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白雲初住九江承天 次遷圓通 年齒甚少 時*晦堂在*寶峰 謂*月公晦曰 新圓通*洞徹見元 不*忝楊岐之嗣 惜乎發用太早 非叢林福 公晦因問其故 晦堂曰 *功名美器 造物惜之 不與人全 人固欲之 天必奪之 逮白雲*終于舒之海會 方五十六歲 識者謂晦堂知*幾知微 眞哲人矣〈湛堂記聞〉
●晦堂; 隆興府黃龍山 祖心晦堂寶覺禪師 南雄鄔氏子 嗣黃龍 南嶽下十二世也
●寶峰; 寺名
●月公晦; 諱曉月 字公晦 得法於瑯琊覺禪師 於宋熈寧間 住洪州泐潭寶峰精舍 作楞嚴標旨
●洞徹; 洞明玄理 徹底無依
●忝; 辱也
●功名美器; 有功名 無美器 有美器 無功名 葢天命也 不與人全 昔种放隱終南 聞希夷之風 往見之 希夷曰 當有顯宦 但名者古今美器 造物所忌 子名將有敗之 後果如言也
●終; 君子曰終 小人曰死 謂君子有益於時 死聞於後 平生以保身爲事 故沒可言終也 死者澌盡泯沒 濫朽無節 故小人則言死也 文見論語大全
●幾微; 易繫辭曰 知幾其神乎 君子上交不諂 下交不凟 其知幾乎 幾者動之微 吉凶之先見者也
【44】 백운(白雲; 守端)이 처음 구강(九江) 승천(承天; 寺名)에 주(住; 주지)했고 다음 원통(圓通; 寺名)으로 옮겼는데 연치(年齒; 연령)가 심히 적었다(少). 때에 회당(*晦堂)이 보봉(*寶峰)에 있으면서 월공회(*月公晦)에게 일러 가로되 신원통(新圓通; 守端)은 통철(*洞徹)하게 견원(見元; 根源을 보다)했으니 양기지사(楊岐之嗣)에 욕되지(*忝) 않지만 애석하게도 발용(發用; 運用. 使用)이 너무 일러 총림의 복이 아니다. 공회(公晦)가 인하여 그 연고를 물었다. 회당이 가로되 공명미기(*功名美器)는 조물(造物; 조물주)이 이를 아껴 사람에게 전부 주지 않는다. 사람이 굳이(固) 그것을 바라면(欲) 하늘이 반드시 그것을 뺏는다. 백운이 서(舒; 舒州)의 해회(海會; 海會禪院)에서 마침(*終)에 이르자(逮) 바야흐로 56세(五十六歲)였다. 식자(識者)가 이르되 회당이 지기지미(知*幾知微)했으니 참다운 철인(哲人)이다. 〈湛堂記聞〉
●晦堂; 융흥부(隆興府) 황룡산 조심(祖心; 1025-1100) 회당(晦堂; 조심의 호) 보각선사(寶覺禪師; 조심의 시호)니 남웅(南雄) 오씨(鄔氏)의 아들이다 황룡(黃龍; 慧南)을 이었으니 남악하 12세다.
●寶峰; 사명(寺名)이다.
●月公晦; 휘(諱)는 효월(曉月)이며 자는 공회(公晦)며 낭야각(瑯琊覺; 慧覺이니 汾陽善昭의 法嗣) 선사에게서 득법했다. 송 희녕(1068-1077) 간(間) 홍주(洪州) 늑담(泐潭) 보봉정사(寶峰精舍)에 주(住)했고 릉엄표지(楞嚴標旨)를 지었다.
●洞徹; 현리(玄理)를 통명(洞明)하고 철저히 의지함이 없음이다.
●忝; 욕(辱)이다.
●功名美器; 공명(功名)이 있으면 미기(美器)가 없고 미기가 있으면 공명이 없음은 대개 천명(天命)이니 사람에게 전부 주지는 않는다. 지난날(昔) 충방(种放)이 종남산에 은거했는데 희이(希夷)의 풍도(風度)를 듣고 가서 그를 상견했다. 희이가 가로되 마땅히 현관(顯宦)이 있으리라. 단지 명(名)이란 것은 고금의 미기(美器)며 조물(造物)이 기휘(忌諱)하는 바니 자네의 명(名)은 장차 패(敗)함이 있으리라. 후에 과연 말과 같았다.
●終; 군자는 가로되 종(終)이며 소인(小人)은 가로되 사(死)다. 이르자면 군자는 시(時)에 유익(有益)하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지나니(聞) 평생 보신(保身)으로써 일삼는지라 고로 몰(沒; 歿과 같음)하면 가히 종(終)이라고 말한다. 사(死)란 것은 시진(澌盡; 다해 없어지다)하여 민몰(泯沒; 消滅)하고 남후(濫朽; 不實하여 썩다)하여 무절(無節; 마디가 없음)이니 고로 소인은 곧 사(死)라고 말한다. 글은 논어대전(論語大全)을 보라.
●幾微; 역(易) 계사(繫辭)에 가로되 지기(知幾)함이 그 신(神)인가. 군자는 상교(上交; 위와 교류)하면서 불첨(不諂; 저본에 不謟로 지었음)하고 하교(下交)하면서 부독(不凟; 업신여기지 않음)하나니 그 지기(知幾)함인가. 기(幾)란 것은 동(動)의 미(微)며 길흉의 앞(先)에 나타나는(見) 것이다.
五十六歲; 五燈會元十九等諸禪錄皆作熈寧五年遷化壽四十八
오등회원19 등 여러 선록에 모두 희녕 5년에 천화했고 나이는 48이다로 지었음.
种放; (956-1015) 字明逸 宋代 河南洛陽(今屬河南)人 好學 七歲能文 無意於擧業 父卒 與其母隱居終南山 以講習爲業 從學者衆 [百度]
(956-1015) 자는 명일(明逸)이며 송대(宋代) 하남 낙양(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 학문을 좋아했고 7세에 능문(能文)했으나 거업(擧業)에 뜻이 없었음. 부친이 죽자 그 모친과 더불어 종남산에 은거하며 강습(講習)으로써 업을 삼았는데 따르며 배우는 자가 많았음 [백도].
希夷; 希夷先生陳摶(871-989) 字圖南 自號扶搖子 宋太宗賜號希夷先生 唐末五代隱士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摶; 871-989)이니 자는 도남이며 자호(自號)는 부요자(扶搖子)니 송태종이 사호(賜號)하여 희이선생이라 했음. 당말오대의 은사.
顯宦; 指職位高聲勢顯赫的官吏
직위가 높고 성세(聲勢)가 현혁(顯赫)한 관리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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