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028

태화당 2022. 9. 16. 07:59

28 演祖曰 師翁初住*楊岐 老屋敗椽 僅蔽風雨 適臨冬* *滿牀 居不*處 衲子投誠願充修造 師翁却之曰 我佛有言 時當減劫 高岸深谷 遷變不常 安得圓滿如意 自求稱足 汝等出家學道 做手脚未穩 已是四五十歲 *有閒工夫*事豐屋耶 竟不從 *日上堂曰 楊岐乍住屋壁疎 滿牀盡撒雪珍珠 縮却項 暗嗟吁 翻憶古人*樹下居廣錄

楊岐; 袁州楊岐山方會禪師 宜春冷氏之子 嗣慈明圓禪師 南嶽下十世

; 與暮同

; 雨雪雜下

; 不急之貌 謂雖有雪霰 不以寒苦動其心

; 豈也

事豐屋; 事 好也 宋李靖公名沆 爲丞相 自奉甚薄 所居陋巷 廳事無重門 家人勸修之 沆曰 身食厚祿 安榮如意 人生朝暮不保 奚用功夫 事豐屋也

; 明日也

樹下居; 佛戒弟子 日中一食 樹下一宿 修身以避名 臨大節而不可奪

 

28 연조(演祖; 法演)가 가로되 사옹(師翁; 楊岐方會)이 처음 양기(*楊岐)에 주()했는데 노옥(老屋; 舊屋)에 패연(敗椽; 무너진 써까래)이라 겨우() 풍우를 가렸다(). 마침() 동모(*; 12)에 임해 눈싸라기(*)가 만상(滿牀)했지만 거주하매 황처(*)가 아니었다. 납자(衲子)들이 투성(投誠)하여 수조(修造)에 충임(充任)하기를 원했지만 사옹이 이를 물리치며 가로되 우리 불타가 말씀이 있었으니 시()가 감검(減劫)에 당()해 고안(高岸)과 심곡(深谷)의 천변(遷變)이 불상(不常; 不固定)하거늘 어찌 원만하고 여의(如意)함을 얻어 스스로 만족을 구하겠는가. 너희 등이 출가하여 학도(學道)하면서 수각(手脚)을 짓되 안온(安穩)하지 못한 지 이미 이 사오십 세거늘 어찌(*) 한공부(閒工夫)가 있어 풍옥을 좋아하느냐(*事豐屋). 마침내 따르지 않았다. 익일(*) 상당(上堂)하여 가로되 양기(楊岐)가 잠시() 머무는 옥벽(屋壁)이 엉성하여() () 가득히 다 설진주(雪珍珠)를 뿌렸다. 목을 옴츠리고 가만히 차우(嗟吁)하노니 도리어 고인이 수하에 거처(*樹下居)함을 추억한다. 廣錄

楊岐; 원주(袁州; 저본에 遠州로 지었음) 양기산 방회선사(方會禪師; 996-1049)니 의춘 냉씨의 아들이며 자명원(慈明圓; 楚圓이니 汾陽善昭를 이었음)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南嶽下; 下字 補入) 10세다.

; ()와 같다.

; 우설(雨雪)이 섞여 내림이다.

; 불급(不急)의 모양이니 이르자면 비록 설산(雪霰)이 있지만 한고(寒苦) 때문에 그 마음이 동하지 않음이다.

; ().

事豐屋; ()는 호(). () 이정공(李靖公)은 이름이 항()이다. 승상(丞相)이 되었는데 스스로 심히 박()함을 받들었고 소거(所居)는 누항(陋巷)이었다. 청사(廳事)에 중문(重門)이 없었고 가인(家人)이 그것을 수축(修築)하기를 권하자 항()이 가로되 신식(身食; 몸의 음식)과 후록(厚祿; 俸祿)으로 안영(安榮)함이 뜻과 같겠는가. 인생은 조모(朝暮)를 보전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공부(功夫)를 써서 풍옥을 좋아하겠는가(事豐屋).

; 명일(明日)이다.

樹下居; 불타가 제자에게 경계(警戒)하되 일중(日中; 정오 이전을 가리킴)에 일식(一食)하고 수하(樹下)에 일숙(一宿)하라. 수신(修身)하여 피명(避名; 명리를 피함)하고 대절(大節; 節操)에 임()하면 가히 뺏지 못한다.

 


師翁; 又作師祖 指師之師而言

또 사조(師祖)로 지음. 스승의 스승을 가리켜 말함.

 

修造; 修理築造 又修理築造之者

수리하고 축조함. 또 수리하고 축조하는 자임.

 

減劫; 增劫之對稱 於住劫之中由人壽無量歲 每百年減一歲 至人壽十歲 爲第一之減劫 由是每百年增一歲 至人壽八萬歲 更下至十歲爲第二之減劫 如此一上一下 終第十九之減劫 更增至人壽八萬歲 爲第二十之增劫 至住劫而終 卽第一止於減數 第二十止於增數 中間有十八回之增減 是曰住劫之二十增減 此中由第一至第十九減壽之時期 名減劫 由第二至第二十增壽之時期 名增劫 [俱舍論十二]

증겁(增劫)의 대칭. 주겁(住劫)의 가운데 사람의 수명이 무량한 나이로부터 매 백 년마다 1살이 감소하여 사람의 나이가 10살에 이르면 제1의 감겁(減劫)이 됨. 이로부터 매 백 년마다 1살이 증가하여 사람의 나이가 8만 살에 이르렀다가 다시 내려가 10살에 이르면 제2의 감겁이 됨. 이와 같이 한 번 오르고 한 번 내려 제19의 감겁을 마치면 다시 증가하여 사람의 나이 팔만 살에 이르는데 제20의 증겁이 되며 주겁에 이르러 마침. 곧 제1의 감수(減數)에 머묾과 제20의 증수(增數)에 머무는 중간에 18회의 증감이 있는데 이를 가로되 주겁의 20증감임. 이 중에 제1로부터 제19의 감수(減壽)의 시기에 이르기까지를 이름해 감겁이며 제2로부터 제20의 증수(增壽)의 시기에 이르기까지를 이름해 증겁임 [구사론12].

 

手脚; 又作脚手 手段 技倆 擧動也 又指有工巧之手段技倆者

또 각수(脚手)로 지음. 수단ㆍ기량ㆍ거동임. 또 공교(工巧)한 수단이나 기량이 있는 자를 가리킴.

 

上堂; 此指上法堂 爲演法而上法堂也 此有旦望上堂 五參上堂 九參上堂 謝秉拂上堂 謝都寺上堂 出隊上堂 出鄕上堂等

여기에선 법당에 오름을 가리킴이니 연법(演法)하기 위해 법당에 오름임. 이에 단망상당(旦望上堂)ㆍ오참상당(五參上堂)ㆍ구참상당(九參上堂)ㆍ사병불상당(謝秉拂上堂)ㆍ사도사상당(謝都寺上堂)ㆍ출대상당(出隊上堂)ㆍ출향상당(出鄕上堂) 등이 있음.

 

袁州; 今江西省北西部宜春縣的古稱 袁州北七十里 有楊岐方會的道場楊岐山普通禪院 南六十里有仰山慧寂所創的太平興國寺

지금의 강서성 북서부 의춘현의 옛 명칭. 원주 북쪽 70리에 양기방회의 도량 양기산 보통선원이 있고 남쪽 60리에 앙산혜적이 창건한 바의 태평흥국사가 있음.

 

; 이항(李沆; 947-1004) 宋代洺州(今屬河北)人 字太初 太平興國(976-997)進士 除右補闕 眞宗時拜相 深謀遠識 博通釋典 居常端默寡言 尤厭榮利 臨終盛暑 停屍七日 顔色不變 吐香如蓮花 卒謚文靖 [名公法喜志三 居士分燈錄上]

송대 명주(지금 하북에 속함) 사람이며 자는 태초. 태평흥국(976-997)에 진사(進士)였고 우보궐(右補闕)에 제배(除拜)되었고 진종 때 배상(拜相; 재상에 제배됨)했음. 깊은 모략과 원대한 견식이었으며 석전(釋典)을 널리 통달했음. 거상(居常; 평상시)에 단정하고 묵묵하고 말이 적었음. 더욱이 영리(榮利)를 싫어했음. 임종에 성하(盛暑)였는데 시체를 정류한 지 7일에 안색이 변하지 않았으며 연화와 같은 향을 토했음. 졸시(卒謚)는 문정(文靖) [명공법희지3. 거사분등록상].

 

丞相; 官名 一般指皇帝下面的最高行政官 輔佐皇帝總理百政的官員 戰國 秦朝 漢朝 輔佐君主的最高官吏 宰相不一定是丞相 宰相在不同朝代 有不同的官職對應 比如在唐玄宗時期改尙書僕射爲丞相 當時的丞相就不是宰相之職 元朝的行省丞相則爲地方官 亦非宰相 [百度百科]

벼슬 이름. 일반으로 황제 하면(下面)의 최고 행정관을 가리킴. 황제를 보좌하며 백정(百政)을 총리(總理)하는 관원임. 전국(戰國)ㆍ진조(秦朝)ㆍ한조(漢朝)에선 군주를 보좌하는 최고 괸리였음. 재상(宰相)은 일정한 이 승상이 아니었음. 재상은 부동(不同)의 조대(朝代)에 부동의 관직의 대응이 있었으니 비여(比如) 당 현종 시기엔 상서복야(尙書僕射)를 고쳐 승상(丞相)이라 했고 당시의 승상은 그대로 이 재상의 직이 아니었음. 원조(元朝)의 행성(行省)의 승상은 지방관이 되었으며 또한 재상이 아니었음 [백도백과].

 

廳事; 官署視事問案的廳堂

관서(官署)에서 시사(視事)하고 문안(問案)하는 청당(廳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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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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