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演祖曰 利生傳道 務在得人 而知人之難 聖哲所*病 *聽其言而未保其行 求其行而恐遺其才 自非素與交遊 備詳本末 探其志行 觀其器能 然後守道藏用者 可得而知 沽名飾貌者 不容其僞 縱其潛密 亦見淵源 夫觀探詳聽之理 固非一朝一夕之所能 所以*南嶽讓見*大鑒之後 猶執事十五秋 *馬祖見讓之時 亦相從十餘載 是知先聖授受之際 *固非淺薄所敢傳持 如一器水 傳於一器 始堪克紹*洪規 如*當家種草 此其觀探詳聽之理明騐也 豈容*巧言令色 *便僻*諂*媚而充選者哉〈圓悟書〉
●病; 憂也 聖人云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聽言觀行; 始我觀聽於人也 謂聽其所說 以爲有德 但恐其能言而不能行 必欲觀其所行之行也
●南嶽讓; 衡州南嶽懷讓禪師 金州杜氏子 嗣六祖大鑑禪師
●大鑑; 六祖惠能大鑑禪師 苑陽人 卽𣵠州也 盧氏子 先父遷於嶺南新州住 後生能 嗣五祖弘忍大師也
●馬祖; 江西馬祖道一禪師 漢州什邡縣馬氏子 嗣南嶽讓禪師 依羅漢寺出家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 乃唐德宗時人也
●固非下; 道高於師 方堪傳授 見與師齊 減師半德也
●洪規; 大法也 謂權衡佛祖 模範人天 非細事也
●當家種草; 當家者 選有德之子 克紹家業 使祖風之不遺墜也 種草者 如農家種田 相地厚薄而投子也
●巧言令色; 令 猶善也 言乃心之聲出於口 當出而出 色乃心之發見於面 當見而見 則天理存於內矣 或出諸於外 巧言如簧 甘言若醴 象恭其容 色莊其貌 務以悅人之聽觀 而本心之德全忘矣
●便僻; 外習威儀 擧止輕揚 而內無實德也
●諂; 屈己佞求曰諂
●媚; 親順取悅於人也
【31】 연조(演祖; 法演)가 가로되 이생(利生; 중생을 이롭게 함)하고 전도(傳道)함은 힘쓸 것이 득인(得人)에 있지만 사람을 아는 게 어려워 성철(聖哲)이 병(*病; 憂患)으로 여긴 바이다. 그 말만 듣고서는(*聽其言) 그 행을 보장(保障; 保其行)하지 못하고 그 행만 구하면 그 재능(才能; 才)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스스로 본디(素) 더불어 교유(交遊)하여 본말(本末)을 비상(備詳)하지 않았다면 그 지행(志行)을 정탐(偵探)하고 그 기능(器能)을 관찰한 연후에 수도(守道)하고 장용(藏用)하는 자라야 가히 얻어 안다. 명성을 팔고(沽名) 용모를 꾸미는(飾貌) 자는 그 위선(僞善)을 용납하지 말고 그 잠밀(潛密; 숨기다)하는 대로 놓아주면(縱) 또한 연원(淵源)을 본다. 무릇 관탐(觀探)하고 상청(詳聽)하는 이치는 참으로(固)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능할 바가 아니다. 소이로 남악양(*南嶽讓)이 대감(*大鑒)을 배견(拜見)한 후에 오히려 집사(執事)하기 15추(秋)였고 마조(*馬祖)가 회양(懷讓)을 참견(參見)했을 때 또한 상종(相從)하기 10여 재(載)였다. 이로 알지니 선성(先聖)이 수수(授受)하는 즈음에 참으로 천박(淺薄)이 감히 전지(傳持)할 바가 아니었으니(*固非淺薄所敢傳持) 1기(器)의 물을 1기(器)에 전함과 같았고 비로소 가히(堪) 홍규(*洪規)를 능히(克) 이었으니 당가의 종초(*當家種草)와 같았다. 이것이 이 관탐(觀探)하고 상청(詳聽)하는 이치의 명험(明騐)이거늘 어찌 교언영색(*巧言令色)과 편벽첨미(*便僻*諂*媚; 諂은 저본에 謟로 지었음)를 용납하여 충선(充選; 選拔에 充當. 저본에 克選으로 지었음)하는 것이겠는가. 〈圓悟書〉.
●病; 우(憂)다. 성인(聖人; 공자)이 이르되 남이 나를 알지 못함을 우환으로 여기지 말고 남을 알지 못함을 우환으로 여겨라(論語 學而).
●聽言觀行(觀行을 본문에 保行으로 지었음); 처음에 내가 남을 관청(觀聽)함이다. 이르자면 그의 설하는 바를 듣고(聽) 유덕(有德)으로 삼거니와 단지 그가 능언(能言)하고 능행(能行)하지 못할까 염려한다 함이니 반드시 그의 소행(所行)의 행을 보고자(觀) 함이다.
●南嶽讓; 형주(衡州; 지금의 호남성 衡陽縣) 남악(南嶽) 회양선사(懷讓禪師; 677-744)니 금주(金州; 지금의 陝西 安康) 두씨(杜氏)의 아둘이며 6조 대감선사(大鑑禪師)를 이었다.
●大鑑; 6조 혜능(惠能; 638-713) 대감선사(大鑑禪師; 혜능의 시호)다. 범양(苑陽) 사람이니 곧 탁주(𣵠州)다. 노씨(盧氏)의 아들이니 선부(先父)가 영남(嶺南) 신주(新州)로 옮겨 거주했고 후에 혜능을 낳았으며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이었다.
●馬祖; 강서 마조 도일선사(道一禪師; 709-788)니 한주(漢州; 지금의 사천성 廣漢市) 십방현(什邡縣) 마씨의 아들이며 남악 회양선사를 이었다. 라한사에 의지해 출가했고 용모가 기이(奇異)했으니 우행호시(牛行虎視)였고 혀를 늘이면(引) 코에 이르렀고(過). 족하(足下)에 2륜(輪)이 있었다. 곧 당 덕종(德宗; 742-805 재위 779-805) 때의 사람이다.
●固非下; 도가 스승보다 높아야 바야흐로 전수(傳授)를 감내하나니 견해가 스승과 더불어 가지런하면 스승의 반덕(半德)을 감한다.
●洪規; 대법(大法)이다. 이르자면 불조를 권형(權衡; 저울질)하고 인천(人天)의 모범(模範)이니 세사(細事)가 아니다.
●當家種草; 당가(當家)란 것은 유덕지자(有德之子)를 선발해 능히(克) 가업(家業)을 이어 조풍(祖風)으로 하여금 유추(遺墜; 遺失墜落)하지 않게 함이다. 종초(種草)란 것은 농가의 종전(種田)과 같나니 땅의 후박(厚薄)을 보아서(相) 씨(子)를 던진다.
●巧言令色; 령(令)은 선(善)과 같음. 언(言)은 곧 마음의 소리가 입에서 나옴이니 나옴을 당해서 나오며 색(色)은 곧 마음에서 나와 얼굴에 나타남이니 나타남을 당해서 나타난다. 곧 천리(天理)는 안에 존재하면서 혹 밖으로 나온다. 교언은 황(簧; 서 황)과 같고 감언은 단술과 같다. 그 얼굴은 상공(象恭; 공경하는 체함)하고 그 모습은 색장(色莊; 엄숙한 빛을 띰)하면서 타인의 청관(聽觀)을 기쁘게 함에 힘쓴다면 본심의 덕은 전부 망각하였다.
●便僻; 밖으로 위의를 익혀 거지(擧止)가 경양(輕掦)하고 안으로 실덕(實德)이 없음이다.
●諂(저본에 謟로 지었음); 자기를 굽혀 아첨하며 구함을 가로되 첨(諂; 저본에 謟로 지었음)이다.
●媚; 친순(親順)하며 남에게서 기쁨(悅)을 취함이다.
新州; 廣東省肇慶府新興縣的古稱 晉初稱新寧縣 梁 唐武德四年(621)以後新州 唐天寶元年(742)新興郡 宋代新州 新寧郡 明洪武(1368-1398)以後新興縣 六祖慧能出身地
광동성 조경부 신흥현의 고칭(古稱). 진초(晉初)에 신녕현(新寧縣)으로 일컬었음. 양(梁)과 당 무덕 4년(621) 이후의 신주는 당 천보 원년(742)의 신흥군이었고 송대의 신주는 신녕군이었고 명 홍무(1368–1398) 이후로는 신흥현이었음. 6조 혜능의 출신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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