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사교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25

태화당 2020. 10. 11. 14:39

十二因緣; 신역으론 12연기(緣起)로 짓고 구역으론 12인연으로 지음. 또 단명(單名)이 인연관(因緣觀)ㆍ지불관(支佛觀)이니 이는 벽지불(辟支佛)의 관문(觀門)이 됨. 중생이 3()에 건너 6()에 윤회하는 차제의 연기(緣起)를 설함. 1은 무명(無明)이며 2는 행()이며 3은 식()이며 4는 명색(名色)이며 56()6처는 곧 6근이며 6은 촉()이며 7은 수()8은 애()9는 취()10은 유()11은 생()이며 12는 노사(老死).

事六度; 사교의집주2 사육도(事六度)란 것은 삼장교(三藏敎)는 실유사(實有事)를 담설하므로 즉리(卽理)가 아닌 연고다. 육도(六度) 육바라밀(六波羅蜜; śaḍ-pāramitā). 바라밀은 구역에 도()라 했음. 삼장법수19. 육도(六度) [出六度集經] 1. 단나(檀那; dāna) 범어 단나는 화언(華言)으론 보시임. 2. 시라(尸羅; śīla) 범어 시라는 화언으론 성선(性善)이니 이르자면 선도(善道)를 행하기를 좋아해 스스로 방일하지 않음임. 이것은 뜻에 의거해 번역했음이며 바로 번역하면 지득(止得)이니 이르자면 악을 그치고 선을 얻음임. 또 계()로 번역함. 이르자면 계는 능히 몸과 입으로 짓는 바의 악을 방지함. 3. 찬제(羼提; kṣānti) 범어 찬제는 화언으론 인욕임. 4. 비리야(毗梨耶; vīrya) 범어 비리야는 화언으론 정진임. 5. 선나(禪那; dhyāna) 범어 선나는 화언으론 정려(靜慮). 6. 반야(般若; prajñā) 범어 반야는 화언으론 지혜임.

九部; 구부교(九部敎)니 소승 구부교임. 수다라ㆍ가타ㆍ본사ㆍ본생ㆍ미증유ㆍ인연ㆍ비유ㆍ기야ㆍ우바제사의 경임(小乘九部敎 修多羅 伽陀 本事 本生 未曾有 因緣 譬喩 祇夜 優波提舍經也) [法華經玄贊要集一].

見思煩惱; 견사혹(見思惑). 천태가에서 세운 바 3(見思惑無明惑塵沙惑)의 하나. 삼세의 도리를 미혹함과(見惑) 현재의 사상(事象)을 미혹함을(思惑) 가리킴. 양자를 병칭하여 견사혹이라 함. 능히 3계의 생사의 과보를 초감(招感)하므로 고로 계내혹(界內惑)에 속함. 또 그것이 성문ㆍ연각ㆍ보살 3자가 끊는 바의 혹에 통하므로 고로 또 일컬어 통혹(通惑)이라 함. 이 혹()은 가히 공관(空觀)을 쓰고 단제(斷除)를 더해야 함 [止觀輔行傳弘決六].

淨名; 정명경이니 유마경의 다른 이름. 범어로 비마라힐리제(毘摩羅詰利帝; vimalakīrti)며 또 비마라힐(毘摩羅詰)ㆍ유마힐(維摩詰)로 지음. 화언(華言)으로 무구칭(無垢稱)ㆍ정명(淨名)ㆍ멸구명(滅垢鳴). 불타의 재가제자(在家弟子)가 되니 곧 중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의 장자(長者)[維摩經義疏一 維摩義記一本 玄應音義八].

半字敎; 담무참(曇無讖)이 세운 바 2교의 하나. 일체의 소승교를 판별해 반자교로 삼았음. 아래의 주 滿字敎를 보라.

滿字敎; 선림소어고증1(禪林疏語考證一). 반자(半字) 열반경에 이르되 반자(半字)의 뜻이란 것은 다 이 번뇌언설(煩惱言說)의 근본이므로 고로 이름이 반자다. 만자(滿字)란 것은 곧 이 일체의 선법언설(善法言說)의 근본이다. 비유컨대 세간에서 악을 짓는 자를 이름해 반인(半人)이라 하고 선을 닦는 자를 이름해 만인(滿人)이라 함과 같다. 고로 서진(西秦)의 담무참삼장(曇無讖三藏)이 열반 이 경에 의거해 요의대승(了義大乘)으로써 만자교(滿字敎)를 삼고 불료의소승(不了義小乘)으로 반자교(半字敎)를 삼았으니 반만(半滿)의 교를 세움은 담무참이 처음이었음. 만자(滿字) 범서(梵書)로 문자를 제작하면서 반자만자(半字滿字)가 있는 것은 자의(字義)가 족하지 못한지라 비로소 반편(半偏)이 있으니 한문의 월자(月字)가 그 곁이 모자람과 같음. 이치가 이미 구경(究竟)인지라 문의(文義)가 원만함은 한문의 일자(日字)가 원만하여 충실함과 같음. 반자(半字)는 악의(惡義)니 번뇌에 비유하고 만자(滿字)는 선의(善義)니 상주(常住)에 비유함. 또 반자로 체()를 삼음은 한()의 언자(言字)와 같고 만자(滿字)로 체를 삼음은 한의 어자(語字)와 같음. 둘을 합하면 곧 만(滿)인 예()며 언자(言字)만 홀로 세우면 곧 반자(半字)의 예(). 반자(半字)가 비록 단()이지만 만(滿)의 근본이 되는지라 그 반자를 반연해야 만자를 이룸. 비유하자면 범부가 무명을 인()으로 삼아 상주(常住)함을 얻나니 인자(因字)의 제의(製義)가 다 이런 종류임.

心相體信; 사교의과해상(四敎儀科解卷上) 심상체신(心相體信)이란 것은 이는 장자(長者)와 궁자(窮子) 2인의 마음이 호상(互相) 체실(體悉; 了解)하여 순종(順從)함이다. 왜인가(何哉), 3() 중에서 열반가(涅槃價)를 얻어 이미 그가() 불허(不虗)하고 여금에 보살을 위해 이 대승을 설하매 또한 다시 비류(非謬)하니 이것은 곧 궁자가 장자를 신()함이다. 불타가, 2()이 견사(見思)가 이미 끊어지고 대승을 설함을 들으매 반드시 비방을 생기(生起)하지 않고 무루근(無漏根)이 예리하여 조금 신요(信樂)를 내는 줄 아나니 이것은 곧 여래가 2승을 신()함이다.

入出無難; 사교의과해상(四敎儀科解上) 입출에 무난하다는 것은 심()이 상신(相信)함으로 말미암아 존특신(尊特身)을 보고 대승교(大乘敎)를 들음은 이를 이름하여 입()이며 다시 가절(訶折)을 입고 오히려 장륙(丈六)의 소승법을 설함을 봄은 이를 이름하여 출()이니 대소(大小)에 입출하매 의난(疑難)이 없음이다.

然其所止猶在本處; 사교의과해상 그러나 그가 머무는 바는 오히려 본처에 있다는 것은 비록 그렇게 상신(相信)하여 입출에 무난하고 들은 바 대승에도 스스로 이르기를 옳다() 하지만 보살지사(菩薩之事)는 자기의 지분(智分)이 아니라 하여 회소향대(迴小向大)를 긍정하지 않고 오히려 라한(羅漢)에 거처하면서 장래에 정각(正覺)을 득성(得成)함을 알지 못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머무는 바는 본처에 있다.

轉敎云云; 사교의과해상(四敎儀科解卷上) 전교하(轉敎下)는 변의(辨意)하여 반야를 설하는 뜻이 여기에 있음이다. 공생(空生)과 신자(身子)가 반야회(般若會)에서 여러 보살을 위해 제법(諸法)의 공()을 담설하매 청정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니() 이 법으로써 타인에게 전도(轉度)한지라 고로 이르되 전교(轉敎). 법화경에 이르되 아등(我等)이 비록 모든 불자 등을 위해 보살법을 설하되 희취(希取)가 없다 했음이 곧 그 뜻이다. 부재(付財)란 것은 세간의 장자(長者)7()를 재()로 삼고 출세간(出世)의 법왕은 반야를 재()로 삼는지라 고로 반야(반야회) 중에서 이 반야로써 공생과 신자에게 가피(加被)했으니 곧 부재(付財). 묻되 반야회 중에서 만약 이미 부재(付財)했거늘 법화 중에 이르러 어찌하여 술()하는 바인가. 답하되 반야에 있을 때 불타의 의변(意邊)에 곧 이 부재(付財)이므로 기여(其如; 예를 듦) 2()은 단지 가설(加說)을 이름()일 뿐이다. 고로 반야에 이르되 어째 성문인(聲聞人)이 감히 설할 바가 있겠는가, 설하는 바가 있는 것은 모두 불력(佛力)일 뿐이다. 제자 중에 그 지안(智眼)을 주어 그로 하여금 설법하게 했음이 곧 가피(加被). 고로 법화에 이르러 2()이 비로소 이에 이는 부재(付財)임을 안다. 이런 까닭으로 경에 이르되 나의 여금의 소유는 모두 이 자의 소유(子有). 융통(融通)이란 것은 반야 중에 이르러 일체법이 모두 마하연(摩訶衍)임을 아나니() (; 마하연)은 이 대승이며 대승은 곧() 이 융통의 법이다. 응당 알지니 이 융()은 원융(圓融)을 일컬음이 아니라 곧 이 3교 융통의 융이니 현참(玄籤; 법화현참) 중에 이 뜻을 구명(具明)함과 같다. 도태(淘汰; 淘徒刀切이다. 바르게는 濤汰로 짓나니 徒葢切이다. 로 지음은 그르다)란 것은 설문(說文)에 이르되 석간(淅㶕)이다. 대론음의(大論音義)에 이르되 징세(澄洗). 모름지기 알지니 도태(濤汰)에 통()도 있고 별()도 있다. ()5()에 두루함이며 별()은 반야에 있다. 고로 반야 중에 공혜수(空慧水)로써 도석간택(濤淅㶕擇)하나니 성문(聲聞) 무리 가운데 오직 사리불(舍利弗) 및 수보리(須菩提)가 가피(加被)를 감인(堪忍)했다. 묻되 무슨 까닭()으로 이 2인에게 가피했는가. 답하되 수보리는 해공(解空)했고 사리불은 지혜니 반야의 법은 그 오직 공혜(空慧)인지라 고로 공혜로써 2인에게 가피했다. 가가(可加)에게 가()함이란 이를 일컬음이다.

空生; 조정사원3(祖庭事苑三). 공생(空生) 범어로 이르되 수보리며 또 이르되 소보지가(蘇補底迦)니 이는 세 뜻으로 번역함이 있음. 1은 가로되 공생(空生)이니 이르자면 처음 태어날 때 가실(家室)이 다 비었으니 해공(解空)의 상()으로 표함. 2는 가로되 선현(善現)이니 이르자면 태어날 때 갖가지 선서(善瑞)가 현현(顯現)하였음. 3은 가로되 선길(善吉)이니 이르자면 태어난 다음 상사(相師)가 그를 점쳐 가로되 이 자(; 남자의 통칭)는 오직 선()하고 오직 길()하다. 서역기에 이르되 본디 동방의 청룡타불(靑龍陀佛)인데 석가회하(釋迦會下)에 그림자로 화()했다(金剛略疏에 이런 말이 있으며 서역기를 인용했음). 지금은 선자(禪者)의 통칭이 되나니 이르자면 참현(參玄)하여 해공(解空)하는 대사(大士).

身子; 사리불의 역명(譯名). 또 이르되 추자(鶖子)니 범어 사리(舍利)는 번역해 가로되 신()이며 불다라(弗多羅)는 번역해 가로되 자(). 사리란 것은 새 이름이니 곧 추로조(鶖鷺鳥). 그의 모친의 눈이 이와 흡사한지라 인하여 이름이 사리(舍利)며 이것은 이 그의 아들이므로 고로 가로되 사리자(舍利子) 혹 추로자(鶖鷺子). 이는 불제자 중 제일의 지자(智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