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草堂曰 學者立身須要正當 勿使人竊議 一涉異論 則終身不可立矣 昔大陽*平侍者 道學爲叢林推重 以處心不正 識者非之 遂致終身*坎坷 逮死無歸 然豈獨學者而已 爲一方主人 尤宜祗畏〈與一書記書〉
●平侍者; 太陽平侍者 預明安之室有年矣 雖盡得其旨 惟以生滅爲己任 擠陷同列 忌出其右 時瑯琊廣照 公安圓鑑居衆時 汾陽昭禪師 令其探明安宗旨 太陽明安云 興洞山一宗 非遠卽覺也 二師云 有平侍者在 安以手指胷云 此處不佳 又揑拇指叉中示云 平向去當死於此爾 旣明安遷化 遺囑云 瘞身十年無難 當爲太陽山打供 入塔時 門人恐平將不利於師 遂作李和文都尉 所施黃白器物 書於塔銘 實無也 後平住太陽 忽云 先師靈骨 風水不利 取而焚之 山門耆宿切諫 平云 與我有妨 遂發塔 見師顔貌如生 薪盡儼然 衆皆驚異 平以钁破其腦 益油薪 俄成灰燼 衆以其事聞於官 坐平謀塔中物 不孝還俗 平後自稱爲黃秀才 謁瑯琊 瑯瑯曰 昔年平侍者 今朝黃秀才 我在太陽時 見你做出來 遂不納 又謁公安 安亦然 平流浪無依 後于三叉路口 遭大虫食之 竟不免太陽手叉之記 悲哉
●坎坷; 不平之貌
【176】 초당(草堂; 善淸)이 가로되 학자가 입신(立身)하려면 모름지기 정당(正當)을 요하나니 타인으로 하여금 절의(竊議)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이론(異論)에 건너면 곧 종신(終身)토록 가히 성립하지 못한다. 옛적에 대양(大陽)의 평시자(*平侍者)는 도학(道學)을 총림에서 추중(推重)했으나 처심(處心; 居心. 存心)이 부정(不正)하여 식자(識者)가 이를 비난했는데 드디어 종신(終身)토록 감가(*坎坷)하다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돌아갈 곳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 유독(惟獨) 학자일 뿐이겠는가. 일방(一方)의 주인이 되었으면 더욱 마땅히 지외(祗畏; 敬畏)해야 한다. 〈與一書記書〉.
●平侍者; 태양(太陽; 大陽山)의 평시자(平侍者)가 명안(明安; 警玄)의 실(室)에 참예(參預)하기 여러 해(有年)였다. 비록 그(大陽)의 뜻을 다 얻었으나 오직 생멸(生滅)로써 자기(己)의 임무(任務)를 삼아 동렬(同列; 같은 줄. 같은 班列)을 함정(陷穽)에 밀어뜨렸으며(擠) 그의 우(右; 高, 貴의 뜻)를 초출하는 자(出其右)를 시기(猜忌)하였다. 때에 낭야광조(瑯琊廣照; 慧覺이니 汾陽善昭의 法嗣)와 공안원감(公安圓鑑; 法遠이니 葉縣歸省의 法嗣)이 대중에 거처할 때 분양소(汾陽昭; 善昭) 선사가 그들로 하여금 명안(明安)의 종지(宗旨)를 염탐(廉探)케 했다. 태양명안(太陽明安)이 이르되 동산(洞山)의 일종(一宗)을 일으킬 이는 원(遠; 法遠)이 아니면 곧 각(覺; 慧覺)이리라. 두 스님(法遠과 慧覺)이 이르되 평시자(平侍者)가 있습니다. 명안이 손으로써 가슴을 가리키며 이르되 이곳이 아름답지 못하다. 또 엄지손가락을 눌러 가운데에 교차(交叉)하고 보이며 이르되 평(平)은 향거(向去; 向後)에 응당 여기에서 죽으리라. 이미 명안이 천화(遷化)하자 유촉(遺囑)해 이르되 전신(全身)을 묻되 10년 동안 무난(無難)하면 마땅히 태양산(太陽山)을 위해 타공(打供)하라 했다. 입탑(入塔)할 때 문인(門人)들이 평(平)이 장차 스님에게 불리(不利)할까 염려하여 드디어 이문화(李和文) 도위(都尉)가 보시한 바의 황백기물(黃白器物; 金銀을 가리킴)로 만들었다(作)고 탑명에 서사(書寫)했지만 실로는 없었다. 후에 평(平)이 태양에 주(住)하면서 홀연히 이르되 선사(先師)의 영골(靈骨)이 풍수(風水)에 불리(不利)하니 취해서 그것을 불살라야 한다. 산문(山門)의 기숙(耆宿)이 간절히 간(諫)했지만 평이 이르되 나에게 방해(妨害)가 된다(與). 드디어 발탑(發塔; 發은 열 발)하니 스님의 안모(顔貌)가 생시(生時)와 같음을 보았다. 섶(薪)이 다하였는데도 엄연(儼然)한지라 대중이 다 경이(驚異)하였다. 평이 이에 괭이로 그 뇌(腦)를 깨뜨리고 기름과 섶을 더하니 잠시 만에 회신(灰燼; 灰는 재 회. 燼은 餘火)을 이루었다. 대중이 그 사건을 관(官)에 알렸다(聞). 평이 탑중(塔中)의 물건을 도모했고 불효(不孝)에 연좌(連坐)되어 환속(還俗)하였다. 평이 후에 자칭(自稱) 황수재(黃秀才)라 하였는데 낭야(瑯琊)를 참알하자 낭야가 가로되 석년(昔年)의 평시자(平侍者)가 금조(今朝)엔 황수재(黃秀才)로구나. 내가 태양에 있을 때 너의 지어 나옴(做出來)을 보았다 하고는 드디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또 공안(公安)을 참알하니 공안도 또한 그러했다. 평이 유랑하며 의지할 곳이 없었다. 후에 삼차로(三叉路)의 입구에서 대충(大蟲; 범)이 그를 먹음을 만났으니 마침내 태양의 수차지기(手叉之記)를 면하지 못했다. 슬프다(悲哉).
●坎坷; 불평(不平)한 모양.
立身; 使自己在社會上有相當地位
자기로 하여금 사회상(社會上)에 있어서 상당한 지위가 있게 함.
推重; 對某人的思想行爲成就等 給予很高的評價 表示十分重視
모인(某人)의 사상ㆍ행위ㆍ성취 등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급여(給予)함. 십분 중시함을 표시.
太陽; 大陽山 位於湖北郢州 指大陽明安
대양산(大陽山)이니 호북 영주(郢州)에 위치함. 대양명안(大陽明安)을 가리킴.
明安; 警玄(943-1027) 宋代曹洞宗僧 湖北江夏人 俗姓張 禮金陵崇孝寺智通出家 後遊化諸方 至湖南梁山參緣觀 承嗣其法 大中祥符(1008-1016)年間 爲避國諱 改名警延 其後住大陽山 天聖五年示寂 壽八十五 臘六十六 諡號明安大師 有大陽明安大師十八般妙語一卷傳世 [景德傳燈錄二十六 禪林僧寶傳三 佛祖歷代通載十七]
경현(警玄; 943-1027))이니 송대 조동종승. 호북 강하 사람이며 속성은 장. 금릉 숭효사 지통을 참례하고 출가했음. 후에 제방을 유화(遊化)하다가 호남 양산에 이르러 연관(緣觀)을 참했고 그의 법을 승사(承嗣)했음. 대중상부(大中祥符)년 간(1008-1016)에 국휘를 피해 경연(警延)으로 개명했음. 그 후 대양산에 거주하다가 천성 5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85, 납은 66이며 시호가 명안대사(明安大師). 대양명안대사십팔반묘어(大陽明安大師十八般妙語) 1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경덕전등록26. 선림승보전3. 불조역대통재17].
生滅; 有爲之諸法 依因緣和合而爲未有法之有 謂之生 依因緣離散而爲已有法之無 謂之滅 有生者必有滅 有爲法是也 有滅者必不有生 無爲法是也 但自中道之正見言之 則有爲法之生滅爲假生假滅 而非實生實滅
유위의 제법은 인연의 화합에 의해 있지 아니한 법이 있음으로 됨을 일컬어 생(生)이며 인연의 이산(離散)에 의해 이미 있던 법이 없어짐이 됨을 일컬어 멸(滅)임. 생이 있는 것은 반드시 멸이 있나니 유위법이 이것이며 멸이 있는 것은 반드시 생이 있음은 아니니 무위법이 이것임. 다만 중도(中道)의 정견(正見)으로부터 이를 말하자면 곧 유위법의 생멸은 가생가멸(假生假滅)이 되는지라 실생실멸(實生實滅)이 아님.
打供; 供養 護佑
공양. 호우.
入塔; 將亡僧屍骨安葬于塔墓中 有相應的入塔儀式
망승의 시골(屍骨)을 가져다 탑묘 중에 안장함이니 상응적인 입탑의식이 있음.
靈骨; 指舍利 新作設利羅 室利羅 此云骨身 身骨 通常指佛之遺骨 亦卽佛舍利 又尊稱死者之遺骨 亦稱靈骨
사리(舍利; 梵 sarira)를 가리킴. 신역으론 설리라(設利羅)ㆍ실리라(室利羅)로 지으며 여기에선 이르되 골신(骨身)ㆍ신골(身骨)임. 통상으론 불타의 유골을 가리키며 또 곧 불사리임. 또 죽은 자의 유골을 존칭하여 또한 영골(靈骨)로 일컬음.
風水; 也稱靑烏術 靑囊術 又作堪輿 舊指住宅基地墳地等的自然形勢 如地脈山水的方向等的體系 [百度百科 百度漢語]
또 명칭이 청오술(靑烏術)ㆍ청낭술(靑囊術)이며 또 감여(堪輿)로 지음. 옛적에 주택ㆍ기지(基地)ㆍ분지(墳地) 등의 자연 형세를 가리켰으니 예컨대(如) 지맥ㆍ산수의 방향 등의 체계(體系)임 [백도백과. 백도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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