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주희(朱熹)

태화당 2019. 8. 10. 08:39

주희(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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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숙독대혜록(少年熟讀大慧錄)

청익도겸유미성(請益道謙有微省)

첩언석씨시말류(輒言釋氏是末流)

만년탄왈혜능성(晩年嘆曰慧能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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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대혜록(大慧錄)을 숙독(熟讀)하고

도겸(道謙)에게 청익(請益)하여 조금 살핌이 있었다

번번이 말하되 석씨(釋氏)는 이 말류(末流)라 하더니

만년에 탄식하며 가로되 혜능(慧能)이 성인(聖人)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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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희(朱熹)는 남송(南宋)의 대유(大儒). 주자(朱子)는 그의 존칭(尊稱). 주자학(朱子學)의 비조(鼻祖).

1~2행 주희(朱熹)는 자()가 원회(元晦)며 호()가 회암(晦菴)이며 무원인(婺源人)이다. 소년(少年. 젊은 시절)에 시문(詩文)을 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하여 한 존숙(尊宿. 나이가 많고 도덕이 높은 스님)이 담선(談禪)하면서 본심(本心)을 직지(直指)함을 듣고 드디어 소소영령(昭昭靈靈)의 일착(一著)을 깨쳤다. 나이 열여덟에 유자휘(劉子翬)를 좇아 노닐었는데 휘()의 뜻으로는 그가 거업(擧業. 科擧의 일)에 유의(留意)하리라 여기고 협중(篋中. 은 대상자 협)을 수색(搜索)하니 오직 대혜어록일질(大慧語錄一帙) 뿐이었다. 일찍이 도겸(道謙)에게 글을 보내 가로되 접때 묘희(妙喜. 大慧)의 개시(開示)를 입어 종전(從前)의 기지(記持)한 문자와 심식계교(心識計較)를 실터럭만큼도 흉중(胸中)에 둠을 얻지 못하고 단지 구자화(狗子話)로써 때때로 제시(提撕. 提示 參究의 뜻. 할 서나 보통 시로 발음)합니다. 원컨대 한마디를 던져 미치지 못한 바를 경책(警責)하십시오. 도겸이 답해 가로되 모()가 이십 년 동안 능히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가 후에 홀연히 그름을 알아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바로 이 일도(一刀)로 양단(兩斷)하여 이 일념을 잡아 구자화두(狗子話頭)를 제시(提撕)하였습니다. 상량(商量)을 요()하지 않으며 천착(穿鑿)을 요하지 않으며 지견(知見)을 제거함을 요하지도 않으며 애써 승당(承當)함을 요하지도 않습니다. 주희가 언하(言下)에 살핌이 있었다. 오랜 비에 재거(齋居)하며 송경(誦經)하다 라는 시 (久雨齋居誦經詩) 가 있으니 가로되 단거(端居)하며 홀로 일이 없나니/ 애오라지 석씨의 글을 피열(披閱)하노라/ 잠시 진루(塵累)의 견인(牽引)을 쉬고/ 초연히 도와 더불어 거처하도다./ 죽림의 그윽함에 문을 닫으니/ 산우(山雨)의 나머지에 새가 우는구나/ 이 무위법을 깨치니/ 몸과 마음이 한가지로 안여(晏如)하도다 (端居獨無事 聊披釋氏書 暫息塵累牽 超然與道居 門掩竹林幽 禽鳴山雨餘 了此無爲法 身心同晏如) [佛祖綱目卷三十八]. 그러나 주희는 석씨(釋氏)의 말류(末流)를 한탄하며 번번이 왕성한 말로 그것을 배척(排斥)하였다. 만년엔 눈이 멀었는데 탄식하며 가로되 육조(六祖)가 참다운 성인(聖人)이로다 [佛祖綱目卷三十八]. 도겸(道謙)은 대혜(大慧)의 법사(法嗣). ()은 번번이 첩. 문득 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