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黃龍三關
我手何似佛手 摸得❷枕頭背後 不覺大笑呵呵 元來通身是手
我脚何似驢脚 未擧步時踏著 一任四海橫行 倒跨❸楊岐三脚
人人有箇❹生緣 各各透徹機先 ❺那吒折骨還父 五祖豈藉爺緣
佛手驢脚生緣 非佛非道非禪 莫怪無門關險 結盡衲子深寃
❻瑞巖近日有無門 掇向❼繩床判古今 凡聖路頭俱截斷 幾多蟠蟄起雷音
請無門❽首座立僧 ❾山偈奉謝 紹定庚寅季春無量(❿宗壽)書
❶黃龍三關; 黃龍 指黃龍慧南 宗鑑法林三十一 黃龍慧南禪師 室中常問僧曰 人人盡有生緣在 上座生緣在何處 正問答時却伸手曰 我手何似佛手 又問諸方參請宗師所得 復垂脚曰 我脚何似驢脚 三十餘年示此三問 罕有契其旨者 因目之爲黃龍三關 ◆慧南(一○○二~一○六九) 宋代僧 臨濟宗黃龍派之祖 信州玉山(江西上饒)人 俗姓章 少習儒業 博通經史 十一歲從定水院智鑾出家 十九歲受具足戒 遍參棲賢澄諟 雲峰文悅 石霜楚圓等諸宿 遂嗣石霜楚圓之法 師初住同安崇勝禪院開堂說法 四衆歸趨 未久移至歸宗寺 因堂宇突遭火災 全寺盡毁 遂蒙寃坐獄 吏者百端求隙 而師怡然引咎 久而後赦 乃退居黃檗 於溪上築積翠庵 四方接踵而至 受請至黃龍山崇恩院 大振宗風 遍及湖南 湖北 江西 閩粤等地 此一系統乃蔚成黃龍派 日本臨濟宗之祖榮西卽源出此一流派 師每以公案廣度四衆 室中嘗設佛手驢脚生緣三轉語 以勘驗學人 三十餘年鮮有契其旨者 世稱黃龍三關 師住黃龍時 法席鼎盛 於宋熙寧二年入寂 壽六十八 世稱黃龍慧南 徽宗大觀四年(一一一○) 追諡普覺禪師 與同門方會之楊岐派對峙 與臨濟 潙仰 曹洞 雲門 法眼等五家 竝稱爲五家七宗 遺有黃龍南禪師語錄 語要 書尺集等各一卷行世 門下之晦堂祖心 寶峰克文 泐潭洪英等 皆馳名禪林 [續傳燈錄七 禪宗正脈十七 釋氏稽古略四]
❷枕頭; 卽枕 頭 後綴
❸楊岐三脚; 楊岐語錄 問 如何是佛 師云 三脚驢子弄蹄行 進云 莫只者便是 師云 湖南長老
❹生緣; 本貫 籍貫 家鄕
❺那吒折骨還父; 那吒 北方毘沙門天王第三子 上已出 祖庭事苑六 那吒 叢林有析骨還父 析肉還母之說 然於乘敎無文 不知依何而爲此言 愚未之知也
❻瑞巖; 瑞巖宗壽 宗壽晩年住明州瑞巖寺 見下宗壽
❼繩床; 又作坐床 坐禪床 爲繩製之座具 比丘坐臥用之
❽首座立僧; 卽立僧首座 指禪林僧堂中坐於後堂首座之分手位者 卽位於後堂首座之左右 竝排向內或向外 立僧 指分派職位之僧 卽會下僧衆中之第一座 [百丈淸規上祝釐章 下兩序章 象器箋殿堂類 坐位類 職位類]
❾山偈; 粗俗的偈句 是禪僧稱自己偈詩的謙詞 此指上記黃龍三關
❿宗壽; 南宋楊岐派僧 秀巖師瑞(楊岐下六世)法嗣 號無量 世稱無量壽禪師 晩年住明州(浙江鄞縣)瑞巖寺 撰入衆日用淸規 於寧宗嘉定二年(一二○九)刊行 [日用淸規 續傳燈錄三十五 五燈嚴統二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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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황룡삼관(黃龍三關)
내 손이 어찌하여 부처의 손과 같은가 하니/ 벼개(❷枕頭)의 배후(背後)를 더듬어라 하노라/ 불각(不覺)에 하하(呵呵) 대소(大笑)하리니/ 원래 온몸(通身)이 이 손이로다.
내 다리가 어찌하여 나귀 다리와 같은가 하니/ 걸음을 들기 전에 밟았다 하노라/ 사해(四海)에 횡행(橫行)하는 대로 맡기나니/ 양기의 삼각(❸楊岐三脚)을 거꾸로 탔노라.
사람마다 ❹생연(生緣)이 있다 함이여/ 각각 기선(機先)을 투철(透徹)하라/ 나타가 뼈를 쪼개어 부모에게 돌려주었거늘(❺那吒折骨還父)/ 오조(五祖)가 어찌 아버지의 인연을 빌리리오.
부처의 손, 나귀의 다리와 생연(生緣)이여/ 부처가 아니고 도가 아니고 선(禪)도 아니로다/ 무문관의 험(險)함을 괴이히 여기지 말아라/ 납자(衲子)와 깊은 원수(寃讐. 怨讐)를 맺었다 하노라.
❻서암(瑞巖)이 근일(近日)에 무문(無門. 慧開)이 있어/ ❼승상(繩床)을 향해 거두어 고금을 판단하노라/ 범성(凡聖)의 노두(路頭)를 다 절단(截斷)했거니와/ 얼마나 많은 반칩(蟠蟄. 冬眠動物)이 우레 소리에 일어나는가.
무문(無門)에게 ❽수좌입승(首座立僧)을 청하면서 ❾산게(山偈)로 봉사(奉謝. 받들어 感謝)한다. 소정경인(紹定庚寅. 1230) 계춘(季春)에 무량종수(無量❿宗壽)가 쓰다.
❶황룡삼관(黃龍三關); 황룡(黃龍)은 황룡혜남(黃龍慧南)을 가리킴. 종감법림삼십일(宗鑑法林三十一) 황룡혜남선사(黃龍慧南禪師). 실중(室中)에서 늘 중에게 물어 가로되 사람마다 다 생연(生緣)이 있나니 상좌(上座)의 생연이 어느 곳에 있느냐. 바로 문답할 때에 곧 손을 펴고 가로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我手何似佛手). 또 제방(諸方)에서 종사(宗師)를 참청(參請)하여 얻은 바를 묻고는 다시 다리를 내리고 가로되 내 다리가 어찌하여 나귀 다리와 같으냐(我脚何似驢脚). 삼십여 년을 이 세 질문을 보였는데 그 뜻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드물게 있었으므로 인하여 이를 제목해 황룡삼관(黃龍三關)이라 하였다. ◆혜남(慧南. 1002~1069) 송대(宋代)의 승려며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임. 신주옥산(信州玉山. 江西上饒)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章)임. 어릴 적에 유업(儒業)을 익혔으며 경사(經史)를 박통(博通)했음. 열한 살에 정수원(定水院) 지란(智鑾)을 좇아 출가했으며 열아홉 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서현징식(棲賢澄諟)ㆍ운봉문열(雲峰文悅)ㆍ석상초원(石霜楚圓) 등 여러 존숙을 두루 참알(參謁)하다가 드디어 석상초원의 법을 이었음. 스님이 처음엔 동안(同安) 숭승선원(崇勝禪院)에 주지(住持)하며 개당설법(開堂說法)했는데 사중(四衆)이 귀추(歸趨)했음. 오래지 않아 귀종사(歸宗寺)로 이지(移至)했는데 당우(堂宇)가 돌연(突然)히 화재를 만나 전사(全寺)가 다 훼손(毁損)됨으로 인해 드디어 원통(寃痛)하게 옥사(獄事)에 연좌(連坐)됨을 입었음. 옥리(獄吏)가 백단(百端. 온갖 방법)으로 틈을 구했으나 스님이 이연(怡然)히 허물을 끌어당겼음. 오래 후에 사면(赦免)되어 이에 황벽(黃檗)으로 퇴거(退居)했으며 계곡 위에 적취암(積翠庵)을 축조(築造)했는데 사방에서 접종(接踵. 사람이 잇따르다)하여 이르렀음. 요청을 받아 황룡산(黃龍山) 숭은원(崇恩院)에 이르러 종풍(宗風)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며 호남(湖南)ㆍ호북(湖北)ㆍ강서(江西)ㆍ민월(閩粤) 등의 땅에 두루 미쳤음. 이 일계통(一系統)이 곧 황룡파(黃龍派)를 위성(蔚成)했으며 일본 임제종의 개조(開祖)인 영서(榮西)도 곧 이 한 유파(流派)에서 나왔음. 스님이 매번 공안으로 사중을 널리 제도했는데 실중(室中)에서 늘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의 삼전어(三轉語. 轉은 量詞)를 시설해 학인을 감험(勘驗)했음. 삼십여 년에 그 뜻에 계합(契合)하는 자가 드물게 있는지라 세칭(世稱)이 황룡삼관(黃龍三關)임. 스님이 황룡에 주지(住持)할 때 법석이 정성(鼎盛. 융성)하였으며 송(宋) 희녕이년(熙寧二年)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예순여덟임. 세칭(世稱)이 황룡혜남(黃龍慧南)이며 휘종(徽宗) 대관사년(大觀四年. 1110) 추시(追諡)하여 보각선사(普覺禪師)라 했음. 동문인 방회(方會)의 양기파(楊岐派)와 대치(對峙)하며 임제(臨濟)ㆍ위앙(潙仰)ㆍ조동(曹洞)ㆍ운문(雲門)ㆍ법안(法眼) 등 오가(五家)와 아울러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일컬음. 유작(遺作)에 황룡남선사어록(黃龍南禪師語錄)ㆍ어요(語要)ㆍ서척집(書尺集) 각 일 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문하(門下)의 회당조심(晦堂祖心)ㆍ보봉극문(寶峰克文)ㆍ늑담홍영(泐潭洪英) 등은 다 선림에 치명(馳名)했음. [續傳燈錄七 禪宗正脈十七 釋氏稽古略四]
❷침두(枕頭); 곧 베개(枕)니 두(頭)는 후철(後綴).
❸양기삼각(楊岐三脚); 양기어록(楊岐語錄).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세 다리의 나귀가 발굽을 희롱하며 간다(三脚驢子弄蹄行). 여쭈어 이르되(進云) 다만 이것이 바로 이것이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호남장로(湖南長老)니라.
❹생연(生緣); 본관(本貫)임. 적관(籍貫)임. 가향(家鄕)임.
❺나타석골환부(那吒折骨還父); 나타(那吒) 북방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의 제삼자(第三子)임. 위에서 이미 나왔음. 조정사원육(祖庭事苑六) 나타(那吒) 총림(叢林)에 뼈를 쪼개어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살을 쪼개어 어머니에게 돌려준다는 설(說)이 있지만 그러나 승교(乘敎)에 글이 없거늘 무엇에 의해 이 말을 짓는지 알지 못하겠음. 우(愚. 謙辭)가 알지 못함.
❻서암(瑞巖); 서암종수(瑞巖宗壽)임. 종수(宗壽)는 만년(晩年)에 명주(明州) 서암사(瑞巖寺)에 거주했음. 아래 종수(宗壽)를 보라.
❼승상(繩床); 또 좌상(坐床)ㆍ좌선상(坐禪床)으로 지음. 승(繩. 줄)으로 만든 좌구(座具)가 됨. 비구(比丘)가 좌와(坐臥)에 이를 씀.
❽수좌입승(首座立僧); 곧 입승수좌(立僧首座)임. 선림(禪林) 승당(僧堂) 가운데 후당수좌(後堂首座)의 분수위(分手位)에 앉는 자를 가리킴. 곧 후당수좌(後堂首座)의 좌우(左右)에 위치하며 나란히 향내(向內)나 혹은 향외(向外)에 안배(安排)함. 입승(立僧)은 분파직위(分派職位)의 승려를 가리키며 곧 회하(會下) 승중(僧衆) 중의 제일좌(第一座)임. [百丈淸規上祝釐章 下兩序章 象器箋殿堂類 坐位類 職位類].
❾산게(山偈); 조속(粗俗)한 게구(偈句)니 이는 선승(禪僧)이 자기의 게시(偈詩)를 일컫는 겸사(謙詞)임. 여기에선 상기(上記)의 황룡삼관(黃龍三關)을 가리킴.
❿종수(宗壽); 남송(南宋) 양기파(楊岐派)의 승려니 수암사서(秀巖師瑞. 楊岐下六世)의 법사(法嗣)며 호는 무량(無量)이며 세칭 무량수선사(無量壽禪師)임. 만년(晩年)에 명주(明州. 浙江 鄞은縣) 서암사(瑞巖寺)에 거주했음. 입중일용청규(入衆日用淸規)를 찬(撰)했는데 영종(寧宗) 가정이년(嘉定二年. 1209)에 간행했음. [日用淸規 續傳燈錄三十五 五燈嚴統二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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