹은 인하여 치사(致死)한다. 또 다시(又復) 이와 같이 1사법(邪法)을 발함이 있음을 따라 만약 95종 외도귀신법(外道鬼神法) 가운데 1귀신법(鬼神法)과 더불어 상응하되 깨닫지 못하는 자는 곧 피도(彼道)를 상념하고 피법(彼法)을 행하나니 이로 인해 바로(便) 귀신법문에 들어가며 귀()가 그 세력()을 더하여 혹은 여러 사정(邪定) 및 여러 변재(辯才)를 발하여 세상()의 길흉을 알며 신통이 기이(奇異)하여 희유(希有)한 일을 나타내어 중인(衆人)을 감동(感動)케 하매 세인이 무지(無知)하여 단지 이인(異人)으로 보고서 이르기를 이 현성(賢聖)이로다 하며 심심(深心)으로 신복(信伏)한다. 그러나 그() 내심(內心)은 귀법(鬼法)을 전행(專行)하나니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성도(聖道)를 원리(遠離)하므로 몸이 무너져 목숨을 마치면 삼악취(三惡趣)에 떨어지나니 구십육외도(九十六外道)의 광설(廣說)과 같다. 행자가 만약 이런 등의 사상(邪相)을 깨닫거든 응당 전법(前法)으로써 시험하여 그것()을 다스려라. 그러나 기중(其中)에서도 또한 시비(是非)가 있나니 왜냐하면(何者) 만약 그 사정(邪定)이 일향(一向) ()가 지은 것이라면 용법(用法)하여 그것()을 다스리매 마()가 떠난 후에 곧 도무지 다시는() 호리(毫釐) 만큼의 선법(禪法)도 없으려니와 만약 내가 정정(正定)에 득입(得入)한 때 마()가 기중(其中)에 입()하여 여러 사상(邪相)을 나타낸 것이라면 용법(用法)하여 그것()을 물리치매 마사(魔邪)가 이미 멸하면 곧 나의 정심(定心)이 명정(明淨)하기가 마치 구름이 제거되어 해가 나타남과 같다. 만약 이런 등의 상()이 비록 마()가 지은 것 같기는() 하나 용법(用法)하여 다스려도 오히려 떠나지 않는 것은 마땅히 알라 자기()의 죄장(罪障)으로 인해 일어난() 바이므로 곧 응당 대승참회(大乘懺悔)를 근수(勤修)할지니 죄가 멸한 후에 정()이 마땅히 자현(自顯)하리라. 이런 등의 장상(障相)은 매우 미세()하여 분별하기 어렵나니(難別) 도를 구하려고 하는 자가 부지(不知)함은 불가(不可)하다. 방론(傍論)은 차지(且止; 는 발어사)하고 도리어 본문을 해석하겠다. 상래(上來)에 마사(魔事)의 차별을 광변(廣辨)했다. 이시(以是) 이하는 제2 명치(明治; 對治를 밝힘). 말한 지혜로 관찰한다는 것은 자수분(自隨分)이 소유한 각혜(覺慧)에 의해 여러 마사(魔事)를 관하여 살펴() 그것()을 다스림이니 만약 관찰하지 않으면 곧 사도(邪道)에 떨어지는지라 고로 말하되 사망(邪網)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했으니 이것은 이 예컨대() 3종의 험중(驗中)에 바로() 3 지혜로 관찰함이 된다. 말한 응당() 부지런히 상념을 바르게 하여(正念) 불취불착(不取不著)해야 한다는 것은 셋 중 앞의 2법을 총현(總顯)함이니 이제 차중(此中)의 대승지문(大乘止門)은 오직 이정(理定)만 닦음이며 다시() 별취(別趣)가 없다. 고로 처음 정을 연마하매(定硏) 아울러 의본(依本)하여 닦고 다시() 별법(別法)이 없는지라 소이로 이제 설하되 마땅히 의본(依本)하여 대승의 지문(止門)을 닦아서 정념(正念)으로 주()하라 함이다. 불취불착(不取不著)이란 것은 사()가 정()을 범하지(; 犯也) 못하므로 자연히 퇴몰(退沒)함이니 마땅히 알라 만약 마음이 취착(取著)하면 곧 정()을 버리고 사()를 이루거니와 만약 취착하지 않으면 곧 사()로 인해 정()을 나타낸다. 이로 알지니 사정(邪正)을 나눔은 요령(要領; )이 착()과 더불어 불착(不著)에 있나니 불착하는 자는 여의지 못할 장애()가 없는지라 고로 말하되 이런 모든 업장을 원리(遠離)한다 했다. 응당 알라 외도 이하는 제3 () 진위(眞僞)를 간별(簡別; )함이니 이 중에 둘이 있다. ()는 내외를 들어서 사정(邪正)을 분별함이니 선()은 사()며 후()는 정()이니 문상(文相)을 가히 알 것이다. 만약 모든(若諸) 이하는 차() 이사(理事)에 대해 진위를 간별했다. 이 중에 초()는 이정(理定)이 이 진()임을 나타냄()이니 행자가 요컨대 진여삼매를 닦아야 바야흐로 종성불퇴위(種性不退位) 중에 들며 이를 제하고선 다시() 능입(能入)할 도()가 없는지라 고로 말하되 익히지() 않으면 옳은 곳이 있지 않다 했다. 그러나 종성지위(種性之位)에 그 2()이 있다. 1십삼주문(十三住門)이며 초()는 종성주(種性住)니 종성이란 것은 무시래(無始來)에 있으며 닦아 얻는 바가 아니다. 뜻은 유가(瑜伽; 47) 지지론(地持論)에 나온다. 26종 성문(性門)이니 초()는 습종성(習種性)이며 차() 성종성(性種性)이란 것은 위()3()에 있나니 습()으로 인해 이룬 바며 본업경(卷上) 및 인왕경(仁王經)에 나온다. 이 중에 위실(委悉; 詳盡)은 일도(一道; 一道章)의 뜻() 중에 광설함과 같다. 여금에 이 중에서 말한 여래종성(如來種性)이란 것은 제2문 습종성위(習種性位)를 설함이다. 이수세간(以修世間) 이하는 차() 사정지위(事定之僞)를 밝혔으니() 이르자면 부정관(不淨觀)안나반념(安那槃念) 등은 모두 이름이 세간의 제삼매(諸三昧). 만약 사람이 진여삼매에 의하지 않고 바로() 이런 등의 사삼매(事三昧)를 닦는 자는 소입(所入)의 경계 따라 취착(取著)을 여의지 못나나니 법에 취착하는 자는 반드시 아()에 집착함인지라 고로 3()에 속해 외도와 더불어 함께한다(). 예컨대 지도론에 이르되 제법이 실상(實相)이며 그 나머지 일체는 다 이 마사(魔事)라 했는데 이를 일컬음이다. 상래(上來)에 제4 마사(魔事)를 밝힘을 마쳤다.

 

다라니(陀羅尼); <> dhāraṇī. 범어임. 여기에선 이르되 총지(總持)ㆍ능지(能持)ㆍ능차(能遮). 곧 능히 무량한 불법을 총섭(總攝)하고 억지(憶持)하여 망실하지 않는 염혜력(念慧力).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다라니는 곧 1종의 기억술이 됨. 후세에 곧 송주(誦咒; 주문을 외움)를 일컬어 다라니라 했음.

숙명(宿命); 숙세(宿世)의 생명임. 불타가 이르기를 세인이 과거세에 모두 생명이 있어 혹은 천()이 되고 혹은 인()이 되고 혹은 아귀와 축생이 되어 전전(展轉)히 윤회하나니 이를 일컬어 숙명이라 한다. 능히 숙명을 아는 것을 일컬어 숙명통(宿命通)이라 함.

타심지(他心智); 10()의 하나. 타인의 심념을 아는 지임. 욕혹(欲惑)을 여의어 색계의 근본선(根本禪) 이상을 얻어야 이 지를 득발(得發). 6() 중에 이를 일러 타심통(他心通)이라 함.

지체(支體); 신체 또는 사지(四肢)를 가리킴.

올올(兀兀); 혼돈(混沌)하여 앎이 없으며 성품 따라 자재한 양자(樣子).

산선(散善); 산란(散亂)한 마음으로 닦는 바의 선업(善業).

5(); ()는 곧 개부(蓋覆)의 뜻. 5법이 있어 능히 심성(心性)을 개부하여 선법(善法)이 나지 않음. 1. 탐욕개(貪欲蓋)2. 진에개(瞋恚蓋)3. 수면개(睡眠蓋)4. 도회개(掉悔蓋)5. 의개(疑蓋).

증상만(增上慢); 나는 증상(增上)의 법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만심(慢心)을 일으킴이니 예컨대() 성도(聖道)를 얻지 못했으면서 이르기를 이미 얻었다고 함이 이것임. 7()의 하나 [俱舍論十九].

95종 외도(外道); 바로 아래 각주 구십육외도(九十六外道)를 보라.

구십육외도(九十六外道); 96() 외도(外道) 96종은 불세(佛世; 부처 스스로가 교화하는 시대) 전후로 인도에 출현하였으며 불교와 다른 교파임. 96()로 지음. 외도와 유관한 수에 비록 여러 가지의 이설이 있지만 그러나 96종과 95종의 2설로써 가장 많음을 삼음. 96 95 2수의 산정은 여러 경론에 의거하자면 몇 가지 설이 있음. 1. 육사외도(六師外道) 즉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ㆍ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賖梨子)ㆍ산사야비라지자(刪闍夜毘羅胝子)ㆍ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ㆍ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ㆍ니건타야제자(尼犍陀若提子)6사에 각기 16종의 배우는 바 법이 있으며 1법은 스스로 배우고 나머지 15종은 각기 15제자를 가르치므로 사도(師徒)의 합론이 96종이 됨. 2. 오대외교(五大外道) 즉 수론(數論)ㆍ승론(勝論)ㆍ이계(離繫)ㆍ수출(獸出)ㆍ편출(遍出)에 각기 18부의 말파가 있으며 본말의 총계가 95종이 됨 [薩婆多論五 華嚴經疏二十八 義林章纂註 百論疏].

십삼주문(十三住門); 유가사지론47(瑜伽師地論四十七)에 명칭과 해설이 있음. 번거로움을 피해 생략함.

지지론(地持論);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의 다른 이름이니 10(8). 북량(北涼)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했고 대정장 제30책에 수록되었음. 지지경을 비록 경이라 일컫지만 단지 본래 응당 논에 속함. 이역본(異譯本)에 따로 구나발마(求那跋摩)가 번역한 바의 9권본의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이 있음. 본경은 대승보살의 수행의 방편을 상세히 설했음. 내용은 초방편처(初方便處)ㆍ차법방편처(次法方便處)ㆍ필경방편처(畢竟方便處) 3부로 분류했고 합계 27품임 [出三藏記集二 大唐內典錄三 古今譯經圖紀三].

부정관(不淨觀);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 경계의 부정한 형상(形相)을 관하여 탐욕을 정지하는 법이니 탐착심이 많은 사람이 이것을 닦음.

안나반념(安那槃念); 위 권6 각주 수식관(數息觀)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