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43칙 수산죽비(首山竹篦)

태화당 2019. 8. 12. 08:56

首山竹篦

首山和尙 拈竹篦示衆云 汝等諸人若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汝諸人且道 喚作甚麽

無門曰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有語 不得無語 速道速道

頌曰 拈起竹篦 行殺活令 背觸交馳 佛祖乞命

首山; 首山省念 省念(九二六~九九三) 五代臨濟宗僧 萊州(今山東掖縣)人 俗姓狄 號首山 幼入南禪寺受業 纔受具足戒 遍遊叢席 常修頭陀行 密誦法華經 人稱念法華 師事風穴延沼 得其心傳 名振四方 風靡一世 其後開法於汝州首山 爲第一世 又住汝州葉縣寶安山廣敎院 及城下寶應院等 淳化三年(九九二)十二月四日 上堂說偈曰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翌年十二月四日上堂辭衆 仍說偈曰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見全身 言訖 安坐入寂 壽六十八 [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一]

竹篦; 禪林中師家指導學人之際 大抵皆手持此物 作爲點醒學人悟道之工具 又作竹篦子 其長約四十至五十公分 乃剖竹作無弦之弓形 手握處再捲藤塗漆 又於禪林中 師家或禪徒以針鋒相對 往來挨拶 參究禪機之際 師家或首座持竹篦以參禪問答 稱爲竹篦商量 [象器箋器物類]

) --> 

수산죽비(首山竹篦)

수산화상(首山和尙)이 죽비(竹篦)를 잡고 시중(示衆)해 이르되 너희 등 제인(諸人)이 만약 죽비라고 불러 지으면 곧 촉()이며 죽비라고 불러 짓지 않으면 곧 배(). 너희 제인(諸人)은 그래 말하라, 무엇이라고 불러 짓겠는가.

무문(無門)이 가로되 죽비라고 불러 지으면 곧 촉()이며 죽비라고 불러 짓지 않으면 곧 배(). 유어(有語)를 얻지 말고 무어(無語)도 얻지 말고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송왈(頌曰) 죽비를 집어 일으켜/ 살활(殺活)의 명령을 행하니/ 배촉(背觸)이 교치(交馳)하매/ 불조(佛祖)도 걸명(乞命)하도다.

수산(首山); 수산성념(首山省念). 성념(省念. 926~993) 오대(五代) 임제종 승려며 내주(萊州. 지금의 山東 掖縣)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적()이며 호가 수산(首山). 어려서 남선사(南禪寺)에 들어가 수업(受業)했고 겨우 구족계(具足戒)를 받자 총석(叢席)을 두루 다녔음. 늘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으며 몰래 법화경을 외운지라 사람들이 호칭(呼稱)하기를 염법화(念法華)라 했음. 풍혈연소(風穴延沼)에게 사사(師事)하여 그 심전(心傳)을 얻었으며 명성(名聲)을 사방에 떨쳐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했음. 그 후 여주(汝州) 수산(首山)에서 개법(開法)하여 제일세(第一世)가 되었고 또 여주(汝州) 섭현(葉縣) 보안산(寶安山)의 광교원(廣敎院) 및 성() 아래의 보응원(寶應院) 등에 거주했음. 순화삼년(淳化三年. 992) 십이월 사일에 상당(上堂)해 게()를 설해 가로되 금년에 예순일곱이니 늙고 병들어 인연 따라 또 날을 보내노라 금년에 내년의 일을 기억하고 내년에 금조(今朝)의 일을 기억하라. 다음 해 십이월 사일에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고별하며 이에 게()를 설해 가로되 백은세계(白銀世界)의 금색신(金色身)이여/ 정()과 비정(非情)이 한가지로 일진(一眞)이로다/ 명암(明暗)이 다한 때 다 비추지 못하나니/ 일륜(日輪)의 오후(午後)에 전신(全身)을 보이리라. 말을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예순여덟임. [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一].

죽비(竹篦); 선림(禪林) 중에서 사가(師家)가 학인(學人)을 지도(指導)할 즈음에 대저(大抵. 대개) 모두 손에 이 물건을 쥐어서 학인의 오도(悟道)를 점성(點醒. 點檢하고 깨치게 함)하는 데 쓰는 공구(工具). 또 죽비자(竹篦子)로 지음. 그 길이는 약() 40에서 50에 이르며 대를 쪼개어 활줄이 없는 활 모양으로 만듦. 손잡이에 다시 등()을 감고 칠()을 바름. 또 선림 중에서 사가(師家)나 혹 선도(禪徒)가 침봉(針鋒)을 상대(相對)하여 애찰(挨拶)을 왕래하면서 선기(禪機)를 참구(參究)하는 즈음에 사가(師家)나 혹은 수좌(首座)가 죽비를 쥐고 참선하며 문답함을 죽비상량(竹篦商量)이라고 호칭함. [象器箋器物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