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혜개지자발(慧開之自跋)

태화당 2019. 8. 12. 09:01

從上佛祖垂示機緣 據款結案 初無剩語 揭翻腦蓋 露出眼睛 肯要諸人直下承當不從他覓 若是通方上士 纔聞擧著 便知落處 了無門戶可入 亦無階級可升 掉臂度關 不問關吏 豈不見玄沙道 無門解脫之門 無意道人之意 又白雲道 明明知道 只是者箇爲甚麽透不過 恁麽說話 也是赤土搽牛嬭 若透得無門關 早是鈍置無門 若透不得無門關 亦乃辜負自己 所謂涅槃心易曉 差別智難明 明得差別智 家國自安寧 旹紹定改元解制前五日 楊岐八世孫無門比丘慧開謹識

從上; 從前 以前

垂示; 垂說示衆 又作垂語 垂說 示衆 於禪林 師家對弟子大衆開示宗要 稱爲垂示 又於說示法要時 先以簡明語句標示所說之要諦 亦稱垂示 如碧巖錄從容錄等 均先垂示 次揭本則 後再評唱 又於垂示之後 師家接受學人之請問 爲彼等解疑釋難 稱爲索語 索話 或稱鉤語 鉤話 [六祖壇經定慧品 臨濟語錄 禪林寶訓三 象器箋垂說類]

據款結案; 款 情款 誠款 條目 結 詰問罪行定其刑罰 案 公案 公府案牘也 據款結案 依據民情而決定公府案牘 又依據罪人白狀而決定公府案牘

通方; 通大方 通方便 又通達 方 大方 方便

上士; 上等根器者 道德經第四十一聞道章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落處; 又作落著處 歸屬處也

掉臂度關不問關吏; 嘉泰普燈錄三 黃龍普覺慧南禪師 室中擧手問僧 我手何似佛手 垂足曰 我脚何似驢脚 人人盡有生緣 上座生緣在何處 學者莫有契其旨 叢林目之爲黃龍三關 脫有酬者 師未嘗可否 人莫涯其意 有問其故 師曰 已過關者 掉臂徑去 安知有關吏 從吏問可否 此未透關者也 五燈全書四十一 白雲守端 上堂 悟了更須遇人始得 若不遇人 祇是一箇無尾猢猻 才弄出人便笑 湛然圓澄禪師語錄八 客曰 上古禪德 祖祖相承師師密印 故可印證自心 近來末法澆漓 師承少遇 倘得悟心 誰爲印證 答曰 譬如有人久忘故物 一日忽憶尋覔不已 倘或得見疑惑氷消 是人更欲求別人證否 又如演若達多怖頭狂走 忽然狂息見頭如故 豈有更欲問人此是我頭耶非我頭耶 若欲更問 何異于狂 本分自心如能得悟 豈有更欲求人證許方乃消疑耳 湛然圓澄語錄七 故曰 人許我易 我自許難 又曰 惟人自肯乃方親

玄沙道; 玄沙 玄沙師備 師備(八三五~) 唐末五代僧 福州(今屬福建)閩縣人 俗姓謝 幼好垂釣 汎小艇於南臺江 狎諸漁者 唐咸通(八六~八七三)初 年屆三十 始脫塵志 投芙蓉山靈訓禪師落髮 受具足戒後 行頭陀法 終日宴坐 人稱備頭陀 與法兄雪峰義存 親近若師徒 同力締構 參學者衆 偶閱楞嚴經 發明心地 諸方請益者如水歸海 初住梅谿普應院 遷福州玄沙山 應機接物凡三十餘載 學侶八百餘人 時有閩帥王審知 事以師禮 曲盡殷勤 竝奏賜紫衣 號宗一大師 梁開平二年示寂 壽七十四(一說七十或七十五) 有語錄三卷傳世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五燈會元七 玄沙師備 佛道閑曠 無有程途 無門解脫之門 無意道人之意 不在三際 故不可昇沈 建立乖眞 非屬造化

白雲道; 白雲 白雲守端 守端(二五~七二) 宋代楊岐派僧 湖南衡陽人 俗姓周(一作葛) 二十歲依茶陵郁得度 後至諸方參學 於楊岐方會處得悟 承其法嗣 其後由圓通居訥推擧 住於江西承天禪院 歷住圓通崇勝禪院 安徽法華山證道禪院 龍門山乾明禪院 興化禪院 白雲山海會禪院等處 弘揚佛法 宋神宗熙寧五年示寂 壽四十八 門人法演編有白雲守端禪師語錄二卷 白雲端和尙廣錄四卷 [續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九 釋氏稽古略四] 聯燈會要十五 白雲守端 明明知道 只是這箇爲甚麽透不過

赤土搽牛嬭; 禪門拈頌集第三一三則 拈頌說話曰 赤土云云者 大觀本草云 牛嬭小柿 楚人以赤土塗之賣也 則謔你老爺 一本云這寃家子喪我門風 則山海經注云 西山之陰 灌水出焉 水中有流赭(赤士) 以塗牛焉則無疾 則赤土塗牛嬭 以攘牛馬之灾疾

涅槃心易曉; 正法眼藏一之上 眞淨和尙示衆 拈拄杖云 涅槃心易曉 差別智難明

差別智; 差別智卽普賢境界 根本智卽文殊境界乃歸源了性也 [碧巖錄不二鈔] 碧巖錄第四十三則 歸源了性與差別智無異 切忌作兩橛會

; 時的古字

解制; 解九旬安居之制限 首楞嚴經臆說 佛制比丘四月十五 爲禁足之晨 七月十五 名爲解制

楊岐; 楊岐方會 方會(九九六~四九) 北宋臨濟宗楊岐派之開祖 石霜楚圓之法嗣 南嶽下十一世 臨濟下七世 袁州(江西)宜春人 俗姓冷 法名方會 初從楚圓掌監院之事 後住筠州九峰山 未久至袁州楊岐山住持普通禪院 大振禪風 宋仁宗慶曆六年(四六) 住潭州雲蓋山海會寺 皇祐元年示寂 壽五十四 一說慶曆六年或皇祐二年示寂 壽五十八 與同門慧南之黃龍派對峙 與臨濟 潙仰 曹洞 雲門 法眼等五家 竝稱爲五家七宗 [續燈錄七 佛祖歷代通載十八 五燈會元十九]

謹識; 識 廣韻 職吏切 玉篇 識 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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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門關卷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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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상(從上)의 불조(佛祖)수시(垂示)하는 기연(機緣)거관결안(據款結案)인지라 애초에 잉어(剩語)가 없다. 뇌개(腦蓋. 腦蓋骨이니 곧 顱頂骨)를 게번(揭翻. 높이 들어 뒤엎음)하고 안정(眼睛)을 노출(露出)하여 바로(. ) 제인(諸人)이 직하(直下)에 승당(承當)하고 남을 좇아 찾지 않음을 요하나니 만약 이 통방(通方)상사(上士)라면 겨우 거착(. 助詞)함을 들으면 곧 낙처(落處)를 알아 가히 들어갈 문호(門戶)가 없고 또한 가히 오를 계급(階級)이 없음을 요득(了得)하고 팔을 흔들며 관문을 지나면서 관리에게 묻지 않으리라(掉臂度關 不問關吏). 어찌 보지 못하는가, 현사(玄沙)가 말하되 무문(無門)이 해탈(解脫)의 문()이며 무의(無意)가 도인(道人)의 뜻()이다. 백운(白雲)이 말하되 밝디밝게 말할 줄 알면서 다만 이 자개(者箇)를 무엇 때문에 뚫어 지나가지 못하는가. 이러한 설화(說話)는 또한 이는 적토로 우내에 바름이다(赤土搽牛嬭). 만약 무문관(無門關)을 투득(透得)했다면 벌써 이는 무문(無門. 慧開)을 둔치(鈍置)했음이며 만약 무문관을 뚫음을 얻지 못한다면 또한 곧 자기(自己)를 저버린(辜負) 것이다. 이른 바 열반심을 밝히기는 쉬워도(涅槃心易曉) 차별지(差別智)는 밝히기 어렵나니 차별지를 밝힌다면 가국(家國)이 저절로 안녕(安寧)할 것이다. ()는 소정개원(紹定改元. 1228) 해제전(解制前) 오일이니 양기(楊岐) 팔세손(八世孫) 무문비구(無門比丘) 혜개(慧開)가 삼가 쓴다(謹識)

종상(從上); 종전(從前). 이전(以前).

수시(垂示); 말을 내리어 대중에게 보임(垂說示衆). 또 수어(垂語)ㆍ수설(垂說)ㆍ시중(示衆)으로 지음. 선림(禪林)에서 사가(師家)가 제자와 대중을 상대로 종요(宗要)를 개시(開示)함을 수시(垂示)라고 호칭(呼稱). 또 법요(法要)를 설시(說示)할 때에 먼저 간명(簡明)한 어구(語句)로 설할 바의 요체(要諦)를 표시(標示)함을 또한 수시(垂示)라고 일컬음. 예컨대() 벽암록(碧巖錄)과 종용록(從容錄) 등은 가지런히 먼서 수시(垂示)하고 다음으로 본칙(本則)을 게시(揭示)하고 후에 다시 평창(評唱)했음. 또 수시(垂示)한 후에 사가(師家)가 학인(學人)의 청문(請問)을 접수(接受)하고 그들을 위해 의심을 풀고 난제(難題)를 푸는 것을 색어(索語)ㆍ색화(索話)라고 호칭하며 혹은 구어(鉤語)ㆍ구화(鉤話)라고 일컬음. [六祖壇經定慧品 臨濟語錄 禪林寶訓三 象器箋垂說類].

거관결안(據款結案); ()은 정관(情款). 성관(誠款). 조목(條目). ()은 죄행(罪行)을 힐문(詰問)하여 그 형벌(刑罰)을 정()함임. ()은 공안(公案)이니 공부(公府)의 안독(案牘. 官廳文書). 거관결안(據款結案)은 민정(民情)에 의거(依據)하여 공부(公府)의 안독(案牘)을 결정(決定)함임. 또 죄인(罪人)의 백상(白狀. 自白狀態)에 의거하여 공부의 안독을 결정함임.

통방(通方); 대방을 통함(通大方). 방편을 통함(通方便). 또 통달(通達). ()대방(大方). 방편(方便).

상사(上士); 상등(上等)의 근기자(根器者). 도덕경(道德經) 제사십일문도장(第四十一聞道章). 상사(上士)가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이를 행하고 중사(中士)가 도를 들으면 약존약망(若存若亡)하고 하사(下士)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나니 웃지 않는다면 족히 도가 되지 않는다.

낙처(落處); 또 낙착처(落著處)로 지음. 귀속처(歸屬處).

도비도관 불문관리(掉臂度關 不問關吏); 가태보등록삼(嘉泰普燈錄三) 황룡보각혜남선사(黃龍普覺慧南禪師). 실중(室中)에서 거수(擧手)하고 중에게 묻되 아수(我手)가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 발을 내리고 가로되 아각(我脚)이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사람마다 다 생연(生緣. 本貫. 家鄕)이 있나니 상좌(上座)의 생연은 어느 곳에 있느냐. 학자가 그 뜻에 계합(契合)함이 있지 않았다. 총림에서 이를 제목해 황룡삼관(黃龍三關)이라 했는데 혹 답을 하는 자가 있어도 스님이 일찍이 가부(可否.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사람이 그 뜻을 가늠하지 못해 누가 그 연고를 물었더니 스님이 가로되 이미 관문(關門)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며 떠나거늘 어찌 관리(關吏) 있음을 알겠는가. 관리를 좇아 가부(可否)를 묻는다면 이는 관문을 투과하지 못한 자이다. 오등전서사십일(五燈全書四十一) 백운수단(白雲守端). 상당(上堂)했다. 깨치고 나서 다시 우인(遇人. 印可해 줄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을 써야 비로소 옳나니 만약 우인(遇人)하지 않는다면 단지 이 한 개의 꼬리 없는 원숭이가 겨우 재롱을 떨며 나오매 사람들이 바로 웃느니라. 담연원징선사어록팔(湛然圓澄禪師語錄八. 圓澄洞山下三十一世). ()이 가로되 상고(上古)의 선덕(禪德)은 조사(祖師)와 조사가 상승(相承)하고 스승과 스승이 밀인(密印)하여 고로 가히 자심(自心)을 인증(印證)하였지만 근래(近來)는 말법(末法. 末法時代)인지라 요리(澆漓. 둘 다 淺薄의 뜻)하여 사승(師承. 스승의 承印)을 만남이 적으니 만약 오심(悟心. 마음임을 깨침)을 얻었더라도 누가 인증(印證)하겠습니까. 답해 가로되 비여(譬如. 비유로 예를 듦) 어떤 사람이 오래도록 고물(故物. 옛적에 쓰던 물건)을 망각(忘却)했다가 어느 날 홀연히 기억하고는 심멱(尋覓)하여 말지 않다가 만약 혹 득견(得見)한다면 의혹이 얼음 녹 듯하리니 이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의 인증(印證)을 구하려 하겠느냐. 우여(又如)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 달리다가 홀연히 미침()이 쉬어지매 머리가 옛과 같음을 보고서 어찌 다시 타인에게 이것이 이 나의 머리인가, 나의 머리가 아닌가 하고 물으려 함이 있으리오. 만약 다시 물으려 한다면 어찌 미침()과 다르리오. 본분(本分)인 자심(自心)을 능히 득오(得悟)할 것 같으면 어찌 다시 타인의 증허(證許)를 구()하고서야 비로소 이에 의혹을 소멸하려고 함이 있으리오. 담연원징어록칠(湛然圓澄語錄七). 고로 가로되 타인이 나를 허가(許可)하기는 쉬워도 내가 스스로 허가하기는 어렵다. 또 가로되 오직 사람이 스스로 긍낙(肯諾)해야 이에 비로소 친하다(惟人自肯乃方親) 했느니라.

현사도(玄沙道); 현사(玄沙) 현사사비(玄沙師備). 사비(師備. 835~908) 당말오대(唐末五代)의 승려며 복주(福州. 지금 福建) 민현(閩縣)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사(). 어릴 적에 낚시질을 좋아해 작은 배를 남대강(南臺江)에 띄우고 여러 어자(漁者. 漁夫)를 친압(親狎)하던 자였음. () 함통(咸通. 860~873) () 나이가 서른에 이르자 비로소 진지(塵志)를 벗고 부용산(芙蓉山) 영훈선사(靈訓禪師)에게 투신(投身)해 낙발(落髮)했음.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두타법(頭陀法)을 행해 종일(終日) 연좌(宴坐)한지라 사람들이 비두타(備頭陀)라 일컬었음. 법형(法兄)인 설봉의존(雪峰義存)과 친근하기가 마치 사도(師徒. 스승과 제자) 같았으며(현사는 설봉의 법을 이었음) 힘을 합쳐 체구(締構)하여 참학자(參學者)가 많았음. 우연히 릉엄경(楞嚴經)을 열람하다가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으며 제방에서 청익(請益)하는 자가 마치 물이 바다로 돌아감과 같았음. 처음엔 매계(梅谿) 보응원(普應院)에 거주하다가 복주(福州)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겼음. 응기접물(應機接物)하기 무릇 삼십여 재(. )며 학려(學侶)가 팔백여 인이었음. 때에 민수(閩帥) 왕심지(王審知)가 스승의 예()로 모시면서 은근(殷勤)을 곡진(曲盡)함이 있었으며 아울러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와 종일대사(宗一大師)란 호를 주었음. () 개평이년(開平二年)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일흔넷(一說엔 일흔 혹은 일흔다섯)이며 어록 세 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오등회원칠(五燈會元七) 현사사비(玄沙師備). 불도(佛道)는 한광(閑曠)하여 정도(程途)가 있지 않나니 무문(無門)이 해탈(解脫)의 문()이며 무의(無意)가 도인(道人)의 뜻()이다. 삼제(三際)에 있지 않으므로 고로 가히 승침(昇沈)하지 않으며 건립(建立)하면 진()에 어그러지므로 조화(造化)에 속하지 않느니라.

백운도(白雲道); 백운(白雲) 백운수단(白雲守端). 수단(守端. 1025~1072) 송대(宋代) 양기파(楊岐派)의 승려며 호남(湖南) 형양(衡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주(. 一作葛). 스무 살에 다릉욱(茶陵郁)에 의지(依止)해 득도(得度)했으며 후에 제방(諸方)에 이르러 참학(參學)하다가 양기방회(楊岐方會)의 처소에서 깨침을 얻었고 그 법사(法嗣)를 승계했음. 그 후 원통거눌(圓通居訥. 雲門下四世)의 추거(推擧. 推薦)로 말미암아 강서(江西) 승천선원(承天禪院)에 주지(住持)했음. 원통(圓通)의 숭승선원(崇勝禪院)ㆍ안휘(安徽)의 법화산(法華山) 증도선원(證道禪院)ㆍ용문산(龍門山) 건명선원(乾明禪院)ㆍ흥화선원(興化禪院)ㆍ백운산(白雲山) 해회선원(海會禪院) 등의 곳을 다니며 거주하면서 불법을 홍양(弘揚)하다가 송() 신종(神宗) 희녕오년(熙寧五年)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마흔여덟임. 문인(門人) 법연(法演)이 편집한 백운수단선사어록(白雲守端禪師語錄) 두 권과 백운단화상광록(白雲端和尙廣錄) 네 권이 있음. [續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九 釋氏稽古略四]. 연등회요십오(聯燈會要十五) 백운수단(白雲守端) 밝디밝게 말할 줄 알면서 다만 이 자개(者箇)를 무엇 때문에 뚫어 지나가지 못하는가.

적토차우내(赤土搽牛嬭);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313칙 염송설화(拈頌說話)에 가로되 적토운운(赤土云云)한 것은 대관본초(大觀本草)에 이르되 우내(牛嬭)는 작은 감(小柿)이다. 초인(楚人)이 적토(赤土)로 이에 발라서() 판매(販賣)한다 했으니 곧 너의 늙은 아비(老爺)를 희롱(. 희롱할 학)함임. 어떤 책(一本)에 이르되 이 원가자(寃家子)가 나의 문풍(門風)을 죽인다 했는데 곧 산해경(山海經) ()에 이르되 서산(西山)의 북쪽()에 관수(灌水)가 나는데 수중에 유자(流赭. 赤士)가 있으며 소에게 바르면 곧 질병이 없다 했으니 곧 적토도우내(赤土塗牛嬭)는 우마(牛馬)의 재질(灾疾. 災疾)을 물리침임.

열반심이효(涅槃心易曉); 정법안장일지상(正法眼藏一之上). 진정화상(眞淨和尙)이 시중(示衆)하다. 주장자를 잡고 이르되 열반심은 밝히기 쉬워도 차별지는 밝히기 어렵다(涅槃心易曉 差別智難明).

차별지(差別智); 차별지(差別智)는 곧 보현경계(普賢境界)근본지(根本智)는 곧 문수경계(文殊境界)니 곧 귀원요성(歸源了性)이다. [碧巖錄不二鈔]. 벽암록(碧巖錄) 43. 귀원요성(歸源了性)과 차별지(差別智)는 다름이 없으니 두 말뚝으로 앎을 지음을 간절히 꺼린다.

(); ()의 고자(古字).

해제(解制); 구순안거(九旬安居. 구십일 안거)의 제한(制限)을 푸는() 것임. 수릉엄경억설(首楞嚴經臆說). 부처님이 비구(比丘)에게 제율(制律)하시되 사월 십오일엔 금족(禁足)의 아침이며 칠월 십오일은 이름하여 해제(解制).

양기(楊岐); 양기방회(楊岐方會). 방회(方會. 996~1049) 북송(北宋) 임제종 양기파의 개조(開祖). 석상초원(石霜楚圓)의 법사(法嗣)니 남악하십일세(南嶽下十一世)며 임제하칠세(臨濟下七世). 원주(袁州. 江西) 의춘(宜春)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냉()이며 법명은 방회(方會). 처음엔 초원(楚圓)을 따르며 감원(監院)의 일을 장악(掌握)했고 뒤에 균주(筠州) 구봉산(九峰山)에 거주했고 오래지 않아 원주(袁州) 양기산(楊岐山)에 이르러 보통선원(普通禪院)에 주지(住持)하며 선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음. () 인종(仁宗) 경력육년(慶曆六年. 1046)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해회사(海會寺)에 거주했으며 황우원년(皇祐元年)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쉰넷임. 일설엔 경력육년(慶曆六年) 혹은 황우이년(皇祐二年)에 시적(示寂)했다 하니 나이가 쉰여덟임. 동문인 혜남(慧南)의 황룡파(黃龍派)와 대치(對峙)하며 임제(臨濟)ㆍ위앙(潙仰)ㆍ조동(曹洞)ㆍ운문(雲門)ㆍ법안(法眼) 등 오가(五家)와 아울러 칭하기를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함. [續燈錄七 佛祖歷代通載十八 五燈會元十九].

근지(謹識); () 광운(廣韻) 직리절(職吏切. )이다. 옥편(玉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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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권종(無門關卷終)