㊶❶達磨安心
❷達磨面壁 ❸二祖立雪斷臂云 弟子心未安 乞師安心 磨云 將心來 與汝安 祖云 覓心了不可得 磨云 爲汝安心竟
無門曰 ❹缺齒老胡 十萬里航海特特而來 可謂是無風起浪 末後接得一箇門人 又却❺六根不具 ❻咦 ❼謝三郞不識四字
頌曰 西來直指 事因囑起 撓聒叢林 元來是爾
❶達磨; 菩提達磨 此云道法 又稱菩提達摩 菩提達磨多羅 達磨多羅 菩提多羅 通稱達磨 東土禪宗初祖 西天第二十八祖 南天竺香至國國王之第三子 從般若多羅學道 與佛大先竝稱爲門下二甘露門 梁武帝普通元年(五二○ 西來年度 異說紛紜) 師泛海至廣州番禺 武帝遣使迎至建業 然與武帝語不相契 遂渡江至魏 止嵩山少林寺 面壁坐禪 時人不解其意 稱壁觀婆羅門 經九載 欲歸西方 囑慧可一宗之祕奧 授袈裟及楞伽經四卷 未久卽入寂 葬於熊耳山定林寺 師之示寂年代 有梁大通二年(五二八) 梁大同元年(五三五)或二年等異說 又梁武帝尊稱師爲聖胄大師 唐代宗賜圓覺大師之諡號 塔名空觀 [續高僧傳十六 傳燈錄三 傳法正宗記五 祖庭事苑二 同五 同八 舊唐書列傳一四一神秀傳]
❷達磨面壁; 傳燈錄三 菩提達磨 帝問曰 朕卽位已來 造寺寫經度僧 不可勝紀 有何功德 師曰 並無功德 帝曰 何以無功德 師曰 此但人天小果有漏之因 如影隨形 雖有非實 帝曰 如何是眞功德 答曰 淨智妙圓 體自空寂 如是功德 不以世求 帝又問 如何是聖諦第一義 師曰 廓然無聖 帝曰 對朕者誰 師曰不識 帝不領悟 師知機不契 是月十九日 潛迴(廣燈迴作過字)江北 十一月二十三日 屆于洛陽 …… 寓止于嵩山少林寺 面壁而坐 終日默然 人莫之測 謂之壁觀婆羅門
❸二祖立雪斷臂; 五燈會元一 菩提達磨章云 其年十二月九日夜 天大雨雪 光(神光)堅立不動 遲明積雪過膝 祖憫而問曰 汝久立雪中 當求何事 光悲淚曰 惟願和尙慈悲 開甘露門 廣度羣品 祖曰 諸佛無上妙道 曠劫精勤 難行能行 非忍而忍 豈以不德小智 輕心慢心 欲冀眞乘 徒勞勤苦 光聞祖誨勵 潛取利刀 自斷左臂 置于祖前 祖知是法器 乃曰 諸佛最初求道 爲法忘形 汝今斷臂吾前 求亦可在 祖遂因與易名曰慧可 可曰 諸佛法印 可得聞乎 祖曰 諸佛法印 匪從人得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祖曰 將心來 與汝安 可良久曰 覔心了不可得 祖曰 我與汝安心竟
❹缺齒老胡; 指中國禪宗初祖菩提達摩 含有呵佛罵祖語氣 ▲虛堂錄犂耕 叢林自古傳說 達磨與敎者論義 敎師怒擲如意 中師當門雙齒而缺落 然僧史不載
❺六根; 三藏法數 六根 [出首楞嚴經] 根卽能生之義 謂六根能生六識 故名六根 一眼根 謂眼能於色境 盡見諸色 瑜伽論云 能觀衆色是也 二耳根 謂耳能聽聞衆聲 瑜伽論云 數由此故 聲至能聞是也 三鼻根 謂鼻能齅聞香氣 瑜伽論云 數由此故 能齅於香是也 四舌根 謂舌能嘗於食味 瑜伽論云 能嘗衆味 數發言論是也 五身根 謂身爲諸根之所依止 瑜伽論云 諸根積聚是也 六意根 謂意於五塵境界 若好若惡 悉能分別也
❻咦; 發笑語 或當師家敎化學人之際 於某些難 以表達之事物 皆說此字 略具嘲笑之意味
❼謝三郞; 此指某漁夫 謝三郞 ㊀唐代玄沙師備之稱號 師俗姓謝 謝家三男之意而稱謝三郞 ▲玄沙廣錄中 問 如何是三世諸佛一時現前 師云 我是釣魚船上謝三郞 ㊁泛指某漁夫 亦作謝郞 ▲續傳燈錄二十三 野堂普崇 令人轉憶謝三郞 一絲獨釣寒江雨
) -->
㊶❶달마안심(達磨安心)
달마가 면벽하였는데(❷達磨面壁) ❸이조(二祖)가 눈(雪)에 서서 팔을 자르고 이르되 제자가 마음이 편안(便安)하지 못합니다. 스님에게 안심(安心)을 걸구(乞求)합니다. 달마가 이르되 마음을 가지고 온다면 너에게 안심(安心)을 주리라. 이조가 이르되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가히 얻지 못하겠습니다. 달마가 이르되 너를 위해 안심(安心)하기를 마쳤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이빨 빠진 노호(❹缺齒老胡)가 십만 리를 항해(航海)하여 아주 특별히 왔으니 가위(可謂) 이것은 무풍기랑(無風起浪)이라 할 만하다. 말후(末後)에 한 개의 문인(門人)을 접득(接得. 得은 助詞)했지만 또 도리어 ❺육근(六根)이 불구(不具)로다. ❻이(咦) ❼사삼랑(謝三郞)은 사자(四字)를 알지 못한다.
송왈(頌曰) 서래(西來)의 직지(直指)여,/ 일이 정촉(叮囑)으로 인해 일어났도다/ 총림을 요괄(撓聒. 搖亂)한 이는/ 원래 이 너(爾)니라.
❶달마(達磨); 보리달마(菩提達摩)임. 여기에선 이르되 도법(道法)이니 또 호칭(呼稱)이 보리달마(菩提達磨)ㆍ보리달마다라(菩提達磨多羅)ㆍ달마다라(達磨多羅)ㆍ보리다라(菩提多羅)며 통칭(通稱)이 달마임. 동토(東土)의 선종초조(禪宗初祖)며 서천(西天)의 제이십팔조(第二十八祖)임. 남천축(南天竺) 향지국(香至國) 국왕의 셋째 아들이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좇아 도를 배웠으며 불대선(佛大先)과 아울러 문하(門下)의 두 감로문(甘露門)이라고 호칭(呼稱)하였음. 양(梁) 무제(武帝) 보통원년(普通元年. 520. 西來의 年度에 異說이 紛紜함) 스님이 바다에 떠서 광주(廣州)의 번옹(番禺)에 이르자 무제(武帝)가 사자(使者)를 보내 영접(迎接)해 건업(建業)에 이르렀음. 그러나 무제와 말이 서로 계합(契合)치 못해 드디어 도강(渡江)하여 위(魏)에 이르러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면서 면벽(面壁)하며 좌선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해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일컬었음. 아홉 해가 지나 서방(西方)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혜가(慧可)에게 일종(一宗)의 비오(祕奧)를 부촉(付囑)하고 가사(袈裟)와 릉가경(楞伽經) 네 권을 주었음. 오래지 않아 입적(入寂)했고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장사 지냈음. 스님의 시적(示寂) 연대(年代)는 양(梁) 대통이년(大通二年. 528)ㆍ양(梁) 대동원년(大同元年. 535) 혹 이년(二年) 등의 이설(異說)이 있음. 또 양무제(梁武帝)가 스님을 존칭(尊稱)해 성주대사(聖胄大師)라 했으며 당(唐) 대종(代宗)은 원각대사(圓覺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음. 탑 이름은 공관(空觀)임. [續高僧傳十六 傳燈錄三 傳法正宗記五 祖庭事苑二 同五 同八 舊唐書列傳一四一神秀傳].
❷달마면벽(達磨面壁); 전등록삼(傳燈錄三) 보리달마(菩提達磨). 무제(武帝. 梁武帝)가 물어 가로되 짐(朕)이 즉위(卽位)한 이래로 절을 짓고 경을 베끼고 승려를 득도(得度) 한 것을 가히 다 기록치 못합니다. 어떤 공덕(功德)이 있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모두 공덕이 없습니다. 무제가 가로되 무엇 때문에 공덕이 없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이는 단지 인천(人天. 人과 天)의 소과(小果)인 유루(有漏. 번뇌)의 인(因)이라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아서 비록 있으나 실답지 못합니다. 무제가 가로되 무엇이 이 참 공덕입니까. 답해 가로되 정지(淨智)가 묘원(妙圓)하여 체(體)가 스스로 공적(空寂)하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간(世間)으로써 구하지 못합니다. 무제가 또 묻되 무엇이 이 성제의 제일의(聖諦第一義)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휑하여 성이 없습니다(廓然無聖). 무제가 가로되 짐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무제가 깨닫지 못했다. 스님이 기(機)가 계합(契合)하지 못했음을 알고 이 달 십구일 몰래 강북(江北)으로 돌아가(廣燈錄엔 迴를 過字로 지었음) 십이월 이십삼일에 낙양(洛陽)에 이르렀다. ……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 우지(寓止. 살면서 쉼)했다. 면벽(面壁)하고 앉았는데 종일 묵연(默然)하였으며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고 이르기를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했다.
❸이조입설단비(二祖立雪斷臂); 오등회원일(五燈會元一) 보리달마장(菩提達磨章)에 이르되 그 해 십이월 구일 밤 하늘이 눈을 많이 내렸다. 광(光. 神光)이 굳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새벽에 이르러선 눈이 쌓여 무릎을 지났다. 조사가 가엽게 여겨 물어 가로되 네가 오래 눈 가운데 섰음은 마땅히 무슨 일을 구함이냐. 신광(神光)이 슬프게 눈물흘리며 가로되 오직 화상(和尙)의 자비를 원하오니 감로문(甘露門)을 여시어 군품(羣品. 군생. 중생)을 널리 제도(濟度)하소서. 조사가 가로되 제불의 무상묘도(無上妙道)는 광겁(曠劫)에 정근(精勤)하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고 참지 못할 것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부덕(不德)한 소지(小智)와 경심(輕心)과 만심(慢心)으로 진승(眞乘. 진실한 敎法)을 바라고자 하는가. 근고(勤苦)가 헛수고이다. 신광이 조사(祖師)의 회려(誨勵. 가르쳐 勸奬함)를 듣고 몰래 예리(銳利)한 칼을 취해 스스로 그 왼팔을 절단(截斷)하여 조사의 앞에 놓았다. 조사가 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이에 가로되 제불(諸佛)이 최초에 구도(求道)하면서 법을 위해 몸을 잊었는데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절단하니 구함이 또한 가히 있다. 조사가 드디어 인해 이름을 바꾸어 가로되 혜가(慧可)라 하여 주었다. 혜가가 가로되 제불(諸佛)의 법인(法印)을 가히 얻어 듣겠습니까. 조사가 가로되 제불의 법인은 타인을 좇아 얻는 게 아니다. 혜가가 가로되 나의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스님에게 구걸(求乞)하오니 편안을 주소서. 조사가 가로되 마음을 가지고 온다면 너에게 편안을 주겠다. 혜가가 양구(良久. 잠시 말없이 있는 것)하고 가로되 마음을 찾았으나 가히 얻지 못하겠습니다. 조사가 가로되 내가 너에게 안심(安心)을 주어 마쳤다.
❹결치노호(缺齒老胡); 중국 선종초조(禪宗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를 가리킴.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는 어기(語氣)를 함유(含有)했음. ▲허당록리경(虛堂錄犂耕). 총림에서 예부터의 전설(傳說)에 달마가 교자(敎者)와 논의(論義)했는데 교사(敎師)가 노해 여의(如意)를 던졌고 스님의 당문쌍치(當門雙齒. 두 개의 앞니)에 맞아 빠져서 떨어졌다 하는데 그러나 승사(僧史)에 실리지 않았음.
❺육근(六根); 삼장법수이십일(三藏法數二十一). 육근(六根) [出首楞嚴經] 근(根)은 곧 능생(能生)의 뜻이니 이르자면 육근이 능히 육식(六識)을 내는지라 고로 이름이 육근임. 일(一) 안근(眼根) 이르자면 눈(眼)이 능히 색경(色境)에 모두 제색(諸色)을 보나니 유가론(瑜伽論)에 이르되 능히 뭇 색(色)을 본다 한 게 이것임. 이(二) 이근(耳根) 이르자면 귀(耳)가 능히 뭇 소리를 청문(聽聞)하나니 유가론(瑜伽論)에 이르되 자주(數삭) 이것을 말미암는 고로 소리가 이르면 능히 듣는다 한 게 이것임. 삼(三) 비근(鼻根) 이르자면 코(鼻)가 능히 향기를 냄새 맡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자주 이것을 말미암는 고로 능히 향기를 냄새 맡는다 한 게 이것임. 사(四) 설근(舌根) 이르자면 혀(舌)가 능히 식미(食味)를 맛보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능히 뭇 맛을 맛보며 자주 언론(言論)을 발(發)한다 한 게 이것임. 오(五) 신근(身根) 이르자면 몸(身)이 제근(諸根)의 의지(依止)하는 바가 되나니 유가론에 이르되 제근(諸根)이 적취(積聚)한다 한 게 이것임. 육(六) 의근(意根) 이르자면 뜻(意)이 오진(五塵)의 경계(境界)에 좋거나 나쁘거나 모두 능히 분별함임.
❻이(咦); 웃음을 발(發)하는 말임. 혹은 사가(師家)가 학인을 교화할 즈음에 어떤 조금의 어려움을 당해서 표달(表達)하는 사물(事物)에 다 이 글자를 씀. 조금 조소(嘲笑)의 의미(意味)를 갖췄음.
❼사삼랑(謝三郞); 여기에선 모(某) 어부(漁夫)를 가리킴. 사삼랑(謝三郞) ㊀당대(唐代) 현사사비(玄沙師備)의 칭호(稱號)니 스님의 속성(俗姓)이 사(謝)며 사가(謝家)의 삼남(三男)의 뜻으로 호칭이 사삼랑(謝三郞)임. ▲현사광록중(玄沙廣錄中). 묻되 무엇이 이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일시에 현전(現前)함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나는 이 조어선상(釣魚船上)의 사삼랑(謝三郞)이니라. ㊁널리 모(某) 어부(漁夫)를 가리키며 또한 사랑(謝郞)으로 지음. ▲속전등록이십삼(續傳燈錄二十三) 야당보안(野堂普崇).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사삼랑(謝三郞)을 추억케 하노니 한 낚싯줄로 한강(寒江)의 비에 홀로 낚시하누나.
'입주역해무문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43칙 수산죽비(首山竹篦) (0) | 2019.08.12 |
---|---|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42칙 여자출정(女子出定) (0) | 2019.08.12 |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40칙 적도정병(趯倒淨瓶) (0) | 2019.08.12 |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39칙 운문화타(雲門話墮) (0) | 2019.08.12 |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38칙 우과창령(牛過窓櫺) (0) | 2019.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