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사교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90

태화당 2020. 10. 12. 08:23

다음 초행(初行)에 들어가 1품의 무명을 끊나니 별교의 등각(等覺)과 제등하다. 다음 2행에 들어가나니 별교의 묘각(妙覺)과 제등하다. 3행 이거(已去; 以後)로부터는 별교의 사람이 오히려 명자도 알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복단(伏斷)이겠는가. 별교는 단지 12품 무명을 깨뜨리는 연고로써 고로 아가(我家; 圓家)의 진인(眞因)으로써 여가(汝家; 別家)의 극과(極果)로 삼음은 다만 교가 더욱() ()이면 위()가 더욱 높고 교가 더욱 실()이면 위가 더욱 아래이기 때문()이다. 비여(譬如) 변방(邊方)이 미정(未靜)이면 차직(借職; 겨우 虛銜만 있고 實授의 관직이 아님)이 곧 높더라도 정작논훈(定爵論勳)하매 그 지위는 실로 낮다. 고로 권교(權敎)에서 비록 묘각이라고 일컫더라도 단지 이는 실교(實敎) 중의 제2행이다. 다음 3행 이거(已去)로 좇아 10지에 이르기까지 각기 1품의 무명을 끊고 1분의 중도를 더하나니 곧 40품의 혹()을 끊는다. 다시 1품의 무명을 깨뜨리면 등각위(等覺位)에 드나니 이것이 이 일생보처(一生補處). 나아가 1품의 미세한 무명을 깨뜨리고 묘각위(妙覺位)에 들면 무명의 부모를 영별(永別)하고 구경(究竟)에 열반의 산정(山頂)에 오르나니 제법이 불생(不生)하고 반야도 불생하고 불생도 불생하나니 이름이 대열반이다. 허공을 자리()로 삼고 청정법신을 이루고 상적광토(*常寂光土)에 거주하나니 곧 원교(圓敎)의 불상(佛相)이다. 그러나 원교의 위차(位次)를 만약 육즉(*六卽)으로써 그것()을 판별하지 않으면 곧 다분히 상성(上聖)과 혼람(混濫; )하나니 고로 모름지기 6()으로 판위(判位)해야 한다. 이르자면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어 불타가 있거나 불타가 없거나(有佛無佛) 성상(性相; 성과 상)이 상주(常住)한다 하고 또 이르되 11향이 중도가 아님이 없다(*一色一香無非中道)는 등의 말은 모두()이 이즉(*理卽)이며 다음으로 선지식(*善知識)을 좇거나 및 경권(經卷)을 좇아 이 말씀을 들음은 명자즉(*名字卽)이 되며 의교(依敎)하여 수행함은 관행즉(*觀行卽. 五品位)이 되며 상사해(相似解)가 발함은 상사즉(*相似卽. 十信)이 되며 분파분견(分破分見)은 분증즉(*分證卽. 從初住至等覺)이 되며 지()가 끊겨 원만함은 구경즉(*究竟卽. 妙覺位)이 된다. 수행의 위차(位次)를 괄약하면 천()으로 좇아 심()에 이르는지라 고로 이름하여 6()이며 소현(所顯)의 이체(理體)를 괄약하면 위위(位位; 마다)가 둘이 아닌지라 고로 이름하여 즉()이다. 이런 고로 깊이 6()를 알면 상만(*上慢)을 내지 않으며 자세히() 즉자(卽字)를 밝히면 자굴(自屈)을 내지 않나니 가귀가의(可歸可依)하고 사지택지(思之擇之)하라. 원교위(圓敎位)를 약명(略明)함을 마친다.

 

 

常寂光土; 태가(台家)에서 세운 바 4종 불토의 하나. 곧 이성토(理性土). ()은 곧 법신이며 적()은 곧 해탈이며 광()은 곧 반야임. 이것은 불천불변(不遷不變)을 이름해 상()이며 이유이무(離有離無)를 이름해 적()이며 조속조진(照俗照眞)을 이름해 광()이니 곧 묘각(妙覺)의 구경과불(究竟果佛)이 거주하는 바의 토(). 정명소(淨名疏)에 이르되 원교원행(圓敎願行)의 인()을 닦아 인극과만(因極果滿)하여 도가 묘각을 이루어 상적광에 거주한다 한 게 이것임 [觀無量壽佛經妙宗鈔].

六卽; 이르자면 진리와 상즉(相卽)하여 1()로 성립하는 계단에 여섯이 있음. 6()6()6()로 지음. 화엄경에 이르기를 대승보살의 계위(階位)에 십신(十信)ㆍ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迴向)ㆍ십지(十地)ㆍ등각(等覺)ㆍ묘각(妙覺) 52()가 있다 했는데 천태종에서 이것으로써 별교보살(別敎菩薩)의 행위(行位)로 삼고 따로 원교보살(圓敎菩薩)6행위(行位)를 세워 6()으로 호칭했음. 1. 이즉(理卽) 이르자면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인 여래장의 이()에 거주함. 2. 명자즉(名字卽) 일실보리(一實菩提)의 설을 청문(聽聞)하고 명자(名字; 槪念을 말함) 가운데 통달하고 해료(解了)하는 위()를 가리킴. 3. 관행즉(觀行卽) 이르자면 이미 명자를 알고 관행을 일으켜 심관(心觀)이 명료하여 이()와 혜()가 상응하는 위(). 이 위()는 수희(隨喜)ㆍ독송ㆍ설법ㆍ겸행육도(兼行六度)ㆍ정행육도(正行六度) 5품의 심천(深淺)의 차제로 분류하며 호칭해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라 함. 곧 원교외범(圓敎外凡)의 위니 별교의 십신위(十信位)와 서로 같음. 4. 상사즉(相似卽) 이르자면 지관(止觀)이 명정(明靜)을 더욱 추구하여 육근청정(六根淸淨)을 얻어 견사지혹(見思之惑)을 단제(斷除)하고 무명을 제복(制伏)하여 진증(眞證)과 상사한 것. 곧 원교내범(圓敎內凡) 십신(十信)의 위(). 또 명칭이 육근청정위(六根淸淨位)니 별교의 삼현위(三賢位)와 서로 같음. 5 분증즉(分證卽) 또 분진즉(分眞卽)으로 지음. 이르자면 무명을 분단(分斷)하고 중도(中道)를 증득한 위()니 곧 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 등의 위()로부터 점차 1품의 무명을 파제(破除)하고 1()의 중도를 증득하는 것. 이상은 모두 성위(聖位)가 되며 별교 중에 있어선 십지는 이 중의 십주위(十住位)에 상당하고 등각위는 십행 중의 초행에 상당하고 묘각위는 십행 중의 제2행에 상당함. 원교 십행 중 제3행 이상에 이르러선 별교에 있어서는 곧 논급(論及)하지 않음. 6. 구경즉(究竟卽) 이르자면 42품의 무명을 단제(斷除)하고 구경(究竟)의 제법실상의 위()니 이는 곧 묘각위(妙覺位). 원교 구경의 극과(極果)가 됨.

一色一香無非中道; 사교의과해하(四敎儀科解下) 11향이 중도가 아님이 없다는 것은 6()에서 다만() 색향 3()를 들어 단지 이르되 중도라 했다. 색향은 이 사()며 중도는 이 이()니 사()에서 견리(見理)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색향이 중도가 아님이 없다 했거니와 색향이 중도임을 사람들이 공허(共許)하지만 무정(無情)의 불성은 귀를 혹란(惑亂; )하고 마음을 경동(驚動; )한다.

理卽; 이르자면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인 여래장의 이()에 거주함. 위의 주 六卽을 보라.

善知識; 또 간단히 이르되 지식(知識)이니 지식이란 것은 그의 마음을 알고() 그의 형상을 안다는() 뜻이니 지인(知人)이며 곧 붕우의 뜻임. 박지박식(博知博識)을 이름이 아님. ()이란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며 나를 선도(善道)로 인도하는 자임. 법화문구4. 이름을 들음이 지()가 되고 형상을 봄이 식()이 되나니 이 사람은 나의 보리지도(菩提之道)를 더하는지라() 이름이 선지식이다. 법화경 묘장엄왕품. 선지식이란 것은 이 큰 인연이다. 이른 바 화도(化導)하여 견불(見佛)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한다. 치문경훈주상. 선지식(善知識)에 셋이 있다. 1. 외호(外護) 지관에 이르되 흑백을 가리지 않고 다만 능히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함과 같이 조리(調理)하여 곳을 얻는다. 보행(輔行)에 이르되 자기의 신심(身心)은 내()가 되고 타인의 신심을 바라보매 외()가 되어 밖()에서 옹호하는 바가 되므로 이름이 외호선지식(外護善知識)이다. 2. 동행(同行) 지관에 이르되 다시 서로 책발(策發)하여 불혼불산(不昏不散)하여 날로 그 새로움이 있다. 보행에 이르되 기타(己他)가 갈마들며 서로 책발(策發)하나니 사람은 다르지만 행위는 같음을 이름해 동행선지식이다. 3. 교수(敎授) 지관에 이르되 내외의 통색(通塞)에 모두 능히 결단하고 선교(善巧)하게 설법한다. 보행에 이르되 성언(聖言)을 선전(宣傳)함을 이름해 교()라 하고 나를 훈회(訓誨)함을 이름해 수()라 하나니 이름이 교수선지식이다.

名字卽; 일실보리(一實菩提)의 설을 청문(聽聞)하고 명자(名字; 槪念을 말함) 가운데 통달하고 해료(解了)하는 위()를 가리킴. 위의 주 六卽을 보라.

觀行卽; 이르자면 이미 명자를 알고 관행을 일으켜 심관(心觀)이 명료하여 이()와 혜()가 상응하는 위(). 이 위()는 수희(隨喜)ㆍ독송ㆍ설법ㆍ겸행육도(兼行六度)ㆍ정행육도(正行六度) 5품의 심천(深淺)의 차제로 분류하며 호칭해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라 함. 곧 원교외범(圓敎外凡)의 위니 별교의 십신위(十信位)와 서로 같음. 위의 주 六卽을 보라.

相似卽; 이르자면 지관(止觀)이 명정(明靜)을 더욱 추구하여 육근청정(六根淸淨)을 얻어 견사지혹(見思之惑)을 단제(斷除)하고 무명을 제복(制伏)하여 진증(眞證)과 상사한 것. 곧 원교내범(圓敎內凡) 십신(十信)의 위(). 또 명칭이 육근청정위(六根淸淨位)니 별교의 삼현위(三賢位)와 서로 같음. 위의 주 六卽을 보라.

分證卽; 또 분진즉(分眞卽)으로 지음. 이르자면 무명을 분단(分斷)하고 중도(中道)를 증득한 위()니 곧 십주ㆍ십행ㆍ십회향ㆍ십지ㆍ등각 등의 위()로부터 점차 1품의 무명을 파제(破除)하고 1()의 중도를 증득하는 것. 위의 주 六卽을 보라.

究竟卽; 이르자면 42품의 무명을 단제(斷除)하고 구경(究竟)의 제법실상의 위()니 이는 곧 묘각위(妙覺位). 원교 구경의 극과(極果)가 됨. 위의 주 六卽을 보라.

上慢; 증상만(增上慢)이니 나는 증상(增上)의 법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만심(慢心)을 일으킴이니 예컨대() 성도(聖道)를 얻지 못했으면서 이르기를 이미 얻었다고 함이 이것임. 7()의 하나. 구사론19. 증득하지 못한 수승한 덕 가운데에 이르기를 이미 증득했다 하면 이름이 증상만(上慢)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