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磨西來 不執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說箇直指 已是迂曲 更言成佛 郞當不少 旣是無門 因甚有關 老婆心切惡聲流布 ❶無庵欲贅一語 又成四十九則 其間些子誵訛 ❷剔起眉毛❸薦取 淳祐乙巳夏重刊
❹檢校少保❺寧武軍節度使京湖安撫❻制置大使兼屯田大使兼❼蘷路策應大使兼❽知❾江陵府漢東郡開國公食邑二千一百戶食實封陸佰戶 ❿孟珙 ⓫跋
❶無庵; 孟珙 號無庵居士 見下孟珙
❷剔起眉毛; 禪家勸誡學人振作精神頓悟禪旨的習語 又形容領會禪義 應接禪機極爲快捷
❸薦取; 又作薦得 薦 領會 領悟 又識 認識 取 後綴
❹檢校少保; 少保 古代官名 三孤(少師 少傅 少保)之一
❺寧武軍; 今河北省懷來縣東南
❻制置大使; 制置使 官名 唐大中五年(八五一)始置 北宋不常置 南宋設置漸多 掌本路諸州軍事 多以安撫大使兼任 其秩高望重者稱制置大使 [百度百科]
❼蘷路; 蘷州路 宋元時代行政區劃名稱 今重慶市奉節縣 [百度百科]
❽知; 主持 掌管
❾江陵府; 唐上元元年(七六〇) 設置南都 以荊州爲江陵府 治所在江陵 南宋建炎四年(一一三〇) 改江陵府爲荊南府 淳熙中(一一七四~一一八九) 複改江陵府 [百度百科]
❿孟珙; 一一九五~一二四六 字璞玉 號無庵居士 原籍絳州(今山西新絳) 南宋優秀的軍事家 統帥 抗金抗蒙名將 曾祖孟安祖父孟林是嶽飛部屬 隨軍至隨州 定居於隨州棗陽(今湖北棗陽) 累官樞密都承旨 京西湖北路安撫制置使 四川宣撫使兼知夔州 封漢東郡開國公 淳祐四年(一二四四) 兼知江陵府 淳祐六年(一二四六) 以檢校少師 寧武軍節度使致仕 旋卽病逝 享年五十二 後特贈太師 吉國公 諡忠襄 [百度百科]
⓫跋; 文體的一種 寫在書籍文章或書畫作品的後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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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達磨)가 서래(西來)하여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했거니와 직지(直指)를 설함이 이미 이는 우곡(迂曲)이거늘 다시 성불을 말하니 낭당(郞當)이 적지 않도다. 이미 곧 무문이거늘 무엇 때문에 관(關)이 있는가. 노파심(老婆心)이 간절(懇切)하여 악성(惡聲)이 유포(流布)되었도다. ❶무암(無庵)이 일어(一語)를 혹 붙이려(贅) 하면 또 사십구칙(四十九則)을 이루리라. 그 사이의 조금의 효와(誵訛)는 눈썹을 치켜세우고(❷剔起眉毛) ❸천취(薦取)하라. 순우을사(淳祐乙巳. 1245) 여름에 중간(重刊)하다.
검교소보 영무군절도사 경호안무제치대사 겸둔전대사 겸기로책응대사 겸지강릉부한동군개국공 식읍이천일백호 실봉육백호(❹檢校少保 ❺寧武軍節度使 京湖安撫❻制置大使 兼屯田大使 兼❼蘷路策應大使 兼❽知❾江陵府漢東郡開國公 食邑二千一百戶 食實封陸佰戶) ❿맹공(孟珙)이 ⓫발(跋)하다.
❶무암(無庵); 맹공(孟珙)의 호(號)가 무암거사(無庵居士)니 아래 맹공(孟珙)을 보라.
❷척기미모(剔起眉毛); 선가(禪家)에서 학인(學人)에게 권계(勸誡)해 정신(精神)을 진작(振作)해 선지(禪旨)를 돈오(頓悟)하라는 습어(習語. 습관적인 언어)임. 또 선의(禪義)를 영회(領會)하고 선기(禪機)를 응접(應接)함이 극히 쾌첩(快捷)함을 형용(形容)함.
❸천취(薦取); 또 천득(薦得)으로 지음. 천(薦)은 영회(領會)임. 영오(領悟)임. 또 식(識)ㆍ인식(認識)임. 취(取)는 후철(後綴).
❹검교소보(檢校少保); 소보(少保) 고대(古代)의 관명(官名)이니 삼고(三孤. 少師 少傅 少保)의 하나.
❺영무군(寧武軍);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회림현(懷來縣)의 동남(東南).
❻제치대사(制置大使); 제치사(制置使)는 관명(官名)이니 당(唐) 대중오년(大中五年. 851)에 처음으로 설치(設置)했음. 북송(北宋)은 늘 설치한 게 아니며 남송(南宋)은 설치가 점점 많아졌음. 본로(本路) 제주(諸州)의 군사(軍事)를 관장(管掌)했으며 다분히 안무대사(安撫大使)를 겸임(兼任)했음. 그 서열(序列)이 높고 덕망이 두터운 자를 일컬어 제치대사(制置大使)임. [百度百科].
❼기로(蘷路); 기주로(蘷州路)임. 송원시대(宋元時代)의 행정구획(行政區劃)의 명칭이니 지금의 중경시(重慶市) 봉절현(奉節縣)임. [百度百科].
❽지(知); 주지(主持)임 장관(掌管)임.
❾강릉부(江陵府); 당(唐) 상원원년(上元元年. 760) 남도(南都)에 설치했음. 형주(荊州)를 강릉부(江陵府)로 삼았으며 치소(治所)는 강릉(江陵)에 있음. 남송(南宋) 건염사년(建炎四年. 1130) 강릉부(江陵府)를 고쳐 형남부(荊南府)로 삼았고 순희중(淳熙中. 1174~1189) 강릉부(江陵府)로 복개(複改)했음. [百度百科].
❿맹공(孟珙); 1195~1246. 자(字)는 박옥(璞玉)이며 호(號)는 무암거사(無庵居士)며 원적(原籍)은 강주(絳州. 지금의 山西 新絳)임. 남송(南宋)의 우수(優秀)한 군사가(軍事家)며 통수(統帥)며 항금항몽(抗金抗蒙)의 명장(名將)임. 증조(曾祖) 맹안(孟安)과 조부(祖父) 맹림(孟林)은 이 악비(嶽飛)의 부속(部屬)이었음. 군대를 따라 수주(隨州)에 이르러 수주조양(隨州棗陽. 지금의 湖北 棗陽)에 정거(定居)했음. 추밀도승지(樞密都承旨)ㆍ경서호북로안무제치사(京西湖北路安撫制置使)ㆍ사천선무사겸지기주(四川宣撫使兼知夔州)를 역임(歷任)했고 한동군개국공(漢東郡開國公)으로 봉(封)해 졌음. 순우사년(淳祐四年. 1244) 강릉부(江陵府)를 겸지(兼知)했고 순우육년(淳祐六年. 1246) 검교소사(檢校少師)로서 영무군절도사(寧武軍節度使)의 벼슬을 지냈으며 얼마 후 곧 병으로 죽었음. 향년(享年)은 쉰둘이며 후에 태사(太師)ㆍ길국공(吉國公)을 특증(特贈)했으며 시(諡)는 충양(忠襄)임. [百度百科].
⓫발(跋); 문체(文體)의 일종(一種)이니 서적(書籍)이나 문장(文章) 혹은 서화(書畫)의 작품의 후면(後面)에 써 두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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