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천자문

선종천자문(禪宗千字文) 황매재래(黃梅再來) 9

태화당 2019. 8. 11. 08:33

黃梅再來 南能北秀 曹溪壇經 膾炙人口

황매재래 남능북수 조계단경 회자인구


황매가 다시 오매/ 남능북수며/ 조계의 단경은/ 인구에 회자되더라.


 


黃梅再來; 黃梅 指五祖弘忍 弘忍是湖北黃梅人 且在黃梅東山說法 六祖壇經 一僧問師云 黃梅意旨 甚麽人得 師云 會佛法人得 僧云 和尙還得否 師云 我不會佛法 再來 指再來人 釋氏稽古略三 五祖弘忍大師尊者 蘄川黃梅縣人也 先爲破頭山栽松道者 甞請於四祖曰 法道可得聞乎 祖曰 汝已老 脫有聞 其能廣化邪 儻若再來 吾尙可遲汝 道者去行水邊 見一女子浣衣 揖曰 寄宿得否 女曰 我有父兄 可往求之 道者曰 諾 我則敢往求 女首肯之 道者回策歸山而化 其女周氏季子輒孕 父母大惡逐之 女無所歸 日庸紡里中 夕止衆舘下 已而生一子 以爲不祥 拋濁港中 明日泝流而上 大驚遂擧之 成童隨母乞食里中 逢一智者 嘆曰 此兒缺七種相不逮如來 後遇四祖得度 受其傳法 嗣化於破頭山

南能北秀; 慧能住於韶陽曹溪寶林寺 弘揚頓悟法門 與神秀於北方所倡之漸悟法門相對 史稱南頓北漸 南能北秀 六祖壇經 時 祖師居曹溪寶林 神秀大師在荊南玉泉寺 于時兩宗盛化 人皆稱南能北秀

曹溪壇經; 曹溪 位於韶州(今廣東曲江縣東南)之河 發源於狗耳嶺 西流與溱水合 以經曹侯塚故 又稱曹侯溪 梁天監元年() 天竺婆羅門三藏智藥 到曹溪口 飮其水而知此源爲勝地 乃勸村人建寺 復因其地似西國之寶林山 故稱寶林寺 智藥預言 一七年後 有肉身菩薩 於此開演無上法門 得道者如林 至唐儀鳳二年(六七七)春 六祖慧能從弘忍得法後 從印宗剃髮 受具足戒而歸寶林寺 大弘法化 人稱曹溪法門 指六祖慧能 慧能以曹溪寶林寺爲中心 開展敎化活動 世人尊稱爲曹溪古佛 曹溪高祖 壇經 一卷 全稱六祖大師法寶壇經 又稱法寶壇經 壇經 六祖慧能述 法海集 元代宗寶編 收於大正藏第四十八冊 其敦煌寫本亦收於同冊 爲禪宗六祖慧能於韶州大梵寺之說法內容 其弟子法海集錄而成 共分十門 一行由 二般若 三疑問 四定慧 五坐禪 六懺悔 七機緣 八頓漸 九宣詔 十付囑 本書法海奉韶州刺史韋之命集錄而成 然後人多所節略 而未能見祖意之大全 元代德異乃探求諸方 得其全文 世祖至元二十七年(一二九) 於吳中休休庵上梓 翌年 宗寶更校讎三種異本 正其訛誤 詳其節略 竝新增入弟子請益機緣而印行

膾炙人口; 喩指衆人愛讀


황매재래(黃梅再來); 황매(黃梅) 오조홍인(五祖弘忍)을 가리킴. 홍인은 이 호북(湖北) 황매(黃梅. 黃梅縣) 사람이며 또 황매의 동산(東山)에 있으면서 설법했음. 육조단경(六祖壇經) 한 중이 스님에게 물어 이르되 황매(黃梅. 弘忍)의 의지(意旨)를 어떤 사람이 얻었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불법(佛法)을 아는 사람이 얻었다. 중이 이르되 화상(和尙)은 도리어 얻었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나는 불법을 알지 못한다. 재래(再來) 재래인(再來人)을 가리킴. 석씨계고략삼(釋氏稽古略三) 오조홍인대사존자(五祖弘忍大師尊者)는 기주(蘄川) 황매현(黃梅縣) 사람이다. 먼저 파두산(破頭山)에서 솔을 심는 도자(道者)였다. 일찍이 사조(四祖)에게 청해 가로되 도법(法道)을 가히 얻어 듣겠습니까. 사조가 가로되 너는 이미 늙었다. 혹 들음이 있더라도 그 능히 광화(廣化)하겠는가. 만약 재래(再來)한다면 내가 오히려 가히 너를 기다리겠다. 도자가 가서 물 가를 다니다가 한 여자가 옷을 빠는 걸 보았다. ()하며 가로되 기숙(寄宿)하려는데 얻겠는가. 여자가 가로되 나는 부모가 있으니 가히 가서 그에게 구하십시오. 도자가 가로되 응(), 내가 곧 감히 가서 구하겠다. 여자가 수긍(首肯)했다. 도자가 지팡이를 돌려 산으로 돌아와 화거(化去)했다. 그 여자는 주씨(周氏)의 막내 자식이었는데 갑자기 잉태(孕胎)했다. 부모가 매우 더럽게 여겨 그를 축출(逐出)했다. 여자가 돌아갈 곳이 없는지라 낮에는 방리(紡里) 중에서 품팔이 하고 저녁이면 중관(衆舘. 旅館) 아래 머물렀다. 그러고는 한 아들을 낳았는데 상서(祥瑞)롭지 못하다 하여 탁한 도랑 가운데 버렸는데 다음날 흐름을 거슬러 올라오는지라 크게 놀라 그를 거두었다. 아동(兒童)이 되자 어머니를 따라 마을 가운데서 걸식했다. 한 지자(智者)를 만났는데 감탄해 가로되 이 아이는 칠종상(七種相)이 모자라 여래(如來)에 미치지 못한다. 후에 사조(四祖)를 만나 득도(得度)했고 그에게서 전법(傳法)을 받았으며 이어서 파두산(破頭山)에서 교화했다.

남능북수(南能北秀); 혜능(慧能)은 소양(韶陽)의 조계(曹溪) 보림사(寶林寺)에 거주하면서 돈오법문(頓悟法門)을 홍양(弘揚)했음. 신수(神秀)가 북방에서 창도(倡道)한 바의 점오법문(漸悟法門)과 상대되므로 사가(史家)들이 칭하기를 남돈북점(南頓北漸)ㆍ남능북수(南能北秀)라 함. 육조단경(六祖壇經) 때에 조사는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에 거주했고 신수대사(神秀大師)는 형남(荊南)의 옥천사(玉泉寺)에 있었는데 때에 양종(兩宗)이 성화(盛化)한지라 사람들이 다 칭하기를 남능북수(南能北秀)라 했다.

조계단경(曹溪壇經); 조계(曹溪) 소주(韶州. 지금의 廣東 曲江縣 東南)의 강하(江河)에 위치함. 구이령(狗耳嶺)에서 발원(發源)하여 서쪽으로 흘러 진수(溱水)와 합함. 조후총(曹侯塚)을 경유하는 연고로써 또 호칭(呼稱)이 조후계(曹侯溪). () 천감원년(天監元年. 502) 천축 바라문삼장(婆羅門三藏)인 지약(智藥)이 조계(曹溪)의 입구에 이르러 그 물을 마시고는 이 근원(根源)이 승지(勝地)가 됨을 알았음. 이에 촌인(村人)에게 권해 절을 세우게 하고 다시 그 땅이 서국(西國)의 보림산(寶林山)과 흡사하다 하여 고로 보림사(寶林寺)로 호칭(呼稱)했음. 지약(智藥)이 예언(預言)해 말하되 백칠십 년 후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있어 여기에서 무상법문(無上法門)을 개연(開演)할 것이며 득도(得道)하는 자가 숲과 같으리라. () 의봉이년(儀鳳二年. 677) 봄에 이르자 육조혜능(六祖慧能)이 홍인(弘忍)을 좇아 법을 얻은 후 인종(印宗)을 좇아 머리를 깎고 구족계(具足戒)를 받고는 보림사(寶林寺)로 돌아가 법화(法化)를 크게 홍포(弘布)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조계법문(曹溪法門)이라 일컬음. 육조혜능(六祖慧能)을 가리킴. 혜능이 조계 보림사(寶林寺)로써 중심을 삼아 교화활동을 개전(開展)하였으므로 세인이 존칭하여 조계고불(曹溪古佛)ㆍ조계고조(曹溪高祖)라 함. 단경(壇經) 1. 전칭(全稱)이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이며 또 법보단경(法寶壇經)ㆍ단경(壇經)으로 일컬음. 육조혜능(六祖慧能)이 술()했고 법해(法海)가 집()했고 원대(元代)의 종보(宗寶)가 편()했음. 대정장(大正藏) 48책에 수록됨. 그 돈황사본(敦煌寫本)도 또한 동책(同冊)에 수록됨. 선종 육조혜능이 소주(韶州)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한 내용이 되는데 그 제자 법해(法海)가 집록(集錄)하여 이루었음. 모두 십문(十門)으로 나누는데 일()은 행유(行由)며 이()는 반야(般若)며 삼()은 의문(疑問)이며 사()는 정혜(定慧)며 오()는 좌선(坐禪)이며 육()은 참회(懺悔)며 칠()은 기연(機緣)이며 팔()은 돈점(頓漸)이며 구()는 선조(宣詔)며 십()은 부촉(付囑). 본서(本書)는 법해가 소주자사(韶州刺史) 위거()의 명을 받들어 집록(集錄)하여 이루었음. 그러나 후인이 다분(多分)히 절략(節略. 간략)한 바라 능히 조의(祖意)의 대전(大全)을 보지 못했는데 원대(元代)의 덕이(德異)가 이에 제방(諸方)을 탐구(探求)하여 그 전문(全文)을 얻었음. 세조(世祖) 지원이십칠년(至元二十七年. 1290) 오중(吳中)의 휴휴암(休休庵)에서 상재(上梓. 인쇄에 부침)했고 다음해에 종보(宗寶)가 다시 삼종(三種)의 이본(異本)을 교수(校讎. 대조하며 校正)하여 그 그릇됨을 바로잡고 그 절략(節略)을 상세(詳細)히 했음. 아울러 제자의 청익기연(請益機緣)을 증입(增入)하여 인행(印行)했음.

회자인구(膾炙人口); 많은 사람들이 애독(愛讀)함을 비유로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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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義 누를 황. 매화나무 매. 다시 재. 올 래. 남녘 남. 능할 능. 북녘 북. 빼어날 수. 무리 조. 시내 계. 단 단. 경서 경. 냄새 날 회. 회칠 회. 구울 자. 고기 구울 자. 사람 인. 입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