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5 제33조 혜능대사(慧能大師) 08

태화당 2023. 2. 11. 08:28

上元元年肅宗遣使 就請師衣鉢歸內供養 至永泰元年五月五日 代宗夢六祖大師請衣鉢 七日勅刺史楊瑊云 朕夢感能禪師請傳法袈裟却歸曹溪 今遣鎭國大將軍劉崇景 頂戴而送 朕謂之國寶 卿可於本寺如法安置 專令僧衆親承宗旨者 嚴加守護勿令遺墜 後或爲人偸竊 皆不遠而獲 如是者數四 憲宗諡大鑒禪師 塔曰元和靈照 皇宋開寶初 王師平南海 劉氏殘兵作梗 師之塔廟鞠爲煨燼 而眞身爲守塔僧保護一無所損 尋有制興修功未竟 會太宗卽位留心禪門 頗增壯麗焉 大師自唐先天二年癸丑入滅 至今景德元年甲辰歲 凡二百九十二年矣 得法者除印宗等三十三人各化一方標爲正嗣 其外藏名匿迹者不可勝紀 今於諸家傳記中略錄十人 謂之旁出

王師; 天子的軍隊 國家的軍隊

塔廟; 玄應音義六 塔廟 塔婆 或義譯爲廟 古文廟 白虎通曰 廟者貌也 先祖尊貌也 今取其義矣

修功; 建立功業

 

상원(上元) 원년(元年; 760) 숙종(肅宗)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바로() 스님의 의발(衣鉢)을 청해 대내(大內)로 돌아와 공양했다. 영태(永泰) 원년(元年; 765) 55일에 이르러 대종(代宗)의 꿈에 6조 대사가 의발을 청했다. 7일에 자사(刺史) 양감(楊瑊)에게 칙령해 이르되 짐의 꿈에 능선사(能禪師)가 전법가사(傳法袈裟)를 조계로 각귀(却歸; 回歸)하라는 청을 감득(感得)했다. 이제 진국대장군(鎭國大將軍) 유숭경(劉崇景)을 보내어 정대(頂戴)하여 송환하라. 짐은 이를 일러 국보(國寶)라 하나니 경()은 가히 본사(本寺)에 여법(如法)하게 안치하라. 오로지() 승중(僧衆)에서 종지(宗旨)를 친승(親承)한 자로 하여금 엄()히 수호(守護)를 가()하여 유추(遺墜)함이 없게 하라. 후에 혹 사람에게 투절(偸竊; 盜竊)되었으나 모두 오래지() 않아 획득했으며 이와 같은 것의 횟수가 네 번이다. 헌종(憲宗)이 시()하여 대감선사(大鑒禪師)라 했고 탑을 가로되 원화영조(元和靈照)라 했다. 황송(皇宋) 개보(開寶; 968-976) 초 왕사(王師)가 남해(南海)를 평정(平定)했는데 유씨(劉氏)의 잔병(殘兵)이 재앙(災殃; )을 지어 스님의 탑묘(塔廟)가 외신(煨燼; 잿더미)됨을 알렸으나() 진신(眞身)은 수탑승(守塔僧)이 보호하여 하나도 손상되는 바가 없었다. 이윽고() 제흥(制興; 制度가 일어나다)하고 수공(修功)을 마치지 못했는데 마침() 태종(太宗)이 즉위하여 선문(禪門)에 유심(留心)한지라 자못 장려(壯麗)를 더했다(). 대사(大師)가 당 선천(先天) 2년 계축(癸丑; 713)에 입멸함으로부터 지금의 경덕(景德) 원년 갑진세(甲辰歲; 1004)에 이르기까지 무릇 292년이다. 득법자(得法者)는 인종(印宗) 33인이 각자 일방(一方)을 교화하고 정사(正嗣)로 표함()을 제()하고도 그 밖에 장명익적(藏名匿迹)한 자를 가히 다() 기록하지() 못한다. 여금에 제가(諸家)의 전기(傳記) 중에서 10인을 약록(略錄)하나니 이를 일러 방출(旁出)이라 한다.

王師; 천자의 군대. 국가의 군대.

塔廟; 현응음의6. 탑묘(塔廟) 탑파(塔婆; stūpa. thūpa)니 혹 의역하여 묘()라 함. 고문의 묘(). 백호통에 가로되 묘()란 것은 모()니 선조의 존모(尊貌). 여금에 그 뜻을 취한다.

修功; 공업(功業)을 건립함.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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