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照覺禪師 自泐潭移虎谿 乃赴*王子淳*觀文所請 *開堂後 百廢並擧 *陞堂小參入室無虛日 甞言 晦堂眞淨同門諸老 秖參得先師禪不得先師道 師曰 蓋照覺以平常無事不立知見解會爲道 更不求妙悟 却將諸佛諸祖*德山臨濟*曹洞*雲門眞實頓悟見性*法門爲*建立 *楞嚴經中所說山河大地皆是妙明眞心中所現物 爲膈上語亦是建立 以古人談玄說妙爲禪 誣誷先聖*聾瞽後昆 眼裏無筋皮下無血之流 隨例顚倒恬然不覺 眞可憐憫 圓覺經云 末世衆生希望成道無令求悟 唯益多聞增長*我見 又云 末世衆生雖求善友 遇邪見者未得正悟 是則名爲外道*種性 邪師過謬非衆生咎 豈虛語哉 所以眞淨和尙小參云 今時有一般漢 執箇平常心是道 以爲極則 天是天地是地 山是山水是水 僧是僧俗是俗 *大盡三十日小盡二十九 並是*依草附木 不知不覺一向迷將去 忽若問他*我手何似佛手 便道是和尙手 我脚何似驢脚 便道是和尙脚 人人有箇*生緣 那箇是*上座生緣 便道某是某州人事 是何言歟 且莫錯會 *凡百施爲 秖要平常一路子以爲穩當 定將去合將去 更不敢別移一步 怕墮落坑塹 長時一似生盲底人行路一條杖子 寸步拋不得緊把著憑將去 晦堂和尙謂學者曰 爾去廬山無事甲裏坐地去 而今子孫門如死灰 良可歎也
●王子淳; 王韶[(1030-1081) 宋代黃龍派居士 字子淳 德安(湖北安陸)人 北宋名將 曾爲觀文殿學士 故世稱王觀文 爲洪州刺史 樞密院使 嘗延黃龍山晦堂祖心問道 默有所契 [百度百科 續傳燈錄二十二 居士傳二十五]
●觀文; 宋代觀文殿學士的簡稱 [百度百科]
●開堂; 禪院新任住持 始初上堂說法稱作開堂 ▲祖庭事苑八 開堂 開堂迺譯經院之儀式 每歲誕節 必譯新經上進 祝一人之壽 前兩月 二府皆集 以觀飜譯 謂之開堂 前一月 譯經使潤文官又集 以進新經 謂之開堂 今宗門命長老住持演法之初 亦以謂之開堂者 謂演佛祖正法眼藏 上祝天筭 又以爲四海生靈之福 是亦謂之開堂也
●陞堂; 禪師上法堂爲大衆說法稱爲陞堂 又作昇堂 升堂
●德山; 宣鑑(782-865) 唐代僧 劍南(四川)人 俗姓周 法名宣鑑 年少出家 二十歲受具足戒 於大小乘諸經貫通旨趣 因常講金剛般若經 時稱周金剛 後至澧陽參龍潭崇信 夜深龍潭吹滅紙燭之間 豁然頓悟 常以棒打爲敎 而有德山棒之稱 師住澧陽三十年 遭唐武宗(在位841-846)廢敎 避難於獨浮山之石室 大中(847-859)初 應武陵(湖南)太守薛廷望堅請 始居德山 大振宗風 咸通六年十二月三日 忽告諸門徒曰 捫空追響 勞汝心神 夢覺覺非 竟有何事 言訖安坐而化 壽八十四 僧臘六十五 敕諡見性大師 法嗣有巖頭全豁雪峰義存等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祖堂集五 五燈會元七]
●曹洞; 曹洞宗第一祖洞山 第二祖曹山 合稱爲曹洞 卽指曹洞宗
●雲門; 文偃(864-949) 唐末五代僧 爲雲門宗之祖 浙江嘉興人 俗姓張 法名文偃 幼懷出塵之志 從嘉興空王寺志澄出家 未久 至毘陵壇受具足戒 遍覽諸經 深究四分律 後至睦州(浙江省建德)參學於道明門下 經數載 盡得其道 又謁雪峰義存 依住三年 受其宗印 後歷叩諸方 參究玄要 名聲漸著 後梁乾化元年(911) 至曹溪(廣東省)禮六祖塔 後投於靈樹如敏會下 如敏推爲首座 貞明四年(918) 如敏示寂 師嗣其法席 主持靈樹寺 同光元年(923) 於雲門山創建光泰禪院 道風愈顯 海衆雲集 法化四播 後漢隱帝乾祐元年(948) 南漢王劉晟敕賜匡眞禪師 二年四月十日上表辭王 垂誡徒衆 端坐示寂 壽八十六 僧臘六十六 北宋乾德四年(966) 太祖復追諡大慈雲匡眞弘明禪師 師之機鋒險峻 門風殊絶 世稱雲門文偃 有雲門匡眞禪師廣錄三卷 語錄一卷行世 [古尊宿語錄十八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釋氏疑年錄五]
●法門; 門者差別之義 所說之法義有種種差別 故云法門 ▲增一阿含經十 如來開法門 聞者得篤信 ▲起信論疏上 軌生眞解 故名爲法 通入涅槃 故名爲門
●建立; 設立(敎法) 按禪家提倡平常無事 對于人爲的建立 持批評態度
●楞嚴經;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十卷 略稱大佛頂經 首楞嚴經 楞嚴經 首楞嚴義疏注經一曰 大唐神龍元年乙已歲(705) 五月二十三日 中天竺沙門般剌蜜帝 於廣州制止道場譯 (中略)又據開元中沙門智昇撰釋敎目錄二十卷 其第九云 大佛頂首楞嚴經十卷 大唐沙門懷迪 於廣州譯 迪循州人 住羅浮山南樓寺 久習經論 備諳五梵 因遊廣府 遂遇梵僧未詳其名 對文共譯 勒成十卷 經之題目 紙數文句 與今融本竝不差異
●聾瞽; 比喩欺騙 蒙蔽
●我見; 指執著有實我之妄見 亦卽於非我之法 妄執爲我 又云身見 按大乘起信論 此又分人法二種 一人我見 卽執著於色受想行識 以五蘊假合之身心爲實我 二法我見 卽妄計一切法皆有其實在體性
●種性; 種爲種子 有發生之義 性爲性分 有不改之義
●大盡三十日小盡二十九; 大月以三十日爲一月 小月以二十九日爲一月 大盡 指大月 小盡 指小月
●依草附木; 又曰依草附葉 謂精靈之依附草木者 對人之精靈而云 禪宗轉指對無力自行證悟而一向追隨他人言語之學者 稱爲依草附木精靈
●我手何似佛手; 禪苑蒙求中 黃龍三關 (會元十七)黃龍室中常問僧曰 人人盡有生緣 上座生緣在何處 正當問答交鋒 却復伸手曰 我手何似佛手 又問諸方參請宗師所得 却復垂脚曰 我脚何似驢脚 三十餘年示此三問 學者莫有契其旨 脫有酧者 師未甞可否 斂目危坐 人莫測其意 延之又問其故 師云 已過關者掉臂徑往 安知有關吏 問可否此未透關者也 叢林目之爲黃龍三關
●生緣; 本貫 籍貫 家鄕
●上座; 參禪僧中的首座稱爲上座 多用作對禪僧的尊稱
●凡百; 一切 種種
【36】 조각선사(照覺禪師; 常總)가 늑담(泐潭)으로부터 호계(虎谿)로 이주(移住)했음은 곧 왕자순(*王子淳) 관문(*觀文)의 소청(所請)에 다다랐음이다. 개당(*開堂)한 후 백폐(百廢)를 모두 들추어 내었고(擧) 승당(*陞堂)ㆍ소참(小參)ㆍ입실(入室)하느라 허일(虛日)이 없었다. 일찍이 말하되 회당(晦堂; 祖心)ㆍ진정(眞淨; 克文) 동문(同門)의 제로(諸老)는 다만 선사(先師; 황룡혜남)의 선(禪)을 참득(參得)했고 선사의 도(道)를 얻지 못했다. 스님(대혜)이 가로되 대개 조각(照覺)은 평상(平常)은 무사(無事)라 하여 지견(知見)과 해회(解會)를 세우지 않음으로 도를 삼았고 다시 묘오(妙悟)를 구하지 않았다. 도리어 제불제조(諸佛諸祖)와 덕산(*德山)ㆍ임제ㆍ조동(*曹洞)ㆍ운문(*雲門)의 진실한 돈오(頓悟)와 견성(見性)의 법문(*法門)을 가지고 건립(*建立)으로 삼았다. 릉엄경(*楞嚴經) 중에 설한 바 산하대지가 모두 이 묘명진심(妙明眞心) 중에 나타난 바의 물건이다 했는데 상어(上語)와 격(膈; 막히다)함이 되므로 역시 건립(建立)인가. 고인이 담현설묘(談玄說妙)한 것을 선(禪)으로 삼아 선성(先聖)을 무망(誣誷; 欺騙)하고 후곤을 농고(*聾瞽)한다. 안리(眼裏)에 근육이 없고 피하(皮下)에 피가 없는 무리가 전례(前例)를 따라 전도(顚倒)하고 염연(恬然; 고요함)하면서 불각(不覺)하니 참으로 가히 연민(憐憫)스럽다. 원각경에 이르되 말세 중생이 성도(成道)를 희망하면 구오(求悟)하게 하지 말지니 오직 다문(多聞)만 더하고 아견(*我見)을 증장(增長)한다. 우운(又云) 말세 중생이 비록 선우(善友)를 구하지만 사견자(邪見者)를 만나면 정오(正悟)를 얻지 못하나니 이는 곧 이름하여 외도(外道)의 종성(*種性)이거니와 사사(邪師)의 과류(過謬)며 중생의 허물이 아니다 했으니 어찌 허어(虛語)이겠는가. 소이로 진정화상(眞淨和尙)이 소참(小參)에 이르되 금시에 일반한(一般漢)이 있어 저(箇) 평상심(平常心)이 이 도라 함에 집착해 극칙(極則)으로 삼는다. 하늘은 이 하늘이며 땅은 이 땅이며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이며 승(僧)은 이 승이며 속(俗)은 이 속이며 대진은 삼십일이며 소진은 이십구다(*大盡三十日小盡二十九) 하거니와 모두 이 의초부목(*依草附木)인지라 부지불각(不知不覺)하면서 일향(一向) 미(迷)해 가지고 간다. 홀약(忽若) 그에게 묻되 아수가 어찌하여 불수와 같으냐(*我手何似佛手) 하면 곧 말하되 이는 화상의 수(手)다. 아각이 어찌하여 여각과 같으냐(我脚何似驢脚) 하면 곧 말하되 이는 화상의 각(脚)이다. 사람마다 저(箇) 생연(*生緣)이 있나니 어느 것(那箇)이 이 상좌(*上座)의 생연이냐 하면 곧 말하되 모(某)는 이 모주(某州)의 인사(人事)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다만 착회(錯會)하지 말아라. 범백(*凡百)의 시위(施爲)에 다만 평상(平常)의 일로자(一路子; 子는 조사)를 온당(穩當)함으로 삼음을 요하나니 정(定)하여 가지고 가고 합하여 가지고 가되 다시 감히 1보(步)를 따로 옳기지 말지니 갱참(坑塹)에 타락할까 두렵다. 장시(長時)에 생맹(生盲; 출생하면서 눈이 멂)의 사람의 행로(行路)의 1조(條) 장자(杖子; 지팡이)와 일사(一似; 흡사)하여 촌보(寸步)에도 포기함을 얻지 못하여 긴급히 파착(把著)하여 의빙(依憑)해 가지고 간다(이상 眞淨語). 회당화상(晦堂和尙)이 학자에게 일러 가로되 네가 여산(廬山)으로 가서 무사갑(無事甲; 甲은 갑옷. 껍질) 속에 앉아 가니 이금(而今)에 자손의 문(門)이 죽은 재와 같다 했으니 참으로 가히 탄식할 만하다.
●王子淳; 왕소(王韶; 1030-1081)니 송대 황룡파거사. 자는 자순(子淳)이며 덕안(호북 안륙) 사람. 북송의 명장(名將)이며 일찍이 관문전 학사가 된지라 고로 세칭이 왕관문(王觀文)임. 홍주자사ㆍ추밀원사가 되었고 일찍이 황룡산 회당조심(晦堂祖心)을 맞이해 도를 물었고 묵묵히 계합하는 바가 있었음 [백도백과. 속전등록22. 거사전25].
●觀文; 송대 관문전(觀文殿) 학사(學士)의 간칭(簡稱) [백도백과].
●開堂; 선원의 신임 주지가 처음으로 상당하여 설법함을 일컬어 개당이라 함. ▲조정사원8. 개당(開堂). 개당은 곧 역경원의 의식이다. 매세(每歲; 每年) 탄절(誕節; 임금이나 妃. 또는 聖人의 생일을 높여 부르는 말. 탄생절)에 반드시 번역한 신경(新經)을 상진(上進; 진상)하여 1인(천자)의 장수를 축원하였다. 2달 전에 2부(府)가 다 모여 번역을 보는 것을 이를 일러 개당이며 1달 전에 역경사와 윤문관이 또 모여 신경(新經)을 진상하는 것을 이를 일러 개당이라 한다. 여금에 종문에서 장로나 주지를 임명하여 법을 연설하는 처음을 또한 따라서 이를 일러 개당이라 하는 것은 이르자면 불조의 정법안장을 연설하고 위로 천산(天筭; 筭은 나이 산. 곧 천자의 나이)을 축원하고 또 사해 생령(생명. 생민)의 복을 삼나니 이 또한 이를 일러 개당이다.
●陞堂; 선사가 법당에 올라 대중을 위해 설법함을 일컬어 승당이라 함. 또 승당(昇堂)ㆍ승당(升堂)으로 지음.
●德山; 선감(宣鑑; 782-865)이니 당대승. 검남(劍南; 사천) 사람이며 속성은 주(周)며 법명은 선감임.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대소승(大小乘)의 여러 경에 지취(旨趣)를 관통(貫通)했는데 늘 금강반야경을 강설했으므로 인해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음. 후에 예양(澧陽)에 이르러 용담숭신(龍潭崇信)을 참알(參謁)했는데 야심(夜深)에 용담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사이에 휑하게(豁然) 돈오(頓悟)했음. 늘 방타(棒打; 주장자로 때림)로써 가르침을 삼은지라 덕산방(德山棒)의 칭호가 있음. 스님이 예양(澧陽)에 머문 30년에 당무종(唐武宗; 재위 841-846)의 폐교(廢敎)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로 피난하였다가 대중(大中; 847-859) 초에 무릉(武陵; 湖南) 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의 견고한 청에 응해 비로소 덕산에 거주하며 종풍을 크게 떨쳤음. 함통 6년 12월 3일 홀연히 여러 문도(門徒)에게 고해 가로되 허공을 어루만지고 곡향(谷響)을 쫓음은 너희의 심신(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꿈과 깸이 그른 줄 깨친다면 필경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말을 마치자 편안히 앉아 화거(化去)했으니 나이는 84며 승랍(僧臘)은 65임. 칙시(敕諡)가 견성대사(見性大師)며 법사(法嗣)로는 암두전활(巖頭全豁)ㆍ설봉의존(雪峰義存) 등이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5. 조당집5. 오등회원7].
●曹洞; 조동종 제1조 동산과 제2조 조산을 합칭하여 조동이라 함. 곧 조동종을 가리킴.
●雲門; 문언(文偃; 864-949)이니 당말(唐末) 오대승.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가 됨. 절강 가흥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張)이며 법명은 문언(文偃)임.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품고 가흥(嘉興) 공왕사(空王寺)의 지징(志澄)을 좇아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비릉단(毘陵壇)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여러 경을 편람(遍覽)하였고 사분율(四分律)을 깊이 연구했음. 후에 목주(睦州; 절강성 建德)에 이르러 도명(道明. 黃檗希運의 法嗣)의 문하(門下)에서 참학(參學)해 몇 해가 지나 그 도를 다 얻었음. 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알현(謁見)해 3년을 의지하며 머물고 그의 종인(宗印)을 받았음. 후에 제방을 다니며 고문(叩問)하면서 현요(玄要)를 참구하였고 명성이 점차 드러났음. 후량(後梁) 건화 원년(911) 조계(曹溪. 廣東省)에 이르러 육조탑(六祖塔)에 예배하고 뒤에 영수여민(靈樹如敏)의 회하(會下)에 투입했는데 여민이 추천(推薦)해 수좌가 되었음. 정명 4년(918) 여민이 시적하자 스님이 그 법석을 이어 영수사(靈樹寺)를 주지(主持)했음. 동광 원년(923) 운문산에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창건하자 도풍(道風)이 더욱 환해져 해중(海衆)이 운집하였고 법화(法化)가 사방으로 퍼졌음.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우 원년(948) 남한왕(南漢王) 유성(劉晟)이 광진선사(匡眞禪師)로 칙사(敕賜)했으며 2년 4월 10일에 표(表)를 올려 왕을 고별하고 도중(徒衆)에게 훈계(訓戒)를 내리고는 단정히 앉아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86이며 승랍은 66. 북송 건덕 4년(966) 태조(太祖)가 다시 추시(追諡)하여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 했음. 스님의 기봉(機鋒)이 험준하고 문풍(門風)이 수절(殊絶)했으며 세칭이 운문문언(雲門文偃)임.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真禪師廣錄) 3권과 어록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고존숙어록18. 전등록19. 선림승보전2. 석씨계고략3. 석씨의년록5].
●法門; 문이란 것은 차별의 뜻이니 설하는 바 법의(法義)에 갖가지 차별이 있는지라 고로 이르되 법문임. ▲증일아함경10. 여래가 법문을 여시니 듣는 자가 독신(篤信)함을 얻는다. ▲기신론소상. 궤칙(軌則; 규범으로 삼고 배움. 본받다)하여 진해(眞解)를 내는지라 고로 이름해 법이며 통하여 열반에 드는지라 고로 이름해 문이다.
●建立; (교법)을 설립. 안험컨대 선가에선 평상과 무사를 제창하므로 인위적인 건립에 대해선 비평의 태도를 가짐.
●楞嚴經;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이니 10권. 약칭이 대불정경(大佛頂經)ㆍ수릉엄경(首楞嚴經)ㆍ릉엄경임. 수릉엄의소주경1(首楞嚴義疏注經一)에 가로되 대당 신룡 원년 기사세(705) 5월 23일 중천축사문(中天竺沙門) 반랄밀제(般剌蜜帝)가 광주(廣州) 제지도량(制止道場)에서 역(譯)했다 (중략) 또 개원(開元) 중 사문 지승(智昇)이 지은 석교목록(釋敎目錄) 20권에 의거하자면 그 제9에 이르되 대불정수릉엄경십권(大佛頂首楞嚴經十卷) 대당사문(大唐沙門) 회적(懷迪)이 광주(廣州)에서 역(譯)했다. 회적은 순주 사람이다. 나부산(羅浮山) 남루사(南樓寺)에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경론을 익혔으며 오범(五梵)을 갖춰 안다. 광부(廣府)에 유람함으로 인해 드디어 그 이름이 미상인 범승(梵僧)을 만났는데 글을 대조하며 공역(共譯)해 다스려 10권을 이루었다. 경의 제목과 지수(紙數)와 문구가 지금의 융본(融本)과 모두 차이 나지 않는다.
●聾瞽; 기편(欺騙; 기만)ㆍ몽폐(蒙蔽; 덮어 감춤)에 비유.
●我見; 실아(實我)가 있다고 집착하는 망견(妄見)을 가리킴. 또한 곧 비아(非我)의 법에 망집(妄執)하여 아(我)로 삼음이니 또 이르되 신견(身見)임. 대승기신론을 안험컨대 여기에 또 인법(人法) 2종으로 구분함. 1. 인아견(人我見) 곧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집착하여 5온(蘊)으로 가합(假合)한 신심(身心)을 실아로 삼음. 2. 법아견(法我見) 곧 일체법이 모두 그 실재의 체성이 있다고 망계(妄計)함.
●種性; 종(種)은 종자니 발생의 뜻이 있고 성(性)은 성분이니 불개(不改)의 뜻이 있음.
●大盡三十日小盡二十九; 큰 달은 30일로써 한 달을 삼고 작은 달은 29일로써 한 달을 삼음. 대진은 큰 달을 가리키고 소진은 작은 달을 가리킴.
●依草附木; 또 가로되 의초부엽(依草附葉)임. 이르자면 정령(精靈)이 초목에 의부(依附)한 것이니 사람의 정령에 대해서 이른 것임. 선종에서 전(轉)하여 자행(自行)으로 증오(證悟)할 힘이 없고 일향(一向) 타인의 언어를 추수(追隨)하는 학자를 상대해 가리켜 의초부목정령(依草附木精靈)이라 일컬음.
●我手何似佛手; 선원몽구중. 황룡삼관(黃龍三關) (회원17) 황룡이 실중(室中)에서 늘 중에게 물어 가로되 사람마다 모두 생연(生緣)이 있나니 상좌의 생연은 어느 곳에 있느냐. 바로 문답하며 교봉(交鋒)함을 당해 도리어 다시 손을 내밀고(伸手) 가로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我手何似佛手). 또 제방에 종사를 참청(參請)하여 얻은 바를 묻고는 도리어 다시 다리를 내리고(垂脚) 가로되 내 다리가 어찌하여 나귀 다리와 같으냐(我脚何似驢脚). 30여 년을 이 세 질문을 보였는데 학자가 그 지취에 계합하는 이가 있지 않았다. 혹시(脫) 응수(應酧)하는 자가 있어도 스님이 일찍이 가(可)타 부(否)타 하지 않았고 눈을 감고(斂目) 위좌(危坐; 正坐)했다. 사람들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고 이어서 또 그 연고를 묻자 스님이 이르되 이미 관문(關門)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며 바로 가리니 어찌 관리(關吏)가 있음을 알리오. 가부(可否)를 묻는다면 이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다. 총림에서 이를 명목해 황룡삼관이라 했다.
●生緣; 본관(本貫)ㆍ적관(籍貫; 本貫)ㆍ가향(家鄕).
●上座; 참선승(參禪僧) 중에 수좌(首座)를 상좌(上座)라고 호칭함. 다분히 선승(禪僧)에 대한 존칭으로 쓰임.
●凡百; 일체(一切). 종종(種種).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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