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新到僧 謂師曰 某甲從長安來 橫擔一條拄杖 不曾撥著一人 師曰 自是大德拄杖短〈同安顯別云 老僧遮裏不曾見恁麽人〉 僧無對〈法眼代云 呵呵 同安顯代云 也不短〉 有僧寫得師眞呈師 師曰 且道似我不似我 若似我卽打殺老僧 不似我卽燒却眞 僧無對〈玄覺代云 留取供養〉 師敲火問僧云 老僧喚作火 汝喚作什麽 僧無語 師云 不識玄旨徒勞念靜〈法燈別云 我不如汝〉 新到僧參 師問 什麽處來 僧云 南方來 師云 佛法盡在南方 汝來遮裏作什麽 僧云佛法豈有南北邪 師云 饒汝從雪峯雲居來 只是箇擔板漢〈崇壽稠別云 和尙是據客置主人〉 僧問 如何是佛 師云 殿裏底 僧云 殿裏者豈不是泥龕塑像 師云是 僧云 如何是佛 師云 殿裏底 僧問 學人迷昧乞師指示 師云 喫粥也未 僧云 喫粥也 師云 洗鉢去 其僧忽然省悟
●擔板漢; 擔板者只能看得板的一面 而不能看得另一面 故禪宗用以比喩見解偏執而不能融通全體之人
●塑像; 指用土塑造之佛像或其作法
신도승(新到僧)이 있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모갑이 장안으로부터 오면서 1조(條; 가닥)의 주장자를 가로 메었는데 일찍이 한 사람도 발착(撥著; 건드리다)하지 못했습니다. 사왈(師曰) 스스로 이 대덕(大德)의 주장자가 짧았다〈同安顯(紹顯)이 別云 노승의 이 속에선 일찍이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法眼이 代云 하하(呵呵). 同安顯이 代云 또한 짧지 않습니다〉. 어떤 중이 사진(師眞; 스님의 肖像)을 사득(寫得)하여 스님에게 드렸다(呈). 사왈 그래 말하라, 나와 흡사한가, 나와 흡사하지 않는가. 만약 나와 흡사하다면 곧 노승을 타살(打殺)할 것이며 나와 흡사하지 않다면 곧 진(眞; 초상)을 소각(燒却)하겠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玄覺이 代云 留取하여 供養하겠습니다〉. 스님이 불(火)을 두드리고 중에게 물어 이르되 노승은 불이라고 불러 짓는다. 너는 무엇이라고 불러 짓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사운 현지(玄旨)를 알지 못하면 사념을 고요히 함이 헛수고다(不識玄旨徒勞念靜; 증도가의 글)〈法燈이 別云 내가 너만 같지 못하다〉. 신도승(新到僧)이 참(參)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승운(僧云) 남방에서 옵니다. 사운 불법이 모두 남방에 있거늘 네가 이 속에 와서 무엇 하겠는가(作什麽). 승운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사운 비록 그러히(饒; 雖然) 네가 설봉(雪峯)이나 운거(雲居)로 좇아왔더 하더라도 다만 이(是箇) 담판한(擔板漢)이다〈崇壽稠가 別云 화상은 이 객에게 기대어 주인을 조치하는구나〉.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운 전(殿) 안의 것이다. 승운 전 안의 것은 어찌 이 이감(泥龕)의 소상(塑像)이 아니겠습니까. 사운 그렇다. 승운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운 전 안의 것이다. 승문 학인이 미매(迷昧)하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운 끽죽(喫粥)했느냐 또는 아니냐. 승운 끽죽했습니다. 사운 세발(洗鉢)하러 가거라. 그 중이 홀연히 성오(省悟)했다.
●擔板漢; 판자를 짊어진 자는 다만 능히 판자의 한 면만 간득(看得; 득은 조사)하고 능히 다른 한 면은 간득하지 못함. 고로 선종에서 견해가 편집(偏執)하여 능히 전체를 융통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유로 사용함.
●塑像; 흙을 사용하여 소조(塑造; 빚어 만듦)하는 불상 혹 그 작법을 가리킴.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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