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白雲謂演祖曰 禪者智能 多見於已然 不能見於未然 *止觀定慧 防於未然之前 *作止任滅 覺於已然之後 故作止任滅 所用易見 止觀定慧 所爲難知 惟古人志在於道 絕念於未萌 雖有止觀定慧 作止任滅 皆爲本末之論也 所以云 若有毫端許言於本末者 皆爲*自欺 此古人見徹處而不自欺也〈實錄〉
●止觀定慧; 三觀之總名也 停息諸念曰止 如理思惟曰觀 內心不動曰定 隨緣照了曰慧 梵語奢摩他 此云止 止久曰定 梵語三摩鉢提 此云觀 觀久曰慧 梵語禪那 此云等該 等該前二 卽定慧之通稱 通遮通照 故曰等該 在因曰止觀 在果曰定慧 若約三學互論 卽一心不動 人境雙忘曰戒 覺心圓明 內外湛然曰定 隨緣應物 妙用無窮曰慧 名雖有三 其揆一也
●作止任滅; 作者 卽心造心作之謂也 若有人言 我於本心作種種行 欲求眞理 卽名爲病 止者 止妄卽眞之謂也 若有人言 我今永息諸念 寂然平等 欲求眞理 卽名爲病 任者 隨緣任情之謂也 若有人言 我等今者 不斷生死 不求涅槃 任彼一切 欲求眞理 是名爲病 滅者 寂滅之謂也 若有人言 我今求永滅一切煩惱身心 根塵虗妄境界 欲求眞理 是名爲病 止觀定慧爲本 作止任滅爲末
●自欺; 欺昧也 大學曰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知爲善以去惡 而心之所發由未誠 是爲自欺也
【42】 백운(白雲; 守端)이 연조(演祖; 法演)에게 일러 가로되 선자(禪者)의 지능(智能)은 다분히 이연(已然)만 보고 능히 미연(未然)을 보지 못한다. 지관정혜(*止觀定慧)는 미연지전(未然之前)을 예방(豫防)하고 작지임멸(*作止任滅)은 이연지후(已然之後)를 깨닫는지라 고로 작지임멸은 소용(所用)을 보기 쉽지만 지관정혜는 소위(所爲)를 알기 어렵다. 오직(惟) 고인(古人)은 의지(意志)가 도에 있으면서 싹트지 아니한 이전에 절념(絕念)한지라 비록 지관정혜와 작지임멸이 있더라도 모두 본말(本末)의 논이 된다. 소이로 이르되 만약 호단(毫端)만큼이라도 본말을 말함이 있는 자는 모두 자기(*自欺)가 된다. 이것은 고인이 견지(見地)가 철저한 곳이며 자기(自欺)하지 아니한 것이다. 〈實錄〉
●止觀定慧; 3관(觀)의 총명(總名)이다. 제념(諸念)을 정식(停息)함을 가로되 지(止)며 여리(如理)하게 사유함을 가로되 관(觀)이며 내심(內心)이 부동(不動)함을 가로되 정(定)이며 수연(隨緣)하여 조료(照了)함을 가로되 혜(慧)다. 범어(梵語) 사마타(奢摩他; 梵 śamatha)는 여기에선 이르되 지(止)니 지(止)가 오램(久)을 가로되 정(定)이다. 범어 삼마발제(三摩鉢提; 梵 samāpatti)는 여기에선 이르되 관(觀)이니 관(觀)이 오램을 가로되 혜(慧)다. 범어 선나(禪那; 梵 dhyana 巴 jhana)는 여기에선 이르되 등해(等該)니 앞의 둘(定ㆍ慧)을 등해(等該)하며 곧 정혜(定慧)의 통칭(通稱)이다. 차(遮)에도 통하고 조(照)에도 통하므로 고로 가르되 등해(等該)다. 인(因)에 있으면 가로되 지관(止觀)이며 과(果)에 있으면 가로되 정혜(定慧)다. 만약 3학(三學; 戒定慧)을 대약(大約)하여 호론(互論)하자면 곧 일심이 부동(不動)하고 인경(人境)을 쌍망(雙忘)함을 가로되 계(戒)며 각심(覺心)이 원명(圓明)하여 내외가 담연(湛然)함을 가로되 정(定)이며 수연(隨緣)하여 응물(應物; 사람에 응함)하면서 묘용(妙用)이 무궁(無窮)함을 가로되 혜(慧)니 이름은 비록 셋이 있으나 그 규(揆; 法道. 道理)는 하나다.
●作止任滅; 작(作)이란 것은 곧 심조심작(心造心作)을 이름(謂)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본심에서 갖가지 행을 지어(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곧 이름하여 병(病)이다. 지(止)란 것은 망(妄)을 그쳐(止) 진(眞)에 붙음(卽)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여금에 영원히 제념(諸念)을 쉬어(息) 적연(寂然)하고 평등하게 하여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곧 이름하여 병이다. 임(任)이란 것은 수연임정(隨緣任情)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 등은 금자(今者)에 생사를 끊지 않고 열반도 구하지 않으면서 저 일체에 맡겨(任)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이를 이름하여 병이다. 멸(滅)이란 것은 적멸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여금에 일체의 번뇌의 신심(身心)과 근진(根塵)의 허망한 경계를 영멸(永滅)함을 구해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이를 이름하여 병이다. 지관정혜(止觀定慧)는 본(本)이 되고 작지임멸(作止任滅)은 말(末)이 된다.
●自欺; 기(欺)는 매(昧)다. 대학(大學)에 가로되 이른 바 그 뜻을 성(誠; 精誠)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自欺)가 없음(毋)이다. 위선(爲善)하여 거악(去惡)하되 마음의 소발(所發)이 미성(未誠)을 말미암는 줄 아나니 이것이 자기(自欺)가 된다.
大學; 禮記大學 是一篇論述儒家修身齊家治國平天下思想的散文 原是小戴禮記第四十二篇 相傳爲曾子所作 實爲秦漢時儒家作品 是一部中國古代討論敎育理論的重要著作 經北宋程顥程頤竭力尊崇 南宋朱熹又作大學章句 [百度]
예기(禮記)의 대학(大學)이니 이는 1편(篇)의 유가(儒家)의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의 사상을 논술한 산문(散文)임. 원래는 이 소대예기(小戴禮記) 제42편이며 상전(相傳)하기를 증자(曾子)의 소작(所作)이라 하나 실로 진한(秦漢) 시 유가의 작품이 됨. 이는 1부의 중국 고대 교육이론을 토론한 중요한 저작임. 북송 정호(程顥)ㆍ정이(程頤)가 갈력(竭力)으로 존숭(尊崇)함을 겪었고 남송 주희가 또 대학장구(大學章句)를 지었음 [백도].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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